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0
이장욱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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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이 오던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재난은 우리가 상상하는 방식으로 오지 않는다고
웅장하고 범상치 않게 등장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그림자에 슬며시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잡는 거라고
그렇게 장악하는 거라고
뉴스를 보며 그런 생각에 사로 잡혔었다

신종 변이, 40도가 웃도는 기온, 해수면 상승, 뜨거운 태풍, 국지전, 새로운 정부 등이 세계를 이루는, 현재도, 그렇다고 완전한 미래도 아닌 이장욱의 세계에서 연과 천은 각자 모수와 한나를 회상하며 끊임없이 뒷걸음질 친다. 기록하는 모수와 연기하는 천, 중얼거리는 연과 혼자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한나. 그들이 모인 무도의 해변여관. 나아가지 않는 이야기, 닫혀버린 이야기에서 인물들은 각자의 유령처럼 떠돈다. 누군가의 말이 다른 누군가의 말로 뒤바뀌는 돌림노래 같은 중얼거림을 듣다보면 나도 그들을 따라서 중얼거리게 된다. 다음 구름에서 쉬어가자고. 떠난 이들과 남겨진 이들, 그리고 사라지는 이들이 남기는 쓸쓸함이 바닷바람처럼 코끝으로 몰려온다. 그걸 맡으니 뭐든 상관없어진다.

인물들을 느리게 조망하는 시선이 마지막에 이르러 뜨겁고 황량한 바다를 향하는 순간, 나도 거기서 조용히 그 바다를 응시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바다가 아닌 바다를 바라보는 이들의 이야기. 생성이 아닌 침잠의 이야기. 생성되다가도 어느 순간 침잠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이야기. 재난 이후가 아닌 그들의 이후를 상상하게 된다. 상상해야만 한다.

뒤에 실린 양윤의 평론가의 해설이 신비롭다. 실수와 허수의 개념으로 인물들을 배치하고 그들이 다른 차원으로 전환되는 과정이 수학적으로 설득력 있게 적혀 있다. 시간이란 허수의 차원이구나 하는 깨달음. 허수처럼 살게 되는, 살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더 들어보고 싶다. 세상은 비워지더라도 결국에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로 다시금 차오른다.

*현대문학으로부터 책을 제공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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