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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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할 수도 없는 삶이란 게 있다. 잉글랜드에서 살고 있는 어떤 금발 외국인의 삶이나 미국에서 큰 공을 세운 유명인사, 그런 이들의 삶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 삶들은 내 삶의 반경에 미치지 않는다. 어쩌면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평생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오히려 나와 비슷하나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사람들, 예를 들면 백 년 전의 조선이었을 이 땅에서 살았던 누군가의 삶. 이처럼 나와 가까웠을 삶들은, 그 가깝다는 거리와 무관하게, 아니 그것과는 완전히 반대로 상상이 되지 않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그럴 때 나는 소설을 읽는다.
상상되지 않는 삶을 다룬 소설을 읽으면 때로 그것은 마치 나와 가까운 어둠에 불을 밝히는 듯한 행위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과거를 배경으로 한국소설을 좋아한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나라 전체가 위기였던 100년 전의 하와이 이민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당장 책을 펼치고 싶게 하는 소설이었다. 그 페이지에는 내가 읽고 싶었던 나와 비슷한 사람이 느꼈을 낯섦과 고난, 감정이 서려 있었고 나는 그 불빛으로 나를 들여다보았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드는 점은 역사 속에서 잊혀진 개인을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소설이 시작되면 그 역사에 치중하게 되어 개인의 목소리가 묻히기도 하는데, 이 소설은 버들, 홍주, 송화라는 세 인물의 끈끈한 연대와 우정은 물론 버들의 어머니, 버들, 그리고 버들의 딸 펄에게까지 이어지는 개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마음이 아늑한 기분이었다. 나는 때론 버들의 어머니처럼 버들을 지켜보았고, 때론 버들처럼 펄을 지켜보았다. 그들이 성장해가며 자신을 위한 삶을 추구할 때, 나는 그들이 가장 그들다워 보여서 행복했다. 그 시대에 짙게 깔린 비극의 내음에서 잠깐의 향기를 찾은 것 같은 기분도 들었고 그들만큼은 정말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
현실도 많이 보았다. 제대로 된 이름도 가지지 못했던, 사진으로 결혼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하와이에 도착해 남편의 사진이 사기였음을 알게 되지만 도망칠 수 없었던, 조선의 여성들. 그리고 하와이 내에서 이승만과 박용만으로 편을 가르던, 지주인 미국인들에게 무시당하던 조선인들. 하지만 그런 고난 속에서 꿋꿋이 파도가 되어 살아내고 살아내던 버들의 모습은 나 자신을 많이 들여다보게 했다.
처음에 반갑게 시작했던 알로하라는 인사는 이제 사랑과 기쁨, 존중의 의미를 담은 인사가 되고 예뻐 보이기만 했던 꽃목걸이는 끈끈하게 살아온 이들의 연결고리가 된다. 가벼운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기다 페이지의 끝에 다다라서 무거운 마음이 되듯이. 책을 덮으면 나를 펼쳐보게 되듯이. 이제야 ‘나의 엄마들’의 ‘엄마들’은 누구인지, 그리고 ‘알로하’라는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누구인지 알게 된다. 그 사람들은 영원히 밀려오는 따뜻한 파도가 되어 나의 페이지에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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