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 심윤경 장편소설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억은 이상하다. 그것은 왜곡된 기억이기 때문이다. 왜곡될 기억이기 때문이다. 그런 대사를 얼핏 기억한다. 새파랗게 젊은 나에게 추억은 어릴 적이라 할 수 있는 시절밖에 없다. 어릴 적엔 그토록 괴롭고 지루했는데도, 나는 <지금> 있다. 그리고 그토록 괴롭고 지루한 일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웃음 짓는 추억만이 어릴 적의 시냇물에서 건져 올려진다. 이상한 일이다. 그러므로 추억은 가장 추상적인 기억이다. 그때 내가 왜 괴로웠냐고 하면 세상을 누구보다 잘 아는 어른들의 강압적인, 주입식의 사고방식 때문이었고, 지루했던 것은 내가 그걸 받아들이고 살겠노라 다짐했는데도 수시로 나타나는 그 광경을 참을 수 없어 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솔직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그런 거침없는 생각만을 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저 속으로 앓았을 뿐이고, 밖으로 삐져나온다 한들 거침없이 휘두르는 세상에 겁을 먹어 금방 움츠리듯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설이는 달랐다. 나처럼, 혹은 작가의 전작 <나의 아름다운 정원>의 동구처럼 행동했을 아이들과 다르게 솔직했다. 그건 어른들도 감히 행동하지 못하는 사고이자 방식이었다.



설이는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낯선> 사람이다. 어린 우리는 겁이 많은 게 사실이다. 아는 게 없고, 알아야 할 게 많고, 고갤 숙여야 할 일이 많고, 함부로 내세웠다가 어떤 보복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우리에게조차도 날이 선 언어로 그것들을 표현했지만 가장 약한 사람에겐 우리의 지겨운 익숙함도, 자신의 앞에 놓인 그 무엇도 한없이 날카롭다). 그것은 의지할 곳이 있는 게 당연하다고 느끼는 어린 마음 때문이다. 하지만 설이에겐 어린 마음 따윈 없다.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꺼내져 왔듯이, 세 번이나 파양을 당했듯이, 굳게 의지할 만한, 어린 마음 가져도 된다고 둥지를 기꺼이, 오래 내어주는 데가 없었다. 가족이라는 당연하고 익숙한 버팀목이 설이에겐 가장 낯선 것이었다.



버팀목이 없는 사람은 주춤거릴 수밖에 없다. 기어가는 아이는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일어서 있는 법을 배우고서 걷는 방법을 배운다. 설이는 처음부터 걸어야 했다. 어른들이 만든 줄 위에 서서 위태롭게 걸어야 했고, 설이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 줄을 걸었다. 게다가 그 줄을 만든 세상의 거짓과 싸웠다. 설이의 가장 특출난 점은 그런 것이다. 자신을 괴롭게 하는 세상과 싸운 것. 세상의 모순과 거짓을 술술 풀어내고자, 갈갈이 찢어버리고자 기꺼이 세상과 가장 친한 어른들과 싸웠다. 젊은 나는 내가 못했던 행동을 하는 설이를 금세 이해했고 응원했다.



그래서 설이는 가장 <날이 선> 아이다. 어른들은 아이였을 적 속으로 감춰온 그 날을 자라나면서 채찍으로 바꿨다. 그 채찍은 세상보다 어리석은 자신을 향하기도 했고, 자신보다 어리숙한 남에게 휘둘러졌다. 설이는 그 날을 감추지 않았다. 그 칼날을 채찍만 갖고있는 어른들에게 휘둘렀다. 어떤 어른들은 혀를 차며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어른들은 강제했다. 그러나 이모는 그런 건 아이일 때나 할 수 있는 거라며 이해했고, 곽은태 선생님은 거짓에 대해, 자기 아이에게만 독하게 구는 어리석은 마음에 대해 사과했다. 설이에게 그보다 더 큰 수확은 없을 것이다. 어른들에게 그것보다 더 순수한 구원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설이는 세상을 영원히 미워하고자 했다. 자신의 모든 삶이 거짓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알았을 때, 거짓과 참의 구분마저 헷갈려졌을 때, 설이는 모두를 미워하고자 했다. 냉소적으로 대하고 물어뜯고 햘퀴기로 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이유인지 설이는 운다. 무엇을 위해, 무엇을 향해 우는 것일까.



그렇게 설이는 자란다. 설이는 세상을 안기로 결심했다. 거짓과 참이 하나의 덩어리로 뭉친, 그 무게조차 각각으로 가늠할 수 없는 이 세상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으면 참이 되지 못했을 자신의 삶 때문이었다. 지나가 버린 시간의 강물은 잡을 수 없고 놓아주어야 함을 알았기 때문이고, 참과 거짓으로 감히 구분 지을 수 없는 기나긴 시간의 강물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보육원 원장님으로부터 고마움을 받아야 할 이모가 한순간만으로 죄책감을 영원히 안고 가야 하는 모습을 보고 설이는 각자에게 주어진 괴로움을, 각자에게만 주려고 노력한 이모를 가족보다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만큼 아량 넓은 감정은 없다. 사랑은 강철처럼 단단히 굳은 설이의 마음에 산소처럼 배어들었고, 설이는 세상의 공기를 조금씩 받아들였다. 그것은 과거에 가졌던 모든 미움에 대한 포기이자 안녕이었다. 여태껏 알았던 사람과의 이별도 슬픈 일이지만, 여태껏 자신이 욕망하고 자신을 행동하게 했던 어떤 것과의 포기와 안녕과 이별도 그에 비길 수 없이 눈물 나는 일이다. 설이는 그래서 울었다.



그리고 이제 설이는 <춤>을 춘다. 버팀목도 없이 자신이 만든 줄 위에서 자신만의 춤을 춘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춤을 흥겹게도 춘다. 그것만큼 설이를 잘 표현한 몸짓은 없을 것이다. 설이가 갓 어른이 되어 나처럼 어릴 적을 추억한다면 무엇을 떠올릴까. 아마 어른에게 반항했던 일들이 아니라 이모나 강아지 야코처럼 단순한 것들에 관한 사소한 기억뿐이겠지만, 거기에 배어드는 사랑의 향기는 설이를 괜히 웃음 짓게 할 것이다. 그리고 설이 역시 추억만큼 이상한 것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졸업식 날 자기의 짝 시현과 춤추고 있는 자신을 떠올릴 수도 있다. 설이가 추억하는 졸업식 날 췄던 춤은, 이제는 손에 쥐어진 <나침반>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날아오르는 <나비>의 모습과 닮아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