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유격수 소설의 첫 만남 12
스콧 니컬슨 지음, 노보듀스 그림, 송경아 옮김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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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뱀파이어라니, 얼토당토않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이해할 수 없는 범죄자(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생각만으로 테러블, 하니까)가 뉴스에 등장하는가 하면, 이해하기에 벅찬 미스테리(그래, 뱀파이어 말이다)가 세계 곳곳에 도저하고, 게다가 무엇이든 개연성만 있다면 일어날 수 있고 또 일어나도 되는 특별한 '마당'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잠깐이라도 그럴 수도? 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가 있는 것이다. 그 마당이 바로 ‘소설’이다.

그런데 사실 얼토당토않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 이 책의 화자나 등장인물들은 뱀파이어가 존재한다는 설정을 기정사실로 생각하고 있으며 되려 이상하게 생각하는 독자의 생각을 고쳐먹으려는 양 (뻔뻔스러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행동한다.

흔히 볼 수 있는 소설의 설정처럼 이 특이(뱀파이어)한 주인공 제리는 역시나 특출 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어떤 눈치 빠른 독자들은 제목에서부터 그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건 바로 리틀 야구단 선수 중에서는 아무나 따라올 수 없는 야구 실력. 바람처럼 나타나 과묵하게 주변을 맴돌다 훈련이 끝나면 박쥐가 되어 자신의 글러브를 발에 차고 퇴장하는가 하면 경기 시작 타이밍에 검은 개로 나타나고, 아이들에게 인기인 텀블러에 피로 추정되는 액체를 담아와 서슴없이 마셔 관중들이 놀라게 하는 등 뱀파이어란 디테일은 세세하고 그래서 유쾌하기도 하다. 하지만 마냥 유쾌함만을 전하는 게 비단 이 소설의 주제는 아닐 것이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게 이 소설에 있다. 바로 제리의 죽음. 그리고 그전까지 제리가 받아온 야유 "뱀파이어를 죽여라!" "말뚝을 박아 버려!"등과 불쾌한 시선 그리고 쓰레기. 관중들(주로 학부모들이다)과 강력한 상대팀인 '턴블 컨스트럭션 클로 해머스(굳이 소리 내서 읽지 않아도 된다)'의 코치인 턴불과 그의 아들이자 그 팀의 선수인 테드, 반칙을 묵인하는 심판(꼭 월드컵이나 올림픽에서 본 것 같은 사람이다)까지. 그들은 뱀파이어 제리를 '혐오'한다. 그리고 끝내 그를 죽인다. 누가 어떻게 그랬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방법이 좀 잔인하다. 이건 아니잖아,라고 우리 독자들은 생각할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애꿎은 부정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우리는 이 소설을 부정해야 할 게 아니라 이 소설이 쓰일 수밖에 없는

이 세상(혹은 작가가 꼬집으려는 세계의 속성)을 부정해야 할 판이다.

'다른 것에 대한 이해'를 이 소설은 소설의 첫 만남 시리즈의 독자에게 친절하게 알린다. 과거의 우리가 저지른, 다른 것에 대한 무조건적 차별을 구시대적 소재 혹은 이국적 소재라 할 수 있는 뱀파이어로 은유하여. 그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과거의 누군가는 분명히 '저질러왔음'을, 반성은 할 수 없지만(우리는 그래 본 적이 없을 테니까) 고민해보라는 것이다. 이런 차별은 그땐 그랬지, 로만 볼 수 없는 법이다. 우리는 상대방을 부르는 닉네임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속어라고 해도 무방한 무수한 단어를 알고 있다. 이젠 잊어야 할 것이다. '욕받이'가 저절로 따라붙던 '뱀파이어'의 수식어를

잊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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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실 이 '소설의 첫 만남' 시리즈가 원하던 그런 독자가 아니다. 나는 또래 중에서는 소설을 제법 열심히 읽어온 편이므로. 그러나 그렇기에 이런 책을 소개할 자격이 있는 게(이렇게 행운처럼 주어졌던 게) 아닌가 싶다.
과거가 문자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그림의 시대다. 글자는 되려 피곤하고, 그래서 피해지게 마련이었다. 그림은 그 자체로 감정을 불러일으켜 간편하지만 글자는 읽어야 알 수 있기에 한 단계 좀 '귀찮'으니까. 하지만 그림엔 지각 그 자체가 있다면 글자엔 지혜가 숨어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이는 지상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렵다는 것이다. 그놈의 글자가 왤케 피곤한 걸까요? 본인도 답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요 책을 읽어보라,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자격을 잠시나마 얻은 것 같다. 요 책은 말하자면, '둘 다' 있다. 글자는 크고 줄 수는 적어 읽기 편하고, 그림도 수준급이라 오래 감상해도 될 정도다. 게다가 가격도 착한 시리즈니 책을 수집하는 맛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시대가 지나도 살아남은 것들이 있고 살아남아야 할 것도 있다. 글자는 분명히 그러한 것이고, 그래서 어떻든 간에 지켜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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