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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하스 의자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1월
평점 :
웨하스 의자.

웨하스를 닮은 아파트, 그 안에 유일하게 불이켜진 그녀와 그녀의 애인의 모습. 언뜻 보면 남자의 덩치가 커서 그녀를 안아주는 것 같지만 실은 그녀가 그녀의 애인을 안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녀는 안기고 싶었는지도...
에쿠니가오리의 2001년 작 『웨하스 의자』는 서른여덟의 독신 여성과 이미 딸과 아들이 있는 유부남인 그녀의 애인의 이야기이다. 평범함을 가장한 어른의 성숙치 못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했던 『웨하스 의자』. 읽는 내내 세상의 잣대가 아닌 온전히 그녀의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안간힘을 쓴 것 같다.
나는 웨하스를 싫어한다. 하얀 웨하스의 반듯한 모양은 좋았지만 그 안에 크림이라기보다 설탕을 녹인 페스토처럼 묽은 얇고 애매한 맛이 싫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그랬기 때문에 그녀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그리 달갑지 않았다. 평범함을 평범함으로 보지 않고 느리게 보는 시선, 사물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세밀히 보는 시선(아무렇지 않게 지나쳐야 할 것만 같은 사물), 어딘가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으나 티내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웨하스와 의자의 존재는 현실이지만 웨하스 의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었다. 『웨하스 의자』에는 여러 이름이 나온다. 다만 그것은 사람의 이름이 아닌 동물의 이름일 뿐이다. 주인공은 분명 사람인데 존재를 부정하듯 단 한명의 이름도 없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는데 『웨하스 의자』는 그 어디에도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대신, 그녀 옆에는 절망(죽음에 이르는 병)이 존재했다. 그 절망은 늘 주변을 맴돌다 이따금씩 찾아왔다. 찾아온 절망을 그녀는 무시하지 못했고 절망이 하는 이야기에 늘 답변했으며 그것이 저항인듯 보이지만 공존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애인과 절망이 닮았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한다.
만약 그녀가 조금만 절망과 애인 옆을 떠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그녀가 절망의 끝을 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왜 애인과의 헤어짐이 절망의 끝이라고 생각했으며 스스로 그것을 선택했을까... 과연 다시 나타난 애인 앞에서 그녀는 다시 행복하다 말할 수 있었을까? 애인과 절망이 아니라 애인과 행복이었다면....
처음에는 써.
하지만 그건 쓰다고 생각하니까 쓴거지.
맛있다고 생각하면 맛있어
본문 119page 중에서
-술에 대한 아빠의 말-

더한 것도 덜한 것도 없어.
이는 그 자체가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다는 뜻이다.
본문 중에서
『웨하스 의자』를 읽는 동안은 끝없는 우물속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난 후엔 한없이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그녀를 다독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편을 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녀의 삶을 이해하고 그녀 또한 이해할 마음도 없다.
『웨하스 의자』에서 사랑하는 두 남녀는 실은 사랑이 허용되지 않는 사이입니다.
여자는 중년의 독신이고 남자는 이미 결혼한 유부남이기 때문이죠.
옮긴이의 말 중에서...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끊임없이 자신을 구해주길 바라는 것 같은 행동에서(철없는 어린아이같은 행동) 절망을 피하고 싶었던 모습이 보였다. 결국 그녀는 절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을지 뒷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에쿠니가오리의『웨하스 의자』는 읽는 동안에도 책을 덮은 후에도 외로움이라는 쓸쓸함이 떠나지 않았다. 그녀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한동안 쓸쓸함에서 머물러 있었다. 그녀의 주변을 둘러싼 죽음이 그녀에게 가져다 준 쓸쓸함이 더이상 그녀를 지배하지 않고 이제는 행복했으면 좋겠다.
죽음은 평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죽음은 언젠가 우리를 맞으러 와 줄 베이비시터 같은 것이다.
우리는 모두, 신의 철모르는 갓난아기다.
본문 45page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