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노, 먹쇠와 점돌이 즐거운 동화 여행 123
양정숙 지음, 이소영 그림 / 가문비(어린이가문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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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리가 아무리 낮을지라도 아는 것이 많으면 어디를 가도 대접을 받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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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부터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충노' 는 주인을 충심으로 섬기는 사내종을 뜻하는 단어이고, 이 책의 충노는 표지 그림에 굳은 결의가 보이는 두 주인공 먹쇠와 점돌이일 것입니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노비'라는 신분은 전통적 신분제 사회에서 최하층 신분으로 글을 배우고 쓰는 기본적인 것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먹쇠와 점돌이는 훌륭한 고 대감 댁 노비로 셋째아들 용후를 통해 글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글을 배울 수 없던 신분인 먹쇠와 점돌이가 글을 배우고 또 충노가 된 이야기. 궁금하시죠?^^



이이야기는 임진왜란때의 일입니다. 임진왜란이란 조선 선조 25년(1592년)부터 31년(1598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우리나라를 침입한 일본과의 싸움입니다. 예전에 임진왜란에 관련된 '남원성의 눈물'이라는 책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역시나 노비에 관련된 이야기 인데 하찮게 여겨지고, 글을 배울수도 없는 처지의 놓인 사람들이 모시고 있는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행복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내용을 훼손하지 않는 내에서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충노, 먹쇠와 점돌이' 이야기. 광주 남구 원산동에 가면 제봉산 아래 400년 된 포충사라는 사당이 있다고 하는데요. 이 사당으로 오르는 길 홍살문 옆에 '忠奴 鳳伊 貴人 之碑(충노 봉이 귀인 지비)'라는 글이 새겨진 자연석이 있습니다. 노비의 신분으로 비석까지 세워졌으니 그 공이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겠죠?




'충노, 먹쇠와 점돌이'의 나오는 사람들



고 대감 댁 노비로 힘도 세고 먹성도 좋은 먹쇠, 역시 고 대감 댁 노비 코 밑에 점이 있어 붙게 된 이름 점돌이, 의병대장 추대를 받아 임진왜란 때 금산 싸움에서 전사한 고 대감, 그리고 그 고 대감의 아들 종후, 인후, 용후가 등장인물입니다.





'충노, 먹쇠와 점돌이'_ 먹쇠와 점돌이가 충노가 된 사연



이야기의 시작은 이웃집 황 대감 댁 개똥이가 큰 잘못을 저질러 다른집으로 팔려가게 되는 장면입니다. 상전을 잘 못 만나 부모곁을 강제로 떠나게 되는 개똥이의 큰 잘못은 바로 다름아닌 글공부였습니다. 제대로 된 글공부도 아니고 주인집 도령의 글 읽는 소리를 마루 끝에 걸터앉아 들으며 따라 외우다가 매를 맞고도 또다시 몰래 듣다 결국 쫓겨나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먹쇠의 주인인 고 대감은 달랐습니다. 역병이 돌아 먹쇠가 아팠을때 고 대감은 달인 약을 손수 들고 행랑으로 찾아와 간호까지 해주었고, 명절마다 새 옷을 주었으며 절대 형편이 어려워져도 팔거나 어디로 보내지 않겠다고 따뜻한 말을 건네기도 하였으니까요. 그런 먹쇠에게 셋째아들 용후는 글을 가르쳐 주겠다고 합니다. 노비는 글을 배워서는 안되는 시기였기에 한사코 거절하지만 용후는 잠깐 틈을 내어 같이 논다 생각하면 되는 것이라고 먹쇠와 점돌이에게 글을 가르칩니다.




공부를 시작한지 일 년이 넘었을 즈음, 행랑 마당을 쓸고 난 고운 흙바닥에 먹쇠는 용후에게 배운 사자성어를 써보게 됩니다.


人者無敵(인자무적)


어진 사람에게는 적이 없다.


먹쇠는 쓰고 지우고 또 쓰며 반복해서 글을 읽히던 찰나 고 대감에게 그 모습을 들키게 됩니다. 창백해진 먹쇠에게 고 대감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자기 자리가 아무리 낮을지라도 아는 것이 많으면 어디를 가도 대접을 받는 법이다.



三人行必有我師 (삼인행필유아사)


셋이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세 사람이 같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는 뜻으로,


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면 좋은 것은 본받고, 


나쁜 것은 경계(警戒)하게 되므로 


선악(善惡) 간(間)에 반드시 스승이 될 만한 이가 있다는 말


이 일로 먹쇠는 고 대감에 대한 감사함이 더해갔고, 무엇이든 더 잘하고 싶어진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고 대감은 아마도 용후가 글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던 중 나라에 난리가 터졌습니다. 바로 임진왜란입니다. 이미 환갑 노인인 고 대감은 의병대장을 맡게 되었고 이를 종후와 인후가 뒤따랐습니다. 이때 먹쇠와 점돌이는 스스로 대감님을 따라 전쟁터에 나가기로 합니다. 그렇게 임실 운암리에서의 전투에 승리하고, 금산전투를 맞이하는데... 여기서 고 대감과 둘째아들이 전사하게 됩니다.



아버지와 동생을 잃은 첫째아들 종후는 다시 의병을 이끌고 전장에 나갈 준비를 합니다. 하지만 먹쇠와 점돌이가 함께하지 않습니다. 대신 봉이와 귀인이 함께합니다. 봉이와 귀인은 바로 먹쇠와 점돌이의 새 이름이죠. 종후가 의병들이 먹쇠와 점돌이에게 윗사람으로 모시게 하기 위하여 부대장으로 임명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성을 따라 양반처럼 불리울 수 있게 벼슬을 내렸습니다.





금산전투에 이어 진주성 전쟁터로 향한 이들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펑펑 울려대는 왜군의 조총 소리와 적을 향해 끓는 물을 부어대는 소리, 돌멩이를 주워 던지는 소리들로 진주성 전쟁터는 아수라장이었습니다. 봉이와 귀인, 그리고 종후에게 닥친 앞날은 '충노, 먹쇠와 점돌이' 책으로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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