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에 반대한다 이후 오퍼스 7
수잔 손택 지음, 이민아 옮김 / 이후 / 2002년 9월
품절


해석은 예술작품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잔인한 호전 행위로 보인다. 진짜 예술에는 우리를 안절부절못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해석자는 예술 작품을 그 내용으로 환원시키고, 그다음에 그것을 해석함으로써 길들인다. 해석은 예술을 다루기 쉽고 안락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해석의 호전성은 특히 문학에서 한층 더 극성이다. 카프카, 베케트...프루스트, 조이스, 포크너, 릴케, 로런스, 지드 등.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이 해석되기를 의도했는 안 했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의 작품이 지닌 가치는 필시 거기에 담긴 '의미'가 아닌, 어딘가 딴 데에서 찾아야 한다. -26쪽

해석은 예술작품이 일련의 내용으로 구성된다는 심히 미심쩍은 이론을 토대로 예술을 어지럽힌다. 예술을 지적 도식의 범주에 포함되는 일종의 실용 품목으로 만드는 것이다.
해석에서의 탈주는 현대 미술의 특징으로 나타난다. -29쪽

오늘날에는 어떤 종류의 비평이, 어떤 종류의 주석이 바람직한가?
첫째로 필요한 것은 예술의 형식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내용만으로 문학작품을 평가하는 편협한 태도는 해석의 오만을 야기하는 동시에, 형식에 대한 더욱 확장되고 더욱 철저한 설명을 간과하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형식을 위한 어휘, 규정적인 것이 아니라 묘사적인 어휘다. 흔치 않긴 하지만, 최상의 비평이라 함은 내용에 관한 언급 안에 형식에 대한 언급을 녹여낸 비평이다. -32쪽

투명성은 오늘날의 예술, 그리고 비평에서 가장 고상하고 가장 의미심장한 가치다.
지금 중요한 것은 감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는 더 잘 보고, 더 잘 듣고, 더 잘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의 임무는 예술작품에서 내용을 최대한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작품 속에 있는 것 이상의 내용을 더 이상 짜내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임무는 내용을 쳐내서 조금이라도 실체를 보는 것이다.
오늘날, 예술에 대해 뭔가를 말하려 한다면 우리는 예술작품이 우리에게 훨씬 더 실감나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비평의 기능은 예술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이 어떻게 예술작품이 됐는지, 더 나아가서는 예술작품은 예술작품일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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