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는 책들
구채은 지음 / 파지트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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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 n년차, 좋아하던 마음도 시들해지고 체력은 소진되고 아이디어는 고갈되었다. 정체성의 일부로 자리한 직업을 덜 힘들고 긍정적 에너지를 발산하며 생활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한다. 업무와 부서 이동, 직위와 근무지의 변화 등을 경험하면서 내적으로 쌓고 버리고 정리하고 채우는 것을 반복한다. 지친 마음은 위로하고, 고갈된 에너지를 채우기 위한 정신적 위안을 받으며 낡고 지리멸렬한 사고는 쇄신의 필요성을 느끼며 어제와 다른 자신을 만들어간다. 건강을 위해 운동만큼 챙기는 것이 책 읽기다. 학창 시절보다 더 찾아서 읽게 되고, 그곳에서 만난 이야기와 이들에게서 삶의 겸허함을 배운다. 무려 천 년 전에도 삶의 역경과 고난은 이어졌고, 사회의 변화를 쫓아가는데 허덕였으며 계급에 의한 차별과 억압을 저항했던 이야기. 저자 #구채은_이 말하는 '읽는 삶은 일하는 삶을 어떻게 구하나'에서 스펙트럼이 넓은 책을 만난다. 삶과 책을 이어주는 서평이 무겁지 않으면서도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책 속 이야기를 장바구니에 담으며 오늘과 내일을 위한 삶을 구해보려 한다.

​■표적은 맞추지 못했고 소망을 실현하지 못했다. 내가 소속되고 싶어하는 세계는 나를 밀어냈고, 나는 늘 다른 세계 속에 원치 않게 규정됐다. (26쪽)
□ 인간관계, 학업, 직업 등 삶의 영역 전반에서 자신이 성취하고자 하는 바를 모두 얻는 것은 어렵다. 간극에서 오는 괴리감을 어떻게 극복하고 줄여가는가는 현재 삶의 만족도를 추측케 한다.

■ 명중하지 못하는 삶 그 자체가 비애만으로 침윤되는 것은 아니어서다. 그 역경과 수난, 혼돈과 뒤틀림이 김시종 시인처럼 생애의 창조적 힘의 원천이자 출처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애초에 삶이란 명중해야 할 과녁이 없거나, 매번 흔들리거나, 비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32쪽)


■ 흡사 오늘날 사회 풍자가 가미된 스탠딩 코미디 같은 청량감을 준다. 신문의 만평을 활자화한다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다. 인간 '모두 까기'를 통해 느껴지는 통렬함, 골계미란 게 바로 이런 거구나 싶다. 반어법과 역설법이 주는 통쾌함이 간단치가 않다. (69쪽)
□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 이 출간된지 오백년도 더 지났다. 하지만 '우신'이 시전하는 인간의 삶이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다를 바 없다. 대단한 역사 발전의 결실이라도 맺었으며 진일보하였음을 내세우지만 신분에 따른 계급적 착취의 시대와 형식만 달라진 듯 하다.

​■ '불의를 당하는 것보다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더 나쁜 일이다' (84쪽)
□ 고전 속 이야기를 읽을 때면, 인간사가 거기서 거기로 느껴지고 허무해질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열의를 다해야 하는 이유는 무얼까. 플라톤의 『고르기아스』 한 구절이다. 신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오만함이 아닌 주어진 시간과 공간 속에서 최악을 피하고 차선을 찾는 인간적인 의지다.

​■ 명상록의 이 구절을 자주 매만진다.
머지 않아 너는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네가 지금 보고 있는 모든 것과 지금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명심하라. (111쪽)

​■ 고골이 묘사하는 위악적인 세계의 모습이다. '관직'이라는 촘촘한 계급이 개인을 질식할 정도로 꽉 움켜잡고 있다. 15등관 속에서 직위가 높은 관리는 아랫사람을 짓누르고 그 아랫사람은 또 밑에 있는 사람을 압제한다. '공무' 자체에 대한 책임감보다 강고한 관료제 속에 직위가 주는 권력욕에 취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151쪽)
□ 니콜라이 고골의 이야기는 18세기 배경이지만 2000년대 관료제와 다를 바 없다. 조직에 대한 넘치는 사랑으로 법을 이용한 사람 지배를 낯부끄러운지도 모르는 철면피는 현실 사회에서도 자주, 그리고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런 윌리가 혹독한 현실을 견디는 방법은, 현실에 '있'지 않는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현재에서 달아난다. 과거로 회귀한다. (156쪽)
□ 현실의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느끼면서 회피하고 외면한다. 가까운 나라의 정치가 극단으로 치닫았던 초창기 이유가 여기 있다. 변화의 시도를 묵살하고 다수 침묵하게 되면서 미래 세대가 없는 과거 세대만을 위한 잔치, 곧 정치가 되었다.

​■ 그가 일을 사랑해마지 않는 방식은 그가 하는 일의 본질, 속성, 목표와는 극명하게 반대된다. 책들을 빠른 시간 내에 압축하고 분쇄해 '처리'하고 '소멸'시키는 대가로 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는 게 그의 일이다. (174쪽)
□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 중 등장인물은 책을 사랑한다. 지식의 산물이고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정수이다. 하지만 그의 직업은 그런 책을 폐지로 쌓아놓고 압축하여 처리하는 것이다. 현실의 모순 앞에서 그 나름의 방식대로 책에 대한 순정과 낭만을 지켜간다. 물론 파국에 이르지만 우리가 마주한 오늘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

​■ 오웰은 이같은 계급구조에 환멸을 느끼며, 탄광 노동자들이 인류 번영의 씨앗이 된 석탄을 캐는 일을 해주고 있기에, 우리가 안락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힘주어 말한다. (215쪽)
□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속 탄광노동자 이야기다. 1930년대 산업화로부터 우리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생산력과 정량적 통계의 수치는 높아졌다. 우리의 시선을 자신의 영역에 국한하지 말고 더 넓고 크게 바라보려 한다. 과연 기회와 능력주의가 공정한 사회를 만들고 있는지, 자본주의는 공정을 가장한 불공평을 나누고 있지 않는지.

​◆ 파지트의 서포터즈로서 출판사로부터 제공된 도서를 바탕으로 작성된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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