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평생을 수치심과 싸워온 우리의 이야기
로라 베이츠 지음, 황가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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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시기만 되면 온라인 카페를 달구는 이혼 및 양가에 대한 험담 등이 난무하다. 제사가 문제라며 유교의 구시대적 발상은 조선으로부터라며 조상탓도 한다. 미투 운동이 확산될 무렵, 사법 및 교육 현장 등 영향을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 상황은 여성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간혹 날 것의 비난 중에는 여자들의 징징거림은 전근대적 사고 발상, 피해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일축하기도 한다. 양성 평등이 거론될 때면,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병역 문제를 양립하여 토론장에 올려놓는다. 인류 역사 발전 과정에서 남성 위주의 권력이 형성되었고 근대 사회에 이르러 여성의 역할이 두드러지고 인권에 대한 인식의 변화로 이러한 문제는 화두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편향적인 권력 구조로부터 소수 혹은 약자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았음을 살필 수 있다. 여성뿐 아니라 장애인, 성소수자, 아동, 난민, 흑인 등 사회적 우위를 점하지 못한 이들의 열악함을 대변하는 이야기다.

영국의 최근 실태 조사 결과 등을 반영하여 성토하듯 써내려간 이야기가 다소 거칠고 날 것 그대로 느껴진다. 2000년대 영국의 현실이라고 믿고 싶지 않은 상황이나 통계치가 게재되어 다소 충격적이다. 현실에서 느낄 비애, 좌절, 절망 등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거대하고 체계적인 대안이 제시된 것도 아니다. 이전부터 제기되었던 가부장적 구조에 대한 인식 제고, 다양한 계층의 생각을 반영한 정책 등이 실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개인이나 소수의 주장이 아닌 '일상 속 성차별 프로젝트 사이트'에 게재된 사례처럼 결코 개인의 문제, 사적이고 우연이 아니라고 말한다. 변화하지 않거나 더디게 변화 중인 사회도 있을 것이다. 거대한 흐름의 방향을 거스를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고한 권력 구조의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서는 날 선 공격과 갈등보다는 대화의 장을 이끌고 더디지만 합의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그 둘은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와 성희롱과 억압이 흔한 사회, 대개 백인 이성애자 비장애인 남성의 우위와 특권이 공고한 사회에서만 나타난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들이 개인의 문제라고, 사적이고 우연한 목록이라고 생각해왔다. (27쪽)
□ 여성 스스로도 개인의 문제, 사적이고 불운하여 발생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침묵해왔다. 소수의 용기있는 발언이 다수의 침묵을 깼다.

■ 사회에서 뭔가를 당연시하면 우리 자신도 그것을 당연시하게 된다. 우리는 '네 잘못'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그 말이 사실이라고 믿기 시작한다. (62쪽)
□ 완벽한 피해자의 구성 요소를 갖추지 않는다면, 자신의 옷차림, 이성관계, 생활패턴 등이 가해자로부터 성관련 폭력에 노출되도록 원인 제공자로 비춰진다. 스스로조차.

■ 목적은 여자들에게 어떤 책임도 없다고 선언하거나 아무런 노력도 하지 말라고 부추기기 위함이 아니다. 여자들에게 불리하게 설계된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이미 성취한 것을 상찬하고 지금껏 그들이 직면해왔으면서도 콕 집어 말할 수 없었던 장벽에 대한 정당한 분노를 표출하라고 말하기 위함이다. (70쪽)
□ 목소리를 내야 한다. 가장 먼저 자신이 들을 것이고 자신 탓이 아닌 것을 인지하게 될 것이다.

■ "그녀는 집에 걸어가고 있었을 뿐이다"와 "그녀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가 한동안 트위터 트렌드에 머물렀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남성 폭력에 희생된 여자들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정확히 말해준다. 그들 중 일부는 애도받을 권리가 있다. 착한 여자. 완벽한 피해자. 상냥하고 예쁘고 순수하고 신중하고 길을 벗어나거나 빨간 모자처럼 늑대와 이야기하지 않았던 여자.(111쪽)
□ 애도하면서 사회의 시스템이 작용된다. 규범 속 피해자만이 완벽한 피해자로 작용되도록. 혹시 새벽길 귀가였던지, 마약 복용자라던지 했을 경우 성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보다 그 피해자의 행위와 상황이 주목받는다. 이에 대한 대책도 마찬가지로 사회의 시스템이 적용된다. 여성의 귀가를 재촉하고 예방을 위한 도구를 소지하도록 한다. 성별이 뒤바꾼 사건에서 남성에게 이와 같은 대책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러한 점이 문제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 경찰은 내가 성폭행당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성폭행 전에 내가 그 남자에게 키스했으므로 그 뒤에 이어진 모든 성적인 행위에도 동의했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146쪽)
□ 너무 먼 과거의 사례라고 지적할 수도 있다. 책에 실린 사례는 '일상 속 성차별 프로젝트 사이트'에 기재된 내용을 토대로 2022년 최근까지 기록이 담겼다. 성관련 피해자가 실제 용기를 내어 신고하는 기간이 제법 걸리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과거와 달라진 점이 거의 없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용기내어 신고하였지만 사건화되지 않고 기소되지 않는다. 2020년 '독립사건'이라는 제목 아래 쓰여진 통계표에 따르면 가해자의 98.6퍼센트가 무죄 선고를 받는다.

■ 우리가 이런 범죄를 묘사할 때 사용하는 표현도 우리의 접근 방식에 성 고정관념이 얼마나 깊이 뿌리박혀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강간을 "합의되지 않은 섹스"라고 부르지만 절도를 '합의되지 않은 대여'라고 하지도, 납치를 '합의되지 않은 여행'이라고 하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수사와 기소를 하는 데 잇어서 피해자에 대한 편견히 성범죄만큼 견고하게 뿌리박혀 있는 범죄는 없다. (159쪽)

■ 우리는 이미 성기노출 사건이 재판까지는 가는 경우가 얼마나 드문지,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 수와 법적 정의를 실현한 사람 수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를 봤다. (172쪽)

■ 다양한 시스템 간의, 다양한 권력 및 억압 형태 간의 교차성을 한번 인식하고 나면 한 분야의 억압을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다른 분야들과 중첩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함을 알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성별을 기반으로 한 억압을 식민지지배 또는 원주민 억압 또는 기후 재난 또는 카스트제도 또는 해로운 종교적 근본주의 또는 가난 또는 기괴한 부의 양극화를 만들어내는 자본주의적 상업화와 분리될 수 없다. (224쪽)
□ 젠더 차별에 인식한 성희롱, 억압은 사회·경제적 약자의 상황과 교차되어 한 가지 기준만으로 인식되지 않고 해결되지 않는다. 열거된 사례의 #목록_은 피로감을 준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포기하기에는 너무 많은 여자의 삶이 위험에 처해 있다. #글로리아스타이넘_이 말했듯이 "권력이 있는 곳에서 눈을 떼지 않는" 다면, 우리의 관심이 표출되고 꾸준히 전달되어 구조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믿어보려 한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바탕으로 작성된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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