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없이 비올라 샘터어린이문고 72
허혜란 지음, 명랑 그림 / 샘터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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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현악 연주에서 비올라 음색만 따로 듣는 것은 일반인에게 쉽지 않다. 하지만 리처드 용재 오닐의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듣고 나면 아하! 감탄한다. 다수 악기 연주에서는 앞서지 않지만 비올라가 받쳐주면 풍성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산없이비올라 이야기 속 등장인물이나 소재 등은 이와 비슷한 느낌이다. 모두 주인공이 될 수 없어서 고민하고 절망하는 시기가 온다. 삶에 주어진 역할이 다르고 크기가 다르며 역량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것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색깔과 정체성이 완성된다.

선욱은 비올라를 전공한다. 입시를 앞두고 부담감에 몸과 마음이 다쳤다. 할머니 댁에서 잠시 쉬고 있다. 모든 일에 즐거움이 앞서는 할머니를 보면서 선욱은 자신과 비교한다. 할머니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밭일을 하며 봉사활동을 해내는 모든 모습에는 즐거움이 뭍어난다.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비유가 들어맞는다. 할머니의 악단은 그저 자신들의 즐거움에 대한 표출이지만 보는 이에게 더없는 음악적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한다. 선욱은 '음악'이 아닌 '성공'에 목표를 두었던 연주가 자신의 소리가 아닌 흉내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 삶도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에 목표를 두는 한 흉내뿐 일 것이다. #우산없이비올라 이야기는 청소년에게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목표를 위한 고민의 시간을 준다. 반면에 인생을 좀 살았다는 어른들에게도 자신이 걸어온 길을 반추시킨다.

​■ 특히 우리 할머니, 강은자 여사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노란 하이힐을 신고 에그 셰이크를 흔들며 춤을 추는 할머니는 그야말로 보이는 음악, 들리는 음악 그 자체였다. .......중략... 한 번도 보지 못한 이상한 앙상블이다. 가끔 박자나 음정이 틀리기는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틀려도 거슬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24p)


■ 마을 회관에서 한바탕 신나게 놀고 온 할머니는 또 신나게 밥을 차려 주었다. 가만히 보면 할머니는 언제나 기분이 좋다. 기분이 좋기로 아예 작정을 한 사람 같다. (34p)

■ 할머니는 어떤 것에도 거침이 없다. 누구의 눈치를 보지도 않고, 주눅이 들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음악의 분위기와 박자에 맞춰 척척 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악기를 겁 없이 대충 다룬다. (37p)

■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나 많은 말이 속에서 아우성을 쳤다. 힘들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 말을 하는 것이 두렵다. 이제 와서 그만둘 수는 없다. (54p)

■ 한두 방울 떨어지던 비는 좀 더 내릴 기색이다. 빗방울이 나뭇잎에 이어 내 머리에 떨어졌다. 급기야는 비올라 몸통에 정통으로 툭 떨어졌다. 나는 움찔했다. '툭' 하는 소리가 마치 내 가슴 판에 구멍을 뚫는 것만 같다. 아프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내 손은 계속 움직였다.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가 나를 에워쌌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77p)

​■ 녹슨 쇠사슬이 풀리는 소리였다. 레슨의 압박감에서, 콩쿠르의 긴장감에서, 뒤처질까 싶은 두려움에서, 정확한 음을 맞추지 못할까 봐 마음 졸이는 조마조마함에서. 그리고 묶여 있던 것들을 되찾는 소리였다. (83p)

■ 음악은 그런 것 같다. 듣고 있노라면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온다. 짜증과 분노를 사르르 녹이고 마치 빵빵한 풍선에 바람 구멍을 내서 바람이 다 빠진 것처럼 홀가분하게 만든다. 경쾌하고 즐거운 느낌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107p)

​◆ 2023년 봄여름 단행본 물방울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도서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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