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볼륨으로 비유하자면 늦은 밤에 듣게 될 라디오 DJ 음성과 같다. 날씨 예보에 비유하자면 완연한 봄의 한밤중과도 같은 소설이다. 포근하지만 사위가 조용한 공원에 서 있는 느낌이다. 벚꽃이 하늘하늘 떨어지면 괜시리 작은 미소를 짓게 되듯이 펼쳐지는 에피소드 마다 살며시 웃게 만드는 이야기다. 하필 사월이어서 그런지, 다 키운 아이를 상실한 부모, 그것도 30여 년이 지나도록 가슴에 묻고 살고 있는 인물의 독백과 같은 이야기는 가슴을 아리게 하면서도 기나긴 세월에 묻혀 아픔을 쉽게 꺼내지 못하는 망설임이 느껴진다. 토바는 열여덟 살 아들을 바다에 뺏겼다. 사건은 제대로 조사되지 못하고 자살로 종결되었다. 그 아이가 살아있었다면, 행복했던 아이가 정말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라면 사유라도 알고 싶은 아픔과 슬픔이 세월에 숨겨져 있다. 얼마전 병마로 남편까지 잃게 되면서 토바의 삶은 상실의 연속이었다. 또 다른 등장인물 캐머런은 아홉살에 유일한 부모인 엄마마저 떠난다. 약에 빠져서 엄마의 언니인 진 이모가 양육자가 된다. 충분한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평범하고 보통의 삶을 시작하지 못한 자신의 삶은 계속 어긋나 있었다. 직장 생활을 꾸준히 해 본 적도 없고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은 적도 없다. 그런 그가 우연히 친부를 찾을만한 단서를 얻게 된다. 그래서 소웰베이로 향하게 된다. 그곳 소웰베이 아쿠아리움 청소부 토바를 만나게 되고, 캐머런 역시 그곳에서 일하게 된다. 이 아쿠아리움에는 인간의 지능과 감성을 넘어선 거대태평양문어 마셀러스가 있다. 두 인물의 연결고리이자 현실 세계에서 가질 수 없는 따뜻하고 유쾌하면서도 다정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판타지 같은 요소가 바로 마셀러스의 시선이다. 550여 쪽을 읽는 내내 다정하고 따뜻한 포옹이 느껴지는 이야기다.■ 평범한 가족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특별한 밧줄 같은 게 주어지는 걸까. 캐머런은 평생 가질 수 없었던 것이. (94-95P)■ 바다가 깊숙이 간직한 비밀이란 이런 것들이다. 내가 다시는 탐험할 수 없는 것들. 그때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스니커즈 밑창과 끈, 단추, 복제 열쇠를 모두 챙길 것이다. 전부 다 그녀에게 전해줄 것이다. 그녀의 상실에 위로를 전한다. 이 열쇠를 돌려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다. (155P)■ 생명체들이 자신만의 작은 구멍을 누리게 두자고. 그렇게 생각하며 토바는 소리 내어 웃었다. (170P)■ 그런데, 전에 있던 청소부와 새로 온 청년은 말이다. 걸음걸이가 똑같다. (297P)■ 대체로 나는 구멍을 좋아한다. 내 수조 위에 있는 구멍이 내게 자유를 준다. 하지만 그녀의 심장에 생긴 구멍은 싫다. 심장이 세 개인 나와 달리 그녀의 심장은 하나뿐이다. 토바의 심장. 그 구멍이 메워지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할 생각이다. (368P)■ 내 수조까지 그 짧은 여정에도 기력이 달렸다. 나날이 약해지고 있다. 무거운 반지를 챙겨 내 동굴 안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다음 여행을 위해 체력을 보충해야 한다. 내 마지막 여행 말이다. (501P)◆ 창비미디어 서포터즈로서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바탕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