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9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라는 인디 가수의 절룩거리네라는 곡이 계속 떠오르는 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 스무 살 시절, 마음만큼 표현이 안되고 서툴던 그 시절- 내 마음을 대변해주던 곡. 아이러니한 건 이곡을 알게 해준것도 상대였다는거.
사랑이라는 감정 아래 얼마나 많음 사람들이 절룩거리고 있는가?
수사로서 살아가고 있는 요한 역시 예외 없이 절룩거린다. 읽는 내내 인생에 찾아왔다 가버린 사람들을 통해 절룩거리는 요한에게 이입하여 같이 절룩 거리며 아파했다. 절친했던 동료 수사 미카엘과 안젤로, 수사를 포기하고 새로운 인생을 꾸리고 싶을 만큼 사랑했던 소희까지. 그들은 요한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생에 준비된 상태로 받아들이는 게 얼마겠냐만..) 관계가 끊어진다.

공지영씨의 필력에 그 짧은 페이지를 통해 묘사된 그들을 이미 내 친구, 내가 사랑하는 사람처럼 이입해서 애정을 갖게 되었고 그들을 떠나보내면서 겪는 요한의 감정 변화에 이젠 없을 것 같은 그 절룩거림을 한껏 느끼며 감정 폭풍에 같이 휘몰아쳤다. 그래도 이 책을 기분 좋게 덮을 수 있었던 것은 내내 지속될 것 같은 절룩거림이 말미에가서는 놓아줄 수 있게 해준다.
끝까지 그 감정을 놓아주지 못하고 덮게 되는 게 싫었는데, 소설의 내용이 흘려 보낼 수 있게 해준다. 아니 나는 이미 흘려보낼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통해 흘려보내지 못한 내 마음속 찌꺼기도 같이 흘려 보낸 시간이었다.
높고 푸른 사다리는 요한의 시련뿐만 아니라 전혀 연결점이 없을 것 같은 한국전쟁 당시의 일도 자연스레 녹여 놓았다. 그런데 그 내용도 시큰하고 절룩거린다. 그렇지만 역시 흘려 보낼 수 있다. 억지스럽지 않게-


사실 공지영씨의 소설을 읽으며 억지스럽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이번에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400페이지 가까운 이 소설을 하루 만에 다 읽을 정도로 몰입해서 읽었다. 중간 중간 가슴 깊숙이 들어오는 문장들도 많았다. 평소라면 종이에 옮겨가며 읽거나 줄쳤겠지만 흐름을 놓치고 싶지 않아 쉼 없이 읽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또 읽어야지 그리고 그때 옮겨야지!
책은 또 읽고 싶은 것도 줄치고 싶은 문장들도 많고 많지만 결국 행동까지 이어지는 건 극소수이다. 그 극소수에 꼭 들어가는 게 공지영씨 책이다. 그런면에서 나는 참 행운아다. 이런 책을 써주는 공지영씨와 같은 시대에 살아가면서 실시간으로 꾸준히 그녀의 글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