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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없는 경제학 - 인물.철학.열정이 만든 금융의 역사
차현진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저자는 한국은행 직원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경제학은 돈 버는 법을 가르치는 학문이 아니다.'라고 단언 한다.
'경제학이란, 인간이 육신을 가지고 있는 동안 겪어야 하는 물질생활에 관한 철학이다.'
이 책의 구조는 내가 볼 때 약간은 상식적이지 않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지금부터의 모든 견해는 나의 사견임을 전제하고 시작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나'란 주어를 아주 명백히 한다.)
먼저 이 책의 저자의 깊이 있는 학식에 감탄을 표하는 바이지만, 이 책은 정치적으로 읽혀질 수 밖에 없다.
경제학이 돈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저자의 말대로 물질생활에 대한 어떤 통찰을 원하는가?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나는 말하겠다.
이 책의 저자가 의미하는 경제학의 정의에서 이 책의 내용을 고찰해 본다면,
인간의 경제사에서 얻어야 할 궁극적인 통찰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책의 1부와 2부는 금융의 출발점과 세계대전을 통한 화폐제도의 변화,
즉 화폐에 대한 통찰의 변화를 말하는 것 같다.
당연히 케인즈 선생이 출연한다.
3부부터는 5부까지는 금융혁신의 프런티어와 미국 연준의 시스템 개혁, 그리고 마지막으로 역사적으로 유명한
투기꾼들의 몰락을 다룬다.
내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6부는 미국의 신자유주의의 숨은 비조(?)인 아인 랜드를 다룬다.
여기에 앨런 그린스펀도 같이 출연한다.
잠깐 책의 내용을 인용하자.
p.231 시장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뿌리는 1940년대 시작된 객관주의에 있다.
p.235 앨런 그린스펀은 아인 랜드의 소설에 매료되어 그녀에게 몰려갔던 많은 추종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저자는 직설적으로 아인 랜드를 비판한다.
아예 개똥철학, 개똥철학의 종말이란 두 개의 장을 할당하여 이 어리석은 객관주의에 일격을 날린다.
그린스펀의 철학 자체가 아인 랜드의 객관주의의 아류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다시 책을 인용해 보자.
p.233 위기의 본질이 사람이므로 위기를 막는 것도 숫자가 아닌 사람이라는 점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기계나 수리모형은 사람을 대신할 수 없다!
7부는 화이트라는 생소하지만, IMF와 세계은행을 창시한 설계자에 대한 우리 한국과의 인연을 소개한다.
8부 부터 10부는 제목이 생소하지만, 저자의 일관된 주장인 "한국은행의 독립성"이란 주제를 향해 나아가는
이 책의 마지막 여정이다.
8부는 뜻밖에도 IMF환난의 중심에 서 있던 k모씨에 대한 비판이다.
다시 인용하자면,
p.310 거짓말은 무엇을 말하는가와 함께 무엇을 말하지 않는가에 따라서도 심판을 받는다.
9부는 간추린 한국은행의 설립사이다.
사실 한국은행에 다니는 저자가 자신이 속한 직장의 내력을 솔직히 내보이는 것도 대단한 용기라고 난 생각한다.
이 부분만으로도 사실 책값은 뽑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10부는 박정희와 한국은행의 독립을 위해 소신을 표명한 민병도 총재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통사적인 방법으로 접근하여 다음과 말한다.
다시 책을 인용해 보자.
p.454 필자는 사람을 평가하는 데에 있어서 친일파, 반일파 식의 흑백논리를 싫어하고 두려워 한다.
-----중 략-----
남이섬이 오늘날의 성공을 누릴 수 있게 한 원동력은, 민병도 총재가 비난했던 혁명정부의 과감한 경제정책이었던 것이다. ---- 중 략----
p.456 -- 고도성장을 통해 대한민국 부자들의 순위를 뒤바꾸는 일, 즉 떵떵거리던 토지재벌을 제치고
일개 쌀가게 종업원 출신의 정주영이나 소매상 이병철을 제조업을 통해 당대 최고의 부자로 만드는
경제정책이야말로 인간 박정희가 민병도를 비롯한 옛날 지주계급들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복수였는지도 모른다.
이 책의 결론은 다음의 한 문장이 다 말한다.
민병도 총재가 1963년 5월 22일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라 한다
p.442 "금융의 정치적 중립과 민주화를, 혁명정부가 민정이양에 앞서 이루어 놓기를 바랍니다."
이 책의 출간시점과 내용, 그리고 이 책의 추천사와 현재의 한국은행의 상황에서 보면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아주 많이 남겼다고 밖에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