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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표면 아래 - 너머를 보는 인류학
웨이드 데이비스 지음, 박희원 옮김 / 아고라 / 2024년 6월
평점 :
사물의 표면 아래_너머를 보는 인류학
지은이: Wade Davis 웨이드 데이비스
옮긴이: 박희원
발행일: 2024. 6. 28 1판 1쇄
펴낸곳: 도서출판 아고라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의 인류학 교수로 재직 중인 문화인류학자이자 민속식물학자인 웨이드 데이비스의 문화인류학책이 출간되었다. 문화인류학자나 민속식물학자를 떠올리면 밀림이나 저기 먼 아프리카의 소수 민족을 찾아가 그들과 함께 있는 외부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나나 보통의 독자들이 상상하는 인류학 교수인 그는 그렇게 세계의 여러 나라를 탐색하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에 대해 알리기에 바빴다. 그러나 그런 그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제동이 걸렸다. 그러면서 답사를 떠나 강을 따라다니고 사막을 건너고 숲을 헤치고 다니는 대신 텍스트의 바다를 헤치며 록다운에 걸린 답사를 글로 엮었다. 이 책에는 전쟁과 인종, 산맥, 식물, 기후, 탐험, 청년에게 그가 건네는 글, 신성에 본질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분야들의 사물과 사건들에 대한 표면의 아래까지 심층적으로 쓴 글을 모았다. 또한 그 여러가지 사건 한 가지 한 가지에 대해 사건 마다 여러가지 스펙트럼으로 비추어 우리가 모르던 부분들을 다각도로 다방면에 걸쳐 심층적으로 분석해준다.
모든 문화는 인간의 상상과 마음의 고유한 발로였다. 그 하나하나가 ‘인간으로 존재하고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고유한 답이었다. 이 질문을 받은 인류는 각기 다른 언어 7,000종으로 답한다. 이 목소리를 한데 모으면 우리가 하나의 종으로 직면하게 될 그 모든 난관에 대처할 자원이 된다. -p. 69 인류학이 중요한 이유
인류학이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학문으로 사물의 표면 아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p. 72 인류학이 중요한 이유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인 사이의 분쟁은 근본적으로 종교의 문제가 아니다. 공통으로 나타나는 수십 가지 의식 행위가 이슬람교와 유대교의 기원이 같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성소에 입장하기 전에 신발을 벗는 관습, 생리 중인 여성은 성전과 모스크 출입을 금하는 규칙, 기도 전에 씻어야 한다는 의무, 정해진 시기에 떠나는 순례, 예물과 희생 제물, 높은 언덕 꼭대기를 거룩한 곳으로 여기는 믿음, 성인과 신성한 나무와 산과 샘에 대한 경배가 그렇다. 중동에서 거의 한 세기 동안 맹렬하게 이어진 전투는 모두 땅과 기억 그리고 역사를 통제할 힘의 문제다. 이는 민족간 분쟁이기도 하지만, 완전히 별개인 두 역사 내러티브의 충돌이기도 하다.
-p. 81 약속의 땅
재무장관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와 외무장관 에드워드 그레이는 1914년 8월 말에 진작 비밀 전쟁선전국을 창설했다. 전쟁선전국의 목표는 영국이 전쟁에 임하는 목적을 국내와 해외 양쪽에 홍보하는 것이었다. 이 부서는 1917년 정보부로 흡수되었다. 총리가 된 로이드 조지가 시인했듯 그 무렵에는 “뚜렷한 결과 없이 심각한 손실만 입은 탓에 환멸과 전쟁에 대한 피로가 온 나라에 일반적인 감성으로 퍼져 있었다.” 1917년 12월 <<맨체스터가디언>>의 C. P 스콧 C. P Scott에게 한 논평에서 총리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사람들이 실상을 제대로 알면 전쟁은 내일이라도 멎을 겁니다.”
정보부의 과제는 사람들이 실상을 절대 모르게 하는 것이었다. - p. 134 전쟁과 추모
에베레스트 등정이 1921년 실제로 그랬듯 달 착륙만큼이나 상상 불가한 일이었던 시절을 돌이키노라면 도전 앞에 분연히 일어선 이들의 성품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반추하게 된다. 모든 것을 걸겠다는 의지가 그들을 저 높이까지 이끌었다. 그 기상은 오늘날에도 세계의 정상에 이르고자 만국에서 찾아오는 등반가들의 심장에 불을 지핀다. 이는 산악인이 바랄 수 있는 무엇보다 훌륭한 유산일 것이다. -p. 162 에베레스트 등정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그때까지 알려져 있던 세계를 전부 여행했다. 그리스로 돌아온 그는 페르시아 궁정의 일화 하나를 전했다. 어느 아침 다리우스 황제가 두 속민의 대표를 불러모았는데 한 민족은 사람이 죽으면 화장하는 문화였고 다른 민족은 죽은 사람을 먹는다고 알려져 있었다. 다리우스는 각 대표에게 서로의 죽음 의례를 따라 할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양쪽 모두 생각만으로도 경악했다.
헤로도토스는 여기서 명백한 결론을 도출했다. 모든 문화는 각자의 전통을 선호하고 다른 문화의 전통은 멸시한다는 것이다. 예수가 등장하기 5세기 전에도 이 영민한 관찰자는 의식의 여명이 밝아온 이래 다른 무엇보다도 인류에게서 떨어지지 않은 특성인 문화적 근시안을 식별해냈다. 우리 방식이 옳은 방식이고 그 밖의 모두는 스스로 모를지언정 우리가 되는 데 실패한 이들이라는 생각 말이다.
헤로도토스는 관찰하되 비판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토록 돋보였고 또 그만큼 비난받았다. 플루타르코스는 그가 미개인에게 공감한다고 힐난했고 아테네에서 그의 기억을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헤로도토스가 그저 아침식사로 무엇을 먹었는지, 여구를 싣고 다닌 말들의 이름은 무엇이었는지, 그때까지 그리스에는 알려진 적이 없던 따라서, 그가 새로 발견한 강을 헤엄쳐 건너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를 이야기 했다면 플루타르코스의 분노는 사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에는 다행스럽게도, 헤로도토스는 그렇게 하는 대신 자신이 새로이 알게 된 것을 기록했다. 그것을 개인적 체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현상, 자기 자신의 그림자 너머에서 본 것, 대지의 아름다움, 신기한 늪 생물, 민족의 시였다. 그는 현자로서, 경이를 향해 눈을 크게 뜨고 여행했다. 탐험은 이국정조를 넘어 앎과 믿음의 새로운 영역으로 그를 데려갔다. 그곳은 알고자 하는 이들의 영적 보금자리, 문화로 실현된 인간 상상력의 한없는 지평이었다.
서구 문명의 여명기에 헤로도토스는 인류 유산이야말로 무엇보다 탐험할 가치가 있음을 알아보았다. 2,000년 뒤 크누드 라스무센은 이누이트를 북극의 화신으로 인식했다. 이미 많은 사람이 다녀간 세계에서, 새로운 세대의 탐험가가 이들의 모범을 따르는 것은 썩 괜찮은 선택이다.
-p. 174~175
미국의 역사 속의 숨은 이야기, 중동, 영국, 아시아, 아프리카의 문화와 민족에 숨겨진 이야기까지, ‘사물의 표면 아래는’ 우리가 몰랐던 인류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알 수 있는 인류학의 총체이다. 책을 읽는 내내 재미와 긴장을 이어가며 마치 친절한 인류학자와 함께 역사 탐험을 떠난 듯 다채롭고 흥미진진하다.
우리는 얼마나 문화적으로 인종적으로 근시안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볼 기회를 주는 책이었다. 좋은 책은 항상 좋은 질문을 품게 한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좋은 글이었다.
자기 삶의 설계자가 되기 위한 고투야말로 무엇보다 위대한 창조적 과제야. 그러니 인내심을 가지거라. 타협하지 말고. 네 운명이 널 찾아올 시간을 주려무나. -p. 314
딸에게 전하는 웨이드 데이비스의 말이 참으로 따뜻하고 고마운 조언으로 들린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에게 울림을 주는 따뜻한 조언이었다. 어른이 되고 나니 누구라도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다. 스스로 깨치고 스스로 선택하여 삶을 재단해나가야만 한다. 오랜만에 듣는 ‘어른의 말씀’은 앞으로 인생을 나보다 오래 살아갈 젊은이들에게도 나처럼 어지간히 나이를 먹은 중년에게도 깨우침을 주고 있었다.
잔소리와 조언의 차이는 말하는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결정하는 주관적인 요소라고 한다. 작가 웨이드 데이비스가 딸에게 한 말은 나이든 내게도 잔소리가 아니라 조언으로 들린다.
따뜻한 인류학자의 시선으로 본 ‘너머를 보는 인류학’, “사물의 표면 아래”는 두고 두고 인류학에 대해 궁금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멀리 그리고 깊이 사물의 표면 아래까지 살피는 지혜에 이르게 하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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