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다양한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수많은 이야기가 한 명의 위대한 대하소설보다 가치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수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수많은 경험을 하나의 흐름 속에 통합하려는 야심을 갖는 것 자체는 이해할 수 있지만 아무리 그 책이 방대해도 결국 한 사람의 관점을 다룬 하나의 책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큰 건 내용이 아니라 무언가 거대한 것을 만들어 우쭐거리고 싶어하는 이야기꾼의 에고지요
히치콕은 거대한 손병호 게임의 생존자였습니다. 여자들 모두 접어. 백인 아닌 사람들은 모두 접어. 빈곤층 접어.
남자들의 세계 안에 갇혀 기초적인 피드백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말초적인 천박함을 추가하자 그런 영화들이 나왔던 거예요.20)
80년대까지 한국 영화에서는 섹스 장면을 강간처럼 찍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과연 강간과 합의하의 섹스를 구별할 수 있는 기초적인 능력이 있긴 했는지 의심하게 되는 지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얼마 전 신남성연대 대표가 CNN과 인터뷰했다고 SNS에서 우쭐거리는 걸 본 적 있는데, 자기네들이 얼마나 천치처럼 보일지 인터뷰 내용이 뜨기 전까지 전혀 몰랐던 것 같습니다. 이게 제가 지금 사는 나라가 아니라면 <프로듀서스>(1967)의 관객들이 극 중 연극인 <히틀러의 봄>을 보듯 그냥 배꼽 잡고 비웃다 잊어버릴 텐데요.
"매일 더 기온이 올라가는 것 같아. 안 그래? 결국은 아무도 견디지 못할 정도로 뜨거워질 거야." 그녀는 스웨터를 벗고 좌석에 앉은 채로 몸을 이리저리 뒤틀어 바지를 벗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우린 그때까지 살아 있지도 않겠지……. 정오에 외출조차도 못 하는 시절이 오려면 50년은 더 걸릴 테니까. 노래 가사에도 있듯이, 미친 개하고 영국인만 외출하는 날씨가 되려면 말이야.*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냐."
일종의 신념 같은 것이 있어야 겨우 눈에 보이는 종류의 수영복이었고, 두 사람 입장에서는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