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설은 끓어오르는 감정을 퍼 담기에 급급한 졸작이었다. 하지만 그 미숙한 감상의 이면에는 그것을 글로 쓸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헛되지 않다는 믿음이 있었다. 나는 검은 표지에 새겨진 새하얀 나선의 빛을 손으로 더듬어보았다. 그것은 바다 밑에 잠긴 배 위에 매달린 돛의 음영, 혹은 버려진 책을 집어든 단 한 사람의 공감, 끝없이 실패하면서 다시 시작하는 제로의 출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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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친밀한 이방인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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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언제라도 로맨스에 감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것은 가장 쉽고 빠른 마취제다. 그들은 그렇게 사기극을 완성했다. 하지만 어떤 사기극이든 진실을 담보하기 마련이다. 그러지 않고는 사람들을 속여넘길 수 없다. 엠의 일기가 그랬다. 엠이 기록한 하루하루, 그 속에 이유미의 그림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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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다양한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수많은 이야기가 한 명의 위대한 대하소설보다 가치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수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수많은 경험을 하나의 흐름 속에 통합하려는 야심을 갖는 것 자체는 이해할 수 있지만 아무리 그 책이 방대해도 결국 한 사람의 관점을 다룬 하나의 책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큰 건 내용이 아니라 무언가 거대한 것을 만들어 우쭐거리고 싶어하는 이야기꾼의 에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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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은 거대한 손병호 게임의 생존자였습니다. 여자들 모두 접어. 백인 아닌 사람들은 모두 접어. 빈곤층 접어.

남자들의 세계 안에 갇혀 기초적인 피드백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말초적인 천박함을 추가하자 그런 영화들이 나왔던 거예요.
20)

80년대까지 한국 영화에서는 섹스 장면을 강간처럼 찍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과연 강간과 합의하의 섹스를 구별할 수 있는 기초적인 능력이 있긴 했는지 의심하게 되는 지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얼마 전 신남성연대 대표가 CNN과 인터뷰했다고 SNS에서 우쭐거리는 걸 본 적 있는데, 자기네들이 얼마나 천치처럼 보일지 인터뷰 내용이 뜨기 전까지 전혀 몰랐던 것 같습니다. 이게 제가 지금 사는 나라가 아니라면 <프로듀서스>(1967)의 관객들이 극 중 연극인 <히틀러의 봄>을 보듯 그냥 배꼽 잡고 비웃다 잊어버릴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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