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상식의 블랙홀
신박진영 지음 / 봄알람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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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하루 만에 완독하고 책을 내려놓는데 어깨가 뻐근하다.
낮에 아이들과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 낮잠까지 한숨 잔 데다가 책은 북 스탠드에 받쳐 읽었으니 자세나 운동 부족 때문은 아닌 듯하다.

읽는 내내 에너지 소모가 많았다.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상식의 악‘ 앞에서는 분노조차도 어깨에 멘 짐처럼 무거워지는 모양이다.

젊은 시절에 성폭력, 가정폭력 상담원으로 잠시 일한 경험이 있다. 처음과 중간을 생략하고 결과만 말하면 나는 거기서 도망쳤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다. 스트레스의 근원은 ‘절망감‘이었다.

이건 해결이 안 될 것 같아. 나는 지금 눈이 펑펑 내리는데 싸리빗자루로 지붕만 자꾸 쓸고 있는 거야. 집은 눈에 파묻혀 있는데. 아무리 쓸어도 그냥 파묻혀 있을 텐데. 그런 절망감이 들었다.

그래서 저자인 신박진영이 존경스러웠다. 어떻게 그 세월을 이겨내셨을까?

저자의 석사학위 논문을 다운로드 받아두었다. 스티그 라르손의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그 논문부터 읽어야겠다.

저자를 만날 기회가 생길 듯한데, 일이 잘 풀려서 꼭 만나뵐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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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세계행복자료World Database of Happiness를 바탕으로 발표된 그래프를 보면 행복감이 높은 국가일수록 출산율도 확연히 높습니다. 이 그래프에 나타난 한국의 위치는 다소 참담합니다. 22개국 중 가장 출산율이 낮고, 행복감 또한 최하위권에 있습니다.

매년 OECD 가입국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행복 조사에 이런 문항이 있습니다. "당신은 어려움에 처할 때 도움을 청할 사람이 있습니까?" 이 질문에 "Yes"라고 대답하는 비율이 가장 낮은 국가가 한국입니다.

개개인의 관심과 따뜻한 심성이 가족을 비롯해 가까운 몇 사람에게 과하게 편중된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사실 부모 세대로서는 자녀에게 결혼보다 비혼을 독려하는 것이 기능적으로는 더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연구 결과상, 비혼인 자녀들은 외로움은 덜 느끼고 친구 수는 더 많은, 기능적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사회학에는 ‘탐욕스러운 결혼greedy marriage’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결혼 이후 개인의 인지적, 정서적, 물질적인 자원이 자신의 새로운 가족에게만 집중되는 현상을 일컫는 말입니다. 아마 이런 문제를 이미 느끼고 있는 비혼자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엄마가 정말 불행해하면서 모든 자원을 투입해 만든 게 저예요. 그런데 제가 그렇게까지 행복하지는 않아요. 저는 엄마처럼 할 자신도 없는데, 그럼 제 아이는 얼마나 더 불행하겠어요? 우리 엄마는 왜 그렇게까지 애쓰면서 살았을까 생각하면 또 너무 안됐고요."

아이들에게 제일 좋은 아빠는 ‘엄마한테 잘하는 아빠’라고 합니다. 부부가 재미있게 잘 지내는 것만으로 자녀들의 행복감은 높아집니다.

짧은 시간 동안 바뀐 삶에 적응하는 사람들은 이제 아예 ‘자식 농사’를 짓지 않으려 합니다. 농사를 지어봤자 추수할 게 없으니까요.

‘행복도시’를 자처하는 세종시는 〈엘리시움〉이라는 영화에서처럼 선택받은 자가 갈 수 있는 파라다이스 같은 선망의 장소로 떠오르는 듯합니다. 그 선망은 수십만 명에 달하는 ‘공시족’ 열풍과 궤를 같이합니다. 행복도시 세종시 같은 곳에 진입하려면 공무원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낳을 것인가의 선택은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저출산 문제에 집합적인 숫자와 통계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각자가 아이를 키울 때 느끼는 무게를 줄여주어야 합니다. 이 시대의 엄마들은 예전의 엄마와 같이 자신을 지우고 ‘누구누구의 엄마’라는 이름만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이제 예전 엄마들처럼 살고 싶지 않습니다. 구글의 검색창에 "엄마처럼"을 써넣으면 연관어가 "안 살아"와 "살기 싫다"가 뜹니다. 엄마의 희생적 삶에 고마움을 느끼지만, 나는 그 길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전체 청년 수는 줄었지만 청년들이 살고자 하는 지역은 서울, 수도권, 그리고 부산 등 대도시로 한정되어 있어요. 게다가 최근에는 지방 대도시에서마저도 청년들이 이탈해 서울과 수도권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비록 청년 인구가 과거에 비해 줄었지만 실제로 그들이 활동하는 물리적인 영역이 서울, 수도권, 그리고 몇몇 대도시로만 한정되었으니 실제 물리적인 밀도가 높아진 것이나 다름없네요.

한국은 사회 규범이 매우 강한 것 같습니다. 대학에 가야 하는 나이가 있고, 결혼을 해야 하는 나이가 있고, 거의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직업군이 있고, 유행을 놓치지 않고 쫓아야 하고 말입니다. 규범이 강하고 획일적이면 심리적인 밀도가 낮아지기 어렵습니다.

해결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현실의 경쟁을 완화하기. 둘째, 경쟁이 과도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요인을 제거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지각할 수 있는 환경 만들기.

관심사나 진로가 다양하지 못하죠. 그래서 실제보다 과장해서 현실을 판단하지 않나 싶습니다. 마찬가지로, ‘위너winner’가 아니어서 아이를 낳을 자신이 없다는 생각은 ‘위너’에 대한 집착이지 출산에 대한 염려가 아닌 것 같아요.

‘헬조선’에 살다보니 돈이 없어서 아이를 못 낳는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잖아요. 그런데 조사를 해보니 아이를 안 낳으려고 하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강남에 거주하는 잘사는 사람들인 거예요. 그래서 행복하다는 감정이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게 만들기도 하겠지만, 그저 즐기고 끝나버리는 측면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행복이 곧바로 출산율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고요.

청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그들이 불행하다는 딱지를 씌웠는데요. 청년들이 스스로 불행을 정당화하고 낙인찍는 바람에 보다 폭넓은 시야에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사태를 판단할 수가 없게 되었어요.

한국 사회에서 두드러지는 신념이 ‘흑백논리’입니다. 성공 아니면 실패, 내 편 아니면 남의 편으로 매사에 선을 긋는 편견이죠. 그러다 보니 중간이 없어요. 아이는 때로 나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요동치는 삶의 궤적에 따라 낳을 수도 있고 안 낳을 수도 있는데, 윗세대 어르신들은 반드시 낳아야 한다고 하고, 아랫세대 청년들은 아예 안 낳기로 작정을 하는 거죠. 요즘엔 초등학교 때부터 비출산을 결심한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사회가 심리적인 획일성이 매우 강하죠.

여성의 만족도가 5점 정도 떨어진다면, 남성의 만족도는 10점 정도 확 떨어져요. 아이를 매우 큰 부담으로 여기는 것이죠. 하지만 남성은 그 후 둘째, 셋째가 생겨도 그럭저럭 만족도가 유지되는 경향이 있어요. 반면 여성의 경우는 한 명 한 명 낳을 때마다 지속적으로 만족도가 떨어집니다. 여성은 아이를 하나 키울 때와 둘 키울 때 차이가 너무 크다는 사실을 아는 거죠.

다시 말하자면, 저출산은 바로잡아야 할 문제라기보다 직면한 현실인 것이고, 현재 장년층인 지금 기성세대가 앞으로 닥칠 진짜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고민을 해야 한다는 거죠.

1950년에 2,000만 명이었던 인구가 불과 50년 사이에 2.5배가 되었어요. 아마 인류 역사상 그런 예가 없을 겁니다. 동시에 경제성장과 민주화도 이루었죠. 압축성장의 결과 연령대별로 가치관의 차이가 커지게 되었어요.

우리 삶과 사회를 이루는 요소들을 다시 수립해야 할 거예요. 앞서 말씀하신 새로운 질서에 맞는 정책과 제도를 찾아야겠죠. 너무 쉽게 말하는 것 같지만, 기존 의식과 제도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출산율은 더 떨어질지도 몰라요. 만약 더 떨어진다면, 이건 큰 문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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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기계들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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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위대한 취득물을, 아담이라는 인공적 현실을, 그와그의 동족이 우리를 이끌어갈 방향을 가리킬 수도 있었다. 확실히 실험에는 숭고함이 있었다. 체현된 의식에 유산을 쏟아붓는 건 영웅적이고, 심지어 좀 영적인 일이기까지 하지 않을까? 베이스기타리스트는 그것에 대적할 수 없었다. 하지만-거기엔 아이러니가 존재했다. 어느 늦은 오후에 부엌에 들어갔더니 아담이 명상에 잠겨 있다가 시선을 들고 피렌체, 로마,
베네치아의 교회와 거기 걸린 모든 그림을 숙지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견해를 형성해가고 있었다. 바로크가 특히 그를 매료시켰다. 그는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를 매우 높이평가하면서 내게 그 이유를 설명하고 싶어했다. 최근에 필립라킨의 시도 읽었다고 했다. - P300

"찰리, 나는 그 평범한 목소리와 무신적 초월의 순간이대단히 귀중하게 여겨집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아담의 열성이 지루할 때도 있었다. 또다시 무의미한 공원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참이던 나는고개를 끄덕이고 부엌을 떠났다. 내 마음은 텅 비고 그의 마음은 채워지고 있었다.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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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들은 미학자와 같은 다른 학문 집단의 주장은 물론 비평가와 미술상처럼 예술계에거주하는 집단의 주장에 대해서도 의심하도록 훈련받는다. 문화란 항상 권력에 관한 것이고 어떤 기호 체계도 다른 것보다 낫지 않다고 주장하는 지식 체계 내에서 매일 활동하다 보면 당신은 당신의 사유 방식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의 사상과 태도를 몹시 의심하는 당신의 전문적인 업무에 거의 얽매이게 된다. 학문 집단이든 아니든 다른 집단의 지식은 모두 당신의
회의주의의-냉소주의까진 아니더라도-좋은 먹잇감이 될 것이며, 당신이 그들에게 많은 신뢰나 존경을 줄 것 같지는 않다. 만약 당신이 이 집단들을 존중한다면 그것은 이들 때문이아니라 당신의 전문적 역할이 지닌 성향에도 불구하고 당신 스스로가보이는 특이하고 "개인적인 반응일 것이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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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링은 1969년부터 연인 톰 레아 - 이론물리학자로 1989년에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다 -와 공개적으로 동거를 시작하면서 당시 속도를 더해가던 사회혁명에 힘을 보탰다. 에이즈가급속히 확산되자 거액의 기금을 마련하여 던디에 바이러스 연구소를 세웠고, 호스피스 시설의 공동설립자가 되었다. 처음으로 효과적인 치료법이 나오자 특히 아프리카에서 특허기간을 단축하고 가격을 낮추기 위한 운동을 펼쳤다. 1972년부터자신의 사업을 운영한 허사비스와도 협업을 이어갔다. 대중의참여에 점차 인내심을 잃어가던 튜링은 "나의 움츠린 시간에"연구에 집중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의 과거에는 오랜 샌프란시스코 체류, 카터 대통령이 하사한 자유훈장과 연회, 과학기금에 대한 논의를 위해 총리 별장에서 가진 대처 총리와의 오찬, 아마존 보호를 호소하기 위한 브라질 대통령과의 만찬이있었다. 그는 오랜 세월 컴퓨터 혁명의 얼굴, 새 유전학의 목소리로 살아왔고 거의 스티븐 호킹만큼 유명했다.  - P69

현재란 있음직하지 않은 구조물 중에서도 가장 약하다. 
현재는 얼마든지 지금과 다른 모습일 수 있었다. 현재의 어떤 부분이든, 혹은 그 전부가 다를 수 있었다. 가장 사소하거나 가장 중대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내 발톱이 말썽을 일으키지 않은 세계, 내가 벌인 사업 중 하나가 성공해 내가 템스강 북쪽에서 부자로 살고 있는 세계, 셰익스피어가 어릴 때 죽어서 아무도 그를 그리워하지 않고, 미국이 완벽한 실험을 거친 원자폭탄을 일본의 한 도시에 떨어뜨리겠다는 결정을 내린 세계, 포클랜드제도 기동대가 출정하지 않았거나 승리해서 돌아와 온 나라가 애도하지 않는 세계, 아담이 먼 미래의 조립품인 세계, 육천육백만 년 전 지구가 운석과 충돌하기 전에 몇 분 더회전하여 유카탄반도의 햇빛을 차단한 고운 석고 모래가 생기지 않아서 공룡이 멸종하지 않고 영리한 유인원을 포함한 포유류에게 미래를 내주지 않은 세계, 그런 세계들을 떠올리는건 얼마나 쉬운가.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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