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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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을 쓰려던 것을 미루다가 문지혁 작가의 유투브를 보고 미뤄둔 일을 떠올리고 북플을 열었다. 문 작가가 말하는 감상이 나의 것과 거의 일치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베스트셀러를 베스트셀러라서 읽지 않으려 하지만, 어떤 베스트셀러는 읽고 나면 그런 생각이 든다. 이런 것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세상이 당연한 것 아닌가. 어째서 나는 베스트셀러라면 덮어놓고 건너뛰었나.

클레어 키건의 책이 그랬다. 화제가 되고 있는 걸 알았지만 읽기를 미루다가 집어들었다.(고백하자면 이벤트 굿즈의 아름다움에 홀려서 샀다.) 그리고 한 번에 끝까지 질주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생각했다. 이런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어야 마땅하다고.

이 작고 가볍고 단단한 책은 소설가인 사람, 소설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교본이 될 것이다.

인스타에서 본 어떤 감상평에는 이 책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화제가 될 만큼 그렇게 대단한 책은 아니라고 쓴 것이 있었다.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 대단히 박진감 넘치는 베스트셀러‘류‘ 소설의 스토리를 기대했다면 말이다. 혹은 덮어놓고 ‘힐링‘을 외치는 소설 같이 생각했거나.

그렇지만 학교‘씩이나‘ 다니며 소설 쓰기를 공부한 나 같은 사람이라면 이 책은 놀라울 것이다. 키건은 강박적이라 할 수 있을만큼 전통 미학의 원리를 고수한다. 여백과 공백을 만들어 독자에게 판단을 넘기고, 보여주고 또 보여준다. 그리고 인물의 내면으로 깊이 파고들어 우리가 미처 헤아리지 못하는 인간성을 드러낸다.

우연찮게도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을 때 <르 귄, 항해하는 글쓰기>도 함께 읽었다. 서로 다른 장르를 쓰는 작가이지만,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견해가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다. 르 귄이 워크샵의 과제로 제시하는 좋은 소설 쓰기 방법을 리얼리즘 문학으로 충실히 구현하면 키건의 글처럼 된다.

원칙은 간단하나 구현하기는 힘들다.
인물의 삶에서 아주 사소하고 디테일한 것 하나까지 놓치지 않아야 하지만, 그것을 말할 때는 최소한의 활자만 이용할 것.

어쩌면 그래서 키건은 쓴 분량보다 더 많이 지우면서 앞으로 나아갔는지도 모르지.

내가 감탄했던 부분 중 하나는 키건이 이야기를 공백과 응축으로 채우면서도 남성적 하드보일드 문체처럼 굳어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부드럽고 강물처럼 흐른다.

아무튼 창작을 하는 사람으로서, 창작에 대한 생각이 하루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키건은 읽어 두어 다행인 작가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야 마땅하다. 세속이란 것이 대개 어떠한가 떠올려 보면, 이 책이 어째서 베스트셀러가 되어 버렸나 의아하긴 하지만. (영화화가 된 것도 의아하고...)

하긴, 뭐, 그런 일도 있는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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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 - 데뷔 30주년 기념 초기단편집
듀나 지음, 이지선 북디자이너 / 읻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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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시작을 이제야 읽었다. 역주행하던 사람으로서 듀나가 지금의 듀나로 태동하던 때를 알게 되어 기뻤다. 더불어 가볍고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들이라 요즘 작품과 비교해볼수 있어 더 의미있었다. 무엇보다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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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층이 가장 많은 동네에서 심각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자신의 목표를 위해 죽을힘을 다하는 이들의 실존을 결코 가볍게 비난하거나 평가할 수는 없다. 이들은 한계 상황에몰려도 포기하지 않는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려 감당할 수없는 상황이 되어도 법적 절차를 밟는 동안 잘 버티면 아이의대입이 끝날 거라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안타까운사연도 간혹 접하곤 한다.」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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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치인들도 이야기가 팔린다는 걸 알고 있다. 주의를 끌기 위한 싸움에서 서사가 주장보다 효과적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렇게 서사는 정치적으로 도구화된다. 지성이 아닌 감성에 호소한다. 스토리텔링은 정치적 소통의 효과적인 기술로서, 미래까지 영향을 미치고 사람들에게 의미와 방향성을 보여주는 예의 정치적 비전이 결코 아니다. 정치적 이야기는 사물의 새로운 질서를 약속하고 가능한 세계의모습을 상세히 묘사한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희망을만드는 미래 서사가 부족하다. 우리는 줄타기를 하며 하나의 위기에서 다음 위기로 넘어간다. 정치의역할은 문제 해결사로 축소된다. 이야기만이 미래를연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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