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방 - 유품정리인이 미니어처로 전하는 삶의 마지막 이야기들
고지마 미유 지음, 정문주 옮김, 가토 하지메 사진 / 더숲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신없는 시간 속에 책을 들여다 볼 여유가 가끔씩 생겨서 좋다.

비가 오는 날이면, 책 보기에 더 좋다.

작은 거실에서 아이들이 복작복작 놀고 있는 오후.

잠깐 들고 읽기에 딱 좋았던 책을 소개할까 한다.

소재를 생각하면 내용은 분명 무겁고 진지해야 하는데, 의외로 간결하고 담담한 그러면서도 사실적이었던 책.

이 표현을 꼭 적어두고 싶었다. 왠일로 내가 읽어보라며 건네자 그 자리에 앉아 읽어내려간 바깥편이 어땠냐는 내 물음에 "카르페 디엠"이라 답했다.

당신의 그 대답이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이해하 가.

사실, 처음 <시간이 멈춘 방>이라는 제목을 보고 우리의 시간도 지금 멈추어 있는게 아닌가 싶어서 더 눈길이 갔다. 작게 쓰인 부제를 보고 어떤 내용을 다룬 책일지 짐작이 되었다.

이 책을 읽고 싶어서 손을 든 이유는.....

읽고나면 시간이 멈추었던 그 방을 잘 정리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지금 멈춰있는 우리들의 시간이 다시 잘 시작될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책을 쓴 사람은 고지마 미유라는 유품정리인이자, 특수청소일을 하는 한 여성이다.

책의 내용은 그녀가 일본의 '엔딩산업전'에 출품하기 위해 만든 고독사현장의 미니어처들을 다룬다.

그녀가 미니어처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은 이유는 고독사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걸,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가까운 일들이라는 걸 알리고 싶어서라고 한다.

책에는 미니어처 8점을 통해 고독사 현장을 소개한다.

1장 ― 아버지의 소식불통

2장 ― 쓰레기 집, 그 각각의 사정

3장 ― 집 안의 밀실

4장 ― 유품이 많은 방

5장 ― 벽에 남긴 한마디, '미안해'

6장 ― 남겨진 반려동물들

7장 ― 마지막 쉴 곳

목차를 통해 어떤 현장들이 다루어질지 미리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실사가 아니라 미니어처라서 그냥 만화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첫 번째 미니어처 장면을 보고 처음엔 그냥 아무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그 장면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첫번째 미니어처는 그녀가 주로 접하는 현장의 특징을 담은 것이라고 한다.

50~60대 남성.

발견 시점은 사후 3~6개월.

발견자는 늘어난 해충과 고약한 냄새 등을 통해 변고를 눈치챈 아파트 집주인 또는 수도 계량기 검침원이나 신문 배달원.

이것이 내가 방문한 고독사 현장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유형이다.

아버지의 소식불통, <시간이 멈춘 방> 중에서 p. 19

그녀가 요약해둔 가장많은 유형의 고독사의 모습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은 건,

하나 둘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유형의 죽음이 늘어가고 있고, 이런 짧은 문구로 축약된 이야기들을 꽤 접해봤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일하는 현장을 표현한 이 한 장은. 가까운 듯 멀게 느껴졌다.

집 안은 정돈이라는 말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광고 전단지와 먹다 남긴 도시락, 빵 봉지, 빈 캔과 뭉쳐 버린 휴지, 비닐봉투와 약 따위가 곳곳에 어질러져 있고 빨래 건조대에는 속옷이 널린, 생활의 흔적이 역력한 방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갈색으로 변색되고 사람 모양의 주름이 잡힌 이불이 보였다. 그곳에서 임종을 맞이했다는 뜻이다. 이불 주위에는 남은 음식쓰레기와 잡지, 약과 주삿바늘이 잔뜩 뒹굴고, 베개에는 피를 토한 흔적이 있었다. 당뇨병을 앓았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소식불통, <시간이 멈춘 방> 중에서 p.23


작가가 표현한 이 장면은 처음 현장에서 접하는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표현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시신이 남겨져있던 현장을 정리하는 모습을 세세하게 그렇지만 무표정하게 (왠지 표정이 있어서는 안될 것만 같다) 적어두었다.

시신이 있던 장소를 치우는 작업에 대한 묘사는 놀랍도록 차분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강렬하게 기억되었다. 하지만 굳이 옮겨적고 싶지는 않은 건, 왜인지 모르겠다.

작가의 글 중에 '고독사 특유의 냄새가 사라진 후에야 고인의 유족이 집 안으로 들어섰다.'는 표현에서

그 작업을 직접 손으로 옮겨적고 싶지 않은 나의 마음도 같지 않을까... 생각해볼 뿐이다.

미니어처들 모두가 충격적이긴 하지만, 두번째 미니어처가 가장 충격적이다.

쓰레기로 가득한 집의 이야기.

천장까지 쓰레기가 가득한 집에서 '산다'는 게 가능할까?

'나는 안 그럴거야.'라고 대부분 생각할 것 같다. 재밌게도 이 장의 시작에 나와 똑같은 속엣말을 내뱉는 여성이 등장한다.

재밌게도 요즘 <남자 가정부가 필요해?>라는 일본드라마를 즐겨보고 있는데, 그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인공도 자신의 일에서는 프로지만 집안일에는 전혀 소질이 없어서, 짐들에 점령당해 살아가는 모습이 초반에 등장했었다.

일에 전력을 다하느라 집안 일에는 신경을 쓸 여력이 없는 사람이 그녀뿐은 아닐 것이다. 책속에도 작가가 소개하는 집안 정리가 잘 안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사람은 내가 가진 에너지보다 많은 것을 요구하는 상황이 닥치면 살아가는 공간이나 자신이 먹는 것들에 대해 신경을 쓰지 못한다. 당장 나만해도 아이가 어릴 때는 아이가 먹을 것을 매끼니 고민해가며 만들고, 아이가 지내는 공간은 하루에도 몇 번씩 쓸고 닦지만 그러느라 내가 입는 옷, 내가 가진 물건들은 어느 한쪽 방안에 가득 쌓아두고 정리하거나 잘 꾸밀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충격적인 쓰레기집의 고독사 현장은. 그 안에 쌓인 쓰레기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그 쓰레기들이 정리된 만큼 그 곳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도 가벼워지고 평안해졌길 바래본다.

쓰레기집 이후로 등장한 미니어처는 집안의 밀실편이었다. 욕실과 화장실에서의 고독사를 다뤘는데. 사실 이 미니어처가 시각적으로는 쓰레기집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고령의 경우 겨울철 히트쇼크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 자신은 아직 젊기때문에 (젊다고 믿고 살아간다 ㅎㅎ)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사망사유였다. 흔히 말하는 겨울철 심장마비가 욕실에서 씻기 위해 옷을 갈아입다가, 볼일을 보기 위해 차가운 변기 위에 앉았다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4장과 5장에선 유품이 많은 집 VS 정돈되어 있는 집이 연달아 다루어진다.

두 죽음의 현장을 붙여서 소개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유품이 많다는 건 (쓰레기집과는 다르다) 그만큼 살아온 세월에 대한 애정이 많다는 뜻일 거다.

그 유품을 대하는 마음이 어떨까....

재밌게도, 유품을 정리하는 현장에 나타나는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의 이야기는 불쾌한듯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남겨진 물건들이 누군가에게 의미있게 쓰인다면 오히려 그 물건의 입장에선 좋은 일인지 모른다.

다만, 아무 준비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경우엔 그 물건의 소유권이 불분명하고 그걸 노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쓰게 웃겼다.

다다미를 뜯어가겠다는 사람. 피규어를 가져가겠다는 사람. 발견되지도 않은 돈뭉치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들까지. 각양각색으로... 보이는 그들의 욕심에 희한하게 웃음이 났다.

죽음을 다루는 책에서 이토록 뻔뻔한 좀도둑 이야기라니. 웃기지 않은가?

먼저 돌아가신 어른들의 사진, 상장 그리고 벽장 속 전통 인형. 자식과 손자들이 놀러 오면 덮을 엄청난 이불들. 언젠가 다시 읽겠지 싶어 꽂아 둔 선반의 책들. 어느 것 하나 쉽게 버릴 수 없는 물건들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소중히 포장한다.

유품이 많은 방, <시간이 멈춘 방> 중에서 p.70

언제일지 모르는 죽음의 시간. 내가 떠난 후의 내 공간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어떤 인상을 받을까?

그 질문은 지금의 내게 '너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5장에선 자살자들의 현장을 다룬다.

유품이 많은 집과 자살자의 집을 연달아 배치한건, 유품이 많은 죽음과 달리 자살자의 경우 집안을 정돈해두는 경우들이 많다고 한다.

어느 책에선가 죽음을 예견한 사람들이 자신의 주변을 정돈한다는 이야기를 본적이 있는데, 갑작스러운 죽음이 아니고 죽음을 예견한다면 아마도 내가 속한 공간을 스스로 정리하려는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삶이 버틸 수 없어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의 심정을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하기란 어렵지만, 누구나 한번은 그런 생각을 해본적은 있을 것이다.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늘 평탄하게 행복하기만한 사람은 없으니까.

책에서는 자살 그 자체를 평하기보다는 그 후에 대해 이야기 한다.

순간 먹먹해졌다.

아무래도 다른 죽음의 현장보다는 훨씬 '죽음'이라는 단어가 짙게 묻어나는 유형이라서 그런 것 같다.

주위에 마음 아파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번쯤은 손 내밀어봐야겠다고 생각하게끔 만들어주었다.

괜히. 지인들에게 잘 지내냐는 연락도 해보고 말이다.

그런 작은 불꽃들이 우리 삶을 차가워지지 않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책을 읽으며 이런 온기들을 찾아내는 순간을 좋아한다. 그 온기가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죽음 이후의 공간을 다룬다는 게, 어떤 걸까..?

뉴스나 <그것이 알고싶다>, 추리드라마나 영화같은 컨텐츠들을 통해 살인사건이나 자살현장의 이미지 같은 건 본적이 많다. 그 이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책을 보면서, 내 기억 속에 숨어 있던 죽음 이 후의 장면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주로 산 사람들이 차지한 장면들이긴 하지만 말이다.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있지 않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고,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린 시절 외갓집 조부모와 애틋한 사람들과는 다르게 나는 외가쪽 친척들과는 그다지 살갑게 지내지 못했다.

외사촌들을 돌보느라 바쁘셨던 외할머니와는 그저 명절이면 얼굴을 보는 친척 정도의 거리감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몇년 전에는 할머니와 꽤 가깝게 지내기도 했던 것 같다. 아픈 할머니께 드린다고 꽃다발을 사들고 가던 버스 안에서 맡았던 후리지아 꽃향기와 뒤섞인 그 시골 동네의 향기가 아직 생각이 난다.

그래서 마지막 몇년은 자주 찾아뵙고 안부를 물으며 지냈었는데.

그때 할머니댁에서 봤던 한장면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지인과 통화를 하면서 백발의 할머니가 전화기를 붙들고 울며 어떤 이야기를 하셨던 그 날의 기억.

그 후로 일하다가 받은 할머니의 부고에 나는 정신없이 사무실 바깥 복도에서 엉엉 울었었다.

그리고 장례식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린 사촌동생들을 돌보느라 그리고 연이어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하느라 정신없게 몇일이 지나가 버려서. 할머니가 돌아가신게 사실인지 거짓말인지 잘 모르겠는 지경이었다.

책을 덮는데,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아마 내 인생에 처음으로 맞았던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할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아직 내 안에는 할머니의 기억이 남았있구나.' 그 사실이 새삼 신기하고 애틋했다.

태어난 존재는 모두 죽는다.

그 당연한 진실을 우리는 그다지 생각하지 않고 지낸다. 그래서 삶이 그렇게 가벼워지고, 하찮아지고, 불편한 감정으로 가득해지는지도 모른다.

겨우 몇십년. 불운한 이들에게는 그보다 짧은 시간이 주어진 삶이라는 여행을.

우리가 '늘 죽음을 머리맡에 두고 산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의 하루를 허무하게 채우는 죽음이 아닌,

나의 삶을 아름답게 채우기 위한 이유가 되어줄 죽음으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집어들던 처음의 마음대로 오늘을 더 잘 살 수 있게 된 것 같다.

청소현장에서 꽃다발을 들고 간다는 그녀가 어떤 이유에선지 모르게 고마웠다.

이런 좋은 책을 읽어볼 수 있게

당신의 일을 소개해 줘서 고맙습니다.


* 이 글은 더숲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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