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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롬 지음, 차경아 옮김 / 까치 / 2020년 2월
평점 :
<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롬이라는 사상가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그의 저서를 읽은 것은 처음이다. 유명하니까, 왠지 읽어야 할 것 같아서 책만 ‘소유’했었는데 이번에 ‘까치북클럽’을 통해 2주간 함께 읽기를 도전했고 완독할 수 있었다.
프롬은 현대사회가 ‘소유적 실존양식’으로 살아가는 사회라고 말한다. 기업의 이윤추구가 합당하고 장려되는 사회에서는 ‘소비’가 미덕이 되고, 지속적인 소비를 유도하기 위해 ‘소유’에 가치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게 여겨진다. “현대의 소비자는 나 = 내가 가진 것 = 내가 소비하는 것이라는 등식에서 자신의 실체를 확인”(p.50)한다. 소유는 사물에만 한정되지 않고 지식과 기록, 권위, 종교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방대하다. 이렇게 소유를 늘려가다보면 내가 가진 것에 의존하게 되고, 소유를 잃게 될까 불안해지며, 불안한 마음은 또다른 것을 소유하게 하는 악순환을 이룬다. 프롬은 더 많이 소유하려는 의지가 계급을 만들어내고, 이것이 국제적인 전쟁도 유발한다며 “소유욕과 평화는 서로 배척관계에 있다”(p.22)고 주장한다.
‘소유적 실존양식’의 반대편에 존재하는 것은 ‘존재적 실존양식’이다. 프롬은 사물과 행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소유하고 행하는 것에 묶이고 속박당하지 않는 ‘존재적 인간’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보고 궁극적으로 ‘존재적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삶에 집착하지 않는 것, 삶을 소유물로 간주하지 않는 것”(p.183)은 현재에 집중하게 하며, 시간을 초월하여 “지금, 여기”에 존재할 수 있게 한다. 산업사회에서 “시간은 그냥 시간이 아니라 바로 돈”(p.187)으로 치환되지만 ‘존재적 실존양식’으로 살아가면 시간에 지배당하지 않는다.
그는 새로운 사회에서 새로운 인간이 출현하기를 기대한다. 새로운 인간은 “완전히 존재하기 위해서 모든 형태의 소유를 기꺼이 포기할 마음을 가”져야 하며, “나 자신 이외에는 그 누구도, 그 어떤 사물도 나의 삶에 의미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p.244) 인간이어야 한다. 또한 “모든 생명체와 일체감을 느끼”(p.245)며 “자연을 이해하고 자연과 협동하려고 노력”(p.246)하는 사람이다. 프롬은 이런 인간이 출현하기 위해서는 사회경제체제의 근본적인 변혁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산업적 및 정치적 참여민주주의가 완전히 실현”(p.259)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이 출판된 것은 1976년으로 대략 50년 전임에도 ‘기본소득’의 개념이나 ‘여성해방운동’, ‘군사적 관료주의 타파’나 ‘환경운동’ 등 현재에도 논의되고 있는 주제들이 폭넓게 다루어진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그가 주장하는 ‘존재적 실존양식’으로 살아가는 일이 지나치게 이상적인 것은 아닌가, 실제로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소유’에 대한 무조건적 부정은 아마도 그의 사회주의적 관점에 대한 옹호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되지만(실제로 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에 대한 여러 번의 언급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유’를 도외시하고 살아갈 수는 없다. 그는 교육을 통한 점진적인 변화와 더불어 사명감 있는 엘리트로 구성된 ‘최고 문화협의회’로 개인과 사회를 바꾸어가자는 로드맵을 제시했지만 과연 현대 사회의 엘리트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을까? 스스로의 번영과 성공을 위해 더욱더 ‘소유적 실존양식’을 추구하지는 않을까? 그런 시도를 하기에 자본주의 사회는 이미 너무 먼길을 와버렸다. TV나 신문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순간에 ‘광고’가 존재하며, ‘소유’하지 않음이 오히려 소외가 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AI가 지배하는 요즘 세상을 경험했다면 프롬은 어떤 대안을 내놓을 수 있을까.
그러나 여전히 ‘존재적 실존양식’으로서의 삶은 지향해야할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자본과 광고에 잠식당하기 쉬운 세상, 소유만으로 스스로를 증명하기를 요구 받는 세상이지만 그가 말했던 ‘자연과 인간을 대하는 태도’, ‘인간적인 연대감과 협동’은 여전히 공동체에서 중요하다. 오히려 현대 사회에서 그 중요성을 다시 일깨운다는 측면에서 이 책은 고전의 가치를 가진다. 쉽지 않은 독서였지만 읽고 나니 의미 있는 독서였다. 사물뿐 아니라 사상이나 지식, 권위, 종교에 이르기까지 소유하고자 하는 나의 욕망에 대해 돌아보게 되는 귀한 기회였다. 그의 다음 저서인 <존재의 기술>도 읽어보고 싶다. 최승자 시인의 번역이라 더욱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