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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노라마
릴리아 아센 지음, 곽미성 옮김 / 어떤책 / 2024년 10월
평점 :
줄거리: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 프랑스에서는 사법부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련의 사건으로 인한 시민 혁명이 일어난다. 관료적인 행정부를 축소하고 사법부를 해체하자는 운동인 ‘투명화시민운동’이 시작되자 주인공인 엘렌 뒤베른 역시 경찰에서 일개 안전관리인으로 전락하고 만다.
‘투명화시민운동’은 관료제의 해체뿐만 아니라 건축에도 영향을 미쳤다. 안전과 윤리적 무결을 위해 모든 건축물은 투명하게 지어졌고 이에 동조하는 이들은 CCTV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고급 투명주택 단지에 거주하게 된다. 사람들은 투명한 건축물에 익숙해져서 나를 드러내는 일에도, 남을 관찰하는 일에도 아무런 죄의식을 갖지 않게 된다. 투명한 사회로 거듭난 프랑스는 얼핏 정의롭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어느 날, 고급 주택단지에서 실종사건이 벌어지며 투명한 세계에도 균열이 일어난다.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는 엘렌은 투명한 세계 속에 가려진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감상:
나의 모든 정보와 취향이 대형 포털 사이트나 SNS에 빅데이터로서 공급되는 요즘, ‘감시 자본주의’는 먼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프랑스의 젊은 작가 릴리아 아센은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어 ‘감시’가 일상이 되는 사회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그 안에서도 감춰지지 않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장을 덮었을 때 왠지 먼 미래의 일이 아닌 듯해 순간 두려움이 엄습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는 과연 모두에게 ‘정의’인가. 부정적인 것을 배제하고 보기 좋은 것들만 늘어 놓았을 때, 그것은 과연 진짜 ‘나’인가. 모든 것들이 내 바람대로 이루어진다면 과연 그것은 유토피아인가.
여러 등장인물들을 통해 사건을 각자의 관점으로 이해하며 뻗어나간 가지에서 줄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이 흥미롭고 스토리의 전개가 빨라 속도감 있게 읽힌다. 자칫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이지만 재미를 놓치지 않은 작가의 현명함이 돋보인다.
프랑스의 현대소설 작가라면 아니 에르노와 기욤 뮈소, 베르나르 베르베르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파노라마>를 통해 목록에 ‘릴리아 아센’을 추가하게 되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