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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한 글쓰기
신나리 지음 / 느린서재 / 2025년 7월
평점 :
작가의 첫 책은, 나를 포함해 육아와 가사의 무거운 짐 속에 허덕이던 많은 엄마들에게 고통의 실체를 언어화해 보여줌으로써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애 낳고 사는 일이 원래 다 이런 건가 싶었던 낯설고 막막한 마음에, 그것이 단지 내 문제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책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작가의 여정은 두 권의 책을 더 거쳐 이번 네 번째 책으로 이어졌고, 이번에는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더 반가웠다. 단지 ‘글을 잘 쓰는 법’을 다루는 책이 아니라, 작가가 실제로 어떻게 써왔는지를 따라가며 그 사고의 흐름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다 보면 내 상황과 감정을 표면 위로 끌어올리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때가 있다. 그러나 어떤 시점부터는, 그런 글쓰기가 점점 공허하게 느껴질 때가 찾아온다. 억울함, 분노, 슬픔 같은 감정을 담아낸 글이 막상 글로 남겨졌을 때에는 생각보다 보잘것없게 보이는 경험. 나의 글쓰기가 멈춘 지점이 바로 그때였다. 그저 속을 풀기 위한 글, 감정의 배설에 가까운 글은 읽는 이에게도, 심지어 쓰는 나에게조차 어떤 거리감만을 남겼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글을 다시 쓰고 싶게 만드는 자극을 주었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과 글을 쓰는 행위는 다르다’는 문장에서부터 글쓰기에 대한 내 환상을 흔들어놓았다. 감정이 고양된 상태에서 붕 뜬 듯한 기분으로는 끝내 한 줄도 완성할 수 없음을, 결국 글은 어떤 허기에서 시작되고 어떤 지속성 위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이 책은 일깨운다. 그리고 나의 감정만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세계와 그 안에서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함께 드러내야 한다는 글쓰기의 윤리를 짚어낸다.
가족, 직업, 경제력, 취향. 글을 쓰다 보면 이 모든 것이 드러난다. 처음에는 그게 두렵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지만, 결국 글을 통해 나를 직면하고, 그렇게 드러난 ‘나’로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그렇게 자신을 하나의 인물로 올려놓고, 주변 세계와 화하거나 불화하는 이야기를 써내다 보면, 내 희노애락이 굳이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껴진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내 글쓰기에 필요한 감각이었다.
또한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통찰뿐 아니라, 다양한 책들을 함께 소개하며 그에 대한 해석을 덧붙인다. 이미 읽은 책이라도 작가의 해석을 통해 새로운 시선을 얻게 되기도 하고, 처음 접하는 책이라면 읽어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단순히 추천하는 차원을 넘어, 글쓰는 사람의 눈으로 바라본 책이란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글쓰기가 막혀 있는 이들이나, 감정의 무게에 눌린 채 그저 토해내는 글에서 벗어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실질적인 방향을 제시해준다. 더 이상 말랑한 자기연민에만 머무르지 않고, 견디며 쓰는 글, 직면하며 쓰는 글, 때로는 무정하게까지 써야 하는 글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결국, 다시 써보겠다는 마음이 들게 만든 책.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