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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박물지 - 이어령의 이미지 + 생각
이어령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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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인을 알기 위해서 도선관은 물론이고 굳이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지 않는다.우리 옛 조상들이 남겨 놓은 생활용품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그 시선의 멈춤을 통해서 나는 언제나 한국의 참모습들을 만나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친근한 도구들을 낯설게 하는 방식을 통해서 한국인의 혼과 마음을 꺼내 보기도 하고 때로는 우주적인 질서나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한다. 나의 이같은 놀이에는 양피지의 비밀지도를 들고 보물섬을 찾아가는 모험과 같은 은밀하고도 즐거운 긴장이 있다. - 본문 중에서- |
에필로그에 있는 글을 보고나니 제가 가졌던 감동의 실체를 알수 있었어요.
너무나 흔해서 또는 진부해서 눈여겨 보지 않던 우리의 문화와 유산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기 위한 이어령 선생님의 기지는 참으로 신선했습니다.
이 책은 1994년도에 <한국인의 손, 한국인의 마음>이라는 타이틀로 발행된 적이 있었던 책이었는데 좀 더 대중들에게 읽히는 책이 되도록 일부 내용을 새롭게 꾸며서 다시 상재한 것이라네요.
가격이 지금의 두 배가 넘는 3만원 이었고,,.
현재는 절판이라. 내용이 사뭇 궁금합니다.
이 책은 우리 선조들이 사용하고 이용하고 즐겨찾고 감상했던 우리 문화 유산 55가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것 들을 서양,중국,일본등 다른 나라 문화유산과 비교 대조 하여 우리 것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쓰여져 있어요.
예를 들면, 우리나라 담뱃대와 서양의 파이프,보자기와 가방, 창호지와와 유리창, 밥상과 서양의 식탁,풍경(물고기가 달린 종)과 오르골 부분이 참 좋았는데요,
'서양의 파이프와는 정반대로 담배를 담는 대통은 작고 설대가 길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뱃대 하나에서도 동서양의 문화를 측량하고 비교할 수 있는 숨겨진 눈금을 찾을 수 있다.'
혹은,
'유리창은 한번 깨어지면 그만이다. 작은 금만 가도 이미 그것은 유리창으로서의 구실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창호지는 부서지지 않는다. 찢기고 뚫려도 재생시키고 때울 수가 있다. 살아 있는 육체처럼 상흔을 남길지언정 다시 호흡하고 살아나는 유기체의 피부와 같다'
와 같은내용을 보면 조금 감이 잡히실까요?
물론 모든 문화유산에 대해서 이러한 방식으로 서술해 놓은 것은 아닙니다.
문화 경제 역사 등을 아우르는 이어령 선생님의 박학다식함은 책의 여러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느낄 수가 있어요. 이해하기 쉽게 쓰여졌지만 중간 중간 튀어나오는 선생님의 지성에는 당할 재간이 없더라구요.
비틀어 바라보면 자칫 사대주의가 지나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 우리 문화를 사랑하는 시선으로 글을 쓰신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사실 제가 조선미술을 좋아하다보니 풍속화에 나오는 물건에 대해서 많은 관심이 있는 편인데요, 그 풍속화에 나오는 물건들에 담긴 정신을 더 잘 이해하고 읽고 싶어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어요.
옛것을 그저 구닥다리 라고 생각할것이 아니라
더 나은 현재와 미래를 위한 온고지신, 법고창신의 뿌리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싶어요.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현명하고 인정이 많은 사람들이었는지 물건 하나하나를 들여다 보고 귀 기울여 보니 감동적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꼽으라면
각 주제에 옆에 함께 적혀있던 간단한 설명 글이었는데요,
고봉-무한한 마음을 담는 기법
골무-손가락의 투구
낫과 호미-자기로 향하는 칼날
박-초가 지붕 위의 마술사
보자기-탈근대화의 발상
엽전-우주를 담은 돈
키-이상한 돛을 지닌 배
태권-허공에 쓰는 붓글씨
갓-머리의 언어
논길-팽창주의를 거부하는 선
떡 - 마음의 지층
아마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같은 사물을 보는데도 어떻게 저런 식견과 감상이 나올 수 있는지 내내 부러웠어요..(엽전은 인터넷에도 팔던데 사고 싶었어요^^)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
초반에는 굉장히 잘 읽혔는데요
후반부로 가면서 부터 약간의 지루함이 동반이 되더라구요.
문화 유산에 관해서 깊이 있게 읽으시고 싶었던 분들에게는 다소 가벼운 책이 될 것 같지만 반대로, 우리 문화에 입문하시는 분들에게는 재미있게 읽힐 책일 것 같아요. 이 점을 감안하시고 읽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기대를 너무 많이 했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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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5
보통 뒤주에는 쌀 한 섬이 들어가도록 되어 있지만 그것이 비어 있을 때에도 전연 속이 빈 것 같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 언제 보아도 네 귀에 세워진 그 기둥은 육중한 지붕을 떠받들고 있는 사원의 건축물처럼 보인다. 든든하고 짧고 뭉툭한 네 다리는 지면과 밀착되어 뿌리처럼 내려져 있다. 그래서 뒤주는 대청마루에 놓여 있다고 하기보다 움직일 수 없는 무게로 붙박혀 있다고 말하는 편이 옳다.
p88
한 마디로 문풍지는 치수의 부정확성에서 생겨난 산물이다. 말하자면 문풍지 문화는 무엇이든 재고 따지고 계산하는 자의 문화와 양극을 이루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p144
가령 윗사람들은 혼자 독식을 하지 않고 상을 물려받을 사람을 위해서 음식을 남기는 극기훈련을 한다. 생선 토막을 뒤집지 않는 것은 양반들의 식사예법 가운데 하나이다. 다른 쪽에 붙어 있는 생선을 상물림한 사람들이 먹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상은 이러한 봉건윤리로 민주적인 트레이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p193
세계에 자랑하는 고도의 주조술로 일본도(日本刀)를 만들어낸 일본인들도 종을 만드는 데에는 끝내 한국의 기술을 흉내내지 못하였다. 이미 8세기 경에 12만근이나 되는 동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범종을 만들어낸 한국인은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칼을 만드는 데는 서툴렀지만, 인간의 생명을 구원하고 그 영혼은 씻어주는 종소리를 만드는 데 있어서는 어느 민족도 그 앞줄에 나설 수가 없을 것이다.
p257
항아리는 물체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실은 그 충실한 물체성 안에 존재하지 않는 공허를 하나 가득히 품고 있다. 속이 텅 비어 있는 그 팽창감은 물체성과 정반대의 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견고하면서도 공허한 그 형태는 인간의 육체처럼 슬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