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루소를 읽는다 - 자유와 평등, 다시 시대의 광장에 서다
김기의 지음 / 다른세상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별점: ★★★★★
한 줄 평: 21세기는 왜 300년 전의 루소를 깨울 수밖에 없는가.              

              자유와 평등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다.
장르:사회사상/사상가

 

루소의 사회 계약설로 루소는 사람의 인성을 성선설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착한 품성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주장하여 자연 상태에서는 다투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과 자유가 방치되면 자연과 자유가 파괴되는 일이 발생하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국가를 창설하게 된다고 보았다.
즉, 사람들이 상호 보호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개인의 자유를 어느 정도 제한하고 국가를 세우고 그에 따라 규범과 법질서를 확립하면 시민적 도덕과 책임의식이 생겨난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회계약설

 

 

경제적인 문제에 있어서 누구도 다른 사람을 돈으로 살 수 있을 만큼 부자가 되어서는 안 되며, 누구도 자기를 팔아야 할 만큼 가난해서도 안 된다.
···
그와 같은 평등은 이론의 괴물이지 현실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비참한 현실을 피할 수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이를 통제하려는 노력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상황의 힘이 평등을 깨뜨리려 한다면,
법의 힘은 언제나 그것을 지키려 해야 한다.

루소 <<사회계약론>>

 

 

 

프랑스 혁명의 줄기를 따라 루소에 닿았다. 그의 사회계약론은 프랑스혁명에 불을 지폈고 사람들은 자유와 평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오로지 그 한가지 이유만으로도 루소는 나에게 거대한 의미로 다가왔다.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사회적 냉대와 비난을 온몸으로 받으며 살다간 장 자크 루소. 지금 다시 우리는 루소를 깨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 책에서 말해주고 있다.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 읽기>로 저자를 알게 됐다. 고전 소설을 재미나게 풀어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단번에 <호밀밭은 파수꾼>을 찾아 읽게 만들어 주기도 했던 책이다. 김의기 작가님은 아쉽게도 2015년 7월 10일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계속 살아 계셨다면 루소에 대해서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집필하셨을 것이다. 좋은 분들은 왜 그리 급하게 떠나시는지... 저자는 대학교 시절부터 40년간을 루소와 조우하며 루소 안에서 사셨다고 할 만큼 루소에 대한 조애가 깊으셨다. 그러니 이런 저서도 나왔을 테고.

이 책은 총 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챕터의 소제목들이 책을 집중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만큼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글을 쓰셨다. 난해한 주제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쓸 수 있다는 것은 상당한 실력가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저자에 대한 믿음 하나로 차분히 책을 읽어나갔다.

 

1. 루소의 생. 그 발자취를 따라서
1712년 루소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고 열흘 뒤 어머니는 산욕열로 사망하고 만다. 시계공인 아버지와 8살까지 함께 살다 그마저도 여의치 못해 친척 집을 전전하면서 자라다 17살에 운명의 여인 바랑 부인을 만난다. 그녀는 루소에게 어머니이자 후원자이자 애인이었다. 29세가 되어 프랑스로 떠날 때까지 그녀의 보호 아래 있게 된다. 결코 평탄치 않은 유년 시절이었다. 축복받은 삶이 아니라는 것을 루소 스스로도 느꼈을 터. 슬픈 운명은 그를 평생을 떠돌이로 살게 했다. 하지만 그 외로움과 사색의 시간이 원동력이 되어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루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에게 너무 가혹한 것일까?



2. 인간이란 무엇인가.
루소가 주창하는 자연상태는 감정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원시상태를 말한다. 자연상태에서는 남녀 간의 성관계도 욕망, 충동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고 그것에 대한 감정이 싹튼 까닭은 '사회상태'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가능해졌다고 했다. 루소는 자연상태의 인간은 원시인으로 여기고
홉스나 로크는 '문명인'으로 지칭하는 차이점을 가진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차이점이
<사회계약론>의 견해 차이로 이어진다.
루소는 국민에게 주권을 주어야만 평등한 사회가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이 장은 루소 vs 홉스, 로크의 계약론의 차이를 설명해주는 장이다. 사회계약설에 관한 책을 처음 읽는 나로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부분이 없었다면 루소의 계약론이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알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외에도 이기심, 남의 시선, 타락 등을 루소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3. 문제는 정치다.
"우리가 그토록 경멸하고, 외면하는 정치가 우리의 행복을 결정짓는다."
그는 삶에 있어서 정치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여겼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정치를 등한시하면서 삶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인데 혹자들은 그것들이 삶과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한 태도가 나쁜 정치와 나쁜 위정자들을 양산하는 지름길인데도 말이다. 그에게 있어 법은 전 국민이 직접 제정한 것이어야만 했다. 그래야 만이 자유와 평등이 양립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이 성사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평민이 참정권을 가질 수 없었던 그때 이 학설을 굉장히 공격적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루소는 당시에 이미 주권 재민의 의미를 적확하게 지적하고 주장했다.

2017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 장은 가슴이 깊이 와 닿았다. 국민의 힘으로 나라의 수장을 끌어내린 역사의 순간에 살고 있기에 더욱. 더 이상 정치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국민들은 혜안을 가지고 지도자 선출을 신중과 신중을 기해야 한다. 사익을 위해서 국민을 우롱하고 불평등을 조장하는 것은 정치를 어렵게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평등이 이루어지면 보다 정치도 보다 더 단순해질 것이다.




4. 법은 가진 자의 편인가.
힘은 정당성으로 대변 될 수 없다고 말하며 "정의는 강자의 권리"라는 소피스트들의 말을 부정한다. 힘을 정의라는 보기 좋은 허울에 덮어 사람들을 유린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노예권을 정면으로 부정하였으며 계약이란 것은 서로 주고받는 것이라 한 사람만이 일방적으로 인간성을 포기하는 계약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나는 만인이 법안에 평등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대한민국에 사는 국민이라면 대다수가 나의 생각에 동의할는지도 모른다. 법이 민중의 힘이 되어 주기는커녕 부정부패를 일삼는 방패로 사용될 때가 더 많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루소의 주장에 상당 부분 동의하는 바다. 사회계약에 의해 인간성 자체의 변화를 논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시민사회에서는 본능이 아니라 정의가 행동의 원칙이 된다. 시민 사회는 인간의 행동에 종례에는 없던 도덕적 특성을 부여한다. 육체적 충동이 의무로 대치되고, 욕망이 권리로 대치된다. 이제까지 오직 자기 자신만 생각하던 인간은 다른 원칙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본능을 따를 게 아니라 이성과 상의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간은 시민사회로 오면서 자연상태에서의 몇 가지 이점을 잃게 되지만, 훨씬 더 큰 것을 얻게 된다.
그의 능력은 그렇게 연마되고 발전되며, 그의 마음은 그렇게 넓어지고, 그의 감정은 그렇게 고상해지고, 그의 정신은 그렇게 고양되어서, 자신을 자연상태로부터 들어 올린다. 인간은 어리석고 제한된 동물에서 지성을 가진 존대로 뒤바뀌고, 스스로 만든 행복의 시간을 영원히 축복한다.

 

사회계약에 의해 설립된 시민사회에서 인간이 이러한 모습으로 바뀌는 것이라면 내가 사는 나라에서도 희망을 기대해도 좋을까. 법이 가진 자에게 더 유리하다는 것. 하지만 눈먼 대중이 그러한 법 제정자의 모델을 따라야 한다고 루소는 말한다. 현명한 법 제정자의 지혜를 빌려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법 제정자는 통치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국가의 기본이 되는 법을 제정했다고 하더라도 시민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연마해야 했고 루소는 그것을 교육이라고 불렀다. <에밀>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5. 교육을 사람을 만드는 기술
예나 지금이나 학교 교육은 아이들이 삶을 느끼는 법을 지도하고 있진 않아 보인다. 당시도 그랬었나 보다. 교육이 그러하다 보니 성숙된 시민의식이 자리 잡기 어려웠을 테고 그것이 안타까워 루소는 <에밀>을 썼다. 교육학의 기본 저서라고도 알려져 있다. 참 아이러니 한 점은 그러한 대 저서를 쓴 루소가 자신의 아이 5명을 죄다 보육원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다.

이성을 개발하기보다 아이들이 마음껏 놀며 건강한 신체를 만드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고 이성적인 학습은 신체가 건강하면 자연스레 뒤따를 것이라고 했다. 그의 교육 목표는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숨을 쉰다는 것만이 아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행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가진 기관을, 감각을, 기능을, 우리 신체의 모든 부분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하면 존재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가장 잘 사는 사람은 가장 오래 사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누구보다 많이 느끼며 사는 사람이다.

자연 속에서 아이를 키우도록 권장하고 교육은 요람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책을 멀리하라는 그의 말이었는데 당시에는 지금만큼 양서가 부족했던 탓으로 이러한 견해를 가졌을 것이라 여겨진다. 허나 지금도 루소의 충고가 귓가는 맴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루소는 에밀의 책상에서 책을 치워 버렸다. 나라 이름과 그 나라의 수도 이름을 외워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왕들의 이름과 연대기를 외워서 무엇을 하겠다는 뜻인가? 편지를 읽거나 쓰기 위하여 글을 배워야 한다. 하지만 책을 읽게 되면 자신의 머리를 쓰지 않고 남의 머리를 빌리게 된다. 책을 읽는 아이들은 생각을 하지 않고 오직 읽기만 할 뿐이다. "지식을 깨닫지 못하고 단어만 배울 뿐이다"라고 루소는 생각했다.

<에밀>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지금도 명백하다. 성숙한 시민으로 길러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수를 쓰는 것이 아니라면 당장  주입식 교육은 집어치워야 한다. 아이들의 목숨과 맞바꾸는 교육이 무슨 교육이란 말인지.






6. 경제적 자유라는 이름의 사슬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는데, 국가의 부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왜 우리가 지금 루소를 읽어야 하는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문장이다. 구가는 부자가 되어간다는데 상대적 빈곤은 심화되고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그는 개인의 국부와 개인의 복지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분업이 노동자의'지적 호기심'을 제거했고, 농업의 자동화로 주식의 단가를 낮춰 버렸다. 자연스레 저임금 현상은 불가피하게 되었고 가난은 대물림되고 만다.
부의 치우침은 말할 것도 없고.

'가치 유용성의 반비례성'과 '노동가치설'을 들어가며 경제문제를 설명하는데 흥미로웠다.
전자는 일은 그 유용성에 반비례하여 가치가 결정되며 사람에게 있어 가장 불가결한 일이 가장 값싸게 취급된다는 것이다(예를 들어 농업). 후자는 긴 시간을 공들인 생산물은 가치가 올라가고 단기간에 만든 그것은 가치가 떨어지는. 노동의 기계화와 자동화가 결코 더 나은 삶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다. 발전이 인간성을 파괴하고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삶이 단적으로 더 편해졌다고 생각하지 모르나 이러한 이면도 반드시 함께 알아야만 한다.




7. 루소를 읽고 오늘을 말하다.
루소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와 자본주의가 나아갈 방향을 저자가 제시한다.
우리는 천민자본주의와 황금만능주의의 정점을 달리고 있다. 인간성이 파괴되고 있음은 물론이고 자연도 무참히 유린하고 있다. 동식물은 더 이상 인간과 더불어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인간이 인간을 믿지 못하고 한 번 넘어지면 다시 일어설 수 없도록 짓밟는 냉혹한 현실은 판테온에 잠든 루소를 불러내기에 너무나 충분한 이유를 지니고 있다. 부디 루소를 깨우지 않고서도 행복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루소라는 사상가에 대해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은 모험이었다. 이 후기도 책을 정리하는 수준에 머물렀다(과연 정리는 잘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좋은 도전이었다고 생각한다. 기본이 없으니 기본부터 쌓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덕분에 책을 한 번 더 훑어보게 되어 기쁘다. 무엇이든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고 완벽이란 있을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완벽을 지향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 적도 없다. 별것이 아닌 듯 보이지만 오늘의 글은 진심이 담긴 무모한 도전의 결과물이다. 이 용기에 박수를 쳐줄 수 있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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