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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이소영 지음 / 홍익 / 201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http://blog.naver.com/doumi81/220714195655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
마치 좋은 하루였던 것 같아요.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어요.
나는 삶의 역경을 만날 때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어요.
삶은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에요.
언제나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겁니다."
- 본문 중에서-
가만히 나의 유년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울산의 맨 구석 원산리라는 곳에서 나고 자라 학교를 다녔다. 다니던 초등학교가 폐교 되면서 도회지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고 1년이라는 짧은 시간을 새로운 학교에서 보내고 중학교 입학을 했다. 폐교되기 직전이었던 우리 5학년은 6학년 언니 오빠들과 함께 수학여행을 가는 호사를 누렸다. 6학년만 가기에는 인원이 너무 적었던 것이다. 수학여행 단체 사진이 아직 친정집에 남아있는데 기억을 더듬어 보니 40명 내외였던 것 같다. 지금은 골프웨어로 알려져 있는 그린조이라는 브랜드의 옷을 엄마가 한벌 사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 학교는 이내 폐교가 되었고 내가 살던 동네도 온산공단이 집어삼키면서 어쩔수 없이 이사를 가야만 했다. 마을은 거주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빈집이 많았다. 인적이 없어진 동네의 밤길은 지금 생각해도 많이 무서웠다. 도시로 이사가는 것이 한없이 좋기만 했던 그때. 하지만 다 자란 지금이나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에서나 유년기의 시절은 여전히 선명하다. 다시 돌아가서 느끼고 내음을 맡고 위로받을 수 있는 곳이 남아있는 사람들은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빛바랜 기억속 혹은 꿈속에서만 만질 수 있는 곳이 되어버린 고향 원산리. 이상하리만큼 꿈속의 배경은 지금도 그곳에서 좀처럼 벗어나질 못한다. 왜일까.
모지스 할머니 이야기. 남편의 성을 따라 모지스라고 불리는 할머니. 그녀의 이름은 '에나 메리 로버트슨' 이다. 저자가 애정하는 화가인데 이왕이면 그녀의 본명을 써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남편의 성을 따를수 밖에 없는 많은 그녀들이 오늘따라 왠지 뭉클하다. 모리스 할머니는 1860년생으로 12살 때부터 부유한 집의 가정부로 들어가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하지만 이후 27살 결혼전까지는 바느질과 요리, 집안일을 하며 보낸다. 10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5명이 유아기 때 사망을 하고 그녀 나이 49세때는 모친과 부친이 모두 돌아가시는 슬픔을 겪는다. 그리고 남편 토마스 살몬 모지스 역시 그녀의 나이 67세때 심방마비로 죽고 72세때는 딸 애나를 폐결핵으로 잃는다. 막내아들 휴마저도 그녀보다 먼저 세상을 등지고 만다. 슬픔과 우울만이 가득한 삶. 모지스 할머니는 어떻게 버텨냈을까.내가 그런 상황이었다면 어떤식으로 삶을 살아냈을까.
모지스 할머니는 더이상 바느질을 할 수 없게 되면서 그림으로 방향을 튼다. 그녀의 딸 애나의 권유로 털실로 그림을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녀의 나이 58세인 1918년 처음으로 그림을 그린 후 본격적인 그림 그리기는 75세 때 시작된다. 나이는 그녀에게 숫자에 불과한 것이었다. 101살 죽는 날까지 1600점의 작품을 남겼으며 250점 이상을 100세 이후에 그렸다.
그녀는 삶의 불행을 아름다움과 기회로 바꿀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수많은 우울을 건너면서도 한결같이 인생이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그녀를 버티게 해준 것은 그림이었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을 향한 사랑과 인생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었을 것이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의 기쁨과 행복을 위해서 하는 일을 발견하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우리는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
그녀의 그림을 밝고 명랑하며 가족적이고 사람중심이다. 자연이 언제나 배경이지만 절대사람을 벗어나지 않았다. 산과 나무와 강과 바람만이 그속에 있었다면 우리들은 그녀의 그림에 그다지 환호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연속에서 사람들은 비로소 서로 함께할 수 있는 진짜능력을 더 많이 부여받는다고 믿는다. 그녀가 떠난지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녀의 그림이 사랑받는 이유는 요즘의 사람들이 느끼기 힘든 것들이 그 안에 즐비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리만족에서 오는 희열이라고나 할까.
부드럽고 유한 그녀의 성격의 바탕은 평생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했기에 가능했다. 자연은 참으로 묘한 힘이 있다. 강하고 모난 사람을 다듬어주는 능력이 있고, 나약하고 아픈 사람에게는 힘과 건강을 주는 능력 말이다. 나의 유년시절을 되돌아 보아도 이견이 없을 만큼 확신한다. 지금보다 훨씬 모나고 거칠게 살 가능성이 큰 가정에서 성장했지만 산과 바다와 강이 나의 화와 분노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기에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