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좋은 삶인가 - 동서양 고전에서 찾아 가는 단단한 삶
김헌.김월회 지음 / 민음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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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여전히 부담스럽다. 잘 쓰고 싶은 마음 때문은 아니다. 읽은 책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했을까 봐, 핵심을 짚어내지 못할까 봐 하는 작은 두려움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안다. 나의 생각에는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음을. 이미 알고 있지만 이렇게 의식적으로 더듬어야 퍼올릴 수 있어 늘 안타깝다. 아마도 결정적인 이유는 걸레 같은 초고를 여러 번 다듬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졸업을 앞두고 있고 한결 여유로워졌으니 정신을 다시 다잡아 본다. 공부하느라 집 밥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나를 보면 나는 요리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었구나 싶다. 여유가 생겼다고 독서 후기를 써야겠다 생각하는 내가 조금은 부끄럽다.

학문으로 다소 건조하고 딱딱하게 배웠던 동서양의 철학을 조금이라도 복습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기에 이 책을 구매했다. 역시 나는 인문학 서적을 벗어나기 힘들겠다 생각이 든다. 늘 이런 책에 눈이 먼저 가 버리니..

저자인 김헌, 김월회 교수님은 각각 서양과 동양의 철학 전공자다. 고전을 매개로 12개의 핵심 주제를 다루어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 알아가도록 이끌어준다.

명예, 필멸의 존재이기에

운명, 피할 수 없다면

행복, 삶의 목적이 다르다면

부(富), 포기할 수 없다면

정의, 탐리(貪利)가 본성이라면

아름다움, 감동이 머무는 곳

분노, 어떤 분노인가

공동체, 만들어 가야 할 '우리'

역사, 미래를 소유하고자

짓기, 창작에 대하여

영웅, 내 삶의 이야기

죽음, 삶을 완성하다

각각의 주제들은 이미 동서양 철학이나 고전에서 오랜 시간 동안 다루어져 왔던 화두들이다. 12가지의 화두를 보면서 세상은 정말 완전히 바뀐 것일까 하는 의문이 일었다. 역사적으로 전 세계에서 무수한 혁명들이 일어났다고 한들 그때와 지금의 세상이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어쩌면 이 화두들이 삶의 진리가 아닐까. .. 인간이 차마 극복할 없을 화두임에도 불구하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끝없이 추구하는 진리..

이 책은 각각의 화두를 두고 두 교수님이 서양과 동양의 고전을 인용하여 사유를 풀어나간다. 모 월간지에 기고한 내용을 책으로 엮어낸 것이라 한다. 내 지식의 한계였던지, 아니면 나도 모르게 40여 년간 몸에 밴 오리엔탈리즘적 요인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동양 사상을 논하는 김월회 교수님의 글이 쉬 읽히지 않았다. 공자, 노자, 장자 등 살아오면서 많이 접한 역사적 인물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글과 행적이 그만큼 친근하게 다가오지 않았던 것 같다.

김헌 교수님의 서양 고전을 바탕으로 한 화두 풀이는 교수님의 경험을 비추어 설명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더 이해하기 쉽게 다가왔다. 두 분 모두 학문적으로는 대단한 내공의 소유자였지만 나는 김헌 교수님의 글에 더 끌렸다. 자신의 이야기로 시작해 알게 모르게 이어지는 서양 고대 사상으로의 이행이 흥미로웠다. 소크라테스는 알았지만 이소크라테스라는 소피스트가 당시 함께 존재했다는 것과, 그가 소피스트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소피스트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였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소크라테스에 대한 연구를 하시는 모습이 멋지게 느껴졌다.

이 책은 동서양 고전을 기반으로 삶을 성찰하는 책이지만 그래서 현재와 미래를 함께 생각하고 준비할 수 있는 방법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해준다. 그래서 읽는 내내 두뇌가 계속 풀가동 되었고, 종종 어려운 내용을 마주하게 될 때를 되려 기다리고 있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미지의 세계는 두렵지만 그만큼 나를 흥분케 하는 것도 잘 없기 때문이다.

역사란 과거의 실수를 현재와 미래에 더 이상 하지 않기 위해 공부하는 학문이라고만 단순히 생각했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재현하는 게 현실이다. 때로는 되려 역사를 이용하기도 하니 말이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그간 당연시 여겼던 명제에 대해서 과감히 도전하는 모습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역사는 무엇보다도 사실적이야 할까. 객관성만 담보하면 되는 걸까. 과연 어디서 어디부터가 사실이고 주관일까... 하며 고민했던 내게 작은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다.

행복과 죽음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예상했던 내용들이 나와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이성의 능력을 발휘할 때 탁월함을 얻게 되며 그것이 가장 최고의 선(善), 최고의 행복이라 여겼다. 그러나 이성이 마음껏 발휘된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가? 전 인류는 세계대전이라는 잔혹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현인들의 주장이 전적으로 옳지 않음을 조심스레 다루어가는 저자들의 예리함이 마음에 들었다.

죽음 역시 우리의 삶은 유한한 것이며, 태어남과 동시에 우리 모두는 하나 빠질 것 없이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죽음은 마지막 순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완성임을 다시 한번 떠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살아간다'라는 말은 생명과 죽음이 한 몸인 단어였다.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면만 보고 살아가는 존재 아니던가.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이다.

궁극적으로 이 책은 어떻게 사는 삶이 아름다운 삶인지 서양과 동양의 고전과 철학을 통해 찾고 있다. 과거의 그들이 살던 세상과 사건에서 인간이 취해야 할 진리와 진의가 어떤 것이었고, 앞으로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획득할 것인가 진지하게 고찰하는 책이기도 하다.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

12개의 화두로 좋은 삶을 발견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안다. 이 화두 중 그 어느 하나도 변변찮게 알지 못하는 내가 좋은 삶에 대한 생각이 가능하기나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하지만 적어도 내가 나일 수 있는 삶을 희미하게나마 알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물론 그것은 방종이 아닌 철저한 개인주의적 자유여야만 할 것이다.

가능한 한 좋은 삶을 살고 싶다. 아직도 좋은 삶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왠지 그러고 싶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살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그리고 단단해지고 싶다. 끝없이 흔들릴 테지만 되도록 평정을 찾는 시간을 단축하고 싶다. 이 책은 이런 나의 다짐에 작은 불씨가 되었다. 책대로 살 수는 없지만 책 따라 노력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큰 기대 없이 읽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구본창 작가님의 사진이 중간중간 들어가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다른 책이었다면 인물들의 사진이나 참고 자료가 많았으면 했을 텐데 이 책은 구성된 딱 이만큼의 자료가 적당해 보였다.

2021년 새해 다짐을 시작하는 1월에 꼭 한 번 읽어보았으면 하는 책이다. 왠지 이 책은 재독, 삼독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불러일으킨다.


공자의 학설을 '대통일 된 중국제국'이라는, 새로운 문명 단계에 발전적으로 적용했던 순자는 "홀로 있을 때도 항상 삼간다"는 '신독(愼獨)'을 강조하며 내면의 떳떳함을 일관되게 유지할 것을 주문했다. 그래야 명예라는, 인간의 소거하기 어려운 욕구를 남이 아닌 '나'가 주도해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33쪽

답을 구성해 내지 못한다고 질문이 무의미해짐은 아니다. 때로는 물음을 던지는 것 자체만으로도 값질 때가 있다. 물음을 구성할 줄 아는 이는 적어도 천하의 웃음거리가 됐는지조차 알아채지 못한 채 좋다고 오명을 누리는 짓은 하지 않을 줄 알기에 그렇다.

39쪽

아무리 가치중립적이라 할지라도 그는 이가 그로 인해 색을 아름다움으로만 인지하게 되면, 아름다움이 지니는 배타적 흡인력으로 인해 부정적 사태가 야기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여 그는 '낙이불음(樂而不淫)',곧 즐거워할지라도 절대로 과도함에 빠지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168쪽

누가 강자가 되며 어떤 자를 향하여 어떤 분노를 더뜨릴 수 있는지는 그 사회가 얼마나 건강한지를 가늠하는 지표다.

190쪽

다지고 다져 침묵하고 있어도 표출되는, 그런 분노를 품어야 한다.

192쪽

말이 말이려면 영혼을 오롯이 드러내야 한다. 따라서 좋은 말솜씨는 단순히 말을 그러싸하게 꾸며내는 기술이 아니라 정직하고 훌륭한 말을 할 수 있도록 '영혼을 돌보는 일'이다.

213쪽

인간은 영혼의 덕을 갖추었을 때 고귀하고 좋은 사람이 되고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심하라. 아무리 덕을 각춘 고귀한 사람일지라도 불행해질 수 있음을. 그것이 인생임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비껴갈 수 없는 운명적인 역설을, 그 역설을 드러내는 비극에 맞서 시선을 돌리지 않고 직시했던 것이다. 거기에서 삶이 대한 단단한 인문학이 굳게 자리 잡는다.

273쪽

도덕적 품격과 지적 탁월함에 정치적 비전이 더해졌을 때,

비로소 명분을 얻어 멀리 나아갈 수 있다.

302쪽




출처/ https://blog.naver.com/doumi81/222208186271

화두 자체가 대단하거나 고결하다는 얘기를 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한, 누구라도 마주할 수밖에 없는

화두들입니다. 이를테면 명예, 운명, 행복, 부(富), 정의, 아름다움, 분노, 공동체, 역사, 짓기, 영웅, 죽음 같은 것들입니다.

이들에 대하여 차원 높이 사유하고 심도 있게 통찰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핵심은 살아가다가 이들 화두와 마주했을 때 회피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곱씹어 보며 그에 대한 자기만의 생각을 구축한다는 것, 이 두 가지입니다.

프롤로그 중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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