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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으로 시작하는 생태 감수성 수업 - 119가지로 질문하는 열두 달 환경 인문학
최원형 지음 / 블랙피쉬 / 2024년 7월
평점 :
왕릉에서 일한 적이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조선왕릉 중에서도 규모가 큰 곳이었다. 다양한 동식물이 조화롭게 자라고 특히 새가 요란하게 지즐대는 울창한 숲을 기대했다. 실제로 현장에서 보니 기대와는 딴판이었다. 왕릉을 둘러싼 우람한 소나무들이 멋있게 보이지 않았다. 다른 나무들과 함께하지 않아 오히려 앙상해 보였고 허전했다. 일하면서 까닭을 분명히 알았다. 과도한 제초와 전지, 다양성을 상실한 숲이 원인이었다. 굳이 깎지 않아도 될 풀을 보기 싫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많이 깎은 데다 덤불이 없었다. 위로 쭉쭉 뻗은 소나무 위주로 관리하다 보니 다른 나무들과 풀은 소홀했다. 거기에 기대어 사는 여러 동식물이 살아가기가 어려웠다. 당연히 새소리가 빈약할 수밖에 없었다.
작은 새들은 갈대숲이나 덤불 속에도 밥그릇 모양의 집을 짓고 번식합니다. 새들만 둥지를 짓는 건 아니에요. 멧밭쥐라는 설치류도 둥지를 만들어요. 멧밭쥐는 새끼손가락 정도 크기에 몸무게가 6g 정도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설치류입니다. 이토록 가벼우니 덤불에다 둥지를 만드는 걸까요? 덤불이 있어야 새도 멧밭쥐도 살아갈 수 있겠네요. 나무와 아름다운 꽃으로 예쁘게 꾸며 놓은 공원에 덤불이 있는지 살펴보세요. 덤불 없이 말끔하게만 정리된 공원이라면 다양한 생명이 살아가기 어려울 거예요. (60쪽)
동식물이 적고 새소리가 빈약한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은 누구 탓일까. 거기서 풀을 베거나 전지하는 노동자 때문일까, 풀을 베라고 업무 지시하는 공무원 때문일까, 왕릉 관리 지침이나 정책을 만드는 이 때문일까, 관리 부처인 국가유산청 때문일까, 아니면 깨끗하게 관리하라고 민원을 넣는 시민들 때문일까. 남 탓하기는 쉽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 책임에서 아주 자유로울 수 없다. 함께 살아가야 할 동식물을 바라보는 관점, 환경에 대한 인식을 다시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 질문하고 생태 감수성을 예민하게 벼려야 하지 않을까. 그런 측면에서 “질문으로 시작하는 생태 감수성 수업”은 우리 모두 지금 당장 귀 기울여 보고 듣고 실천해야 할 지침이 아닐까 싶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내내 책을 뒤적이며.
자연적인 숲의 규모를 더 키워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나라랑 위도가 비슷한 미국의 메릴랜드주에서는 벌에게 좋은 나무 여섯 종을 소개했는데요. 그 가운데 우리나라에 흔한 벚나무, 산딸나무, 참나무, 단풍나무가 있어요. 메릴랜드주의 발표대로라면 현재 우리 숲에 살고 있는 이 나무들은 그대로 두는 게 벌에게 가장 좋은 거 아닌가요? 왜 꿀 생산을 위해, 꿀벌을 위해 숲의 나무를 바꿔야 하는 거예요. 다양한 나무와 어울려 살아가던 수많은 종류의 야생벌들이 몇 가지 나무로만 이루어진 숲에서 지속 가능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꿀만 많이 생산하면 좋은 숲일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숲이란 대체 어떤 곳이어야 하는 걸까요? (1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