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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순 씨네 아파트에 온 새
박임자 지음, 정맹순 그림, 김성현 감수 / 피스북스 / 2023년 7월
평점 :
작은 액자에 담긴 맹순 씨 그림을 날마다 봅니다. 도로에 높은 솟은 이정표 난간 위에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앉아 있는 말똥가리입니다. 시베리아같이 추운 지역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우리나라에 온 겨울 철새입니다. 맹금이지만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면 앳된 기운이 느껴집니다.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힘센 새들에게 밀려 먼 이국까지 먹이를 찾아 날아온 어린새입니다. 어린새 특유의 순한 기운도 느껴집니다. 모델이 된 말똥가리 어린새 자체도 그렇지만 맹순 씨 그림은 어린이가 그린 것처럼 순수함과 자연스러움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맹순 씨 그림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날마다 보게 되는 까닭입니다.
그림을 정식으로 배운 적 없는 맹순 씨입니다. 맹순 씨에게 그림을 그리라고 부추긴 당사자인 임자 씨도 맹순 씨에게 그림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림을 그리라고 부추기며 동기 부여를 했을 뿐입니다. 평생 그림이란 걸 그려 본 적이 없는데 무슨 그림을 그리냐고 말하면서 펄쩍 뛰던 맹순 씨입니다. 딸인 임자 씨가 종일 쪼그리고 앉아 직접 만든 수제 노트를 건네면서 맹순 씨 마음이 바뀌었나 봅니다. 임자 씨는 자신감 없는 맹순 씨가 그림을 그릴 때 지웠다 말았다 하지 않도록 처음부터 연필을 주지 않고 볼펜과 숟가락을 내밀었습니다. 단순한 숟가락을 끝까지 그리며 차츰 그림의 세계에 빠져들도록 부추긴 임자 씨의 지혜가 놀랍습니다.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볼펜, 핸드폰, 사과를 그리던 맹순 씨는 텃밭에서 만난 작물과 물건을 거쳐 이제는 새를 그리고 있습니다. 탐조인 임자 씨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언니가 새를 보면서 자연스레 맹순 씨도 새를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맹순 씨와 새를 만나게 한 임자 씨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들은 삼위일체처럼 느껴집니다. 맹순 씨한테서 새를 보고, 새한테서 맹순 씨를 보고, 임자 씨는 맹순 씨와 새를 사랑합니다. 맹순 씨도 임자 씨와 다르지 않습니다. 임자 씨한테서 새를 보고, 새한테서 임자 씨를 보고, 맹순 씨는 임자 씨와 새를 사랑합니다. 이들의 각별한 사랑이 ‘아파트 탐조단’으로, ‘탐조책방’으로 확장해나가는 게 참 보기 좋습니다.
맹순 씨는 오랜 세월 청소일을 하면서 한쪽으로 밀대를 밀었더니 한쪽 갈비뼈는 툭 튀어나오고 반대쪽은 쑥 들어가 버린 거다. 자식을 먹여 살리느라 제 몸도 살피지 못하고 산 고된 삶의 흔적이다.
맹순 씨는 그 흔적이 남한테 흉하게 보일까 봐 신경을 썼다. 하지만 내 눈엔 엄마의 휘어진 몸이 힘든 세월을 견디며 자식을 잘 키운 훈장처럼 보였다.
발가락이 잘려 나가는 와중에도 가정을 꾸리고 새끼를 낳아 기르는 멧비둘기의 본능, 뼈가 휘어져 변형될 때까치 병원을 찾을 시간 없이 살아야 했던 부모로서의 삶은 혼자인 나로서는 도저히 가늠이 안 된다. 그 고마움을 자식이 다 갚을 수 있을까?
초록이를 바라보는 맹순 씨를 뒤에서 가만히 끌어안았다. 휘어진 작은 몸을 고마움을 한껏 담아서. (8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