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소개된 후설 저서들이 꽤나 많다. 그 중 꽤 중요한 책들도 상당히 많이 번역되어 있으며, 입문서부터 개론서 까지도 다양하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 후설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책이 있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이념들의 경우 칼 슈만이 편집하고 최경호씨가 번역한, 문학과 지성사의 판으로 보는 것을 선호했다. 이종훈씨의 오랜 노고와 후설 철학의 매진한 연구는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으나, 어째 글이 읽히는 것은 이상하게 최경호씨의 번역본이었다.
후설철학에 다가가기 위한 개론서로 보았던 것은, 후설 현상학의 고전과도 같은 한전숙씨의 현상학의 이해와 이념들을 번역했던 최경호씨가 번역한 소콜로브스키의
현상학적 구성이란 무엇인가 였다. 현상학에 크게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아서 이정도로만 잠시 접어두고 훗날을 기약하였다.
다시 후설과 만나게 된 것은 독서의 먼 우회의 길에 있었다. 자크 데리다의 글쓰기와 차이를 읽던 중 코기토와 광기의 역사 파트를 읽다가,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조명해보고 싶었다.(실제로 글쓰기와 차이에서 그 파트는 푸코를 겨냥하고 있다.) 광기의 역사를 읽으며 푸코의 오랜 스승이자 사유의 원천이 되는 캉길렘의 책도 같이 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캉길렘의 책에서 미셸푸코의 서문에서 보면, 현상학의 프랑스 수용에 대하여 간략히 소개하는 부분이 있다. 푸코의 소개를 보면 프랑스는 1930년 데카르트적 성찰이라는 후설의 저서와 강연을 통하여 프랑스에서 수용되었고 그 응답이 사르트르의 자아의 초월성이라는 것이다.
다행히 자아의 초월성은 작년에 번역되어 구하여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표지가 마음에 드는데, 명확한 글씨는 경험적 자아이고 흐려지는 글씨는 선험적 자아(초월적 자아)를 나타내는 것일까? 지젝의 표현대로라면 "탈구된 느와르의 주체" 일 것이며, 자신의 판단을 무한히 유보하며 미끄러지는 자아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꽤나 인상적이었다.
오래전에 품절되어 구하기 어렵지만, 데리다의 정신에 대해서를 통해서도 후설을 간접적으로 만나 볼 수 있다. 정신에 대해서 책을 구하기 어렵다면 아르테에서 나온 자크데리다를 읽는 시간 을 읽는 것도 나쁘지 않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엄밀한 "독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읽고 나면 마치 데리다의 책을 읽은것 같은 "기분"은 낼 수 있을 것이다. 정신에 대해서는 데리다가 그토록 집착하고 있는 음성-로고스-유럽-(그리고 남근) 중심주의, 그 중에서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그의 입장을 볼 수 있다. 그가 겨냥하고 있는 상대는 물론 하이데거 이다. 그의 총장취임강연, "독일대학에서의 자기 주장" 은 박찬국씨의 책 하이데거와 나치즘에서 부록으로 엿볼 수 있다. 사실 독일철학 그중에서도 하이데거의 유려한 개론서와 번역서로 유명한 박찬국씨가 데리다의 책 "정신에 대해서" 를 번역한 것이 과연 "적임자 인가" 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견의 여지가 많지만, 이러한 얼개로 묶어 보면 나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하이데거의 후기저서 "언어로의 도상에서" 에서 그가 사랑한 시인 "트라클" 에 대한 분석 (하이데거의 철학의 다른의미의 근원은 횔데를린, 게오르게 트라클, 슈테판 게오르게로 볼 수 있지 않을까?)과 그가 사용하고 있는 "정신" 이라는 어휘 또한 데리다의 통찰대상이 되어진다. 그리고, 다시 후설

폴 바레리의 "정신의 위기"와 후설이 말하고 있는 "유럽학문의 위기" 그리고 폴 아자르의 "유럽의식의 위기" 유럽의 "정신, 학문, 의식" 등등의 "유럽적인 것" 에 대한 문제의식과도 데리다와 함께 마주하게 된다.
데리다-후설의 이러한 입장은 데리다의 사상이 원숙기에 접어들면서 나타나는 지점들이다. 그러나 데리다는 자신의 학문 초기부터 후설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가 준비하던-준비했던 박사학위 논문이(이논문은 자신이 체계를 비판하는 자신이 체계에 편입하기 싫어 결국 이 논문으로 학위를 받지는 않았다고 한다.) 번역되어진다고 하니 기쁠일이다. 이 글을 쓰는 시기가 2018년 3월 21일인데 출간예정일은 2018년 2월28일 이다. 지연이 있기는 하지만 곧 출판될거라 굳게 믿고 있다. 그리고 이 논문이후 데리다는 후설의 "기하학의 기원"을 번역한다. 이 논문은 후설의 "위기"에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으니 감상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데리다의 "기하학의 기원의 서문" 또한 지만지에서 나와 맛볼 수 있겠다. 물론 책의 제목은 매우 매우 매우 아쉽다. "데리다의 기하학의 기원 서문" 이란 식으로 나왔으면 혼선을 빚게 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지만지 출판사가 편역한 후에 편역임을 직관적으로 표시를 안해주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꼭 수정해줬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있다.
그리고 마침내 후설철학의 초기 대표작으로 유명한 논리연구가 이종훈씨에 의해 번역되었다.
아직 2권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곧 나올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데리다의 목소리와 현상과 그 얼개를 같이 하고 있는 논리연구이기에 반갑기만 하다. 올 한해는 데리다와 후설만으로도 풍족한 한해가 되겠다. "발생의 문제" 만 출판되게 된다면, 데리다와 후설의 교차적읽기를 즐겁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5월말 출판 예정인 또다른 현상학-윤리학 레비나스의 "전체성과 무한"을 즐겁게 기다려본다.
PS.목소리와 현상에서 데리다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것은, 논리연구 Vol.2에 INVESTIGATION 1 : EXPRESSION AND MEANING 이다. 이번에 번역된 논리연구 Vol.1 에 해당하는 책은 말 그대로 논리연구의 서론격이며, Vol.2 에서 INVESTIGATION 1,2가 진행이 된다. 데리다의 발생의 근원이 번역되는 것을 기다리며 천천히 논리연구 1을 읽고 있어도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