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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서소 씨의 일일
서소 지음, 조은별 그림 / SISO / 202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계절이 넘어가는 시점에 나는 좀 지치는 편이다.
특히 봄에서 여름이 넘어갈 때가 가장 힘이 든다.
열정적인 여름을 맞이하기엔 이미 몸이 너무 지친
터라 체중이 줄고 버겁다.
허약한 사람일수록 날씨의 민감도를 더 많이
느끼는 것 같다.
어찌되었던 약한 사람은 주변의 영향을 좀 많이
받으니까...
그런 어느날 꺼내 든 이 책은 나와 같이 무언가에
영향을 좀 받는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다.
이 책은 주인공 서소씨의 소설같은 산문집.
산문집이라기엔 다소 두꺼운 자태가 느껴오는
냄새는 이미 이 사람은 할말이 참 많은 사람
이겠구나 싶은게 동질감 마주 느껴졌다.
사람은 두 종류가 있는 듯 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신이 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타인의 이야기를 할 때 신이 나는 사람.
그는 분명한 전자의 사람인 듯 보인다.
이 책에서만큼은.
그만큼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그렇다고 너무
평범하지도 않은 38살 남자의 이야기다.
본의 아니게 주인공 서소씨는 회사에서 휴직을
하게 된다. 육아휴직이나 기타 다른 휴직이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는 약간의 징계를 섞은 권고휴직을
맞이하면서 몇 달간의 강제적인 자유를 갖는다.
자책을 하거나 원망을 하면서 보냈을 수도 있는
그는 우직하게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야금야금 하게 된다. 그게 그리 또 거창하지만도
않다. 이를테면 카페에 죽치고 앉아 책을 읽는
지적노동을 하고, 산책을 하고, 글쓰기모임에
나가고,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또 글을 쓰고
카페에 들고나는 사람들과 카페사장님들의
일에 가끔 오지랖을 떨어주는 그런 사소한 일을
한다.
책 제목처럼 회사원의 서소씨가 아닌 망원동의
서소씨가 어울렸을 법한 생활은 가끔은 지루했고,
가끔은 주변으로 인해 버라이어티했다.
매일 돌고도는 삶의 사이클속에서 잠시잠깐
벗어나와 만나게 된 이들속에서 그는 자기가
스스로 일궈왔던 것들이 진짜 원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고, 일이 진짜 하기 싫어서
다른 묘책을 생각해 낸다.
매달 월급이 가져다 주는 순간의 달콤함을
미뤄두고는 나머지 29일동안 불편하지만 썩
괜찮은 생활을 한다.
밑줄을 그을만한 문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주인공이 너무나 찌질해서 동정이 가는 것도
아니다. 그냥 잠시잠깐 동네에서 만나서
수다를 떨어도 재미있을 누군가인 서소씨인데
책을 덮는 순간 긴 수다끝에 오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만큼 그의 이야기는 유쾌했다.
책을 읽으면서 낄낄거려보기도 참 오랜만이었다.
그의 또 다른 더 많은 에피소드들로 가득찬
책이 하나 더 툭 하고 곧 튀어나올것만 같았다.
그는 문장이 아닌 상황으로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독자를 묶어두는 진정한 이야기꾼같은 느낌이다.
서소씨의 다음 책이 기대되는 독자가 되었다.
김디디가 등장하는 연애도 좋고, 카페B가
나오는 이웃이야기도 좋고, 가난했지만
그래도 가끔씩 찾아가는 서소씨의 본가이야기도
좋고, 은퇴한 직장상사의 이야기도 좋았다.
비뇨기과의 웃지못할 상황도 좋았고,
회사에서 직장동료가 잘못보낸 팩스이야기도
좋았다.
이 책에서 나는 뉴발 327과 망원동의 어느 거리와
내가 하고 싶은 것들 몇가지와 유쾌함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