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 - 동네 주치의의 명랑 뭉클 에세이
추혜인 지음 / 심플라이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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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너무 맘에들어 카트에 넣자마자 바로 샀다.



고등학교땐 남자선생님뿐이었고 중학교때 여선생님들도 너는 내 스타일이다 아니면 수업시간에 가만히



의자를 옆에 놔두더니 남학생 어깨에 머리를 기대는 선생님도 있었는데 여학교는 오죽 심했을까



하긴 돈봉투 달라고 집에 찾아오는 선생님들은 여자남자 안가리고 많았다.♡♡









말 많은 사람도 막상 실천하려고 하면 뒤로 물러나는게 현실인데 대단하십니다.



환자한테도 막대하는 전공의들 많던데 병원내 여직원들에겐 더할것이다.



동네주치의의 건강한 지역만들기 프로젝트 재미있습니다.○○









지역자치 의료기관이 있다니 처음 알았다.



읽어보니 지역주민이 주인이 되는 누구나 평등하게 의료권리를 누리는 사회를



지향하는 시스템이다.



의료현실과 환자의 입장 의사의 입장을 교대로 적으니 이해가 빠르게된다.☆☆



여름철에 자미원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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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 - 동네 주치의의 명랑 뭉클 에세이
추혜인 지음 / 심플라이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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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동네 만들기 인간미 넘치는 우리동네 주치의 이야기♡○☆여름철에 자미원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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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풍수 5 - 인간의 대지 나남창작선 37
김종록 지음 / 나남출판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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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격투기선수 추성훈 아나운서 전현무와 여자연애인등 네명의 출연자가

상하이에 가서 메뚜기튀김을 먹으면서 문화체험을했다.

거리에 잘보존된 오래된 극장이 나오면서 단성사 사진도 같이 나온다 아무도 감흥이 없다.

치파오라는 중국전통의상 파는 상점이 나와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치파오는 여진족의 전통의상이지 중국옷이 아니다.

금나라는 송나라 수도 개봉을 함락하고 송나라 황제 휘종과 흠종을 포로로 잡는

정강의 변을 일으킬 정도로 세력이 막강했으나 금나라 사람들이 꾸준히 한족에

동화되어가자 결국엔 만주로 철수했다,

이때 황제를 구하러 사신으로 간 홍호는 15년간 억류되어 있으면서 보고들은 것을

적은 (송막기문)에서 금나라시조는 아골타의 8대조 경주 김씨 김함보라고 기술한다.☆☆




우리와 같은 동이족인 여진은 과거의 교훈을 잊고 중원으로 다시 들어가 후금인

청을 세우고 한족을 지배하다 결국은 한족에 동화되어 그들의 말과 글 역사는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중국은 여진족 여인들이 입던 치파오를 중국옷이라 팔고있고 출연자들은

그런가보다 하게되었다.

중국은 국제행사때마다 한복입은 사람을 등장시켜 이것은 중국전통 의상이라고

선전하며 우리도 그런가보다 하고있다.○○





그건 너만의 노파심이라고 한다면 생각해보자

우린 3대4대째 이어온 음식점이 역사와 전통이 있는 곳이라한다.

일본엔 천년 넘은 음식점이 5개나 되며 백제사란 사찰도 5개나 된다.

백제인 유중광이 세운 건축회사인 곤고구미는 1,400년이나 되었다.

런던엔 100년 넘은 극장들이 잘보존되어 있지만 한국에선 가장 오래된 극장인

단성사를 부술때 아무도 뭐라한 사람이 없었다.

우리가 2002년 폴란드에게 2:0으로 승리하던날 종로서점이 문닫았을때 그앞에서

시위한 사람은 다섯명이라도 되었다.

여진족이나 한민족이나 문회의식은 똑같다.♡♡





걸어서 세계속으로 베트남편에서 어느 젊은 여배우가 프랑스식민지 시절의 건물을 가리키며

저것도 역사라며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주식회사와 보험을 탄생시킨 동인도회사의 대표적 건물양식이며 한국의 근현대사가

그대로 녹아있는 그자체가 박물관인 중앙청을 부수기 직전 성신여대 이현희교수는

KBS에 나와서 저런건 때려부숴야 한다고 주장해 이태리에서 고건축학을

전공한 보존을 주장하는 교수와 설전을 벌인다.☆☆





다른나라는 어떨까 미국을보자 지금의 미합중국을 만드는데 가장 걸림돌은 남북전쟁이었고

남군의 총사령관은 로버트 리 장군이었다.

지금 셜리농장에 있는 그의 생가는 잘 보존되어 있다.

한국처럼 대통령 생가 불질렀다고 만세 부르는거와는 대조적이다.○○





베네치아의 뒷길 피렌체 뒷길등 유럽엔 수백년된 골목길이 많다.

한국에도 있다 조선왕조와 생을 같이한 6밴년된 종로 피맛골 오세훈시장이 이길을

밀어버릴때 국민들은 열광했다.

인도 뉴델리에 있는 영국식민지 시대건물은 시청으로 쓰다 지금은 지하철 역사로 쓰고 있다.♡♡






아랍과 서유럽은 지금도 앙숙이다.

십자군전쟁을 보자

십자군이 침략했을때 레바논,시리아,이라크등등에 만든 백설공주가 살 것 같은

서유럽성들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터키의 소피아성당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하지만 유럽에도 한국인의 피가 섞인 사람이 하나 있었다.

뭇솔리니, 그는 히틀러에게 자신의 문화를 과시하기 위해 로마황제들이 개선식을 하던

황제의 거리를 밀어버리고 군사퍼레이드를 했다.

세월의 흔적은 사람의 힘으로도 AI로도 손댈 수 없는 영역이다.

자신의 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의식이 없는 여진족 같이 우리도 종로 피맛골을

밀어버린후 단성사를 헐고 그곳에서 역사를 지워버리는 퍼레이드를 꾸준히 연다면

한복도 중국옷이 되어 일본연애인 네명이 한복을 보며 중국옷이라고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초봄에 자미원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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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소설 풍수 세트 - 전5권 나남창작선
김종록 지음 / 나남출판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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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정주영회장과 야마모토회장







우리는 지금 풍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좋은 옷을 입고 국산차와 좋은집 잘정비된 제도 반도체,컴퓨터도 만들고 대학에선







많은 석학분들이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지하철만해도 외국지하철 부럽지 않은 수준이라한다.♡♡



















이승만대통령시절 길거리엔 거지 투성이었고 배고픔과 추위가 도둑을 만든다고







도둑도 참 많았다고한다.







우리에겐 경제발전을 해야할 밑천이 필요했다.







1960년 베트남전쟁이 터졌지만 6.25협정서에 서명한 잉크가 채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전쟁의 기미를 느낀 이대통령은 미국에 참전의사를 제의한다.○○























베트남도 우리와 똑같은 역사를 경험한 프랑스식민지 국가였다.







2차대전후 베트남독립군을 지휘하던 호치민을 중심으로 한 북베트남과







민주진영의 지지를 받은 남베트남은 전쟁에 돌입했고 공산주의 도미노가







진행되는걸 두려워한 미국은 1965년부터 대대적으로 개입한다.☆☆



















한국군도 30만명이 파병되었고 사망자만 5099명에 달했다.







우린 거기 왜갔을까 돈벌러 한국의 유학생들은 하버드,동경대,옥스퍼드대 같은







선진국대학에 유학을 다녀와 나라를 일으키는 역할을한다.







외국대학이 자선단체인가 그들도 수업료를 받아야 학교를 운영할 수 있다.







그돈이 어디서 났겠는가 파월장병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면서 벌어온 월급이







대한민국의 경제를 일으킨 종자돈 아닌가♡♡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을 침탈하러 왔다.







혼자왔을까







일본군은 의병을 죽이고 조선인을 학살하고 여인들의 정조를 짖밟고 중국의







식민지였던 조선을 빼앗아 자신의 식민지로 만드는 토대를 닦는다.







그 토대위에 일본인 기업인들이 왔고 그중 야마모토회장이 있었다고치자







그는 조선에서 돈을 벌어 일본으로 갔다.







우리 입장에서 야마모토회장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박정희대통령시절 우린 경제발전의 토대를 닦는다.







그돈은 어디에서 왔을까 일본배상금,미국차관,베트남파병용사들,파독광부와간호사들







그시절 우린 무일푼이었다.







베트남에 간 기업인중 정주영회장도 있었고 수없이 돈을 벌었지만







그분의 자서전엔 그런 내용은 없었다.







또 이승만대통령이 일본인 적산재산을 거의 헐값에 현대에 주며 관급공사도







몰아주었는데 그런 내용도 없다.







그냥 쌀가게에서 현대자동차와 현대건설로 건너뛴다.







정주영회장은 한국인에겐 경제건설의 은인이지만 베트남인들에겐 야마모토회장이었다.☆☆























일본은 2012년 하토야마총리가 서대문형무소앞에서 한국식으로 무릎꿇고 사죄했다.







우린 베트남에게 뭐했나 개그맨들이 라이따이한,라이따이한 하면서 낄낄거리는게 다다







그 사람을 때릴려면 그 사람을 악마화해야한다.♡♡















하나만 예를들어보자 고대로마에선 화재가 자주 발생했지만 네로황제시절엔







로마시내의 70%가 불탈 정도로 심하게 났다.







화재 당시 네로황제는 로마에서 80Km떨어진 안티움에 있는 별장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돌아와보니 민심이 이반되었고 그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기독교도들을







지목해 사자밥으로 만들었고 콘스탄티누스황제때 기독교가 국교로 인정되자







그 복수로 네로황제가 로마시를 불태우며 노래했다고 뒤집어 씌운것이다.○○























우리에게도 경제발전을 하기위해선 호치민과 베트콩을 악마화해야할 필요가







있었고 베트남 곳곳엔 한국군 증오비가 있다.







과거란 원인이 있었기에 현재란 결과가 있다.







소녀상과 한국군 증오비가 뭐가다를까







파월용사들은 베트남독립군을 죽이고 학살하고 베트남 여인들을 강간해







수많은 라이따이한들을 만들었다.







위안부와 라이따이한이 뭐가다를까 야마모토회장과 정주영회장이 뭐가다를까-☆☆























우린 받은것만 생각하고 준건 생각안한다.







그럼 우린 일본에게 준게 없을까







마산은 원래 합포라는 항구도시였고 여기서 여몽연합군이 일본원정단을 꾸린다.







다아는대로 태풍으로 무산되었다.♡♡



























어느 여자아이가 밤에 물마시러 부엌으로 왔다가 도둑이 엄마를 죽이는 장면을 목격했다면







그 쇼크는 평생간다.







미군의 원래 원폭투하 지점인 고쿠라시가 구름에 가려 나가사키로 원폭투하 지점을







바꾸었을때 일본인들은 그 핵무기를 향해 무쿠리고쿠리가 온다고 하였다.







왜 미군을 향해 뜬금없이 몽고군고려군이 온다고했을까 정신적 쇼크가







700년후까지 이어진다.







또 여몽연합군의 쇼크로인해 교토에 본거지를 둔 가마쿠라 군사정부가 붕괴되기도하였다.○○



















누가 잘했다 잘못했나를 떠나 이제 좀 베트남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졌으면 좋겠다.







우리가 이런 좋은 대학과 편리한 대중교통 반도체,자동차를 만들수 있는







원동력은 베트남인의 피의 대가였다.







다시 말하지만 라이따이한은 우리가 베트남에서 저지른 또다른 이름의 위안부였다.







베트남에 더 많은 한국기업들이 갔으면 좋겠고 한국에 돈벌러 온 베트남분들에게







더 잘해주었으면 좋겠다.☆☆







여말선초 서북국경과 위화도



베트남전쟁



베트남사



호치민평전



로마인이야기



명나라로 끌려간 조선공녀 잔혹사



한국정부와 언론이 말하지 않는 위안부 문제의 진실



일본사



한국사이야기



한국재벌흑역사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외 다수♡○☆

여름철에 자미원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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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풍수 1 - 산국(山國) 나남창작선 33
김종록 지음 / 나남출판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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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어는 의태어 의성어가 발달했다.

슬슬 소로소로, 터벅터벅 토빠토빠, 깔깔 가라가라, 벌벌 부루부루, 줄줄 주로주로, 술술 스라스라

우리는 잘못 알고 있는 역사상식이 많다 일부만 보자 율곡의 10만양병설과 원효의 해골물 삼천궁녀 모두 후대에 지어낸 허구이며 여몽의 왕실 통혼도 고려에서 먼저 요청했다 60년이상 이어온 썪은 무신독재의 척결과 외교적 현안들을 타파하기 위해서다 조선말 세도정치 60년이 곪아 터진것과 같다고 보면 얼추 맞다.




조선이 금과옥조로 여긴 삼강오륜도 근본은 그들이 야만인이라 생각한 몽골의 노재지학이 그 뿌리다.

일본은 천황을 상징으로 남겨둔 채 중앙집권기인 에도시대 전까지 막부로 대표되는 지방군벌간의 천년 가까운 싸움으로 지방자치의 틀을 다지다 중앙지배로 하나 된 나라로 역량을 집적해 우리의 세종시대라 할 수 있는 메이지시대에 일본인이란 인식을 갖게 되었다.

때마침 등장한 가스라 고고로, 후쿠자와 유키치, 도고 헤이하찌로, 무쓰 무네미스와 같은 근대사의 선각자들의 등장 모든 것이 딱 맞아떨어져 막부로 다져진 지방자치와 에도시대의 중앙지배가 조화된 가운데 메이지시대를 거치며 현대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나라가 된다. 이 복받은 역사를 가진 나라는 근원이 어디일까






최근 250만에서 1000만으로 늘어난 만주족의 정체성의 근원도 같이 느껴보자.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일본인 구다라(백제), 만주족(고구려), 한국(신라)는 같은 언어 같은 핏줄을 가진 하나의 집단이란 증거를 제시하고자 구체적이고 긴 글을 올렸다.

2002년 우에다 마사아카(일본의 저명한 원로사학자)교수는 신찬성씨록 좌경황별조 대원진인은 비다쓰천황의 손인 백제왕의 후손이란 대목에 대해 우리 기자에게 어떠한 대답도 못한 채 우물거리다 인터뷰를 끝맺는다.






고대 일본 귀족들의 족보집인 {신찬성씨록}에 "오하라 마히토, 그들은 백제왕의 후손으로 시호가 비다쓰인 분으로부터 나왔다." 이것은 {속일본기}의 내용과 일치하며 비다쓰(백제인)천황이 백제인이면 그의 아버지, 형제들(요메이천황, 스이코천황)이 자동적으로 백제인이 된다.

{신찬성씨록} 48개 마히토(진인) 성씨 가운데 21개 성씨가 백제인이고 나머지 27개 성씨도 비교분석 추적해보면 모두 백제(부여계)로 결국은 (신찬성씨록)에 관련해 나타난 황족은 모두 부여인으로 결론이난다. 인간의 역사는 잘 짜여진 소설이 아니다.

구다라나이는 가치가 없다란 뜻이다. 구다라는 백제의 국명이고 나이는 무엇이 없다 이니 원뜻은 백제것이 아니면 가치가 없다란 말이된다.





2001년 12월 23일 월드컵전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천황이 자신의 몸속에도 한국인의 피가흐른다 는 즉 백제인의 후손이라 언급했고 일본언론은 아사히신문에서만 기사화했다.

전두환대통령이 일본을 공식 방문했을 당시 히로히토 일왕은 ‘사실은 우리 조상도 한국인이라 발언’ 함.

이방자여사도 창덕궁 낙선재에서 일본천황가에선 숭늉을 마신다고 언급.

동경대 인류학담당 하니와라 카즈로 교수는 동료교수들과 공동으로 일본 각지의 고대 무덤의 두개골등을 통한 연구조사 결과 2300년전부터 건너온 한반도 도래인들이 일본인의 조상이란 사실을 규명하고 7세기초 백제유민이 대량으로 건너가기전 고대선주민인 조몬계와 도래계인 야요이계의 비율이 1대8.6으로 나타났다 이건 현재 일본인구 1억4천만명중 도래인의 숫자가 1억1천2백만명이 넘는다는 수치이다.






교과서에 실린 것만 보자 왕인, 한고안무, 수수보리, 아직기, 왕류귀, 오경박사, 호류지, 시텐노지, 금당벽화 우리의 국보5호 일본국보 1호인 미륵보살반가사유상 일본미륵보살은 한국에서만 나는 적송으로 만들어졌고 한국인이 귀히 여기는 약지를 세웠으며 왕건릉에서 나온 인물상과 같이 유희좌를 하고 있다.

8.15광복후 우리정부가 일본에 요청했던 ‘한국문화재 반환1호’가 구다라관음상인데 일본사찰에 내려오는 기록에 백제에서 건너왔다고 자세히 나오나 일본인들은 유럽에 순회전시할 때나 자국에서 전시할 때도 일본 고유의 작품이며 조선에서 안나는 녹나무로 만들었다고 떠들지만 녹나무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벚나무와 함께 건너간 수종이다.






스다하치만신사인물화상경이란 고대 청동거울은 503년 백제 25대 무령왕이 왜나라 왕실의 친동생 게이타이천황에게 보내준 이 거울에 ‘사마’란 휘가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1971년 7월 8일 무령왕릉에서 나온 매지권에 사마가 무령왕의 휘란게 밝혀졌고 거기 명문에 적힌 무녕왕의 친동생인 왜왕의 쾌유를 빌며 이 청동거울을 내린다라는 게 사실로 밝혀졌다.

무령왕은 물에서 태어났다하여 무령왕인가 일본의 가카라섬 즉 왕이난섬이다. 무녕왕의 껴묻거리중 여러 목재유물이 가카라섬에서만 자생하는 나무로 만들어졌다는게 발굴직후 일본인학자에 의해 증명되기도 했다.

다른 이야기가 많지만 칠지도가 발목을 잡아 우선 거론한다.






전통은 계승된다. 군수뇌부가 결정되면 대통령은 칼을 장군에게 하사한다. 장군이 나라의 수반에게 칼을 올리는 일은 없다. 칠지도를 누가누구에게 올렸느니 내렸느니는 중요하지 않다. 칼을 만든 사람이 칼을 받는 사람에게 하사체로 쓴 것도 중요하지 않다.

‘이 칼을 가진 자는 어떠한 적병도 물리칠 수 있다’란 명문, 어느 미친분이 그런 칼을 아무에게나 주겠는가 믿을 수 있는 같은 핏줄 아니면 어림없는 소리다.






백강전투에 패한 직후 왜군들은 “백제의 이름이 오늘로 끊어졌다. 어찌할꼬 어찌할꼬 조상의 분묘가 있는 곳을 어찌 다시 갈 수 있겠는가”라며 왜군들이 귀소처의 상실로 눈물을 흘린 사실을 일본서기는 기록하고 있다.

712년에 지은 고사기의 저자 오노 야스마로 그의 부친은 황산벌에서 마지막으로 전사한 백제장수의 아들이다 그리고 일본계 미국인 안톤 오노 그냥 우연한 일이다.

백강전투 패배이후 야마토는 신라의 공격에 대비해 최후방어선을 구축하는데 1,2,3차 성이 차례로 금전성 오노성 다자이후성이다.






알타이의 아사달 아사달은 고조선의 수도로 아침해 뜨는 언덕이란 뜻이 담겼고 고조선의 남하한 6부족유민이 세운 신라는 아사달과 김씨의 나라 김연아 그리고 아사달이 일본으로 건너가 받침이 사라져 아사다 마오 아사히 신문 아스카문명 그냥 우연이다 로또의 6자리 숫자처럼 가야 노부나가 이에야스, 백제 도쿠가와 이에야스처럼 아이신자오뤄 누루하치도 사실은 김씨다 노루하치의 성인 아이는 아버지 신자는 신라 오뤄는 잊지말자 해석하면 아버지의 나라 신라를 잊지말자가 된다.

고사기보다 후대인 772년에 쓰여진 상표문엔 아스카 인구중 80-90%가 백제인이라 적고 있다. 아스카땅에 호류지의 찰주를 세우던 날, 소가노 우마코(목만치의 5대손)대신과 100여명의 만조백관은 모두 백제옷을 입었고 보는 사람들이 모두 즐거워했다 기록하고 있다.






현대에도 미치다 미치루 노루가 노로 미역, 미나리, 미늘, 미숫가루, 미꾸라지 모두 미즈(일본말 물)로 통한다 미는 즉 물이다.

할매, 아지매, 지우히매처럼 남도의 사투리는 일본어의 뿌리가 된다.

김춘추는 왜사신과 대화에서 통역을 쓰지 않았고 백제 여인은 왜인과 대화했다고 일본서기는 남기고 있다.

어느 신문사의 일본 속 한국이란 제목으로 일본문화답사를 하는 목적은 무엇인지

구르다+마(싣는 기구)=구르마란 답이 나온다.






하나의 언어가 둘로 갈라지는 것은 점진적으로 진행되지 않으며 불과 2세대안에 끝난다 어중간한 상태의 단계는 아주 짧다.

8세기중엽 만엽집과 10세기초의 고금집은 그 실린 시구가 크게 다르다.

시모노세끼 근방 해안에 도이가하마라는 야요이시대 공동묘지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인골유적이 있다. 모두 마한땅으로 머리를 두고 있다 귀소본능이 이런 것일까.

일본인들은 백강전투의 분을 풀기위해 신공왕후를 통해 신라정벌이란 글로써 복수했고

조선은 임진왜란의 분을 풀기 위해 우리가 임난후 통신사로 보낸 사명당을 통해 글로써 복수했다.

행인지 불행인지 두나라 사이에 대한해협이 끼어 있어서 조선동란(삼국전쟁등)이 일어나고 있을 때 일본은 보다 일본적으로 바뀌어갔다.






신라는 백제의 문화를 망가뜨리고 장인과 유물을 많이 가져갔으며 남은 백제의 명맥을 섬에서 나오지 못하게해 결국엔 섬나라로 만들어버렸다.

일본은 조선의 문화재를 망가뜨리고 장인과 유물을 잡아갔으며 조선이 반도국에서 주저앉도록 반도사관을 심고 우리의 옛강토인 간도를 빼앗아버렸다.

신라는 백제의 역사를 축소왜곡말살했으며 일본은 조선의 역사를 축소왜곡말살했다. 역사에서 일방적으로 주는건 없다 뿌린대로 거둘뿐이다.






고대 백제와 일본은 누가누구를 지배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안에 경기도지사 강원도지사가 있듯 그냥 부여계 집단들의 모임이었을 뿐이다.

백제의 아비지는 황룡사탑을 조선의 심수관, 이삼평은 사쓰마 야끼등을 선사했다.

삼국사기엔 없지만 일본서기에는 동성왕과 무녕왕이 각기 일본에서 귀국해 백제왕으로 등극했다는 기사가 있다 또 일제시대에도 조선총독으로 재직하다 일본수상으로 옮긴 경우도 있다. 생소해서 안믿기는가 중국사료엔 구려의 추를 유인해 죽였다고 했고 삼국사기엔 추(주몽)의 밑에 장수가 잡힌 것이라 다르게 적고 있다.

삼국사기엔 백제 26대 성왕이 관산성전투에서 신라 말을 관리하던 하급군사에게 죽임을 당했다 적고 있지만 일본서기엔 왜로 건너와 긴메이천황이 되었다 적고있다.






누가 그랬다 재료를 살 때 바가지를 안쓰려면 재료상 세 군데 들러서 값을 알아보라고...

중국측 자료엔 고조선의 수도 아사달에 흐르던 강은 서에서 동으로 흐른다고 기록되었지만 중국에선 해석하길 선조들이 실수로 적은것이라 말하고 있다. 어떤것이 진짜일까

왜국도 잃어버린 강토와의 연을 끊고 새롭게 나가야 자기들의 살길임을 알았을까








하지만 한일이 원수의 길로 들어선건 과거 북위도 하지못했던 양쯔강 이남을 칭기즈칸의 손자 쿠빌라이는 정복을 한 후 영토야욕을 일본으로까지 확대해 고려에 압력을 넣는다.

문하시랑(국무총리)이장용은 칸에게 무력충돌을 막으려 국서를 쓰지만 무시되고 여몽군에 의해 대마도 이키섬이 무자비한 학살을 겪으며 전대미문의 침략앞에 놓인 일본은 무쿠리고쿠리인형을 만들어 고려에 대한을 원한을 싹트고 고려일본 두나라는 원하지 않던 전쟁으로 20세기까지 적대적인 역사를 되풀이하기 시작한다. 일본이 원폭을 맞을때 일본의 작가 이부세마스지는 버섯구름을 보고 그의 글에서 무쿠리고쿠리의 구름이 마치 지옥에서온 사자와 같다 쓰고 있다. 그들의 마음속에 여몽연합군의 침략이 얼마나 뿌리깊은 원한으로 남았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교류가 없으면 언어도 이질화되고 결국엔 2개국어가 된다. 몽고어와 한국어는 유사점이 매우 많지만 현재 지리상의 장애물도 많다 한국어 만주어 일본어는 오랜 기간 떨어져 있어도 생각해봐야할 언어다 북한어와 남한어는 분리가 시작되는 단계의 언어다.

만주어, 고대한국어, 일본어는 모두 받침이 없는 개음절이지만 현대한국어만 받침이 있는것도 한번 생각해보자. 또 현대한국어도 조사가 붙으면 개음절이 된다.

조선 일본 몽고 거란 고려 부여 여진 신라 모두 국호가 해를 상징하며 유목민은 해를 숭상했다는 점이다. 유목민은 살찐 양과 큰 뿔 가진 순록을 귀하게 여겼는데 고려란 글자를 풀이해보면 그게 나온다 신라의 금관이 사슴뿔과 자작나무를 상징하듯

생태학적으로도 시조는 같으나 오랜 기간 떨어져 있으면 별종처럼 보이는 종이 참 많다.






고구려 사람들은 668년 이후 당으로 일부는 신라로 편입되고 일부는 돌궐방향으로 서진한다. 일제시대 우리는 만주로 연해주로 일본 구라파로 중앙아시아로 흩어졌고 결국 우린 한반도에 남아 있지만 고구려는 민족 전체가 그 땅에서 사라졌나보다.

일본이 도시락 문화가 발달한 이유는 국물에 건더기가 없어서다 그네들은 수저가 있을 필요가 없다 단 한 사람 천황만은 한국사람처럼 수저를 쓴다. 고구려벽화엔 주름치마를 입은 여인이 많다. 우리도 왕비가 주름치마를 입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명왕이 큰 강을 만나 거북에 올라타 쭉 갔고 일본초대 천황인 진무도 동정하다 바다를 만나 거북의 등에 올라타 쭉갔다. 거북을 신성시하는 것까지 공통이다 거북 참 오래도산다.

고대 우리 역사의 흔적은 고베를 비롯한 세토나이카이(내해)를 따라 지명, 유적, 유물이 수없이 많이 남아있다.

계미년(503) 8월 10일 남동생인 왕(게이타이천황)을 위해 오시사카궁에 있을 때 사마(무녕왕)께서 아우님의 장수를 염원해 개중비직(강력한 힘을 가진 직책)과 예인금주리등 두 사람을 보내 최고급 구리쇠 200한으로 이 거울을 만들었다. 라는 말이 인물화상경에 나오고 무녕왕릉의 매지권에 무녕왕의 휘가 사마로 확인이 되었으며 무녕왕릉출토 거울이 스다하치만신사인물화상경과 쌍동이처럼 닮았다.

927년 일본황실이 제정한 {연희식-엔키시키}에 따르면 현재 오사카의 아스카베신사는 일본황실의 사당인데 원래이름은 곤지왕신사였다고하고 이것이 일본제국주의 시대에 아스카베신사로 강제 개명되었던 사실이 있다.






14세기 기타바타케 지카후사는 저서 {신황정통기} 옛날 일본은 삼한과 같은 종족이라함 그러나 그와 관련된 책들은 간무천황때 모두 불태워졌다하고 {일본후기}에 따르면, 헤이조천황 대동4년(809)에 일본은 과 삼한이 같은 종족이라는 서적을 관청에 바치라는 포고령을 내리고 "만약 이를 감추는 자가 발견되면 엄벌에 처한다"는 칙령을 내림

18세기 고증학자인 도데이칸은 일본인들의 대부분은 백제인으로 조직되었다 단했고 1915년 6월 29일 일본 정부는 치안상의 이유로 김해김씨 족보의 발행을 금지 당시 김해 김씨의 족보에는 수로왕의 7아들이 구름을 타고 가야를 떠나 일본으로 간 것으로 적혀있었다.






왜는 범쥬신인 범한국인들의 명칭이며 광개토대왕비의 왜를 가야인으로 해석하면 비문의 내용의 앞뒤가 딱 들어맞는다. 가야가 망한후 왜란 명칭이 열도인을 가르치는 말로 바뀐다.

고려의 지배층에 편입된 신라인들은 그들이 백제와 고구려를 완전히 없앴다고 해야 조상의 위신이 서지 않았을까 만일 고구려와 백제의 후예들이 다른 곳에 나라를 세웠다고 한다면 신라의 최대치적인 삼국통일을 했다는 역사가 더럽혀질게 뻔하다 고려에 궂이 ‘구’자를 집어 넣어 고구려로 만든 건 어쩌면 거란, 여진이 고구려를 대신하고 남부의 일본이 백제의 명맥을 이어가는데 자기들이 섬기는 나라 고려가 그 위에 고려인들이 세운나라와 더불어 열도백제까지 같이 존재한다면 그들의 위신이 무어가될까 그래서 우리의 역사서엔 통일신라를 강조했고 한반도 남북부의 역사는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일까 그래서 소송녕과 서희가 옛고구려를 들먹인 것일까






거북선이 철갑선으로 둔갑한 이유도 붓으로 싸운 조선군을 칼을 가지고도 못이겼으니 무언가 그럴듯한 패전에 대한 변명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

1995년 8월 동몽골 다리강가에서 고구려식무덤과 성곽을 손보기교수가 발굴했다 7세기흉노는 10만가구를 남겨두고 서진해 질지(우즈벡)를 거쳐 훈족, 헝가리로 이주한다.

7세기말 동몽골에서 발원한 종족이 몽고인의 실질적인 조상이된다. 그리고 고구려가 역사에서 사라진건 668년이다.

한국사학계에선 식민사학의 원흉으로 시라토리 구라키치를 지목한다. 헌대 그는 1933년 발해에 관한 논문에서 지배층은 고구려인 주민은 말갈인이라 발표했고 현재 우리사학계는 그 논문을 신앙으로 여기고 있다. 말갈이란 말은 5세기부터 사용된 고구려인의 비칭이란게 이미 정설이 된지 오래다.






우리아기 사진첩에 우리아기보다 다른 아기사진이 더 많이 실려 있다면 좀 이상하지 않을까 우리의 삼국사기 삼국유사처럼 일본엔 일본서기와 고사기엔 백제의 역사가 일본역사보다 더 많이 기록되어 있다.

일제시대 그들은 우리의 정수리에 앉아 조선을 통치하고 물러났다. 우린 일본이 오랫동안 우리나라를 다스린걸 기리기 위해 일본궁, 일본강, 일본마을을 만들진 않았다.

교토 천황궁엔 죠메이천황을 안치하기 위해 구다라궁 북쪽에 지은 빈궁의 이름 역시 구다라대빈(백제대빈)이었다. 백제교, 백제문을 비롯해 소가노 우마코(목만치의 5대손)가 호류사에서 행사할때도 귀족들이 모두 백제옷을 입었다고 일본사서들은 기록하고 있다.

일제시대 군부는 한국과 관련된 지명을 수도 없이 없앴는데도 백제강, 백제역 백제신사 백제마을등 너무 많은 우리고대 지명들이 아직도 생존해 있다.






규슈 기리시마공원에서 가장 거대한 산봉우리는 한국악이다.

일본땅을 만든 두신중 남신인 이자나기가 요미노쿠니(황천)를 탈출하여 온 곳도 히무키노쿠니 현재의 규슈 아와키하라 해변이다.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섬 규슈는 일본 고대사가 시작하는 땅이다.

우두산이 한국엔 거창, 소양강등 여러곳에 있다 일명 소머리산 일본엔 소시모리가 고대역사의 중요한 지명으로 쓰인다. 소에 남부억양이 참가되어 시 머리는 모리로 변한다.

단군이 천부인인 거울, 북, 칼을 가졌고 천황가의 3종신기인 구리거울 , 칼 , 곡옥을 가졌다.

신들의 이사를 간나즈키라 한다. 10월에 신들이 일본을 떠난다는 말이다. 우리의 영고, 동맹은 10월에 한다. 그냥 우연이라 생각한다. 평안도말에 간나새끼가 있듯이

백강전투 후 한국과 일본이 정치적으로 완전히 분리된 후에 각각에서 독립적으로 생긴말이 가까운 것은 그만큼 한국과 일본의 기초어와 사유방식이 비슷했음을 의미한다.






고사기에 나오는 농업신 ‘히요우케 히매가미’가 죽자 그의 몸에서 곡식이 나오는데 머리에선 소, 말 눈에선 누에가 배에선 벼 귀에선 기장 코에선 콩 보지에선 보리라는 한국남부어가 등장한다. 또 우케를 훈민정음에선 찧지 않은 벼라고도 말했다.

고대 한국어에는 ㅆ이 없었고 받침도 없었지만 중국식 원음대로 한자를 읽어온 한국은 이두로 표기할 수 없을 정도로 음운범위를 확장했고 그것을 나타내기 위해 혁명적인 한글이 창제되었으며 고대의 음운변화를 그대로 유지해온 일본어는 동음이의어가 많아져 한자의 뜻으로 구별하게 되었다.

만일 백제가 백강전투에서 승리했다면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언어는 영국과 미국이 영어를 쓰는 것처럼 백제어 중심으로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19세기말 영국수상 솔스베리가 남미에 대한 이권을 주장하면서 미국의 남북미대륙의 이권 독점을 내세운 먼로주의의 파기를 요구하자 미국대통령은 의회에 영국에 대한 전쟁 선언을 요청하였다. 영국과 미국은 중남미에서의 이익이 엇갈리자 전쟁 일보직전의 험악한 관계가 되고 미국민은 영국에 대한 독립전쟁을 되새기게 된 것이다.

이때 영국 외상 밸포어의 ‘서로 같은 영어를 사용하는 국민이 전쟁을 할 수 없다’는 말 한마디로 전쟁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간 한일 사이에는 거듭되는 전쟁, 침략의 역사로 얽히고 있는데 언어를 공유하고 있었다면 지난 역사와 같은 극단적인 관계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되면 유물도 다 찾을 수 있다 통일이된 후 국립박물관이 평양에 있으면 어떻고 제주에 있으면 어떤가 초기엔 반발도 국가적으로 거세겠지만 대한민국의 경상도, 전라도의 현실이 나은가 신라와 백제로 나뉘어 싸우는게 나은가

밥을 들고 먹으면 우린 상놈이라 한다. 일본은 밥그릇을 내려놓고 먹으면 짐승이라 한다. 우린 산꼭대기에 올라가 쉬고 일본은 꼭대기에 오르기 바로 직전에 쉰다. 그 차이가 무슨 상관인가 서로 차이가 있는게 무슨 야만족의 척도인가 이세상엔 야만족이란 없다.

그들의 문화를 이해 못하는 외부인만 존재할 뿐이다. 우린 일제식민사관을 심각하게 여기지만 인조반정 공신들의 여진, 몽골에 대한 더러운 협잡을 우리 뇌리에 깊이 심음과 우리를 오랑캐로 생각하는 중국을 사모하는 소중화 사상의 폐해가 더 심각하다 생각한다.






충렬왕 같은 부마왕을 몽고가 만들었다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상할대로 상한 무신정권을 뒤엎고 노련한 외교를 위하여 우리가 먼저 몽고와 왕실혼을 제안한걸 우리는 반대로 알고있다. 고려는 역사서를 본기로 적고있지만 우리가 존경하는 집현전학사들은 우리역사를 중국의 지배하에 있다는 세기로 낮추어 적고있다는걸 우리는 지나치고 있다.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황제에게 이마에 피가 나도록 33배를 했다고 배웠지만 그런 일은 우리사서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조조의 100만대군이 꾸며낸 이야기인 것처럼...

대장금에서 중국사신이 그녀를 인정해주니 기분 좋은가 일국의 왕위계승 문제도 별볼일 없는 중국사신에게 허락을 받아야한다는 게 조선왕조는 좋았나보다 이성계가 이자춘의 아들이 아니라 이인임의 아들이라 그들의 사서에 적어놓았기에 우린 주청사를 보내고 건국후 180년 동안 굴종적인 자세를 유지했다는 걸 인조반정공신들은 애써 외면하고 오로지 사대사관만 후손들에게 심는 걸 최고의 덕으로 삼아 우리의 학창시절에도 소중화사상을 참 많이 주입받은 기억이 난다.






백제는 660년에 고구려는 668년에 국호가 없어지지만 왜국은 669년부터 왕 또는 대왕의 호칭을 천황이라 고치고 일본이란 국호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백제의 강돌문화를 넘어 마한을 정복한 후 백제가 일본열도를 백제땅으로 끌어들인 것은 오진왕 때부터라는게 통설이다.

일본문화와 조선문화가 같은 조상에 의해 이루어진 부분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일본인들은 솔직하게 받아들여서, 일본문화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또한 그들의 고분에서 삼국의 유물이 나왔다고 우쭐대며 식민지시절의 분풀이를 하듯 우쭐대기 보단 80년대초 잃었던 피붙이를 만나 전국을 울음바다로 만들었던 이산가족상봉 같은 느낌을 가지라면 나의 욕심일까

여진족은 중국각지에 만성(만주족이 거주하는 지역)을 세워 260년간 350:1이란 민족비율로도 팔기제를 중심으로 지배체제를 확립해왔다.






18세기초에 옹정제는 “앞으로 시위와 호군 및 황궁을 지키고 파수보는 모든 인원은 만주어만 사용해야 한다. 한어는 절대 사용해서는 안된다. 훈련시 병사들이 소집되어 연병장에 있을 때에도 만주어만 사용해야 한다.” 할 정도로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우리가 잘 아는 마지막 황제 푸이가 할 줄 아는 만주어는 “일리” 즉 일어서다란 만주어인 일립비의 명령형인 일리뿐이었다 한다.

뇨후루씨의 뇨후루는 만주어로 늑대를 뜻하는 뇨허이고 한어로 늑대랑이라고 쓰다가 후에 젊잖은 의미의 동음이의어인 사내랑으로 바꾸어 랑씨가 된다.

만주족의 한화의 원인은 만주족의 후손들에게 중국이라는 또 다른 고향이 생겼기 때문이다.

1750년쯤에 건륭제는 신강원정을 단행하고 시버와 솔룬은 탁월한 전공을 세운다.

전쟁이 끝나고 신강을 병합키 위해 수천명이 영구 주둔 임무를 띠고 가족과 함께 파견되어 현재까지도 4만명가량의 시버족이 남아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만주족이거나 자신들의 말이 만주어라고 알지못한 채 현재 지구상에서 만주어를 말하는 마지막 사람들로 남아있다.






누루하치가 칼카몽골에게 보낸 서신에서 “중국과 조선 두 나라는 오직 언어만 다르다. 그들은 입는 옷도 같고 생활방식도 같다. 몽골과 여진 두 나라는 오직 언어만 다르다 우리는 입는 옷과 우리의 생활양식도 같다.” 또 흑룡강일대 시보, 솔론, 다우르, 부트족은 지리, 언어, 생활양식 면에서 여진과 몽골의 중간단계이다.

행인지 불행인지 대한해협이 있어 한일어는 중간지대가 없다.

그래서 두 개의 언어로 착각하게 된 건 아닌지

건륭제는 서몽골인 준가르제국을 정복할 때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도시를 점령하면 그곳의 주민을 모두 죽이는 작전을 구사해 서몽골의 준가르제국을 점령한 후 서몽골에 남아 있는 몽고족은 전쟁전의 10분의 1로 줄어들어있었다.

현대에도 1960년대 문화혁명 당시 마오쩌뚱이 국토정화 명목으로 내몽골의 원주민 수십만명을 죽이거나 몽고로 쫓아 보냈으며 대만의 20%의 소수민족을 구성하는 중국인 정권의 수장인 장개석도 2만명의 대만원주민을 학살했지만 이들의 행각은 건륭제에 비하면 애들 장난이고 건륭제는 알타이유목민이 정체성을 상실했을 때 같은 민족에게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대륙을 넘어 정복활동을 한 몽고와 후금은 대양과 대해에서 무수한 수전을 경험한 막강한 해군력을 자랑하지만 고려는 정책상 하위에 있었기에 강화도를 안건넌거 뿐이다.

금태조 아골타와 후금의 누루하치는 모두 아이신자오뤄란 성을 가지고 있다.

아이는 아버지 신자는 신라 오뤄는 잊지말자 즉 아버지의 나라 신라를 잊지 말자는 뜻으로 두 사람도 모두 경주 김씨를 쓰고 있다.

금나라는 고려를 아버지의 나라라 보듬어 안았고 후금은 조선의 계속된 호전적 태도에도 국채를 유지시켜 준다.

현재까지도 청대 만주족 팔기의 후손들은 과거의 만성이었던 여러 도시에 거주하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어렵게 지켜나가고 있다.

이제 고구려의 후손들은 자신들의 말조차 잊은채 250만으로 줄어들어 중국에 흩어져 있다.






중국이란 나라가 만들어진 후 그들의 국시는 한결같이 주변 민족을 거란처럼 흡수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인조반정 공신들과, 이성계가 신앙처럼 여기는 새끼중국인 사상인 소중화사상을 언제까지 중국의 전통인 장자세습, 과부의 재가금지, 남존여비, 시집살이 , 항렬(돌림자)를 가보로 간직하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정체성을 점점 인식하고 있는 남아있는 주변의 형제들과 다시 한 집에 살 것인가

문화적 특징인 언어가 사람들을 결합시킨다면 구성원이 모국어를 포기할 때 그 집단은 해체된다.
♡☆○

여름철에 자미원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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