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風水로 보다
손건웅 지음 / 청어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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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국제그룹에서 세종로까지

지금은 사라진 국제그룹 왜 사라졌을까
프로스펙스신발로 대표되는 양정모회장의 국제그룹 5공화국 당시 서열 7위의 그룹이었다.


85년 2.12총선이 끝나고 승승장구하던 국제그룹이 무리한 사업확장등 경영부실을 빌미로 전격해체되고 계열사들은 타회사로 인수합



병됐다. 이것이 국제그룹해체사건이다.



당시 국제그룹은 롯데보다 더 큰 기업이었다.



국제그룹은 양정모씨가 고무신 공장으로 출발해 1962년 국내최초로 미국에 신발을 수출하며 일군 회사이다. 이렇게 닦은 회사는 승승



장구,1970년대에는 중화학공업 분야에까지 진출하였으며 국제상사.(프로스펙스,아티스) 국제종합기계,국제통운,동서증권등 계열사



만 21개를 거느리는 대형 그룹으로 발돋움한다.



박정희,전두환 시절에 로비나 혈연,학연등 연줄(대우실업의 김우중은 박정희가 가장 존경하던 은사의 아들, 박정희시절에 급성장.)



로 기업을 키우는게 정설이던 시대에 묵묵히 맨손으로 기업을 일군 게 양정모였다. 그런 양정모에게 5공화국 출범은 재앙과도 같은



것이었다.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이 이끄는 새마을운동본부는 농촌 개발을 위한 '보조금 지급'을 명분으로 세워졌고, 새마을운동본부



의 자금은 기업들이 내는 기부금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당연히 기업들은 그룹 명성에 걸맞은 기부금을 냈고 여기에 반발하는 기업들



도 없었다. 그러나 양정모는 "난 누구의 도움 없이 고무신 팔아 여기까지 왔다. 누구에게 돈을 갖다 바치란 말이냐?"라며 새마을 운동



본부에 기부를 거부한다.



기업들이 피를 빨리는 또 하나의 유명무실한 단체가 있었으니 바로 전두환의 호를 따서 만든 '일해재단'이 그것이다.



일해재단은 아웅산 폭발테러 사건 유가족들의 위로금과 장학사업,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선수 지원,육성, 그리고 통일연구등을 위해



세워졌으며 발기인에 정주영,구자경,김우중,최종현,양정모등 재벌들이 참여했다. 그리고 설립기금을 모금하는데,자그마치 4,000만 달



러나 되는 큰돈이었다. 이 돈은 당연히 대기업들이 앞다퉈 전두환에게 갖다 바쳤지만 발기인에 이사로 참여한 양정모는 또 다시 기부



를 거부한다.



1984년 어느 겨울, 전두환은 직접 대기업 총수들과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총수들이 하나둘씩 청와대로 모이고 이윽고 주인공인 대



통령이 등장하여 상석에 앉았는데 그날따라 눈이 많이와 양정모회장의 차가 30분이 지체되었다 양정모 때문에 모임은 시작되지 못하



고 전두환의 얼굴은 붉그락푸르락해졌다 같은 자리에 있던 총수들은 바늘 방석에 앉은 것 같은 느낌이들고 한참이 지난 뒤에야 양정



모는 모임에 참석했다.



나한테 밉보이면 어떻게 되는지 확실히 보여주고 싶던 전두환은 부실기업 정리한다는 명목 아래 재계서열 7위, 수출 실적 8억 달러



이상, 매출액 2조나 되는 대그룹을 공중분해해버렸다.



계열사 대부분은 전두환 정권에 호의적이었던 한일그룹에 넘어갔다. 한일합섬은 5공 정권 초반에 30대 그룹이었으나 5공 말기에는



20대 그룹으로 성장했다. 기부금을 가장 많이 낸 기업 중에 하나가 바로 한일이었다. 정부는 한일에 세금을 깎아주고 부채를 탕감해주



었으며 파격적이 조건으로 신규 대출을 알선하는 등 혜택을 주었다. 이에 화답하듯이 한일그룹은 대기업 중 가장 많은 헌금을 납부해



전두환을 기쁘게 한다. 결국 IMF로 한일그룹은 부도가 났다. 그룹이 해체되던 85년 2월 21일. 임원들과의 마지막 회의에서 양정모국



제그룹 회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것이 내 잘못입니다. 운명에 승복합시다.---



양정모회장의 가정은 전형적인 한국가정이었다. 딸딸딸...아들 이 아들이 안타깝게도 미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하자 양회장의 부인은



눈이 실명위기에 놓이고 부부금실이 유난히 좋던 양정모회장은 부인의 수술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려했지만 양정모회장이 갖고있던



주식과 채권을 모두 내놓지 않으면 출국 못한다고해 모두 내놓고 출국 할 수밖에 없었고 나중에 정권이 바뀐후 재판에서 이겼지만 이



미 공중으로 사라진 뒤였다.



이것이 국제그룹해체의 전말이고 표면에 드러난 진실이다 겉보기엔 그렇다 그럼 속내는 어떨까 속내를보자...



1984년 완공돼 국제그룹 사옥으로 쓰인 지하4층~지상28층짜리 국제빌딩.. 용산 일대에서 눈에 가장 잘 띄는 건물이기도하다. 그 당시



멋진 설계라 하여 나라에서 수여하는 건축가상까지 수상한 건물이지만 건물 앞면,배면,측면이 어딘지 구분되지 않은 설계를 시도하여



건물 가상학적으로 매우 좋지 못하다.



풍수에서는 전면,배면,측면이 확실히 구분이 되어야만 좋은 가상의 건물이다. 이런 줏대없는 건물에 상주해 사업을하면 직원들의 애



사심이 없어진다. 결국에는 건물의 소유주나 회사의 CEO의 존재가 심각한 타격을 받아 상실되는 운명에 처해진다. 상 받은 것이 무



색하다. 결과론적인 말이지만 첫 소유주인 국제그룹은 1985년 재계에서 사라졌고, 후속타로 건물을 인수했던 한일그룹도 IFM 외환



위기 당시에 쓰러졌다. 소유했고 상주했던 기업마다 도산이라는 쓴맛을 본 '비운의 빌딩'으로 소문이 났다. 현재는 3년간의 리모델링



기간을 거쳐 2010년 5월부터는 LS용산타워로 이름이 변경되어 입지하고 있다.



롯데가 상속문제 그룹경영,비자금문제로 시끄럽다 왜 그럴까



'군계일학','독야청청하리라','가다가 아니가면 아니간만 못하리'가 롯데를 가리키는 말이다.



63빌딩 혼자 우뚝 솟았고 혼자 오는 바람 다 맞았고 결국 주인이 바뀌었다.



혼자 우뚝 높이솟은 건물은 근처에 보호해줄 의지처가 없어 혼자 오는 바람을 모두 맞아야한다.



건물이 높으면 바람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바람을 받는다는 것은 좋지 않다.



늘 바람을 타듯 구설수가 따라다니고 때로는 사람을 상하게도 한다.



잠실은 바람이 많은 곳이다.



비유가 맞을진 모르겠지만 '한산대첩'을 보자 자랑스럽다.



누가 그런다 "진정한 영웅은 기억되는걸 바라지 않는다."고 예로 댜큐멘터리,교과서,영화 모두 이순신장군 혼자 한걸로 나오지만 참모



들이 건의하고 회의에 수많은논의를 거쳐 만들어진게 한산대첩의 시나리오지 '나를 따르라'식의 논리는 맞지가 않다 명량에서 '죽으



려고하는 자는 살 것이오...'는 장군이 만들어낸 말이 아니라 중국의 손자병법과 함께 양대병서로 꼽히는 오자병법에 나오는 말이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는 맥아더장군의 말은 그가 만든 말일까 참모들이 건의한 말일까



인천상륙작전도 맥아더혼자 '나를 따르라'가 아니다.



그의 책을 보면 워싱턴과 수많은 조율과,참모들과의 작전회의 토론 윗선의 조언들이 수없이 얽혀서 이루어낸 결론이지 영화나 교과서



에서처럼 혼자만의 공은 아니다.



다시 한산대첩으로 와 그날 이겼다 기쁘다 하지만 무기보충하고 손상된 부분 고쳐야하고 휴식이 절실하며 식량보충도 시급하다. 야구



선수도 한 경기후 며칠은 쉬어야한다. 그런데 이틀후 또 쳐들어온다. 그렇게 두세번은 이길순 있겠지만 그 다음엔 역부족이 된다 이길



수가 없다.



다시 잠실 제2롯데월드로 가보자 바람은 한 번 불고마는게 아니다. 계속분다.



주변에서 가장 높다. 건물이 높으면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일대는 성남의 남한산성까지 트여 바람이 크게 드는 곳이라 큰 건물



의 경우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아까 '가다가 아니가면 아니간만 못하다'했다.



청량리에 맘모스백화점이 있었다. 심심하면 불난다. 그걸 롯데백화점에서 인수했다.



또 심심하면 불난다, 하지만 지금은 불 안난다 왜 그럴까



내가 집안에서 대문은 바라볼때 왼쪽에 석사자의 숫놈을 오른쪽엔 암놈이 있어야한다.



그래야 외부의 나쁜 기운은 막고 좋은 기운만 흡수한다.



국회의사당앞의 해태도 광화문앞의 해태도 어린이대공원후문에서 리틀엔젤스회관쪽을 보면 무서운 맹수가 좌우로 밖을 보고 있다.



다시 청량리로 가보자 만일 두마리를 세울 수 없으면 암놈만 세우라고 했다. 지금 롯데백화점앞에 암놈만 있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풍수를 보려면 끝까지 봐야지 왜 보다말아 이런 분란을 일으킬까



유산상속의 잡음을 없애려면 노년에 서향으로 자고 동북쪽에 흰꽃을 놓으면 잡음이 없어진다하였다.



나는 구의헌혈의집에서 금장,은장 받았다 그리고 지금은 거기 없어졌다 왜일까



택지에서 주택이 차지하는 비율이 현저히 적으면ㅡ 2.5배이상ㅡ그곳은 흉하다했다. 구의헌혈의집 언젠가부터 둥그렇게 간호사책상 둘레로 둥그렇



게 구획을 나눈게 원인이라 생각한다.



방에서 가장 명당은 문을 들어서서 대각선 가장 끝부분인데 그것도 안맞았다. 그리고 여기 얼마있다 문닫았다.






사대문안은 더 한심하다.



세종로로 가기전에 덕수궁만 짚고가보자.



'대한문'이란 현판이 있다. 이건 '대한민국'할 때의 '대한'



이 아니라 고종황제를 도둑놈으로 비난하기 위해 일제가 만든말이다.



옛날부터 궁중에는 권력과 암투가 많아 문마다 화할화자를 넣었다.



성종의 형 월성대군의 저택인 덕수궁의 현판이름도 '인화문'으로 지었는데 고종황제께서 헤이그밀사를 보낸사건으로 고종황제는 조



선이란 나라를 훔치려는 큰도둑이란 뜻에서 큰대 한나라한을 썼다 왜 한나라 한을 썼냐면 거기다 사람인변을 붙이면 일본의 전설적인



도둑인 '한조'라는 인물이 나온다.



이걸 박물관으로 이전할 생각은 안하고 박정희대통령의 친필인 광화문현판 뗄 생각만 한다.



별은 보려면 어둠이 꼭 필요한 법일까



세종로에 왜 이순신장군상이 있느냐면 원래 왕은 궁밖으로 나오는 법이 아니다.



궁은 장군이 지켜야한다 무식한 사람들이 세종로에 세종대왕상을 세우자하는 것이고 풍수의 대가인 이은상선생님께서 박정희대통령



에게 귀뜸하길 차들이 청와대를 향해 돌진하는 도로살을 막으려면 방패막이가 필요하다해 서울미대교수로 있는 조각가 김세중씨에게



만들게하고 이후락안기부장이 돈을 내서 만든게 세종로에 있는 충무공동상인 것이다.♡○☆
겨울에
자미원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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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風水로 보다
손건웅 지음 / 청어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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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을 만들면 거기엔 지구온난화를 예방하는 숲을 말들수도 없고 논밭을 개간할 수도 없고 집이나 공장을 지을수도 없고 그냥 버려진 땅이 됩니다.♡○☆겨울에 자미원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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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
강지나 지음 / 돌베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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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겪는 학생들의 삶에서 공부나 성장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겨울에 자미원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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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
강지나 지음 / 돌베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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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 부자들의 돈버는 지혜,부자의 운)이란 책을 연상시키게하는 책이다.

가난을 극복한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공통점중 하나는 주변에 나를 믿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성적 호소보단 감성에 호소하는 글이다.

돈을 모으려면 월급에서 우선 얼마를 떼서 저축하고 나머지 돈으로 생활해야하는데 꺼꾸로다.♡♡




10대이전 삶과 인성교육에 대해선 전무하다.

제목만 그럴듯하다.

고등학교때 가정형편이 어려웠다 대학때 힘들었다 직장을 가니 만만치 않았다 이게 다다.

사람은 어디서 태어났느냐보다 어떻게 죽었느냐가 더 중요한데 사회적 프레임에

관해서 지면을 좀 더 할애해 주셨으면한다.○○




도움이 되었으면해서

아이다 타벨
너희들은 봄을 사지만 우리는 겨울을 판다
길하나 건너면 벼랑끝
대한민국 화장품의 비밀

내용도 좋고 책을 쓴 의도도 좋은데 해법도 약하고 폭넓지도 않다 깊이도 없다.

없는 사람이 없는 사람을 무시하는게 더 심하다고 물론 자존감 형성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을 피해자의 입장에서만 미화해서 그린다.

예를들자면 선생님들중 나는 극빈층이었다고 은연중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셨다.

그리고 그분들 잘사는 학생집 찾아다니며 수금하고 촌지 안줄 경우 꼭 보복했다.

인성교육 없이 큰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꼭 이런 모습의 어른이 된다.♡○☆

겨울에 자미원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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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유채꽃 둘레책방 4
정도상 지음, 휘리 그림 / 노란상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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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6월 28일 오전11시 화창한 여름날 아침이었다.



승객 두사람이 탄 자동차가 길을 잘못드는 바람에 비좁은 통로를 지나 막다른 골목을 만났다.



그런데 이날 이 자동차 운전사가 저지른 실수는 수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세계사의 진로를 바꿔놓았다.



이 자동차는 불행하게도 열아홉살의 세르비아계 보스니아 학생 가브릴로 프린시프앞에 멈춰섰고, 세르비



아 테러조직 '검은 손' 에 소속되어 있던 프린시스는 눈앞에 다가온 행운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작은 권총을 꺼내 방아쇠를 두 번 당겼고, 차 안에 있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프



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소피 대공비가 30분만에 숨졌다. 오스트리아는 이 암살사건을 세르비아 침공의



빌미로 삼았고 독일이 오스트리아편에 서자 세르비아의 보호를 공언하고 있던 러시아도 가만 있을 수 없



게 되었다.



단 30일만에 국가들 사이에 실타래처럼 얽힌 위협과 동맹의 연쇄 반응으로 거대한 군대가 동원되었다. 그



리고 오스트리아,러시아,독일,프랑스,영국,터키는 엉켜버렸다. 이것이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이유이



며 5년뒤 1,000만명의 목숨이 사라진 뒤에야 이 전쟁은 끝이 났다.



나폴레옹전쟁 이후 심심해하던 유럽역사에서 1914년 이전은 길고 평화로운 오후 같은 시대였음을 상기



할 필요가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그 시대의 역사가들에게는 마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설



명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폭풍우가 몰아닥친 듯한 사건이었다.



전쟁에서 영국은 미국을 끌어들이고 프랑스와는 기존의 두나라의 식민지로 있던 아랍땅을 나누자는 사이



크스-피코협정을 체결하고 유대인에게는 독립국을 세워준다는 벨푸어선언을 해 군자금을 조달하고 불리



한 전세를 만회하기 위해 아랍의 하심왕조와는 전쟁후 팔레스타인을 주는 조건으로 후세인-맥마흔서한



을 각각 체결하게 된다.



하나의 땅을 놓고 책임질 수 없는 세가지 약속을 해 오늘날 중동사태의 발발 원인을 제공한다.



연합국편을 들던 소련이 1917년 공산화되고 전쟁에서 빠지자 공산혁명주체세력중에 유대인이 많다고 잘



못판단한 영국은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정착을 적극지원한다.



형제국 터키를 배신할 수 없지만 결국엔 터키에 총을 겨눈 하심왕가에 의해 중동에서 겨우 승기를 잡은



연합국은 승리하게되고 발칸의 산악지대에 각각 독립국으로 흩어진 소국들을 달래기 위해 미국의 윌슨대



통령은 '민족자결주의'를 선언하는데 대한민국의 선각자들은 이걸 잘못해석해 발칸반도에 국한된 선언을



우리에게도 해당되는걸로 알아 3.1운동이 촉발되고 이에 영향을 받아 두달후 중국에선 5.4운동이 그후 인



도에선 비폭력저항운동이 간디에 의해 일어난다.



연합국이 독일에 전쟁배상금을 요구할때 정부의 간섭을 극대화해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학설을 주장한 경



제학자 케인스가 만일 그렇게되면 인플레가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고 다른 독재자가 등장해 세계는 혼란



스러워질거라 예견했으나 이를 무시당한다.



1933년 정당한 방법으로 집권한 히틀러는 세계대전을 일으켜 3,000만명의 희생자를 냈고 연합군에 항복



한다.



미국은 관동군의 전력을 너무 과대평가해 소련의 참전을 유도했고 천황직속군사령부인 대본영이 그은'38



선'에 의해 그 북쪽은 소련군이 무장해제시키고 남쪽은 미군이 무장해제 시키는 선으로 그은 것이 영구고



착화된다.



이후 중국대륙을 거의 지배한 국공내전의 승자 장개석에게 소련은 1946년 1월5일 '중,소우호동맹조약'이



체결되었으며 중국은 정식으로 몽골의 독립을 인정하게 되었다.



사실 중국공산당은 1933년 10월부터 국민당 정부군에 쫓겨 중국대륙을 남쪽으로 반바퀴돌면서 1만km를



걷는 이른바 대장정에 나서기도 했다.



1946년 6월 국민당정부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동북지역 남부권까지 밀린 중국공산당세력은 북한지역으로



까지 후퇴해야했다.



국민당정부 세력에 의해 최악의 순간까지 밀렸던 중국공산당 세력에겐 두가지 행운이 있었으니 하나는



조선들의 목숨을 마다않고 전투에 임하는 적극적인 태도와 북한이 후방기지로서 역할해준데 힘입어



1947년 7월부터 대반격을 취할 수 있었고 이 시기를 틈타 소련군에 의해 군사훈련도 더불어받아 강병으



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다.



2차대전후 공업시설이 하나도 상하지 않은 미국의 제일 큰 걱정은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는 것이었는데



공산주의가 생겨난 가장 큰 배경은 '잘살아보세' 스칸디나비아반도는 추워서 확산이 어려울 것이고 발칸



은 산악지대라 확산이 어려울 것이고 동서독 국경이 가장 위험한 지역인데 여길 막는 길은 마샬플랜으로



이름지어진 막대한 경제원조를 서독에 하는 것뿐인데 그렇게되면 독일에 감정이 상할대로 상한 우방국



프랑스가 등을 돌리게 되니 프랑스가 침략해 식민지로 삼은 베트남에서 디엔 비엔 푸 전투이후 고전하고



있던 프랑스대신 베트남독립군(월맹)을 이끄는 호치민과 전투하는 길 밖에 없어 월남전을 개시하게되고



여기에 한국도 참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은 경제발전을 가속화할 수 있었고 미국이 한국을 예쁘게 봐주어 토목기술이 전



수되고 중동특수를 누리게 되었고 미국에 의해 카이스트도 설립하게 되었다.



1949년 10월 중국의 국공내전이 공산당의 승리로 돌아간후 중국은 8로군에 편입되었던 조선의용군을 대



륙평정후 북한으로 돌려보내 6.25전쟁을 수행한 중요한 병력이 되게한다. 북한군의 전투력이 0.5라면 조



선족의 전투력은 1.5였다고 한다.



이승만은 북한이 비밀리에 남침준비를 하는 위기상황에서 1948년 11월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민주당 그



전신인 한민당과 협의를 거쳐 국가보안법을 제정했다 친일반민족행위자처벌문제가 흐지부지된 것도 그



로서는 공산당에 대한 수사경험이 풍부한 일제 고등계 출신을 활용하는 것이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다.



6.25발발이전 북한의 주력부대에 배치된 조선족은 무려 6만5천여명에 이른다. 이 수치는 전쟁발발 당시



약20만명의 북한군 병력중 30%에 가까운 것이다.



전쟁후 일본국민들에게 제대로된 역사교육과 민주교육을 시켰으나 일본이 최후방어선이라 여긴 미국은



일본내에서 군,정에 경험이 많은 전쟁범죄자들인 우익세력을 재등용하게 되어 오늘날 자민당차원에서 야



스쿠니신사참배를 하게되는 우경화의 길로 빠져들게 된 것이다.



그 결과 한.중.일 삼자구도와 중국의 남중국해로 영해확장문제가 진행돼 2016년까지 다투게 되는데 여기



산호섬은 수많은 생물의 서식처로 세계적 생태보고인데 여기다 군비행장까지 건설하고 지금 미국과 대치



하고 있는 것이다.

제가 하나만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모택동은 베이징대학 도서관 사서보였습니다.

엄청난 독서광이죠
물론 전략이 앞서서 국공내전에서 승리했을 수도 있지만 모택동이
장개석 어머니묘를 파헤친게 모택동이 국공내전에서 이긴 신의
한 수입니다.
♡☆○

겨울에 자미원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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