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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
김재진 지음 / 김영사 / 2020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깊은 가을향처럼 배어나는 에세이집,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는 쓸쓸하지만 처량하지는 않은, 깊이감은 있으나 그리 어둡지만은 않은 배울 거리, 생각거리가 많은 에세이다.

밝은 진분홍빛 표지의 에세이집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는 류시화 시인의 에세이집 다음으로는 처음으로 읽어본 시인의 산문집인데, 결론은. 참 좋았다.
시인들이란 원래 그런 걸까. 인생과 삶에 대한 깊은 관찰과 고뇌는 시인에게 있어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맥락에서 김재진 시인의 산문집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는 인생에 있어 많은 도움이 될만한 그런 글들이 모여있는 에세이집이다.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는 크게 4개의 단락으로 나누어진 에세이집인데, 개인적으로 나는 첫 번째 단락인 지금 그 자리에 있어서 고맙다의 글들이 유독 인상적이었던 듯하다. 물론 다른 챕터의 글들도 모두 좋았지만, 페이지를 펼치고 처음으로 저자와 마주하게 된 순간들의 글이어서일까. 처음 만나는 저자의 글을 읽을 때면, 저자의 글과 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와 간 보기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글자 한자 한자를 집중하며 음미하고 가능한 저자의 의도를 깊이 생각해보고 천천히 책장을 넘기는 그 순간들이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다. 거기서 만나는 글들이 나의 취향과 기대에 맞을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를 꼽으라면.. '반짝이는 것은 다 혼자다'라는 제목의 히말라야의 작은 왕국 부탄에서 만난 히말라야 설산의 절경과 쏟아지는 별빛, 그리고 소녀에 대한 이야기다. 새벽까지 잠들지 않고 손님을 위해 대기하던 소녀의 일상이 떠올라 살짝 마음이 아렸고, 그런 상황에서도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는 그녀의 모습에
또 한번 나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었고, 히말라야 설산을.. 쏟아지는 별빛을 보지 못했던 나는 부탄이라는 나라에 한번 가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외로움 또한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
감정에 반응하지 않는 이는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으니
그럴 때의 외로움이야말로
텅 비어 가득한 충만함이다.
라는 저자의 문구였다.

그 외에도 책장을 넘기다 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게 되는 문구들과 표현들이 참으로 많은 책이다.
한결같다는 뜻이 좋아 '여(如)여(如)하다'는 표현을 쓴다 해도 인생이 제 맘대로 흔들어놓는 파란 속에서 여여하게 살기란 마음을 길들이지 않고는 힘든 일이다.
가르치기보다 배워야 할 것이 많은 삶에서 조금 안다고 스승이 되려고 하지 말자. 조금 안다는 것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중에서

이 산문집의 제목만을 들었을 때 나는, 그저 그런 사랑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 그러니 늦기 전에. 지금 바로,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이렇게 말하는 듯한 에세이의 제목과 붉은빛 표지만으로 섣부른 판단을 내린 까닭이다. 하지만. 저자가 사랑한다 말하고 싶었던 이는 사실, 돌아가신 어머니였다. 우리나라 중년 이상의 어르신들이 그렇듯 저자와 그의 어머니 또한 사랑한다는 말에 다소 인색했던 듯하다.
미안하다 아들아. 오래 누워 있어서.
얼른 가지 못해 미안하구나.
바깥엔 몇 번이나 계절이 지나가고
알아듣기 힘든 발음으로 어머니는
입술을 움직인다.
- 김재진, <미안하다> 중에서
어머니는 문병 온 사람에게
손들어 인사를 했다.
...(중략)...
진흙 속에 피는 연꽃처럼 오므렸다가 펴는
어머니의 그 손을 우리는 연꽃 손이라 불렀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연잎을 떠올리게 하는
그 인사를 우리는 연꽃 인사라고 불렀다.
-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중에서
직접적인 말은 없었지만, 서로에 대한 애정을 에둘러 표현했던 그들. 김재진 시인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꺼내지 못했던 게 내내 후회로 남아 마음에 걸려있나 보다.
"사랑한다"는 말 한번 하지 못한 시간을 돌아보며
손가락 움직여 나는 허공에 '엄마'라고 써본다.
아무도 없는 허공 위로 "사랑해요"하고 불러본다.
-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중에서

마지막으로.
김재진 산문집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는 요즘과 같은 스산한 가을날, 스산한 지금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일희일비, 일소일소. 일로일로하며 소중한 일상이 소멸하기를 원치 않는 분들께, 가볍지 않지만 어렵지 않은, 쉽게 읽히는 듯 많은 생각과 배움을 남기는 그런 에세이를 원하시는 분에게 적극 추천드리며,
#시인김재진 님의 산문집 #사랑한다는말은언제라도늦지않다 는 출판사 #김영사 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임으로 작성한 리뷰임을 함께 알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