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 - 왜곡과 날조로 뒤엉킨 사이비역사학의 욕망을 파헤치다
젊은역사학자모임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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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연구자들 화이팅~ 전문 연구자들의 더 많은 저술들이 쏟아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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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뼘 한국사 - 한국사 밖의 한국사
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 엮음 / 푸른역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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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서 젊은 연구자들의 시각이 빛나는 것 같습니다. 전문 연구자들의 역사 대중화 노력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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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에 지다 - 상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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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만화, 영화 등등 수많은 작품들로 만들어진 막부 말기

신센구미의 이야기.
 

그 가운데 비교적 최근에 나온 아사다 지로의 <칼에 지다>라는

소설은 조금 독특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어느 장르에서든지 마찬가지겠지만 작가가 자신의 소신을

여러 작품들에서 일관되게 견지한다는 것은 분명 쉽지않은 일이다. 


아사다 지로의 독특한 주제 의식은 그의 여러 작품들에서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단편과 장편에서 모두 마찬가지로

다소 산만한 배경에서 출발하여 외견상 보잘것 없는

한 인물에 주목하고, 그 인물의 인생과 행동들을 통해

독자의 감성에 깊이 어필하는 그만의 독특한 서술 방식은

묘한 매력이 있다. 

 

'난 내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살고있다. 
 

당신은 과연 소중한 무엇을 위해, 얼마나 대단한 가치를

 
위해서 살고 있는가...'

 

단편집인 <철도원>의 작품들을 읽었을 때 보였던

'소박한' 작가의 주제 의식은 처음엔 가벼운 듯이

느껴지다가도 점차 독자들의 가슴 깊숙한 곳에

파고드는 무게감이 있었다.

  

근래의 <칼에 지다>라는 작품은 
 

"아사다 지로 작가 정신의 정수가 담겼다"라는 기존의 평가처럼

작가의 주제 의식을 가장 근본적이고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소설은 지금부터 130여 년 전 일본 도쿠가와 막부가 점차 지고,

사무라이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말단 무사직 신분으로 있던 요시무라 간이치로는

어느날 '존왕양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며

탈번을 감행하고, 막부에 고용된 무사 집단인 '신센구미'에

들어간다.


그러나 그가 탈번한 진짜 목적은 존왕양이가 아니라

가난에 찌든 채 살아가는 그의 아내와 자식을 먹여살리겠다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이었다.


사무라이 계급의 신분적 몰락 속에서
말단 사무라이로서의 신분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가질 수 밖에 없는,

아니 가져야만 하는 가족애,

그리고 가장으로서의 책임의식.

 

그 속에서 자기 고향 사람들의 가치를 굳건히 견지하며
무사의 義와 연관하여 당당히 말하는 그의 생애는
일견 평범해보이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근본적인

가치관에 감히 한 목소리를 던진다.
 


'미부의 늑대' 신센구미..

그들에게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전투와 죽음 앞에서
간이치로는 항상 가족들에게 번돈을 꼬박꼬박 갖다 부치는
'바보같은 무사'에 '수전노'라 손가락질까지 받지만,

  

그의 행위들이 살아남은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점차 '義'를 위해 죽은 진정한 사무라이로 다시 돌이키게 되었을 때,

비로소 요시무라 간이치로라는 인물을 둘러싼 복잡한 실타래가 풀어진다.

 


그해 한겨울의 하얀눈이 내려,

그 눈밭으로 도쿠가와 막부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막부의 위엄이 높은 고위 사무라이들이

하나둘 자신들만의 안위를 위해 대의를 내던지고

주변과 아랫사람들을 내팽개칠 때,   

 

하나둘 붉은 피를 흘리며 눈밭 위로 스러져간 신센구미의 무사들..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채 고향 번으로 기어가

가족을 그리며 할복한 간이치로 최후의 모습까지..

 

 

아마도 작가가 실존인물인 간이치로의
고향에 내려가 직접 답사하며 그렸던 한폭의 그림이었겠지..

 
 

그러나....
 


일본 문학 특유의 지나친 靜적인 분위기 때문일까.
아니면 작가의 욕심으로 인해 작품을 필요 이상으로
그 가족들의 이야기까지 길게 끌고 갔기 때문일까.

 
소설 중반에 간이치로에 대한 사이토의 회상이 끝난 이후로는
이야기 전개가 다소 지루하고 진부한 감이 없지 않다.
 

글에서 요시무라 간이치로의 인간상에 대한 분석이

어느 정도 파악된 이상, 이야기를 그의 아들과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까지 길게 서술하기 보다는

부분부분 생략하고 여백으로 남겨두는 편이

훨씬 나아 보였다. 

 

아니면 애초에 중반 이후로는 신센구미의 활약상을

중심으로 전개하고 분량을 지금의 절반이나 2/3정도로 깔끔하게

다듬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모자란 나만을 생각일지도 모르겠다만...

 

간이치로의 할복을 소설 초반부부터 오랫동안 지켜보는

독자의 가슴은 애가탄다.

 

'간이치로, 대체 언제 죽을거냐...'
 

게다가 결말을 꼭 따뜻하게 마무리할 필요는 없지않은가.

 

까짓거 남은 가족들이 싸그리 굶어죽었다고 쳐도

요시무라 간이치로가 추구한 가치가 빛이 바래는건 아니다.

 

세상 이치가 다 그런 것이니..뭐

진한 여운도 남을 수 있을테고.. ㅋ

  

여하튼 장편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스토리 전개 과정에서 그 흡인력을 상실하기 전까지
구성을 꽉짜여지게 만드는 작가의 구성 능력이 중요한 것은 아닐지.

  

어쩌면 작가가 당시 경제위기가 닥친 일본 사회 내의 문제와

관련시켜 보고자 하는 의욕이 앞섰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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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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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초고를 마치고 오랜만에 소설책 한권 사러 슬기샘에 들어갔는데

우연인지 내 눈에 확들어온 위화의 작품들.. 

  

'허삼관매혈기'에서 본 그 유머러스한 문체에

 즐거웠던 기억이 있었지만 

'인생'이라는 다소 진부한, 혹은 너무 진지한 제목에

다소 망설였다.. 

  

'재미있을까..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려고 했는데..'

 
 

두껍지 않은 그 빨간책을 한권 사들고 기숙사 책상에

앉은 나는 머리말이나 먼저 읽어보려고 몇장 뒤적이다가

앉은 자리에서 한권을 모두 읽게됐다. 

  

전작에서 봤던 그 흡인력이 이 책에도 살아있었다.

 

소설은 시골 마을을 돌며 민요 수집을 다니던 작가가

소를 데리고 쉬고 있던 한 노인의 인생 얘기를 들으며 시작된다. 

 
 

기생과 도박에 빠져 집안 전재산을 날린 젊은 시절.

그리고 그 이후로 평범한 농사꾼이 되어 가족들을 부양하며

살아온 푸구이 노인의 인생이야기.. 

 
 

지극히 평범한 상황, 아무런 특별할 것도 없는 이 농촌마을에서

이 푸구이 노인이 여유있게 들려준 자기 일대기는 잔잔한 물이 흐르듯이

그 진행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유유히 흘러간다.

 


젊은 시절 도박에 빠져 집안이 망하고

사랑하는 가족들 마저 하나둘씩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들. 

그리고 살아가며 아주 간간히 피어나는 즐거운 추억들..

 
 

어디서나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이야기지만

단순한 신파극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것은  

'운명'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한 인간의 삶이라는

묵직한 화두를 시종일관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닐지..

 

특히 소설 초반, 룽얼과 푸구이의 운명이 전환되는 부분에서

이 '운명'의 희극성을 통해 독자의 주위를 환기시키는

부분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전문도박꾼으로 마을에 들어와서 대대로 내려오는 대지주인

푸구이 집안의 대토지와 저택까지 모두 집어삼키고 푸구이를

자기 소작인으로 두게된 룽얼..

 

세상을 모두 가진듯, 모든걸 잃은 푸구이에게 너그럽게 대하는

지주로서의 관용까지 베풀지만,,,  그러나 그도 인민군의 진격으로

사회주의 세상이 도래하자 성내로 끌려가 총살을 당하게된다.

 

이때 룽얼은 끌려가는 자기 모습을 영문도 모른채 멍하니 

지켜보던 푸구이에게 소리친다. 

 
 

"푸구이, 너 대신 내가 죽는구나!"

 
 

푸구이의 인생은 가혹하고 고달프고 애절해보이지만

인생의 개별성 속에서 운명을 받아들이는 자들의

고뇌, 고통은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허망한 죽음

아내와 사위, 손자까지 자기 손으로 묻은 푸구이는

자기 한평생을 누구보다 괜찮은 인생이었노라고 회고한다.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하나의 작품 같은 것.

부자든 가난한 자든, 많이 배웠든, 덜 배웠든간에

누구나 마주치는 운명 앞에서 그 운명을 벗삼아

인내하고 가야만 하는 길..

 
 

푸구이 노인은 이야기의 마지막에 쓸쓸하게 말한다.

 

 

"내 한평생을 돌이켜보면 역시나 순식간에 지나온 것 같아.

 
정말 평범하게 살아왔지. 아버지는 내가 가문을 빛내기를

바라셨지만, 당신은 사람을 잘못보신게야.

 

나는 말일세, 바로 이런 운명이었던 거라네,

 

젊었을 때는 조상님이 물려준 재산으로 거드름 피우고 살았고,

그 뒤로는 점점 볼품없어졌지.

 

나는 그런 삶이 오히려 괜찮았다고 생각하네."  

 

 
 

특별할 것 없는 푸구이 노인의 마지막 말에서

 

인간이 쌓아올리는 '업적'들에 비해 개별 삶 자체를 가볍게 생각했던 

 
예전의 철없던 내가 떠올라 한없이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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