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
이소영 지음 / 래빗홀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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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차 영화 시나리오 작가의 글은 생동감이 넘치는구나. 출간 전 이미 영상화까지 확정이라고 하니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봐둬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생계형으로 마트에서 와인 판매원을 하면서 부업으로 법정 통역사 일을 하고 있는 도화. 도화에게 1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대가로 법정 허위 통역 일을 맡기는 변호사 재만. 네팔에 현존하는 여신 '쿠마리'. 한때 쿠마리였던 여성 '차미바트'가 대한민국을 떠들석하게 한 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목된다. 정황이나 증거 및 모든 게 차미바트가 범인이라고 가리키고 있는데 막판에 자꾸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며, 정신병적인 이유를 근거로 정의 실현을 피해 가는 걸 막아야 한다는 취지로 차미바트의 유죄 확정을 위한 허위 통역을 해달라고 도화를 설득하는 재만. 큰돈이 필요했던 도화는 일을 맡게 되고 피고인 차미바트가 법정 최고형을 받도록 허위 통역을 한다.

마주한 차미바트의 입에서 나온 증언에 도화는 묘한 찝찝함과 호기심이 일게 되고 연관되어 있는 일들을 캐기 시작한다. 결과를 떠나 자신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정의를 찾아 무모한 발걸음을 떼는 도화의 행동이 손에 땀을 쥐게 하고, 서서히 드러나는 도화의 과거 역시 마지막까지 독자를 궁금증에 허우적거리게 한다. 생생한 현장감을 결말까지 빈틈없이 유지해 나간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매력적인 포인트 아니었을까! 결혼이주여성, 외국인 노동자, 방사능 폐기물 등 알면서도 모른 채 넘기기 쉬웠던 문제들을 꼬집어 들춰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제 3의 눈으로 읽히는 네팔 여신 '쿠마리'의 존재와 정의를 찾으려 불 같이 뛰어드는 도화, 영화화가 된다면 이 몽환적이고도 무거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지 매우 궁금해진다. 도화는 김태리나 김유정이 왠지 잘 어울릴 것 같고 차미바트는 아무도 모르는 완전히 뉴페이스가 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변호사 재만은 오정세 님? 나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본다. 크크. 누가 어떤 역할을 맡을지 벌써 기대되는 작품이다.

#이소영 #통역사 #래빗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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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보이는 일기장
고혜원 지음 / 다이브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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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손에 쥔 순간 쉽사리 놓을 수가 없다. 미래를 볼 수 있는 일기장, 어쩌면 흔할 수 있는 소재로 독자들을 책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마력이 있는 책. 주인공이 청소년인 것, 청소년들의 고민과 불안을 녹여낸 것, 거기다 미래를 볼 수 있는 일기장의 존재와 미래를 바꾸려 고군분투 하는 중에 깨닫고 느끼게 되는 모든 것들에 빠르게 몰입이 되었다.

할아버지의 유품 중 유독 새 것처럼 돋보이던 빈 일기장. 일기장에 날짜를 쓰면 당일 이후, 즉 미래의 일들이 저절로 써진다. 날짜를 쓴 사람이 직접 보고 들을 미래의 일이. 전학하게 된 첫날의 날짜를 써 본 예윤. 사사로운 사건들의 발생을 미리 알고 주변의 다치게 되는 친구나 불편한 사건들을 은근슬쩍 예방한다. 일어날 일을 미리 볼 수 있는 일기장 덕에 친구들에게 나름 필요의 존재가 되기도 하는 자신을 즐기던 어느 날, 덤덤한 성격으로 예윤의 옆자리를 든든히 지켜주며 절친이 된 수연과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졸업식 날의 자신의 모습을 궁금해하게 된다. 졸업식 날짜를 아무리 써도 어떤 일기도 적어지지 않는 걸 의아해하던 예윤은 일기장인 걸 몰래 숨겨 엄마에게 날짜를 적어보게 한다.

"자살하려는 친구를 막으려다가 학교 옥상에서 예윤이가 떨어졌다. 내 딸이 죽었단다."라고 짧게 적히는 일기. 졸업식은 14일이 남았다. 그 사이에 내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이렇게 간단하게 줄거리를 설명해줬더니 곧 중학생이 되는 내 딸의 눈이 땡그래진다! 같이 읽자^^ 자살이 의심되는 친구들을 찾아가며 하루하루 작은 미래를 바꿔보려는 예윤과 수연. 도대체 어떤 결말이 다가오려는지 짐작도 못한 채 책 속에 폭 빠져 읽었던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청소년들이 겪을 법한 관계 속에서의 혼돈, 불안, 인정 욕구와 학업 스트레스 등 선택의 문제에서 숱한 고민을 해왔을 모든 청소년에게 꼭 읽어보라고 격려하고 싶은 책이었다. 결국 겪고 지나 와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는 걸 아는 40대에 들어섰지만 항상 지금 겪는 문제들은 인생의 전부로 보인다. 여기저기 흔들리고 그 속에서 수없이 다칠 청춘들이 아련하면서도, 또 그 청춘이기에 반드시 일어설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해주는 책이다.

⋱⋰ ⋱⋰ ⋱⋰ ⋱⋰ ⋱⋰ ⋱⋰ ⋱⋰ ⋱⋰ ⋱⋰ ⋱⋰ ⋱⋰⋱⋰ ⋱⋰⋱⋰⋱⋰

🔖82. 나는 도움을 주지 않으면 이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미였다. 내가 또 속아 넘어갔구나. 다들 내가 오늘은 무엇을 먹었는지, 무엇을 했는지 궁금해허지도 않는데. 그저 내가 자신들을 지켜 주기 때문에, 사고를 피하게 해 주기 때문에 필요했던 거였는데...

🔖117. 그냥 서로 맞지 않는 사이엲음을 진작에 인정했다면, 억지로 내가 그들이 기대하는 모습이 되지 않길 포기했다면, 애들이 바라보는 내가 되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었다.

🔖228. 다치지 않는 삶은 없다는 뜻이지. 사람은 늘 다치기 마련이야. 아픈 게 당연해. 아프다는 건 잘 살고 있다는 거야. 잘 크고 있는 거라고. 그러니까 아프면 병원도 가고. 붕대도 감고, 피도 닦아 내고, 그렇게 나를 도닥이며 사는 거란다. 이렇게 모래밭을 덮어 아예 다치지 않게 할 게 아니라, 다치게 두는 것도 방법이야. 다쳐도 괜찮다는 걸 알려 줘야지. 지나고 사면 상처도 아문다고 말이다.

#고혜원 #미래가보이는일기장 #다이브 #빅피시 @bigfish_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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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50만 부 기념 전면 개정판)
정영욱 지음 / 부크럼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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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에세이는 흔하다. 읽어 보면 다 비슷비슷한, 지친 사람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를 엮은 글들. 책을 많이 읽어도 장르의 다양성을 넓히긴 어려운데 그럼에도 꾸준히 이런 에세이를 찾는 걸 보면 나는 그 '당연스러워 보이는', '흔한' 위로 한 줄이 절실히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며 가슴에 박히는 문장이 간혹 있다. 아마도 나의 처지와 상황에 따라 같은 책을 읽어도 매번 느끼는 바가 다르고, 밑줄 치고 싶은 문장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 이번 책에서 내 마음에 박혀 눈물이 또르르, 아니 주르르 흐르게 했던 문장은 정말 색다르거나 감동적인 문장이 아닌 '같이 가자' 이 한 문장이었다. 지금도 마음이 찌르르 하는 거 보니 요새 나 좀 힘들었구나, 하고 다시 깨닫는다.

같이 가자. 앞에 사막이 있든, 건너야 하는 호수에 살얼음판이 있든. 겨울이 가고 봄이 지나도, 우리 여전히 같이 가자. 꽃이 떨어져도 눈이 쏟아져도 비가 내리고 낙엽이 져도, 같이 가자. (p.120)

살얼음판이 낀 겨울을 버티다 보면 끝내 봄이 오리니. 너무 당연히 알고 있고 큰 감흥을 일으킬 수 없을 글일지 몰라도 오히려 그렇기에 내 마음에 큰 일렁임을 준 글들이었다. 갖은 시련들이 계속 나를 찾아오더라도 나는 지금 잘하고 있다는 믿음. 믿다 보면 또 잘 될 거라고 태연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해주는 이 책이 정말 잠시나마 위안이 되었다.

정말로 지치고 힘든 날에는 정확하고 완벽한 해결법이 아니라 작고 당연해 보이는 글에 적당한 안온함을 느끼기도 한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 특별한 불안이나 고뇌가 없을 땐 또 어떤 느낌을 내게 안겨줄지 궁금해지는 책이다.

⋱⋰ ⋱⋰ ⋱⋰ ⋱⋰ ⋱⋰ ⋱⋰ ⋱⋰ ⋱⋰ ⋱⋰ ⋱⋰ ⋱⋰⋱⋰ ⋱⋰

🔖18. 인생이란 폭풍우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 그랬다. 나를 무너뜨리기 일쑤인 것들을 피하지 않고, 대면하며, 나름의 방법을 찾아가는 것.

🔖30. 삶이란 무릇, 존재하는 불행 속에서라도 기필코 일상의 행복을 찾아냄으로써 그 균형이 맞아지는 것이다. 뚜렷하거나 거대한 결과만을 추구하는 삶은 오히려 나의 행복을 집착이나 불안으로 와전시키기 일쑤이다. 만끽할 수 있는 행복은 내 하루하루 곳곳에 존재한다. 그것을 찾아내느냐 마느냐로 내 삶의 만족이 결정된다.

🔖74. 그래. 우리의 감정과 마음과 삶은 어쩌면 늘 곁에 있는 사람들과, 태연한 목소리와, 당연한 문장으로부터 살아낼 수 있는 것이다. 대단한 해결법이 아니었고, 거창한 언변이 아니었다. 이토록 언제나 존재하며, 사소하고 때론 담담한 것들로부터, 괜찮아질 수 있는 것이다.

🔖89. 받은 마음을 익숙함에 취해 함부로 대하지 말 것. 또 선물이 아니었을 마음을 오랜 시간 간직하느라 애쓰지도 말 것. 마음이란 한번 잃어버리면 다시 이전 그대로 되돌릴 수 없다는 것. 되돌릴 수 없기에, 그 순간이 아주 값지고 아름다운 것.

#정영욱 #잘했고잘하고있고잘될것이다 #부크럼 @bookrum.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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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시코쿠 - 소녀 같은 엄마와 다 큰 아들의 일본 시코쿠 불교 순례기
원대한 지음 / 황금시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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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같은 엄마와 다 큰 아들의 시코쿠 불교 순례길! 난 이 책으로 시코쿠라는 지명 이름도 처음 알았다. 당연히 불교 순례길 역시 낯선 만남이었고. 1200년 전 진언종 창시자인 코보 대사의 발자취를 따라 시코쿠의 4개 현(도쿠시마, 고치, 에히메, 카가와)에 위치해 있는 88개의 절을 순례하는 길.

다정하고 화목한 그들의 순례를 함께 하며 마음이 참 따뜻하고 포근해졌다. '순례와 산책의 차이는 뭘까?'라는 작가의 물음에 나도 생각 많은 며칠을 보냈다. 다 큰 아들과 소녀 같은 엄마는 이미 산티아고 순례길을 함께 다녀 왔고 시간이 흐른 후 그리움과 아쉬움을 안고 다시 순례길에 오르게 된 것이 바로 시코쿠 순례길이었단다.

짧은 지식으로 나 역시 오로지 두 발로만 한 번에 모든 일정을 끝내야 순례자라고 여겼던 것도 같은데 도보뿐 아니라 자전거, 자동차와 함께 일정을 소화하는 것 역시 순례라는 넓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마음가짐 아닐까. 내가 매일 다니는 동네 골목 역시 마음가짐에 따라 얼마든지 순례의 길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가 불편하거나 건강이 여의치 않을 때도 꼭 해내고 싶은 일정이 있다면 교통수단의 힘을 빌려도 괜찮다. 협소했던 내 마음의 작은 구멍을 내어준 책.

덤으로 엄마와 다 큰 아들의 사이가 얼마나 좋은지 누구에게로 향하는 지 모를 부러움과 약간의 질투심도 일었다. 돈독한 서로의 관계에서 오는 엄마의 깊은 미소는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힘이 느껴졌다.

한 현을 한 계절씩 나누어 네 개의 계절동안 네 개의 현을 돌며 시코쿠 순례를 마친 그들이 괜히 든든했다. 나도 함께 한 것 같이 자랑스러웠고. 당장의 시간이 여유롭지 않아 훌쩍 떠나긴 힘들지만 오늘부터라도 늘상 다니는 길목의 걸음을 조금씩 늘려 조금은 무게 있는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 볼까 한다.

⋱⋰ ⋱⋰ ⋱⋰ ⋱⋰ ⋱⋰ ⋱⋰ ⋱⋰ ⋱⋰ ⋱⋰ ⋱⋰ ⋱⋰⋱⋰ ⋱⋰

🔖40. 선배가 어떻게 소수 언어를 지켜 가며 사는지, 조금은 알 것만 같다. 관심과 애정이다. 아끼는 것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과 주춤거리지 않는 행동, 조금 먼 거리일지라도, 시간이 걸릴지라도 움직이고 보는 몸과 마음.

🔖66. 순례자와 산책자가 만났다. 순례자 같은 산책자와 산책자 같은 순례자. 산책과 순례에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별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오늘 걷고 있는 이 고행길이 산책길일 수도, 방산시장에서 을지로4가로 걷는 그 길이 순례길일지도.

🔖71. 두 발로만 순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전거, 버스, 휠체어, 침대 등 어떤 보조 도구를 이용해서도 순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나를 많이 바꾼다. 전세버스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니는 패키지 상품을 비판했던 내가 떠올랐다. 잘 걸을 수 있음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잘 걷지 못해도 당연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165. 어설프지만 무언가를 해내는 사람들, 완벽하지 않아도 즐겁게 도전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걸 언제 드러내야 할지 아는 사람들. 그들이 내뿜는 에너지는 무엇도 당하지 못한다는 것을. 나도 즐겁고 어설프게 도전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바메 들어왔다.

#원대한 #엄마는시코쿠 #황금시간 @goldentim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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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디츠 - 나치 포로수용소를 뒤흔든 집요한 탈출과 생존의 기록
벤 매킨타이어 지음, 김승욱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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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어느 산 위의 우뚝 솟은 성, 콜디츠. <독일에 비우호적인> 낙인이 찍힌 포로들을 모은 포로수용소였다. 나치의 포로수용소라 하면 흔히 알고 있었던 악명 높은, 비인간적인, 가스실 등등의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콜디츠는 대부분 군인 장교들이 포로로 갇힌 곳이라 그들에 대한 대우도 어느 정도 해주며 군인의 자부심을 지키려 제네바 협약을 준수하는 모습까지 보여졌다. 전쟁 중이더라도 최소한의 인간의 권리는 지켜져야 한다는 것 자체가 참 아이러니한 상황의 끝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하였다.

어쨌든 감옥이었기에 자유를 억압 받는 많은 포로들은 갇혀 있는 동안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탈출을 감행했다. 여러 가지로 시도되었던 탈출 방식들, 그들을 막으려는 독일의 경비병들, 탈출조차 시도되지 않았던 하급 병사들의 기막힌 이야기들. 누구 한 명에게 집중된 이야기가 아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굵직한 사건들 위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 방대한 이야기들이 동떨어지지 않고 탄탄히 쌓여져 소설과도 같은 에피소드로 발현될 때마다 빠져들어 읽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작고도 광활한 콜디츠 안에서는 계급도, 우정도, 협약도 생겨 났고, 포로들은 대부분 지루하고 권태로운 반복적인 상황을 벗어나려는 시도-스스로 제작하는 연극 공연, 탈출 도구 제작, 밀주 제조, 각국 포로들간의 연대-를 멈추지 않았다. 포로들에 몰입하여 읽어가면서 초반에는 그나마 낙관적인 희망을 품고 활력적으로 탈출을 감행하던 모습에 큭큭 웃음이 나는 장면도 분명히 있었는데, 끝이 보이는 듯한 희망과,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좌절감 사이에서 포로들이 느끼는 심경 변화에 나도 덩달아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하며 지난한 시간들이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포로들을 감시하는 독일 경비병들 중에도 분명 나치에는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하니 흑과 백, 이분법으로만 판단할 수 없는 다채로운 인간 군상의 모습을 이 책 한권으로 낱낱히 깨달을 수 있어 마음이 조금은 힘들었던 부분도 있었다. 콜디츠 안에서 그들과 함께 그들의 일상 속을 잠시나마 공유했던 입장이 되고 보니 '왜 이런 일이 있어야 하며, 이 상황 속에서 나라면 어떤 모습으로 현실을 마주할 수 있었을까?'라고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다 읽고 보니 표지가 새롭게 보였다.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해야 될 이름들. 인간이기 위해 각자가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조금 다가가기 어려운 글이지만 반드시 지켜져야 할 흥미로운 역사서의 하나로 자리매김할 듯하다.

⋱⋰ ⋱⋰ ⋱⋰ ⋱⋰ ⋱⋰ ⋱⋰ ⋱⋰ ⋱⋰ ⋱⋰ ⋱⋰ ⋱⋰⋱⋰ ⋱⋰

🔖8. 철조망에 둘러싸여 세상과 단절된 채 엄중한 감시를 받는 이 세상에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변화를 겪었다. 그동안 성안의 삶도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 갔고, 밖에서는 전쟁이 가차 없이 계속되었다. 영웅적인 포로가 있었지만, 그들도 인간이었다. 강인한 동시에 약하고 용감하지만 겁에 질린 그들은 쾌활했다가, 단호했다가, 절망에 빠지기를 반복했다.

🔖64. 바깥세상으 연합국들과 마찬가지로 포로들 역시 협력자이자 경쟁자였다. 그들은 공통의 적과 싸우는 와중에도 서로 경쟁을 벌였다. 콜디츠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지내다 보니 적도 훨씬 더 친숙해졌다. 전장에서 만나는 적은 익명의 존재다. 그러나 포로수용소에서 만나는 적에게는 얼굴, 이름, 성격이 있다.

🔖286.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망칠 기회가 생기면 잡고 싶어했고, 거의 모든 포로가 탈출 시도에 기꺼이 도움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탈출이라는 어렵고 위험한 일은 이미 단련된 소수에게만 맡겨두고 만족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났다. 그렇게 해서 포로들 사이에 언뜻 눈에 잘 띄지 않는 새로운 구분이 생겨났다. 반드시 탈출하겠다는 사람과 탈출에 대해 무관심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사람.

🔖368. 해방될 가능성이 커졌는데도, 아니,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일부 포로들은 심리적으로 기다림을 감당하지 못했다. 소수의 사람들이 마침내 선을 넘어 정신을 놓은 것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 때문이었다.

#벤매킨타이어 #콜디츠 #열린책들 @openbooks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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