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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디츠 - 나치 포로수용소를 뒤흔든 집요한 탈출과 생존의 기록
벤 매킨타이어 지음, 김승욱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9월
평점 :
독일의 어느 산 위의 우뚝 솟은 성, 콜디츠. <독일에 비우호적인> 낙인이 찍힌 포로들을 모은 포로수용소였다. 나치의 포로수용소라 하면 흔히 알고 있었던 악명 높은, 비인간적인, 가스실 등등의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콜디츠는 대부분 군인 장교들이 포로로 갇힌 곳이라 그들에 대한 대우도 어느 정도 해주며 군인의 자부심을 지키려 제네바 협약을 준수하는 모습까지 보여졌다. 전쟁 중이더라도 최소한의 인간의 권리는 지켜져야 한다는 것 자체가 참 아이러니한 상황의 끝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하였다.
어쨌든 감옥이었기에 자유를 억압 받는 많은 포로들은 갇혀 있는 동안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탈출을 감행했다. 여러 가지로 시도되었던 탈출 방식들, 그들을 막으려는 독일의 경비병들, 탈출조차 시도되지 않았던 하급 병사들의 기막힌 이야기들. 누구 한 명에게 집중된 이야기가 아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굵직한 사건들 위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 방대한 이야기들이 동떨어지지 않고 탄탄히 쌓여져 소설과도 같은 에피소드로 발현될 때마다 빠져들어 읽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작고도 광활한 콜디츠 안에서는 계급도, 우정도, 협약도 생겨 났고, 포로들은 대부분 지루하고 권태로운 반복적인 상황을 벗어나려는 시도-스스로 제작하는 연극 공연, 탈출 도구 제작, 밀주 제조, 각국 포로들간의 연대-를 멈추지 않았다. 포로들에 몰입하여 읽어가면서 초반에는 그나마 낙관적인 희망을 품고 활력적으로 탈출을 감행하던 모습에 큭큭 웃음이 나는 장면도 분명히 있었는데, 끝이 보이는 듯한 희망과,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좌절감 사이에서 포로들이 느끼는 심경 변화에 나도 덩달아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하며 지난한 시간들이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포로들을 감시하는 독일 경비병들 중에도 분명 나치에는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하니 흑과 백, 이분법으로만 판단할 수 없는 다채로운 인간 군상의 모습을 이 책 한권으로 낱낱히 깨달을 수 있어 마음이 조금은 힘들었던 부분도 있었다. 콜디츠 안에서 그들과 함께 그들의 일상 속을 잠시나마 공유했던 입장이 되고 보니 '왜 이런 일이 있어야 하며, 이 상황 속에서 나라면 어떤 모습으로 현실을 마주할 수 있었을까?'라고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다 읽고 보니 표지가 새롭게 보였다.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해야 될 이름들. 인간이기 위해 각자가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조금 다가가기 어려운 글이지만 반드시 지켜져야 할 흥미로운 역사서의 하나로 자리매김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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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철조망에 둘러싸여 세상과 단절된 채 엄중한 감시를 받는 이 세상에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변화를 겪었다. 그동안 성안의 삶도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 갔고, 밖에서는 전쟁이 가차 없이 계속되었다. 영웅적인 포로가 있었지만, 그들도 인간이었다. 강인한 동시에 약하고 용감하지만 겁에 질린 그들은 쾌활했다가, 단호했다가, 절망에 빠지기를 반복했다.
🔖64. 바깥세상으 연합국들과 마찬가지로 포로들 역시 협력자이자 경쟁자였다. 그들은 공통의 적과 싸우는 와중에도 서로 경쟁을 벌였다. 콜디츠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지내다 보니 적도 훨씬 더 친숙해졌다. 전장에서 만나는 적은 익명의 존재다. 그러나 포로수용소에서 만나는 적에게는 얼굴, 이름, 성격이 있다.
🔖286.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망칠 기회가 생기면 잡고 싶어했고, 거의 모든 포로가 탈출 시도에 기꺼이 도움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탈출이라는 어렵고 위험한 일은 이미 단련된 소수에게만 맡겨두고 만족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났다. 그렇게 해서 포로들 사이에 언뜻 눈에 잘 띄지 않는 새로운 구분이 생겨났다. 반드시 탈출하겠다는 사람과 탈출에 대해 무관심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사람.
🔖368. 해방될 가능성이 커졌는데도, 아니,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일부 포로들은 심리적으로 기다림을 감당하지 못했다. 소수의 사람들이 마침내 선을 넘어 정신을 놓은 것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 때문이었다.
#벤매킨타이어 #콜디츠 #열린책들 @openbooks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