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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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가본 길이 아름답다'는 제목의 이 산문집은 박완서님의 마지막 에세이다. 최근의 소소한 일상을 얘기하고 있는 제1부 내 생애의 밑줄, 2008년에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서평을 모은 제2부 책들의 오솔길, 김수환 추기경, 박경리 작가, 박수근 화백 등 그가 인연을 맺고 살았던 세 분에 대한 이야기인 제3부 그리움을 위하여로 나누어져 있다.
 
책머리에서 그녀는 생애의 마지막에서 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있어 행복하다 썼다. 글쓰기는 어려울 때마다 엄습하는 자폐의 유혹으로부터 그녀를 구했고,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시켜 주었다고 하니 하늘나라로 떠나셨어도 그곳에서 여전히 원고지에 만년필을 끄적이고 계시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이 책에 끌리게 된 건 아마도 제목이 주는 힘이 컸을 것이다. 못 가본 길이 아름다울 지 아닐 지는 모를 일이다. 왜냐면 실제 겪어보지 못했으니까. 그래도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막연한 기대는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에 대한 불만이 마음 깊숙이 자리잡고 있기 아닐까 싶다. 가질 수 없는 것, 가볼 수 없는 곳에 대한 아쉬움과 회한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커지게 마련이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다울 지는 모르겠지만 그 길이 더 행복할 지는 모르겠다. 행복이란 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으로는 결코 채울 수가 없는 것이다. 아차피 행복은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에서 찾아야 한다. 더 많이 웃고, 사랑하고, 행복해지기 위해 나는 이 책의 제목을 거꾸로 이해하기로 했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가장 아름다운 거라고.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그리움은 꽁꽁 숨겨두었다가 가끔 꺼내어 보는 첫사랑의 사진 한장으로 충분한 거라고. 못 가본 길을 궁금해 하기 보단 지금 걷고 있는 길을 좀더 아름답게 가꾸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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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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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10월.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습니다.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사건이 그것이었지요.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켜 삼성 특검까지 이어졌지만 사건의 결말은 예상보다 싱거웠습니다. 그로부터 몇년의 시간이 흘러 사건의 당사자였던 김용철 변호사가 책을 통해서 그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그때 생각이 납니다. 사무실에서도 인간 김용철과 변호사 김용철, 그리고 삼성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일었습니다. 의견은 극과 극을 달렸습니다. 거대 재벌의 비리를 파헤쳐 부패의 고리를 끊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는 진심이 느껴진다는 사람도 있었고, 반면에 은혜를 원수로 갚은 파렴치한, 조직의 배신자라는 거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 책을 사서 다 읽는데 1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보통 책을 잡으면 빠르면 하루이틀, 아무리 늦어도 한달을 넘기는 일이 거의 없는데 이 책은 유달리 오래 걸렸습니다. 물론 이 책이 5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긴 하지만 고도의 전문분야를 써서 읽기 어렵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뭐라 그럴까요. 이 책은 그 한꼭지 한꼭지를 읽을 때마다 숨고르기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김용철 변호사의 말을 100% 신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삼성의 영향력이 국가 전체에 미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 본다면 분명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있어야 합니다. 대법원의 최종적인 사법적 판단 이후 삼성은 대국민 선언을 통해 변화를 약속한 바 있습니다만 지금까지 무엇을 어떻게 바로잡았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 사이 이건희 회장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사면이 있었고 경영 일선에 다시 등장했습니다. 삼성으로선 그룹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 책이 거북하고 불쾌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나  기업의 오너가 본분인 기업가 정신을 망각하고 권력을 좇게 될 때 어떤 비극을 맞게 될 지 너무나 명약관화한 일입니다.

'삼성을 생각한다' 말미에서 김용철 변호사가 남긴 글이 꽤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 정의가 패배했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정의가 이긴다"는 말이 늘 성립되는 게 아니라고 해서 정의가 패배하도록 방치하는 게 옳은 일이 될 수는 없다. 나는 삼성 재판을 본 아이들이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라는 생각을 갖게 될까 두렵다. 그래서 이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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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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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의 서울 출장길. 오가는 KTX에서의 4시간을 의미없는 잠으로 떼우기는 아쉬울 거 같아서 동대구역 서점에서 책을 골라봤다. 그의 팬이 되기로 마음먹은 최갑수의 책을 고르고 고르다 직원에게 검색까지 부탁했지만 역시 작은 규모의 책방이다보니 책이 없었다. 그나마 검색되는 2권도 이미 내가 읽은 책이었다.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들에서 어떤 느낌을 나누길 좋아하기에 그런 스타일의 책을 찾아봤다. 두리번 거리다 '자전거 여행' 이란 책이 눈에 들어왔다. 지은이를 보니 김훈이다. 김훈? 남한산성, 칼의 노래를 지은 소설가 말인가? 책 표지 다음장의 케리커쳐를 보니 내가 알고 있던 희끗한 백발의 김훈 작가는 분명 아닌 듯 보여서 동명이인인가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대구서 서울로, 서울에서 과천을 오가는 지하철 안에서 꼬박 책 한권을 순식간에 다 읽어 버렸다. 이미 가 본적이 있거나, 혹은 그저 언젠가 한번은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는 곳들을 사진작가 이강빈의 사진과 함께 정리해 놓았다. 2000년 8월 1일 초판이 발행되었으니 무려 11년 전에 이 글이 씌어졌고, 이 사진들이 찍혔다는 얘기 아닌가.

작가 김훈은 1999년부터 2000년 사이에 전국의 수많은 곳들을 자전거(그의 오랜 연인인 풍륜)로 여행하며 그 감흥을 이렇게 정리했으리라. 이제서야 이 책을 발견했다는 게 안타까운 일이지만, 더 늦기 전에 이 시대 최고의 작가의 글을 읽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겠다. 책 표지에 끼워져 있는 "연필로 꾹꾹 눌러 쓴 우리시대 최고 수준의 에세이"라는 수식어가 이 책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

진도가 잘 나가는 책이다. 어차피 무언간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니 다른 사람의 눈과 발을 빌려 자전거 여행을 즐겁게 다녀왔다 생각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역시 이 시대 최고의 글쟁이답게 그의 표현은 한편 문학적이요, 한편 철학적이라 나처럼 소양이 부족한 사람에겐 눈에 쏙쏙 들어오지 않는 부분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굳이 고생스런 자전거 여행이 아니더라도 난 언제쯤 아름다운 우리땅 구석구석을 사진과 글로 표현할 수 있을 날이 올 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 날이 오지 않을 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또 카메라를 챙겨 어디론가 떠나봐야겠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몸과 마음은 이미 동백꽃 피는 여수 돌산도의 향일암으로, 봄꽃 향기 퍼지는 섬진강가를 내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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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서툰 사람들
박광수 지음 / 갤리온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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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광수생각 시리즈로 큰 인기를 얻었던 박광수가 5년만에 쓴 카툰 에세이. 박광수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까지 찍었다. 원래 만화가 인데다 글쓰는 재주까지(엄청난 문장력이 아니라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지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젠 새로운 장르인 사진에까지 도전장을 냈나 싶어 특히나 사진들을 유심히 살펴보게 됐다.

글쎄..사진들은 제목처럼 서툴지는 않다. 그 어떤 사진 전시회에 걸릴 작품들에 어울릴만한 것들은 아니지만 일상의 느낌을 잘 담아낸 것 같다. 나만의 느낌인 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진들은 외롭고 애잔해 보인다. 일년도 훨씬 전에 이 책을 읽었을 때와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사랑하고 헤어지는 이야기들, 공감할 수는 있어도 가슴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던 그 이야기들이 지금은 구구절절히 뼛속까지 시린 느낌이다. 그때는 그저 상투적인 표현같아 보이던 것들이 이렇게도 다르게 읽힐 수 있는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뚱뚱하고 변변찮은 컴플렉스 덩어리라는 박광수는 이 책을 통해서 자신의 서툰 인생과 서툰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그만의 이야기가 아닐 거란 생각이 든다. 사람은 누구나 서툴다. 누구는 사랑에 서툴고, 누구는 공부에 서툴고, 누구는 처세에 서툴다. 사람이 모든 것에 완벽할 순 없을텐데도 우린 서툰 그 무엇 때문에 주눅들고 의기소침해 진다. 광수가 생각했듯 조금만 자신에게 관대해 지면 어떨까.

그는 '서투름의 미학'이란 말로 서툴렀지만, 그랬기에 순수했고 두근거렸던 그때를 되돌아 보게 한다. 우리 모두 그런 때가 있었다. 혹은 지금 그런 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서투른 오늘을 부끄러워 할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느낄 수 없기에 몹시도 그리워 질 오늘을 만끽하라 충고한다.

나이 사십을 불혹이라고 한다. 나 역시도 불혹의 나이에 접어 들었다. 원치는 않았지만 어느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되어 버렸다. 난 '부록'이라 얘기한다. 그것도 별책 부록이라고..이건 순전히 내 창작물이라 여겼지만 박광수도 똑같은 생각을 했나 보다. 아니 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부록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다 마찬가지인 지도.

보통은 그렇다. 이십대에서 삼십대로 접어드는 그 즈음 누구나 센티멘탈해지기 마련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흥얼거리고 마치 세상이라도 끝난 것처럼 심각해지기도 했었다. 그런데 세월 지나고 보니 그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서른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박광수가 일컫기를 마흔은 서른이 다시 되고 싶은 나이라고 했는데, 나이 오십이 되면 또 이때가 그리워질런지도 모르겠다.

"나이 마흔에 잠깐
불혹, 부록 같은 삶.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책을 덮으며 생각해 보니 이 책은 이별을 한 사람들에게는 읽기에 적당하지 않은 것 같다. 사랑하고 있을 때에는 결코 나에겐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던 이별이 엄습해 왔을 때 여기에 있는 글 하나하나가 폐부에 깊숙히 바늘처럼 꽃힐 것 같다. 그런 이유로 기억에 남는 글 몇개를 옮겨 적으려다 그만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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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은 절하는 곳이다 - 소설가 정찬주가 순례한 남도 작은 절 43
정찬주 지음 / 이랑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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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절을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불심이 충만한 신자는 아닙니다. 그저 고즈넉한 산사에 갔을 때 느껴지는 포근함이 좋고, 절을 감싸고 있는 산자락과 잘 어울리는 누각과 당우들을 카메라에 담는 순간이 좋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몇해 전부터 작정하고 주변의 이름난 고찰들을 돌아보는 중입니다.

전국에 수백 수천의 절이 있을 겁니다. 이 중에서 어딜 가볼까 선택하는 것은 늘 고민거리입니다. 이번에 그 힘든 선택에 도움을 주는 책이 한권 나왔더군요. 인터넷에서 책을 검색하다 우연히 이 독특한 제목의 책을 발견하고는 무언가에 홀리듯 바로 주문을 했습니다.

'절은 절하는 곳이다' 라는 알듯 말듯한 제목을 가진 이 책은 소설가 정찬주가 남도의 작은 절 마흔 세곳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지은이는 꽤 유명하신 분인 거 같은데 제겐 생소합니다. 전남 화순군 쌍봉사의 이불재에서 10년간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책을 읽다보니 불교에 대한 식견이나 스님들과의 인연도 꽤 깊으신 거 같더군요.

저와도 통하는 것이 꽤 많은 것 같이 느껴집니다. 저 역시 관광객들이 넘치는 큰 절 보다는 조용히 사색할 수 있고, 내려놓을 수 있는 작은 절들이 좋거든요.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는 남도의 이름난 대찰들은 대부분 빠져 있습니다. 물론 해남의 대흥사나 부안 내소사 같은 조계종 본사들도 소개하고 있지만 이 절들도 그 규모나 위세가 그렇게 위압적이지는 않은 곳이긴 하지요.

평소 관심이 있는 분야다 보니 금방 읽혀지네요. 이틀 만에 다 읽고는 다시 한번 더 찬찬히 곱씹어보고 있는 중입니다. 마흔 세곳의 절 가운데 제가 다녀온 곳을 손꼽아 보니 겨우 아홉 곳에 불과합니다. 조만간 다녀올 생각을 하고 있던 곳도 여럿 됩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사진을 보니 어서 빨리 그 모습을 친견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짐을 느낍니다.

시(詩)란 말[言]과 절[寺]이 합쳐진 말이라고 작가는 서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고 보니 그렇네요. 그 시라는 것은 화려한 어휘로 포장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비우고 온전한 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묵언의 시가 어울릴 겁니다. 조만간 고즈넉하고 작은 절을 찾아 떠나봐야 겠습니다. 절은 절하는 곳이다. 이 책은 행복한 사찰 순례를 꿈꾸는 분들에게 추천해 드리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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