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리운 것은 늘 멀리 있는 걸까? - 살아가는 힘이 되어준 따뜻한 기억들
박정은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일주일 가운데 가장 평화롭고 여유로운 금요일 저녁 시간. 모처럼 책이나 좀 읽어볼 요량으로 일부러 퇴근을 조금 늦췄다. 사무실에 불은 하나둘 꺼져가고, 창문 밖은 불밝힌 차량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다들 바쁜데, 나만 여유를 부리는 것 같아 뭔가 특혜를 받은 느낌마저 든다. 이런 것이 소소한 일상 속의 행복이 아닐까 싶다.

 

며칠 전 사뒀던 몇 권의 책 중에 무작정 손에 잡히는 한권을 집어 들었다. 일러스트 작가 박정은의 일러스트 에세이 <왜 그리운 것은 늘 멀리 있는 걸까?>는 쉬지 않고 단숨에 읽을 정도로 편한 책이다. 따뜻한 느낌이 드는 그림과, 간결하지만 진심이 담겨 있는 글들이라서 쉽게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녀의 글들이 심도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거나, 철학자나 성인의 글처럼 큰 깨달음을 독자들에게 전해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그녀의 글은 지극히 일상적인데다 평범하다. 어떤 글은 "이 정도는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평범함과 특출나지 않음이 나는 좋다. 많이 아는 체, 잘 난 체 하지 않아서 불편하지 않았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의 글을, 정감있는 그림과 함께 볼 수 있다는 것이 큰 행복이었다. 많이 공감할 수 있었고, 비슷하게 닮은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서 따스한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이 책을 가까이 두고 자주 펴보게 될 것 같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박정은 작가를 나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사람이 세상에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사소하지만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조용한 카페에서 마주한 이에게 조곤조곤 속삭여주는, 그런 사려깊은 오래된 친구같은 존재로 다가온다.

 

게다가 그녀가 가진 그림 솜씨는 부럽기만 하다. 어떤 것이나 재주 없기는 매한가지지만 특히나 그림에는 소질이 전혀 없는 나로선 샘이 날 정도다. 일러스트 박정은은 그림을 잘 그리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 위안을 얻었던 많은 독자들처럼 나 역시도 마음이 따뜻해져서 책을 덮을 수 있었다. 글에서처럼, 그림에서도 그 사람의 성품과 마음 씀씀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법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찾아가서 만난 한국 - 어느 일본인 역사 교사의 끝없는 이웃 나라 공부
하타노 요시코 지음 / 이리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히타노 요시코라는 일본인 교사가 지은 <내가 찾아가서 만난 한국> 이라는 책을 펴자마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나는 이 책이 일본인이 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쯤 되는 줄 알았다. 아주 특별한 이력을 가진 일본인 - 한국에 관심이 아주 많은, 일본에서 일본역사를 일본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 의 눈에 보인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궁금증이 상당히 컸었다.

 

여행 에세이류를 좋아하는 내 취향에 걸맞는 책을 골랐다는 기쁨도 잠시, 책을 읽어갈수록 난감함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녀가 일행들과 함께 여러 차례 우리나라의 이름난 명소들을 둘러본 소회들이 이 책에도 소개되어 있긴 하다. 하지만 그 표현들은 상당히 단편적인 개인의 느낌에 치중되었고, 전문적이지 못해 아쉬움이 크게 느껴졌다.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외국인의 눈에서 씌어졌기 때문에 개인적인 독특한 경험이 마치 전반적인 것으로 오해의 소지를 낳지는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면서 잘못된 편견에 빠져 있는 대다수의 일본인들에 비한다면, 한국을 알아가기 위한 그녀의 노력 자체는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다.

 

이 책은 크게 다섯 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1장은 직접 우리나라를 찾아오기 와서 만난 한국의 모습에 대해 얘기하기 전 그녀 자신이 자라온 환경에 대해 얘기하고 있고, 2장에서는 그녀가 한국에 대해 가졌던 선입견, 어떻게 해서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한국을 이해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해 왔는 지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이어 3장에서는 2003년부터 쓴 한국 답사 여행기들이 실려 있다. 그녀가 유흥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소개되어 있는 한국의 문화유산들을 직접 보고, 한국 사람들을 만나보면서 느낀 감정들이 담겨져 있다. 식민지 지배의 가해자였던 일본인의 입장에서 느낀 감정들은 가식없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그런 이유인지 그녀의 표현들이 간혹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4장은 솔직히 조금은 따분하게 느껴진다. 일본사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일하는 동안 '자기전개학습'이라는 교수기법을 기조로 해서 학생들과 어떻게 역사를 공부했는 지를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 부분은 마치 학술논문이나 보고서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어 곤혹스럽기도 하지만, 전후 일본인들에게 전범국가 일본의 과오와 이로 인한 주변국의 아픔을 어떻게 이해시키려 노력했는 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마지막 5장에서는 한일간의 역사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5장의 말미에서 그녀는 "일본인이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폭 피해나 도쿄 대공습에 대해 이야기하고 젊은 나이에 죽은 일본군인들을 애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한국에는 일본 때문에 오키나와나 동남아시아에 끌려 가 끝내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과 그들을 기다리는 가족이 많았을 것이다. 일본인이 자기 슬픔에만 매몰돼 일본으로 인해 고생하거나 죽은 타국 사람들의 분노나 슬픔을 알지 못한다면 그 슬픔이 타국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리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나는 그녀의 이 말이 <내가 찾아가서 만난 한국>이란 책을 펴낸 근본적인 이유이자, 해가 갈수록 극우 민족주의 성향을 보이고 있는 전후 일본인들에게 던지는 경고의 메세지라고 생각한다. 최근 일본을 방문한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일본 아베 총리를 향해 던진 쓴소리 역시 이것과 일맥상통한다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과거 일본 제국주의에 당했던 분노와 슬픔에 매몰되어 마냥 일본에게 책임만을 묻는데 그칠 일이 아니다. 물론 사죄와 반성이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미래지향적 관계로 한일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어떤가. 이 일본인 역사 교사가 그랬던 것처럼 끝없는 이웃 나라 공부를 하고 있는 한국인은 과연 얼마나 될까, 자문하게 되는 요즘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자의 사물들
장석주 지음 / 동녘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철학자의 깊이 있는 통찰을 감히 읽어낼 수 있을까. 시인이자 비평가 장석주가 펴낸 철학에세이 <철학자의 사물들>을 읽고 나서 문득 느끼게 되는 회의감이다. 이 책에서 그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서른 개의 사물을 장석주 특유의 철학적 통찰력과 문학적 상상력으로 풀어내고 있다.

 

장석주, 그는 1년에 무려 1000여권을 책을 구입하고 시간날 때마다 그 책을 읽는 것을 일상의 낙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독서광적이라 할만큼 놀라운 그의 독서량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에 이처럼 깊이 있고, 폭넓은 사유를 통한 사물의 통찰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나같은 이들로선 감히 상상도 하기 힘든 엄청난 내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바로 이런 이유로 해서 이 책은 한편 사람을 질리게 하기도 한다. 닳아 뭉툭해지다가 나중에는 소실점 너머로 사라지는 비누를 통해 사물들의 끝과 소멸에 대해 생각해 본다거나, 우산은 가난한 존재들이 숨을 수 있는 무릉도원과 깨지지 않는 우정에 대한 일종의 은유라거나 하는 표현들에서 나는 감히 범점하기 힘든 지식과 통찰의 벽을 절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권성우 숙명여대 교수는 이 책이 늘 정신없이 바쁜 현대적 일상에 의해 망각되어 있던 사물의 고유한 신비와 매력, 본질과 육체를 비로소 드러낸다고 소개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충분히 체화되지 않았던 어떤 철학적 사유의 빛나는 순간들이 아주 구체적인 실감과 현실 속에서 생생하게 솟아오르며 의미화되는 장면을 체험할 수 있었노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는 분명 놀라운 능력이며 재능이다. 보통 사람들이 허투루 보아 넘기는, 흔하디 흔한 사물들이기에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통해 본연의 의미를 재해석함으로써 독자들의 관념의 세계를 확장시켜 주고 있다. 물론 그 과정이 결코 녹록치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도 능히 짐작이 가능한 일이다.

 

책에 소개되어 있는 서른 가지의 사물 중에서 책에 유독 관심이 간다. 엄청난 독서광으로 알려진 지은이 장석주엔 결코 미치지 못하겠지만 나 역시 책에 대한 욕심이 많기 때문이다. 그처럼 조숙하거나 영악하진 못해 일찍이 책이 삶의 시간들을 겹으로 살게 하고, 삶의 시간을 연장한다는 사실을 깨닫지는 못했지만 많은 책들을 서가로 가득 채우고, 나이가 들어 곁에 아무도 없을 때 서가의 책들을 느릿느릿 읽어나가는 상상만으로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는 것이 비단 그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 우리 시대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인문 지식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1
주현성 지음 / 더좋은책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흔히들 인문학의 위기라고들 한다. 좁디좁은 취업의 문턱을 넘기 위해 무한 경쟁으로 내몰린 이 시대에서 인문학을 얘기하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슬픈 현실이다. 상아탑이라고 하는 대학에서도 취업이 잘되지 않는 학과들은 이미 설 자리를 잃고 통폐합되는 운명을 맞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이유로 인문학이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최근 출판계에서 베스트셀러 자리에 오르는 책들을 살펴보면 인문학을 다루고 있는 것들이 가끔 눈에 띄곤 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역시 인문학이 인문학 자체로 주목받거나 깊이 있게 논의되는 책들은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대부분 취직시험에 도움을 주는 목적이거나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상식 수준에서의 최소한의 지식을 정리한 데 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쩌면 이런 종류의 인문학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는 것 자체가 사회 전반의 '인문학적 위기'를 고소란히 보여주는 방증이라 할 수 있겠다.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이라는 책도 이런 범주를 벗어나진 못하는 듯 하다. 인문학이야말로 크리에이터의 첫 번째 스펙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이 책에는 우리 시대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인문 지식이 담겨 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있다. 물론 지은이 주현성이 앞서 얘기했던 그런 얄팍한 목적을로 이 책을 펴냈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역시 이 시대의 트렌드를 외면하긴 어려웠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이 책에는 인문학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심리학, 회화, 신화, 역사, 철학은 물론 지식인이라면 응당 관심을 가져야 할 글로벌 이슈에 걸쳐 다양한 내용들을 담겨져 있다. 저자 주현성은 책의 머리말에서 인문학 자체가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라며, 조금이라도 심도 있는 인문 지식을 펼쳐볼라치면 꽤 다양한 기초 상식이 있어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아마도 그는 깊이 있는 각 분야의 인문학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 입문서를 쓸 요량으로 이 책을 펴낸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입문서들은 매우 산발적이거나, 한 분야에 치우쳐 있어 독자들이 인문학에 관심을 갖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었음을 지적했다. 깊이 있는 인문서를 이해할 정도의 체계적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책이 필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지은이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펼쳐지는 흥미로운 지식의 향연을 맘껏 즐길 수도 없었고, 이 책을 한번 읽는 것만으로 방대한 인문학의 기초 지식을 섭렵하기도 어려웠다. 아무리 잘 정리된 입문서라도 한들 애시당초 불가능한 욕심일 수도 있겠다. 한권의 책으로 인문의 기초 여섯 분야를 꿰뚫어보려는 욕심보다는, 느린 걸음이라도 한 분야라도 제대로 느끼고 이해해보려는 마음이 인문학을 배우는 마땅한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낯선 길로 돌아오다 - <벼랑에서 살다> 조은의 아주 특별한 도착
조은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여행 에세이류는 언제나 나의 구미를 당기는 책이다. 이름난 작가의 책은 물론이거니와 제 아무리 '듣보잡'이라 한들 여행과 사진에 관한 책은 허투루 보아 넘기기 어렵다. 인터넷 서점을 둘러보다 조은 시인의 여행산문집을 아주 우연하게 발견하고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책을 구매했다.

 

2009년 11월에 초판 1쇄가 나왔으니 한참 지난 책이긴 하지만 오히려 조금은 오래된 사진과 글들을 통해서 이제는 사라져버렸을 지도 모를 국내 여행지의 매력을 되살려 추억해 볼 수도 있으니 더욱 좋다. 조은 시인의 여행 에세이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마치 잘 숙성된 음식을 맛보는 것과도 같은 묵직함과 깊음이 묻어 나오는 글들이었으니.

 

역시 시인의 글은 뭔가 다른 것 같다. 그럼으로 인해 얼마간의 간격과 괴리가 느껴지기는 하지만, 보통 사람의 감성과 인식세계로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일깨워 주니 참 고마운 존재가 아닌가. 1960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으니 경상도만의 독특한 감성을 어느 정도는 공유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국내 여행에세이에서 쉽사리 볼 수 없는 나의 고향이 짤막하게나마 소개되어 있던 것도 호감에 한몫 톡톡히 했다는 걸 부인하긴 어렵겠다.

 

요즘은 국내여행 에세이를 접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해외여행이 쉬워진 시대인 탓에 북미나 호주, 유렵처럼 전통적인 인기 해외여행지 뿐만 아니라 남미, 아프리카 오지 까지도 책을 통해 그 속살을 훔쳐볼 수 있게 되었지만, 오히려 우리 땅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는 보물같은 여행지를 소개해는 책을 구경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척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은 시인은 <낯선 길로 돌아오다>는 책에서 스물 한 곳의 국내 여행지와 어울어진 추억 보따리들을 풀어놓고 있다. 다만 일반적인 여행 에세이와는 다르게 여행지에 대한 자세한 소개 보다는 그 특정 장소와 얽히고 섥혀있는 그녀의 기억들이 시인만의 감성이 담긴 언어를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그녀의 첫 시집제목인 <땅은 주검을 호락호락 받아주지 않는다> 에서 짐작할 수 있듯 삶과 죽음의 본질에 대한 통찰이 대부분의 글들을 관통하고 있다. 그래서 그녀의 글은 조금은 무겁고 우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옛날의 여행이 대상에 집중하기 위해 고독해지려 안간힘을 썼던 여행이라면, 다시 시작한 여행은 마음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 했다는 그녀의 고백이 무척 반갑게 느껴진다.

 

내가 다녀온 곳들을 시인의 시선과 사진을 통해 다시 떠올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글도 그렇고 사진도 그러하다. 같은 장소, 사물을 함께 본다 하더라도 각자의 느낌과 기억은 다 다르다. 그런 차이를 통해 내가 미처 살피지 못했던,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 좀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훌륭한 인생의 스승은 도처에 숨어 있는 법이다.

 

여행은 혼자라도 좋고, 단둘이라도 좋고, 여럿이라도 좋다. 혹은 정반대의 이유로 여행 자체가 괴로움으로 남을 수도 있다. 떠나는 여행길이 매번 행복하고 정겹고 따뜻한 기억으로만 남아야 할 필요는 없다. 애써 진지할 필요도, 떠남에 의미를 부여할 것도 아니다. 결국 여행은 반드시 돌아옴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떠났던 이의 현재의 기억에서 존재할 뿐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