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이병울 여행산문집 2
이병률 지음 / 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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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다림 끝에 이병률의 두번째 여행 산문집이 나왔다. 책을 주문하고도 한참을 기다려서야 손에 쥘 수 있었다. 기다림의 연속 끝에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라는 마음에 드는 제목과, 깔끔하면서도 눈길을 끄는 표지를 가진 책을 만나게 된 셈이다. 그리고 그 오랜 기다림의 허기를 채우고 싶었던 것인지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다.

난해했다. 몇 시간만에 이 책을 읽고 난 뒤의 첫 느낌은 딱 이랬다. 물론 시인의 글에는 수많은 비유와 상징, 축약이 들어 있어서 긴 호홉으로 여러 번을 들여다 보아야만 지은이의 속마음에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법이긴 하다. 그의 전작 '끌림'을 통해 시인의 언어에서 느껴지는 신선함에 깊이 매료되었던 내게 이번 책은 확실히 '공감' 면에선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특이하게도 이 책에는 페이지도 없고, 프롤로그나 에필로그도 없다. 책에 담겨 있는 58개의 글들은 각각 독립적이다. 스토리의 일관된 흐름이 있는 것도 아니니 굳이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을 필요도 없다. 마음 내키는 대로 어딘가를 열어서 읽어도 좋다. 읽다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은 훌쩍 뛰어 넘어도 상관 없을 것 같다. 다음에 내가 시인의 눈과 가슴으로 바라보고 느낄 때가 온다면 그때 다시 꺼내서 찬찬히 곱씹어봐도 좋겠다.

부러운 사람이다. 시인은 자신의 삶이 만족스러울지 모르겠지만 여행과 사진에 관심이 많지만, 막상 자유롭게 어디론가 떠날 수 없는 나같은 사람들에게 이병률은 그런 존재다. 멀리 떠나서야 겨우 마음이 편하니 이상한 사람. 아무 정한 것도 없으며, 정할 것 또한 없으니 모자란 사람이라 책 표지에선 이병률을 소개하고 있지만 '떠날 수 있고, 마음 속의 새장 속에 뭔가를 담을 수 있으니 행복한 사람'인 것이다.

자기는 없고 언제나 다른 사람만 생각하는 것 같은 사람. 이토록 많이 받아서 영영 받기만 하면서 사는 사람으로 굳어져 버리게 될까 두렵고 어려웠던 사람. 그렇게나마 내 허술한 빈 곳을 가릴 수 있으니 나에게는 축제 같았던 사람. "나이 많은 사람 만나러 나오는데 뭐하러 씻고 나와요?"라고 말해 주는 사람. 작가는 그 사람을 나를 덮어주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참 멋진 말이다. 때로는 이불이 되어 따뜻한 온기를 품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한없이 넓은 마음으로 모자라고 부끄러운 치부를 모른 척 덮어주기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세상 살아가는 것이 한결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문득 누군가 나를 덮어주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보다는 과연 나는 지금 누군가를 덮어주는 사람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지금껏 그러지 못했다면 앞으로는 그럴 수 있을까.

책이 참 예뻐서 자꾸 만지작거리게 된다. 글이 머릿 속에 들어오지 않아도, 가슴을 쿵쿵 울리지 않아도 흰 여백을 채우고 있는 까만 글자들을 좇게 된다. 글과 함께 실려 있는 수많은 그의 사진들을 보면서 잠시 생각해 봤다. 그동안 내가 찍어왔던 수많은 사진 가운데 누군가에게 보여줄 만한 것들이 있었던 걸까. 그래서 그 사진 속에 담겨진 수많은 시간과 기억들을 다른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는 호사스런 행운이 내게도 찾아오기는 하는 걸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들을...

그런데 말이다. 나는 말이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당신이 좋다.


"거기 한쪽에 두고 가. 그냥 내가 바라보게......"
어쩌면 이토록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그 말이 생각나는 걸까.
그 말로 정신이 하나도 없는 걸까.
단지 우리가 며칠 머물던 호텔의 건너편 쪽에 앉아 있을 뿐인데. 3# 작은 방을 올려다 보았다

사랑은 사람이 하는 일 같지만 세포가 하는 일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것도 그 사람이 내뿜는 향기와 공기, 그리고 기운들에 불쑥불쑥 반응하는 것이지 않던가. 사랑은 그래서 일방적인 감정으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은가. 5# 그날의 쓸쓸함

허기를 달래기엔 편의점이 좋다.
몰래, 사람들 사는 향내를 맡고 싶으면 시장이 좋다.
사랑하는 사람의 옆모습을 보기엔 극장이 좋다.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기 위해선, 높은 곳일수록 좋다.
세상 그 어떤 시간보다도,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시간이 좋다.
사랑하기에는 조금 가난한 것이 낫고
사랑하기에는 오늘이 다 가기 전에 좋다. 10#

11월과 12월 사이를 좋아합니다. 그건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삿포르에 갈까요,
이 말은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11#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

나는 너를 반만 신뢰하겠다.
네가 더 좋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나는 너를 절반만 떼어내겠다.
네가 더 커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13#

문득 행복하냐고 묻고 싶을 때가 있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기울고 있어서가 아니라
넌 지금 어떤지 궁금할 때.

많이 사랑했느냐고 묻고 싶을 때가 있다.
그게 누구였는지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만큼을 살았는지,
어땠는지 궁금할 때.

나를 지나간
내가 지나간 세상 모든 것들에게
'잘 지내냐'고 묻고 싶어서
당신을 만난 거겠다. 14# 묻고 싶은 게 많아서

지금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은 당신밖에 없을 것 같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 한 가지가 있다면
당신 앞에서 우는 일.
그래도 우리는 이 생에서 한 번은 만나지 않았는가 말이다. 17#

"만약 네가 원한다면 우리 집에서 지내도 좋아."
"우산 가져 왔어요?"
"또 볼 수 있겠죠?"
"나 대신, 다 다녀줄래요?" 27# 황홀한 말

살면서 모든 것을 털어놓아도 좋을 사람 한 사람쯤 있어야 한다. 그 한 사람을 정하고 살아야 한다. 그 사람은 살면서 만나지기도 한다. 믿을 수 없지만 그렇게 된다. 36# 무조건

어차피 마지막은 마지막이었다.
그렇다라도 그 순간이, 그 장면이 소중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37# 당신이 소중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외롭지 않으면 또 무엇으로 살아요?"
당신은 그 외로움의 힘으로 가장 멀리 가겠다는 말인가. 훨훨, 당신이 가고자 했던 곳들을 당신은 지독히 밟으며 다닐런가. 어쩌면 우리는 그곳에서 외로움의 힘으로 마주쳐 그렇게 술 한잔 나눌런가. 43# 높고 쓸쓸한 당신

사랑은 삶도 전부도 아니다. 사랑은 여행이다.
사랑은 여행일 때만 삶에서 유효하다. 47# 사랑도 여행이다

하루 한 번쯤
처음 영화관에 가본 것처럼 어두워져라.
하루 한 번쯤, 보냈다는데 오지 않은 그 사람의 편지처럼 울어라.
다시 태어난다 해도 당신밖에는 없을 것처럼 좋아해라.
옆에 없는 것처럼 그 한사람을 크게 사랑하라. 48#

여러 번 말했지만 나는 바보 같은 사람.
여러 번 당신에게 말했지만 나는 멀리 있는 사람.
그러나 당신에게 말하지 않은 한 가지.
당신에게 있어 나는 어쩔 수 없이 불가능한 사람.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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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커넥션 - 지구온난화에 관한 어느 기후 과학자의 불편한 고백
로이 W. 스펜서 지음, 이순희 옮김 / 비아북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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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9월 개봉했던 다큐멘터리 영화 '불편한 진실'은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미국의 부통령을 지냈고 지금은 환경운동가를 활동하고 있는 앨 고어는 이 영화에 등장해 전세계 곳곳에서 심각한 환경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기상이변의 주범으로 인간들의 무분별한 소비행태가 만들어낸 지구 온난화를 지목하고 있다.

영화 속에 비쳐진 지구 온난화의 문제는 두려울 정도다. 전 세계의 이름난 대부분의 빙하 지대가 녹아내려 심각한 자연 생태계의 파괴를 불러왔고, 지금과 같은 속도로 CO₂가 증가하게 된다면  오래지 않아 플로리다, 상하이, 인도, 뉴욕 등 대도시의 40% 이상이 물에 잠기고 네덜란드는 지도에서 사라지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물론 지구 온난화는 진실이다. 각종 통계자료를 통해서 우리는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기후 변화의 조짐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도 내내 사라지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기후 변화도 사실이고, 그로 인한 지구 온난화도 엄연한 진실이지만 과연 그 책임을 온전히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CO₂ 등 온실가스에 전가하는 것이 합당한가 하는 것이다.

 

지구 온난화라는 주제에 관심이 많은 동료들과도 몇해 전에 자주 얘기를 했었던 기억이 난다. 수십억 년이 넘는 지구 역사를 통해 수차례의 빙하기를 겪었고 그때마다 지구는 심각한 환경 변화에 직면했었다. 수많은 생명이 사라졌고, 살아남은 종들은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를 거듭해왔다. 지구의 역사는 곧 이러한 기후 변화에의 적응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산업혁명을 거쳐 급속한 산업화가 전세계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배출된 온실가스가 지구의 평균온도를 급속하게 상승시키고, 지구 역사 상 가장 높은 온도를 기록하게 만든 원인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다소 성급하고 위험한 일일 것 같다. 영화 '불편한 진실'에서 얘기하고 있는 '진실' 역시 우리가 순진하게 곧이 곧대로 받아 들이기에는 불편한 이면들이 많다.

미국우주항공국(NASA)의 기후 전문가인 로이 W. 스펜서는 '기후 커넥션'이라는 책을 통해 매스 미디어, 산업화된 선진국들의 지도자들에 의해서 확대 재생산되면서 공포로 확산되고 있는 '지구 온난화'는 조작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스펜서 박사는 지구가 더워지는 것 자체는 사실이지만 스스로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종교화된 신념의 단계에까지 이른 지구 온난화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금의 온난화는 인간의 잘못이 아닌 자연적인 현상이며, 온난화로 인한 지구의 위기는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이 없다고 스펜서 박사는 얘기하고 있다. 온난화 공포에 편승해 대중을 속이고 정치인과 과학자들에게게 천문학적인 자금을 퍼주는 대신 지구 온난화의 정확한 원인을 밝혀낼 수 있는 강수 시스템 연구와 지구 온난화를 극복할 수 있는 과학자를 양성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책 표지에 씌어져 있는 '지구 온난화에 관한 어느 과학자의 불편한 고백'이라는 표현을 통해 저자의 속마음을 잘 읽을 수 있다. 로이 W.스팬서는 앨 고어가 '불편한 진실'이란 영화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얘기하고자 하는 진실 또한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고 혹평하고 있지만 그가 300페이지에 가까운 책을 통해 얘기하고자 하는 지구 온난화의 조작된 공포에 대한 고백 역시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니 절반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확실한 것은 현재로서 지구 온난화는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기온 상승으로 인한 대홍수와 가뭄, 혹한과 혹서를 경험하게 될 것이며 기후 패턴도 완전히 뒤바뀌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인류의 생명과 지구 생태계를 위협할 것이 분명하다.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자연적인 것이든, 혹은 인간의 무분별한 소비행태에서 비롯된 것이든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의 일상생활 속 작은 실천들이 필요다는 것만큼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진실',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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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서 만나는 우리 문화 - 문화유산 해설사 따라 사찰 여행
박상용 지음, 호연 그림 / 낮은산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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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수많은 절들을 찾아 다녔으면서도 정작 불교 문화와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던 것 같다. 절은 절하는 곳이라는데 나는 법당에 들어가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가장 낮은 자세로 절 하는 법이 잘 없었던 것이다. 절은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그저 세상과 떨어진 산사의 고요함과 절집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것에 만족했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순간 부끄러움을 느꼈다. 절에 들어서면서 차례로 지나게 되는 문들이 어떤 의미인지, 수많은 탑과 불상, 그리고 전각들은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고, 왜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는 것인지에 대한 자타의 의문에 자신있게 답할 수 없음에 답답했다. 좀더 알게 되면 좀더 많은 것을 보게 되고, 또한 좀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도 한 몫 했다.

대학에서 중국어와 중문학을 전공하고 2002년부터 문화유산 해설라로 활동하고있는 박상용 선생님이 지은 <절에서 만난 우리 문화>라는 책은 사실 어린이들을 위한 불교 문화 개설서로 씌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 유산이기도 한 이 땅의 불교 문화재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만들어진 책이라고는 하지만 불교 문화와 절에 있는 문화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나같은 어른들에게도 읽기에 적당한 책이다. 절에 있는 안내판이나 전문가들이 어려운 말로 설명해 놓은 글들을 아무리 읽어 보아도 이해되지 않던 것들을 마치 함께 걸으며 옆에서 조곤조곤 설명해 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좋다.

최근 들어 불상을 훼손한다거나 법당에서 예배를 보는 등 일부 종교 신자들의 그릇된 신앙으로 인해 종교간 갈등과 반목이 골이 깊어지고 있다. 전국에 수천개에 달하는 전통 사찰을 비단 불교라는 종교의 대상이라는 좁은 범주에서 볼 것이 아니라 수천년을 우리와 함께 해온 역사와 문화로 인식하는 것이 편견과 오해를 줄이는 방편일 것이다. 모든 종교의 본질은 사랑이며, 이를 통한 심적인 평화를 구하는 데 있다. 만약 종교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자신의 종교만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종교인의 자세가 아닐 것이다.

일찍이 불교에서는 절 건물 벽에 그림을 그려 글을 잘 알지 못하는 무지한 백성들에게 진리를 전달하는 방법으로 사용했었다. 태어나면서 죽음에 이르는 매 순간순간이 벼랑 끝의 삶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안수정등이나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단순한 깨우침을 일깨워 주는 발설지옥 벽화 역시 이런 목적에서 그려진 것들이다.

이 책에서는 여느 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심우도를 비교적 상세하게 그림과 함께 설명하고 있다. 잃어버린 소를 마음에 비유하고, 소를 찾아 나서는 소년을 세상살이를 공부하는 수행자에 비유한 그림인 심우도를 통해 결국 소와 사람, 둘 다를 잊고 진리를 깨우친 다음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그림 속에서 종교의 참뜻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물론 절에 대해서, 불교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고 해서 절을 찾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저 아무런 마음 없이 절을 여유롭게 걸어보고 마음 속 부처님을 향해 절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지 모른다. 하지만 해남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의 추천사처럼 절에 있는 건물이며 탑이며 불상 들을 볼 때 불교에 대해 알고 있다면 우리 것에 대한 이해의 폭이 더 넓어질 것이고, 그 순간 우리의 마음도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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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전쟁? - Issue & Thinking 03
빌헬름 자거 지음, 유동환 옮김 / 푸른나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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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물 쓰듯 한다"는 말이 있듯 물이야 말로 흔하디 흔한 자원이었다. 그랬던 것이 언제부턴가 물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물론 이 넓은 지구에 지리적, 기후적 영향 때문에  물이 모자랄 수 밖에 없는 곳도 있겠거니, 그저 머나먼 남의 나라 얘기로만 치부했었는데 우리나라가 '물 부족 국가'냐 아니냐를 두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저널리스트이자 자유 기고가인 빌헬름 자거(Wilhelm Sager) <물 전쟁?>이라는 책을 통해 물이란 무엇이며, 물을 통해 화려한 문명을 피워 온 인류가 당면한 물 부족 위기를 국제 협력을 통해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하는 총체적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물에 대한 권리는 인간의 기본권이다. 깨끗하고 안전한 물이 인종과 지역, 빈부를 넘어 모든 사람에게 적정한 비용으로 충분히 공급되어야 한다. 그러나 물의 빈부 격차, 지역적 격차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전 세계에서 11억 명의 인구가 깨끗한 식수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으며 26억 명이 기본적인 공중위생 설비조차 없는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특히 매년 1,800만 명의 어린이가 더러운 물로 전염되는 설사병으로 사망한다. 개발도상국에서 더러운 물의 사용은 무력 충돌이나 에이즈보다 더욱 큰 위협이다

따라서 지구에 존재하는 수자원을 적절히 배분하는 것은 전 세계가 힘을 합쳐 해결해야 할 중요한 정치적 과제다. 중요한 자원과 그 개발을 놓고 일어나는 갈등은 폭력적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이는 우리 모두에게 닥칠 수 있는 일이다
.
'
물 전쟁'은 미래에 닥칠 일이 아닌, 바로 현재의 문제다!" 


위대한 문호 괴테는 "모든 것은 물에서 비롯되었고, 모든 것은 물을 통해 살 수 있다."고 얘기한 바 있다. 식상한 말 같지만 인체의 70% , 지구 표면적의 75%를 구성하고 있는 물 없이는 어떤 생명체도 살아갈 수 없음은 당연하다. 생명의 근원인 물은 그래서 가장 흔한 듯 보이면서도 가장 귀중한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의 총량은 지구 생성 이후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마시고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은 인구 증가와 이에 따른 산업화와 무분별한 개발, 환경오염으로 촉발된 지구 온난화 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자원 보전에 필요한 자본과 기술이 있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후진국 사이의 격차가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가 물이 풍부한 큰 강을 끼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들은 무서운 자연의 힘 앞에서 지혜롭게 제방을 쌓고 수로를 만들어 농업을 발달시켜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다는 자랑스런 인류의 역사에만  관심이 있을 뿐, 문명의 발달이 자연의 파괴와 환경 훼손을 불러와 결국에는 문명의 몰락을 부추겼다는 불편한 진실에는 애써 눈감아 왔었다
.

지금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물 부족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인구의 폭발적 증가는 인류가 제어하기 힘든 측면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인간의 무한한 욕망으로 인해 숲이 파헤쳐지고 돈벌이의 수단으로 공정에 투입된 수많은 오염물질이 정화되지 않은 채 강으로 유입됨으로써 결국 인간이 마실 수 있는 물이 줄어들게 되었다는 것 그 자체가 비극이다. 또한 소수의 가진 자들 추악한 탐욕이 불러온 모진 댓가를 힘없는 제3세계 사람들이 져야 한다는 것은 더더욱 슬픈 일이다
.  

저자는 이 책에서 전 세계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는 물 분쟁의 예를 소개하고 있다. 또한 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러한 크고 작은 분쟁들이 종국에는 '물 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경고하고 있다어찌보면 물 전쟁은 고대의 세계 4대 문명을 둘러싼 쟁탈전이나 이후 수많은 전쟁의 역사 속에서 이미 시작되었고,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

생명에 필수불가결한 자원인 물은 점점 부족해지고 있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수자원 개발과 효율적인 분배가 이루어진다면 지구상의 식수원만으로도 온 인류가 생존하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문제는 여전히 물 부족 문제가 국제 사회에서 과소 평가되고 있다는 것이며 이로 인해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의지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

WTO
나 세계은행 등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확산을 노리는 진영에서는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될 생명의 근원인 물을 사유화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세계 물 시장을 노린 거대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우리나라 역시 상수도 사업의 민영화 등 물 산업을 육성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
 
물론 세계화도 좋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물은 생존을 위해 누구에게나 필요한 재화다. 어느 누구의 힘으로 발명해 내거나 생산해 낸 것이 아닌 자연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소중한 자원을 사유화해서 돈벌이에 이용한다는 자체가 인간성의 상실이 아닌가 여겨진다.

 

물론 공공 부문에 물 공급을 맡겨두는 것이 효율성 면에서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낮은 물 값으로 인해 물 낭비를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명을 담보로 물 부족을 해결하려는 생각은 지금도 더러운 물로 인해 생명에 위협을 받고 있는 인류에게는 지나치게 가혹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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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물 쓰듯 한다"는 말이 있듯 물이야 말로 흔하디 흔한 자원이었다. 그랬던 것이 언제부턴가 물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물론 세계 구석구석에 사막이라든가 지형적으로 물이 모자랄 수 밖에 없는 곳도 있겠거니, 그저 머나먼 남의 나라 얘기로만 치부했던 것이 우리나라도 '물 부족 국가'냐 아니냐는 두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저널리스트이자 자유 기고가인 빌헬름 자거가 지은 <물 전쟁?>이라는 책을 통해 물이란 무엇이며, 물을 통해 화려한 문명을 피워 온 인류가 당면한 물 부족 위기를 국제 협력을 통해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하는 총체적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물론 그 답이란 것 역시 정형화된 것은 아니요, 큰 틀에서의 방법론만 제시하고 있기는 하다.

위대한 문호 괴테는 "모든 것은 물에서 비롯되었고, 모든 것은 물을 통해 살 수 있다."고 얘기한 바 있다. 식상한 말 같지만 인체의 70% , 지구 표면적의 75%를 구성하고 있는 물 없이는 어떤 생명체도 살아갈 수 없음은 당연하다. 생명의 근원은 물은 그래서 가장 흔한 듯 보이면서도 가장 귀중한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지구상에 있는 물의 총량은 지구 생성 이후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마시고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은 인구 증가와 이에 따른 산업화와 무분별한 개발, 환경오염으로 촉발된 지구 온난화 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자원 보전에 필요한 자본과 기술이 있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후진국 사이의 격차가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가 물이 풍부한 큰 강을 끼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주지의 사실이다. 무서운 자연의 힘 앞에서 지혜롭게 제방을 쌓고 수로를 만들어 농업을 발달시키며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다는 인류사의 긍정적인 부분에는 관심이 있을 뿐 문명의 발달이 자연의 파괴와 환경 훼손을 불러와 결국에는 문명의 몰락을 부추겼다는 부정적 측면에는 애써 눈감아 왔던 측면이 크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지금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물 부족 문제 역시 이같은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물론 인구의 폭발적 증가는 인류가 제어하기 힘든 측면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인간의 무한한 욕망으로 인해 숲이 파헤쳐지고 돈벌이의 수단으로 공정에 투입된 수많은 오염물질이 정화되지 않은 채 강으로 유입됨으로써 결국 인간이 마실 수 있는 물이 줄어들게 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가진 자들의 탐욕의 모진 댓가를 힘없는 제3세계 사람들이 져야 한다는 것은 더더욱 슬픈 일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전 세계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는 물 분쟁의 예를 소개하고 있다. 또한 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러한 크고 작은 분쟁들이 종국에는 '물 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경고하고 있다. 어찌보면 물 전쟁은 고대의 세계 4대 문명을 둘러싼 쟁탈전이나 이후 수많은 전쟁의 역사 속에서 이미 시작되었고, 반복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터키의 수자원 개발 프로젝트를 둘러싸고 벌어진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터키, 시리아, 이라크 간의 갈등, 중동 지역의 물 수요를 어떻게 충족시키느냐 하는 것이 국가 안보와 직결되어 있는 요르단 강의 이스라엘, 시리아, 요르단, 팔레스타인 간의 물 분쟁은 앞으로 중동 지역의 평화 정착에도 중요한 선결과제가 될 것이 분명하다.

국제적인 물 분쟁 사례는 이것만이 아니다. 그 길이가 무려 6,671킬로미터에 달해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인 나일강은 북아프리카 10개국의 국경을 관통해 흐른다. 역사적으로 이집트, 에티오피아, 수단은 나일 강의 물을 놓고 싸워 왔다. 수자원의 95%를 나일 강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이집트가 식민지 시대의 해묵은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는 이유도 충분히 납득이 되기는 하지만 르완다, 콩고, 우간다, 케냐, 탄자니아 등 급격한 인구 증가와 가난으로 인해 물 사정이 좋지 않은 나일 지역 국가가 어디 한두 나라겠는가. 

물론 이러한 물 분쟁을 평화적이고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있다. 콜로라도 강을 둘러싸고 미국과 멕시코가 '공동의 자원을 합리적으로 나눠 써야 두 국가 간에 산적한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협력할 수 있으며 이 지역 전체의 안정도 이룰 수 있다.'는 당연한 견해에 동의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중국,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미얀마 등 메콩강 유역 국가들이 '한 나라의 이익을 다치게 하는 일 없이 메콩 강을 적절하게 분배'하는 것에 합의한 사실이나 남부 아프리카에 닥친 물 문제를 효과적으로 협력하고 조절하기 위해 14개 국가가 남아프리카 개발 공동체를 세워 서로 협력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물 부족 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생명에 필수불가결한 자원인 물은 점점 부족해지고 있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수자원 개발과 효율적인 분배가 이루어진다면 지구상의 식수원만으로도 온 인류가 생존하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문제는 여전히 물 부족 문제가 국제 사회에서 과소 평가되고 있다는 것이며 이로 인해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의지가 지금 현재로서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WTO나 세계은행 등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확산을 노리는 진영에서는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될 생명의 근원인 물을 사유화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세계 물 시장을 노린 거대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상수도 사업의 민영화 등 물 산업을 육성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세계화도 좋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물은 생존을 위해 누구에게나 필요한 재화다. 어느 누구의 힘으로 발명해 내거나 생산해 낸 것이 아닌 자연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소중한 자원을 사유화해서 돈벌이에 이용한다는 자체가 인간성의 상실이 아닌가 여겨진다. 물론 공공 부문에 물 공급을 맡겨두는 것이 효율성 면에서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낮은 물 값으로 인해 물 낭비를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명을 담보로 물 부족을 해결하려는 생각은 지금도 더러운 물로 인해 생명에 위협을 받고 있는 인류에게는 지나치게 가혹한 일이 아닐까 싶다.

"물에 대한 권리는 인간의 기본권이다. 깨끗하고 안전한 물이 인종과 지역, 빈부를 넘어 모든 사람에게 적정한 비용으로 충분히 공급되어야 한다. 그러나 물의 빈부 격차, 지역적 격차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전 세계에서 11억 명의 인구가 깨끗한 식수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으며 26억 명이 기본적인 공중위생 설비조차 없는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특히 매년 1,800만 명의 어린이가 더러운 물로 전염되는 설사병으로 사망한다. 개발도상국에서 더러운 물의 사용은 무력 충돌이나 에이즈보다 더욱 큰 위협이다. 

따라서 지구에 존재하는 수자원을 적절히 배분하는 것은 전 세계가 힘을 합쳐 해결해야 할 중요한 정치적 과제다. 중요한 자원과 그 개발을 놓고 일어나는 갈등은 폭력적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이는 우리 모두에게 닥칠 수 있는 일이다.
'물 전쟁'은 미래에 닥칠 일이 아닌, 바로 현재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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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물 전쟁? - 미래에 닥칠 일이 아닌, 바로 현재의 문제!
    from 흐르는 강물처럼.. 2012-07-10 13:43 
    예로부터 "물 쓰듯 한다"는 말이 있듯 물이야 말로 흔하디 흔한 자원이었다. 그랬던 것이 언제부턴가 물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물론 세계 구석구석에 사막이라든가 지형적으로 물이 모자랄 수 밖에 없는 곳도 있겠거니, 그저 머나먼 남의 나라 얘기로만 치부했던 것이 우리나라도 '물 부족 국가'냐 아니냐는 두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저널리스트이자 자유 기고가인 빌헬름 자거가 지은 이라는 책을 통해 물이란 무엇이며, 물을..
 
 
푸른가람 2012-07-10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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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이덕일 / 김영사 / 200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일반인들에게 있어 우암 송시열이라는 인물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조선왕조실록에 무려 3천번 이상 언급될 정도로 조선 후기 이후 지금까지도 우리 역사상 가장 치열한 논란의 대상이라는 그는 과연 그 수사에 어울릴만큼 극단적인 찬사나 저주를 받았던 적이 있었으며, 또 그를 지금 또다시 재조명해 볼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이것이 진보적 역사학자라 일컬어지는 이덕일의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라는 책을 읽고 난 후의 솔직한 느낌이다. 나 역시도 역사에 관심이 많기도 했거니와 올해 초에 읽었던 함성호의 '철학으로 읽는 옛집' 탓에 송시열과 그의 정적 윤증의 옛집을 찾아 직접 여행을 다녀오기도 할만큼 송시열에 대한 관심이 커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랬던 차에 이 책을 만나게 됐고 '노론의 300년'에 대해 유독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는 일부 역사학자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 보게 됐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자 여러 화제작을 통해 젊은이들이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갖게 만든 장본인이자 편향된 역사의식을 지닌 재야사학가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고 있는 이덕일 소장은 책의 서문에서 그의 의지를 밝히고 있다.

"이 글은 이런 의문에 대한 필자 자신의 추적이며 나름의 해답이다. 한 가지 밝혀둘 것은 송시열은 내게 호오(好惡)의 대상이 아니라 역사의 탐구 대상일 뿐이라는 점이다. 송시여로가 그가 이끌었던 한 시대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그를 통해 현 시대를 바라보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지 그에 대한 극단적 찬사나 비난이 목적은 아니다."  - 20쪽. 서문 중에서

이 글은 다분히 그간의 행적에 대한 일부의 비난을 의식한 것이 아니었나 여겨진다. 개인적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겠다는 의지를 나타냄으로써 송시열과 그가 이끌었던 노론의 시대를 논하고자 했지만 솔직히 얘기하자면 "한국사의 최대 금기", "한 인간을 둘러싼 300년 신화의 가면 벗기기' 같은 표현도 물론 저자 자신의 의지는 분명 아니었겠지만 그것에서부터 벌써 한쪽으로 치우친 느낌이 들어 불편한 생각이 든다.

물론 우암 송시열이라는 인물이 우리 역사에서, 특히 인조반정과 병자호란을 거쳐 조선 중기 이후의 거친 정치적 격변기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다. 그는 이덕일의 표현대로 우리의 공식적 역사상 가장 큰 관심과 논란을 일으켰으며 또한 국왕과 맞설 수 있을만큼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었던 최대 당파의 수장이기도 했다.

또한 예송논쟁과 이로 인해 격화된 당쟁으로 촉발된 불행했던 조선의 정치현실에서 그가 보여줬던 편협함과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우리 역사가 겪어야 했던 비극의 책임에서 그가 벗어날 수 없음도 당연하다. 하지만 많은 유학자들이 그 과정에서 서로를 죽고 죽이는 피비린내나는 권력투쟁을 벌인 것이 비단 송시열 혹은 노론만의 책임은 아닐 것이다.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해서까지 다른 당파를 철저히 권력에서 배제시키고자 했던 것은 남인과 소론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이 책을 읽고나니 비단 우암 송시열 개인에 대한 아쉬움 보다는 조선왕조의 태생적 한계로 인해 잉태된 역사의 비극이 아쉽게 느껴질 따름이다. 친명사대라는 국제 질서에 지나치게 몰입함으로써 민족적 주체성을 상실한 데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 판단에도 눈이 어두웠던 탓에 두차례의 호란을 겪으며 국가적 치욕과 민초들의 고통을 불러온 집권층의 문약함을 탓할 수 밖에 없다.

또다른 하나는 주자학이라는 좁은 틀에 얽매여 학문 자체가 교조주의적으로 흘러가 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유학의 편협함은 오늘날에도 변하지 않고 오히려 더 고착화되는 면이 있어 보여서 안타깝다. 세상 그 어떤 학문보다 고차원적이어서 현시대에도 충분한 연구 가치가 있는 유학이 우리나라에서는 예학이라는 이름으로 사대부들의 지배제체 강화를 위한 들러리로 전락해 버린 것 역시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면서 충분히 곱씹어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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