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그 아름다운 거짓말
인도를 생각하는 예술인 모임 지음, 김은광 그림, 한북 사진 / 애플북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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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인도라는 나라에 대한 환상이 있는 것 같다. 그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여서 책이나 신문, 방송을 통해 포장되거나, 혹은 왜곡되거나 확대 재생산된 이미지에 현혹 당하는 경우도 많다. 인도를 생각하면 무수한 단어들이 떠오른다. 카스트의 나라, 신들의 나라, 새롭게 급부상하는 IT 강국, 혼란과 무질서, 힌두교와 흰 소, 갠지스강...

이런 무수한 단어들 속에는 또한 인도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꿈과 염원이 투영된 면도 있으리라. 지금 살고 있는 현실에서는 맛볼 수 없는 전혀 다른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에 의해서 재단된 인도의 모습, 그것을 '아름다운 거짓말'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나름 추측해 보게 된다.

인도를 생각하는 예술인 모임이라는 다소 거창한 단체 명의로 펴낸 "인도, 그 아름다운 거짓말'이라는 책은 건축가이자 시인인 함성호를 비롯, 인도를 다녀온 열두 명의 예술가들이 독자들에게 전하는 인도 여행담을 담았다. 예술가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지 않은가. 보통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그들은 보고 느끼고 표현해 주기 때문이다.

 

'인도를 생각하는 예술인 모임'의 대표 격인 함성호 시인은 "여행은 자신의 삶을 신기하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우리의 고향이자 안식처와도 같은 산. 그 산의 어머니같은 히말리야가 있어 인도는 특별한 것일테지만 그 산을 만나는 것도 사람을 만나는 것이고, 문화를 만나는 것도 결국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니 결국 여행은 사람을 만나는 것임을 놓쳐서는 안될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아직 인도에 대해서는 크게 끌림이 없다.그 어떤 화려한 수사로 인도라는 땅을 포장한다 해도 지금 당장은 싯다르타의 고행의 흔적을 좇거나 삶과 죽음이 함께 흐르는 갠지스 강에 몸을 담그고 싶지는 않다. 먼 훗날 나의 영성이 더욱 돈독해져 그 영혼의 울림이 나를 이끄는 때가 온다면 물론 그때는 거부하지 못할 테지만.

솔직히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함성호 시인이 바랐던 것처럼 인도에 대한 조그마한 앎의 한 장이 되었다고 자신있게 얘기하기는 어렵다. 열두 명 예술가의 여행의 기록을 읽고 나서도 여전히 내게 인도는 알듯 모를듯 손에 잡히지 않는 대상이지만 힘든 삶 속에서도 아트만(참 자아)이 있는 뜨거운 가슴으로 신과의 합일에 이르고자 하는 그들은 분명 특별한 사람임이 분명하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김태형이라는 시인의 시가 기억에 오래 남는다. 이 시가 특별히 인도와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 수많은 여정의 끝을 마무리 하기에 적당한 느낌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내게 물어보지 마라. 이 시가 무슨 의미를 품고 있는 지를. 나도 모르고, 그도 모르고, 또 인도도 모를 것이니.

다시 길을 돌아 나올 때면 나그네요
그대는 누군가 멀리서 부르는
어떤 이름을 듣게 될 지도 모른다
설령 그것이 그대를 부르는 이름이라고 해도
뒤돌아보지 마라 그 길은 옛 이름으로만 불릴 테니
                                                                                                   김태형, <초원의 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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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의자 - 숨겨진 나와 마주하는 정신분석 이야기
정도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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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마음은 빙산과 같다. 커다란 얼음 덩어리의 일부만이 물 위로 노출된 채 떠다닌다."는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깊은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는 내면의 감춰진 심리까지 온전히 들추어 내는 작업은 그래서 매우 전문적이고도 조심스런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대학 시절 심리학에 관심이 있어 교양 과목으로 강의를 들었던 적이 있다. 그때 두툼한 심리학 전공서적을 통해 정신분석학과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처음 접했었다. 생소하면서도 어려운 용어를 제대로 이해하기도 힘들었었기에 그 당시 나의 심리학 공부는 그저 '수박 겉핥기'에 그칠 수 밖에 없었다.

국내 최초로 국제정신분석학회가 인증한 프로이트 정신분석가이자 서울대 의대 정신과 교수로 재직중인 정도언 교수가 펴낸 '프로이트의 의자'라는 책은 나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에 대한 궁금증을 일반인들도 잘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그래서 '내 무의식을 찾아가는 여행'이라는 표현은 이 책을 한 마디로 잘 정의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의식은 속에서 끓고 있는 휴화산과 같습니다. 기회만 있으면 뚫고 나오려고 합니다. 물론 자아가 파병한 방어기제들이 지키고 있어 쉽게 의식의 세계로 나오지는 않지만 무의식의 에너지는 숨어 있으면서도 나의 일상에 끊임없이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무의식은 꿈, 환상, 말실수에서 불쑥 나타납니다. 가금 꿈을 꾸고 나서 얼굴이 화끈거리고 마음이 불편해지는 그런 일이 있다면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그 꿈이 자신의 어떤 마음을 드러냈는 지 말입니다.

프로이트는 수많은 환자들을 보다가 인간의 마음에 무의식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게 된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마음을 의식, 전의식, 무의식으로 나누었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지형 이론'이다. 정도언 교수는 이를 서울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강북을 의식이라고 한다면 무의식의 세계인 강남으로 넘어오기 위해 한강이라는 전의식을 건너와야 한다는 것이다.

의식에서 전의식, 전의식에서 무의식으로 갈수록 마음에 접근하기가 어려워진다. 전의식에는 일종의 검문소가 있어서 의식과 무의식에서 건너오고 넘어가는 것을 감시하고 있다. 무의식에서 전의식으로 넘어가는 곳에는 아주 엄격한 경비병이, 전의식에서 의식으로 넘어가는 곳에는 다소 헐렁한 경비병이 지키고 있다는 설명을 통해 좀더 쉽게 지형이론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지형 이론과 더불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체계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구조 이론이다. 구조 이론은 인간의 마음 안에 세 사람이 산다고 본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이드(Id), 초자아(Superego), 자아(Ego)인 것이다. 이드는 욕망의 대변자, 초자아는 도덕, 윤리, 양심의 대변자이며, 자아는 이 둘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한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어내려고 하는 욕망 덩어리인 이드와 윤리적 기준으로 인간의 욕망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초자아 사이에서 자아는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내기도 하고, 때로는 원만한 타협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런 타협을 이끌어 내는 자아의 역할이 중요할 수 밖에 없는데, 그래서 평소에 자아의 힘을 키워 놓아야 한다고 지은이는 강조하고 있다.

리비도(Libido)와 타나토스(Thanatos)도 빼놓을 수 없겠다. 프로이트는 인간을 움직이는 두 가지 욕동(본능적 욕구의 움직임)이 있다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삶의 욕동인 리비도(성 에너지)와 죽음의 욕동인 타나토스(공격성)인 것이다. 이를 발표할 당시만 해도 금욕주의가 팽배한 분위기 속에서 프로이트는 엄청난 비난을 받아야 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불편한 진실'로 인정받고 있다.

지은이는 사람의 마음을 마치 순두부와 같아서 조금만 건드려도 흔들리고 쉽게 뭉그러진다고 얘기하고 있다. 이렇게 여린 마음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준비해 놓고 있는데 이를 정신분석학에서는 방어기제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방어기제란 "두렵거나 불쾌한 정황이나 욕구 불만에 직면했을 때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하여 자동적으로 취하는 적응행위"를 말한다.

우리의 마음 속에는 여러가지 다양한 방어기제들이 상주해 있다. 정도언 교수는 방어기제에도 와인처럼 품질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잘 숙성된 와인과 같은 것으로는 유머, 승화, 이타적 행위가 있고, 격리, 피동적 공격, 부정, 분리, 왜곡, 해리와 같이 보졸레 누보처럼 미성숙한 방어기제들도 많다.

이런 방어기제들은 내 마음을 덜 불편하게 한다. 하지만 방어기제를 너무 즐겨 쓰고 그것이 내 마음 안에서 굳어지면 결국은 내 마음의 진실을 가리게 되고 결국은 그것이 증상으로 나타난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되도록이면 좀더 잘 익은 최고급 와인같은 방어기제를 쓰고, 더 나아가서는 방어기제를 너무 즐겨 쓰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겠다.

완전히 검거나 완전히 흰 '선명한' 인생은 없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에는 검은색과 흰색의 중간인 여러 채도의 회색들이 필요합니다. 통합되지 않고 대립된 상태로 저장된 선명한 이미지들만 마음에 지니고 있으면 세상이 온통 갈등 구조로 보여 살기가 힘들어집니다. 내 마음이 언제나 싸움터라고 생각된다면 자신이 세상을 몇가지 색으로 구분하고 있는 지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색을 들여다 보는 것, 그것이 정신분석이 우리를 치유하는 방법입니다.

지은이는 에필로그에서 독자들에게 갇힌 마음을 풀어달라고 조언한다. 21세기의 화두인 마음을 다스리는 약은 마음이기 때문에 마음은 마음으로 부둥켜 안고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독자들 스스로가 당연히 내 마음을 잘 안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좀더 자유로워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아무리 쉽게 풀어서 설명한다고 해도 분명 정신분석은 어려운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 내가 무의식 속에 감춰진 나의 마음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으려면 물론 전문적인 이론 공부도 중요하겠지만 책 표지에 나와 있듯 편안한 카우치에 누워 정신분석가에서 얘기하듯, 아픈 곳을 숨기려고만 하는 자신과 마주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훨씬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책을 덮었다.

이제 중요한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걱정하는 일들의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좋은 소식이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이 인생의 비극입니다. 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불안에 떨며 걱정을 했고, 그래서 뭔가를 준비했기 때문에 그 일들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우깁니다. 자신의 운명에 스스로 마법을 건 것으로 착각합니다. 일종의 주술적인 사고입니다.  - 확실하지 못한 것을 견디지 못해요 : 불안

공포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공포와 맞서 싸우지 말고 공포를 내 마음의 식구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공포는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건강한 반응입니다. 공포를 성취욕으로 바꾸면 그것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공포를 공황으로 변질시키면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그 경계선에 있습니다.  - 살게 만드는 강력한 힘 : 공포

우울 증상 역시 내 마음이 나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너무 앞서 나가지 말고 이제는 좀 속도를 줄이면서 천천히 나와 내 삶을 성찰해 보라는 경고이자 기회입니다. 내 자아와 내 초자아를 살펴 보세요. 자아가 너무 약해진 것인지, 초자아가 너무 강해져서 내 스스로 나를 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 잃어버린 편지가 돌아오다 : 우울

현명한 사람들은 '고독'과 '외로움'을 구분해 말합니다. 고독이란 '혼자 있는 즐거움'이고 외로움은 '혼자 있는 고통'이라고 합니다. 외로움은 덜어내야 좋은 감정이지만 고독은 추구해야 할 이상일지도 모릅니다.  - 고독과 외로움을 구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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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그대로 행복하라 - 흔들림 없는 인생을 위한 틱낫한의 365일 마음 수업
틱낫한 지음, 배인섭 옮김 / 더난출판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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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만한 해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궁핍함을 느낀다. "행복"이란 언제나 그랬듯 인류에게 주어진 최고의 화두가 아닐까 싶다. 육체의 배고픔은 해결했지만 그보다 더 근원적인 정신의 허기를 채울 수 없으니 사람들은 잡힐 듯 하면서도 실체가 보이지 않는 사막의 신기루와도 같은 행복 찾기에 저마다 열심이다.

"지금 이 순간 그대로 행복하라"에는 인류의 정신적 멘토이자 달라이 라마와 더불어 생불(生佛)로 불리는 틱낫한 스님이 전하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리며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읽어볼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30분도 채 걸리지 않아 이 책을 다 읽었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 평생을 읽어도 다 읽지 못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씌어져 있어 잘 읽히지만 우리가 찾는 궁극의 행복이란 것이 우주 만물이 시작도 끝도 없는 하나임을 깨닫는 길은 결코 쉽게 다다를 수 있는 것이 아님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일 년 365일을 열두번째 달 쉰셋째 주로 나누어 각각에 걸맞는 가르침을 담아놓고 있다. 주제와 어울릴 듯, 또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사진들은 이 책의 또다른 화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 전에 읽었던 혜민 스님의 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 실린 글들과 묘하게 오버랩되는 것을 느꼈다. 

 

"세상이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쉬면 세상도 쉽니다."

나는 나를 둘러싼 세상이 참 바쁘게 돌아간다고 느낄 때
한 번씩 멈추고 묻는다.
"지금, 내 마음이 바쁜 것인가, 아니면 세상이 바쁜 것인가?"

 

마음을 닫고 허둥지둥 하루를 지내다 보면
할 일은 너무 많고
시간은 너무 부족합니다.
그대 마음이 온종일 뛰라고 재촉하나요?
그대 안의 부처가 말합니다.

"멈추어라!
그대 눈앞의 순간을 맞이하고
깊이 호흡하라!
평화와 환희가 찾아와
그대 두 손 꼭 잡아 주리니."


틱낫한 스님은 '행복은 지금 이 순간 그대의 눈앞에 있음'을 얘기하고 있다. 행복은 이미 그대 곁에 찾아와 그대를 향해 미소 짓고 있는데 행복하기 위해서 무엇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지, 왜 지금 이 순간 행복할 수 없는 지 우리에게 물어보고 있다. 마음을 깨우면 우리 곁에 숨쉬는 행복의 가치를 깨닫게 될텐데 그것이 또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인가 보다.

 

숨 쉬며 살아가는 매 순간은 반짝이는 보석과 같습니다.
지구, 하늘, 구름을 담은 보석.


책 제목 자체가 바로 진리다.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 지극히 소중한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이 바로 행복일 것이다. 삶 자체가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삶이 괴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관념을 놓아 버리고 마음을 비우면 우리는 자유롭고, 그 자유 속에서 행복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고요해짐을 느꼈다. 스님의 가르침대로 숨을 들이쉬며 고요한 물이 되고, 숨을 내쉬며 깊은 평화를 느낄 수 있도록, 흔들림 없는 인생을 위해 매일매일 명상을 해야겠다. 깨어 있는 눈으로 보고, 깨어 있는 귀로 듣고, 깨어 있는 발로 걷고, 깨어 있는 마음으로 느낄 수 있도록. 그리하여 나와 그대가 함께 행복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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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여행과 고양이 - 최병준의 여행공감
최병준 지음 / 컬처그라퍼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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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하게도 지은이의 서문이 없는 책이다. 인생의 대부분을 여행 담당기자로 살아온 최병준이라는 사람은 그래서 자신의 삶과도 같은 여행을 23개(엄밀히 셈하자면 24개)의 키워드로 표현해 냈다. 그 키워드를 책과 함께 풀어내는 방식을 쓰고 있기 때문에 책 제목도 '책과 여행과 고양이'로 뽑아냈던 게 아닐까 싶다.

나 역시도 여행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키워드로 그간의 경험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우선은 그간의 여행의 행로가 아직은 짧고 보잘 것 없기 때문이요, 그것을 담아낼 글솜씨도 사진 실력도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의 폭넓은 식견과 잘 다듬어진 글솜씨와 시선을 잡아끄는 사진 한장한장이 부럽기만 하다.

공항은 여행을 향한 열정을 생산해 내는 곳이다. 공항은 연인과 비슷하다. 출발할 때는 막 사귄 애인처럼 설레지만, 돌아올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연애를 통해 인생을 배우듯이 공항은 인생을 배우는 곳이다. 여행을 알아가는 곳이 공항이다.  -P.19 공항

해외여행 경험이 딱 한번 뿐이긴 하지만 공항에서의 에피소드는 풍성하다. 마치 어느 시골역 같았던 중국 국내선 공항에서 바라보던 이국 밤하늘의 별들도, 비행기가 연착되는 바람에 공항에서 불편한 잠을 청해야 했던 악몽같았던 시간들도 이제는 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답게 포장되어 감성을 자극한다.

다음에 공항에 가게 된다면 지은이의 충고대로 여행 초보 티를 내지 않게 옷차림은 허름하게 하는 편이 좋겠다. 언제 읽다 덮어도 상관없는, 시작과 끝이 따로 없는 책 한권과,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안되는, 두꺼운 양장표지가 붙은, 단어의 뜻이 맞나 틀리나 해석해야 할 것 같은 그런 책, 이렇게 두권의 책을 준비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지.

"개 같은 여행을 해왔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고양이 같은 여행'이 그리워진다. 늙어갈수록 고양이처럼 늘어지고 자유롭고 도도해지고 싶다."

지은이는 여행도 개 같은 여행이 있고, 고양이 같은 여행이 있다고 표현했다. 가난한 여행자들의 낙천적인 여행이 바로 그것이다. 돈이 아쉬워서 늘 몸을 낮은데로 굴리는, 그래서 돈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쉬고 싶으면 쉬어갈 수 있는, 시간으로부터는 자유로운 여행이 개 같은 여행이다. 천하고 더럽다는 게 아니라 낙천적이고 여유로운 여행자들의 여행법이다. 

이에 반해 고양이 같은 여행은 좀 까다롭다.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고양이처럼 호텔을 가리고, 식당을 가리는 깔끔한 여행법이다. 늦잠을 자고 느지막히 일어나 브런치를 먹고 뒹굴거리면서 책이나 읽는 여행이 바로 고양이 같은 여행이라 지은이는 규정하고 있다. 나이를 먹어가면 개 같은 여행보다는 고양이 같은 여행이 그리워지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여행의 시작 / 공항, 호텔, 관찰
여행의 풍경 / 개, 고양이
여행의 체험 / 미술관, 건축, 사진
여행의 친구 / 커피, 맥주, 담배
여행의 여정 / 걷기, 열차, 택시와 버스
여행의 아름다움 / 밤, 백야, 로맨스
여행의 즐거움 / 에티켓, 패스트푸드, 슬로푸드
여행의 가르침 / 종교, 탐험가, 우주여행

아마 내가 나중에 여행에 관한 책을 쓰게 된다면 분명 그 책에 담길 키워드는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것들과는 다를 것이다. 물론 사진이나 맥주, 커피, 밤, 기차, 버스, 로맨스 같은 것은 여행의 공통분모가 되어 줄 수도 있겠지만 공항보다는 허름한 시골역이나 터미널이, 호텔보다는 민박집이나 여관이, 미술관보다는 폐교를 개조한 예술가의 갤러리가 그 빈자리를 채워주게 될 것 같다.

어느 것이든 무슨 상관이랴. 개 같은 여행보다 고양이 같은 여행이 우월할 수 없듯 그것은 그저 여행자의 여행의 방식일 뿐이다. 그것이 이국적이고 매혹적인 풍경이든, 우리가 곁에서 늘 보아오던 익숙한 풍경이든 문제가 되질 않을 것이다. 우리가 그 여행을 통해서 충분히 설레고, 즐겁고, 그래서 행복했으면 그걸로 충분히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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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고 채우는 즐거움, 절집 숲
전영우 지음 / 운주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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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즐기는 가장 쉬우면서도 좋은 방법은 우리 주변의 어떤 숲에서나 자기 스스로 풍경 속의 한 점경(點景)이 되어 보는 것이다. 그냥 숲 바닥에 널려 있는 바위에 걸터앉거나 또는 숲 바닥에 그대로 퍼질러 앉아 몸과 마음을 고요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고요한 상태에 이르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들 대부분은 몸과 마음이 모두 번다하거나, 혹은 하나가 고요하더라도 다른 하나는 번다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욕심과 기대와 집착이 파도처럼 끊임없이 몰려 오는데, 어떻게 하면 한 순간이라도 몸과 마음을 고요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을까.

나는 절집 숲은 물론이고, 어떤 숲이든 찾을 때마다 '지금 이 순간 이 공간'에 온전히 머무는 일에 집중한다. 시간과 공간의 합일에 의해 만들어진 풍광 속에 놓인 나 자신에 집중함으로써, 일어날 수 있는 잡념을 떨쳐버리고, 다른 일을 벌이고 싶은 욕심을 내려 놓는다. 이런 마음으로 숲에 몰입하면 '욕심과 기대와 집착'이 잦아들기 시작하며, 작은 것에도 마음의 풍요를 느낄 수 있다.


산림생물학 박사인 국민대 전영우 교수가 펴낸 '비우고 채우는 즐거움, 절집 숲'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오래 전부터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는데 조금 비싼 책값 때문에 한참을 망설였던 기억이 있다. 술 한잔 마시는 돈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데 책을 고를 때면 또 그게 맘처럼 쉽지 않다.

이 책의 지은이는 절집 숲의 가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일상의 번잡함을 내려놓고 '참 나'를 만나는 곳, 느림과 비움의 공간, 1,700년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는 곳이라고 말이다. 그 어떤 표현도 지나침이 없는 말들이다.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스물 네곳 절집의 숲들은 한결같이 깊고 풍요로운 공간이다.

그래서 그 곳에 들어서면 나는 번잡한 속세의 일상을 금새 잊어버릴 수 있고, 수많은 욕심과 집착에 사로잡혀 있던 나를 버리고 참다운 나를 만날 수가 있다. 그 숲을 느린 걸음으로 걷다 보면 부질없는 마음의 먼지들이 다 씻겨져 나가 내 마음이 어느새 텅텅 비어있는 듯한 청량감을 맛볼 수가 있는 것이다.

스물 네곳 절집 숲들의 아름다운 풍광이 사진 속에 오롯이 담겨져 있다. 숲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뿐만 아니라 지은이의 사진 실력까지도 무척 부럽다. 이른 봄에서 매서운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한겨울까지 그는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는 절집들을 찾아 그만의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아 놓았다. 그 사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책값은 이미 충분히 뽑은 셈이다.

읽어가다 보니 그동안 나도 꽤 열심히 다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소개된 전등사, 용주사, 신계사, 수타사, 봉선사 등 다섯 곳을 제외한 열아홉 곳의 절집 숲을 이미 다녀왔다. 그 중에 어느 절이 최고다라고 섣불리 얘기할 순 없지만 책의 제일 첫머리에 소개되어 있는 개심사를 다녀왔던 지난 봄의 기억이 문득 떠올라 책을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마치 사진 속으로 내가 걸어 들어가 풍경의 일부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그날의 시간으로 돌아간 나는 그저 고요하고 평온했다. 그럴수만 있다면 내 마음에도 절집 숲처럼 푸르고 풍성한 숲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숲 속에서 마음을 씻고, 마음을 열어 '나'를 내려 놓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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