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커넥션 - 지구온난화에 관한 어느 기후 과학자의 불편한 고백
로이 W. 스펜서 지음, 이순희 옮김 / 비아북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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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9월 개봉했던 다큐멘터리 영화 '불편한 진실'은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미국의 부통령을 지냈고 지금은 환경운동가를 활동하고 있는 앨 고어는 이 영화에 등장해 전세계 곳곳에서 심각한 환경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기상이변의 주범으로 인간들의 무분별한 소비행태가 만들어낸 지구 온난화를 지목하고 있다.

영화 속에 비쳐진 지구 온난화의 문제는 두려울 정도다. 전 세계의 이름난 대부분의 빙하 지대가 녹아내려 심각한 자연 생태계의 파괴를 불러왔고, 지금과 같은 속도로 CO₂가 증가하게 된다면  오래지 않아 플로리다, 상하이, 인도, 뉴욕 등 대도시의 40% 이상이 물에 잠기고 네덜란드는 지도에서 사라지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물론 지구 온난화는 진실이다. 각종 통계자료를 통해서 우리는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기후 변화의 조짐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도 내내 사라지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기후 변화도 사실이고, 그로 인한 지구 온난화도 엄연한 진실이지만 과연 그 책임을 온전히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CO₂ 등 온실가스에 전가하는 것이 합당한가 하는 것이다.

 

지구 온난화라는 주제에 관심이 많은 동료들과도 몇해 전에 자주 얘기를 했었던 기억이 난다. 수십억 년이 넘는 지구 역사를 통해 수차례의 빙하기를 겪었고 그때마다 지구는 심각한 환경 변화에 직면했었다. 수많은 생명이 사라졌고, 살아남은 종들은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를 거듭해왔다. 지구의 역사는 곧 이러한 기후 변화에의 적응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산업혁명을 거쳐 급속한 산업화가 전세계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배출된 온실가스가 지구의 평균온도를 급속하게 상승시키고, 지구 역사 상 가장 높은 온도를 기록하게 만든 원인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다소 성급하고 위험한 일일 것 같다. 영화 '불편한 진실'에서 얘기하고 있는 '진실' 역시 우리가 순진하게 곧이 곧대로 받아 들이기에는 불편한 이면들이 많다.

미국우주항공국(NASA)의 기후 전문가인 로이 W. 스펜서는 '기후 커넥션'이라는 책을 통해 매스 미디어, 산업화된 선진국들의 지도자들에 의해서 확대 재생산되면서 공포로 확산되고 있는 '지구 온난화'는 조작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스펜서 박사는 지구가 더워지는 것 자체는 사실이지만 스스로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종교화된 신념의 단계에까지 이른 지구 온난화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금의 온난화는 인간의 잘못이 아닌 자연적인 현상이며, 온난화로 인한 지구의 위기는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이 없다고 스펜서 박사는 얘기하고 있다. 온난화 공포에 편승해 대중을 속이고 정치인과 과학자들에게게 천문학적인 자금을 퍼주는 대신 지구 온난화의 정확한 원인을 밝혀낼 수 있는 강수 시스템 연구와 지구 온난화를 극복할 수 있는 과학자를 양성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책 표지에 씌어져 있는 '지구 온난화에 관한 어느 과학자의 불편한 고백'이라는 표현을 통해 저자의 속마음을 잘 읽을 수 있다. 로이 W.스팬서는 앨 고어가 '불편한 진실'이란 영화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얘기하고자 하는 진실 또한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고 혹평하고 있지만 그가 300페이지에 가까운 책을 통해 얘기하고자 하는 지구 온난화의 조작된 공포에 대한 고백 역시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니 절반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확실한 것은 현재로서 지구 온난화는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기온 상승으로 인한 대홍수와 가뭄, 혹한과 혹서를 경험하게 될 것이며 기후 패턴도 완전히 뒤바뀌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인류의 생명과 지구 생태계를 위협할 것이 분명하다.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자연적인 것이든, 혹은 인간의 무분별한 소비행태에서 비롯된 것이든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의 일상생활 속 작은 실천들이 필요다는 것만큼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진실',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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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서 만나는 우리 문화 - 문화유산 해설사 따라 사찰 여행
박상용 지음, 호연 그림 / 낮은산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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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수많은 절들을 찾아 다녔으면서도 정작 불교 문화와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던 것 같다. 절은 절하는 곳이라는데 나는 법당에 들어가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가장 낮은 자세로 절 하는 법이 잘 없었던 것이다. 절은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그저 세상과 떨어진 산사의 고요함과 절집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것에 만족했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순간 부끄러움을 느꼈다. 절에 들어서면서 차례로 지나게 되는 문들이 어떤 의미인지, 수많은 탑과 불상, 그리고 전각들은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고, 왜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는 것인지에 대한 자타의 의문에 자신있게 답할 수 없음에 답답했다. 좀더 알게 되면 좀더 많은 것을 보게 되고, 또한 좀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도 한 몫 했다.

대학에서 중국어와 중문학을 전공하고 2002년부터 문화유산 해설라로 활동하고있는 박상용 선생님이 지은 <절에서 만난 우리 문화>라는 책은 사실 어린이들을 위한 불교 문화 개설서로 씌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 유산이기도 한 이 땅의 불교 문화재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만들어진 책이라고는 하지만 불교 문화와 절에 있는 문화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나같은 어른들에게도 읽기에 적당한 책이다. 절에 있는 안내판이나 전문가들이 어려운 말로 설명해 놓은 글들을 아무리 읽어 보아도 이해되지 않던 것들을 마치 함께 걸으며 옆에서 조곤조곤 설명해 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좋다.

최근 들어 불상을 훼손한다거나 법당에서 예배를 보는 등 일부 종교 신자들의 그릇된 신앙으로 인해 종교간 갈등과 반목이 골이 깊어지고 있다. 전국에 수천개에 달하는 전통 사찰을 비단 불교라는 종교의 대상이라는 좁은 범주에서 볼 것이 아니라 수천년을 우리와 함께 해온 역사와 문화로 인식하는 것이 편견과 오해를 줄이는 방편일 것이다. 모든 종교의 본질은 사랑이며, 이를 통한 심적인 평화를 구하는 데 있다. 만약 종교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자신의 종교만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종교인의 자세가 아닐 것이다.

일찍이 불교에서는 절 건물 벽에 그림을 그려 글을 잘 알지 못하는 무지한 백성들에게 진리를 전달하는 방법으로 사용했었다. 태어나면서 죽음에 이르는 매 순간순간이 벼랑 끝의 삶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안수정등이나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단순한 깨우침을 일깨워 주는 발설지옥 벽화 역시 이런 목적에서 그려진 것들이다.

이 책에서는 여느 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심우도를 비교적 상세하게 그림과 함께 설명하고 있다. 잃어버린 소를 마음에 비유하고, 소를 찾아 나서는 소년을 세상살이를 공부하는 수행자에 비유한 그림인 심우도를 통해 결국 소와 사람, 둘 다를 잊고 진리를 깨우친 다음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그림 속에서 종교의 참뜻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물론 절에 대해서, 불교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고 해서 절을 찾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저 아무런 마음 없이 절을 여유롭게 걸어보고 마음 속 부처님을 향해 절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지 모른다. 하지만 해남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의 추천사처럼 절에 있는 건물이며 탑이며 불상 들을 볼 때 불교에 대해 알고 있다면 우리 것에 대한 이해의 폭이 더 넓어질 것이고, 그 순간 우리의 마음도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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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전쟁? - Issue & Thinking 03
빌헬름 자거 지음, 유동환 옮김 / 푸른나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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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물 쓰듯 한다"는 말이 있듯 물이야 말로 흔하디 흔한 자원이었다. 그랬던 것이 언제부턴가 물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물론 이 넓은 지구에 지리적, 기후적 영향 때문에  물이 모자랄 수 밖에 없는 곳도 있겠거니, 그저 머나먼 남의 나라 얘기로만 치부했었는데 우리나라가 '물 부족 국가'냐 아니냐를 두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저널리스트이자 자유 기고가인 빌헬름 자거(Wilhelm Sager) <물 전쟁?>이라는 책을 통해 물이란 무엇이며, 물을 통해 화려한 문명을 피워 온 인류가 당면한 물 부족 위기를 국제 협력을 통해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하는 총체적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물에 대한 권리는 인간의 기본권이다. 깨끗하고 안전한 물이 인종과 지역, 빈부를 넘어 모든 사람에게 적정한 비용으로 충분히 공급되어야 한다. 그러나 물의 빈부 격차, 지역적 격차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전 세계에서 11억 명의 인구가 깨끗한 식수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으며 26억 명이 기본적인 공중위생 설비조차 없는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특히 매년 1,800만 명의 어린이가 더러운 물로 전염되는 설사병으로 사망한다. 개발도상국에서 더러운 물의 사용은 무력 충돌이나 에이즈보다 더욱 큰 위협이다

따라서 지구에 존재하는 수자원을 적절히 배분하는 것은 전 세계가 힘을 합쳐 해결해야 할 중요한 정치적 과제다. 중요한 자원과 그 개발을 놓고 일어나는 갈등은 폭력적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이는 우리 모두에게 닥칠 수 있는 일이다
.
'
물 전쟁'은 미래에 닥칠 일이 아닌, 바로 현재의 문제다!" 


위대한 문호 괴테는 "모든 것은 물에서 비롯되었고, 모든 것은 물을 통해 살 수 있다."고 얘기한 바 있다. 식상한 말 같지만 인체의 70% , 지구 표면적의 75%를 구성하고 있는 물 없이는 어떤 생명체도 살아갈 수 없음은 당연하다. 생명의 근원인 물은 그래서 가장 흔한 듯 보이면서도 가장 귀중한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의 총량은 지구 생성 이후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마시고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은 인구 증가와 이에 따른 산업화와 무분별한 개발, 환경오염으로 촉발된 지구 온난화 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자원 보전에 필요한 자본과 기술이 있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후진국 사이의 격차가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가 물이 풍부한 큰 강을 끼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들은 무서운 자연의 힘 앞에서 지혜롭게 제방을 쌓고 수로를 만들어 농업을 발달시켜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다는 자랑스런 인류의 역사에만  관심이 있을 뿐, 문명의 발달이 자연의 파괴와 환경 훼손을 불러와 결국에는 문명의 몰락을 부추겼다는 불편한 진실에는 애써 눈감아 왔었다
.

지금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물 부족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인구의 폭발적 증가는 인류가 제어하기 힘든 측면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인간의 무한한 욕망으로 인해 숲이 파헤쳐지고 돈벌이의 수단으로 공정에 투입된 수많은 오염물질이 정화되지 않은 채 강으로 유입됨으로써 결국 인간이 마실 수 있는 물이 줄어들게 되었다는 것 그 자체가 비극이다. 또한 소수의 가진 자들 추악한 탐욕이 불러온 모진 댓가를 힘없는 제3세계 사람들이 져야 한다는 것은 더더욱 슬픈 일이다
.  

저자는 이 책에서 전 세계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는 물 분쟁의 예를 소개하고 있다. 또한 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러한 크고 작은 분쟁들이 종국에는 '물 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경고하고 있다어찌보면 물 전쟁은 고대의 세계 4대 문명을 둘러싼 쟁탈전이나 이후 수많은 전쟁의 역사 속에서 이미 시작되었고,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

생명에 필수불가결한 자원인 물은 점점 부족해지고 있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수자원 개발과 효율적인 분배가 이루어진다면 지구상의 식수원만으로도 온 인류가 생존하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문제는 여전히 물 부족 문제가 국제 사회에서 과소 평가되고 있다는 것이며 이로 인해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의지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

WTO
나 세계은행 등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확산을 노리는 진영에서는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될 생명의 근원인 물을 사유화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세계 물 시장을 노린 거대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우리나라 역시 상수도 사업의 민영화 등 물 산업을 육성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
 
물론 세계화도 좋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물은 생존을 위해 누구에게나 필요한 재화다. 어느 누구의 힘으로 발명해 내거나 생산해 낸 것이 아닌 자연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소중한 자원을 사유화해서 돈벌이에 이용한다는 자체가 인간성의 상실이 아닌가 여겨진다.

 

물론 공공 부문에 물 공급을 맡겨두는 것이 효율성 면에서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낮은 물 값으로 인해 물 낭비를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명을 담보로 물 부족을 해결하려는 생각은 지금도 더러운 물로 인해 생명에 위협을 받고 있는 인류에게는 지나치게 가혹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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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물 쓰듯 한다"는 말이 있듯 물이야 말로 흔하디 흔한 자원이었다. 그랬던 것이 언제부턴가 물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물론 세계 구석구석에 사막이라든가 지형적으로 물이 모자랄 수 밖에 없는 곳도 있겠거니, 그저 머나먼 남의 나라 얘기로만 치부했던 것이 우리나라도 '물 부족 국가'냐 아니냐는 두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저널리스트이자 자유 기고가인 빌헬름 자거가 지은 <물 전쟁?>이라는 책을 통해 물이란 무엇이며, 물을 통해 화려한 문명을 피워 온 인류가 당면한 물 부족 위기를 국제 협력을 통해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하는 총체적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물론 그 답이란 것 역시 정형화된 것은 아니요, 큰 틀에서의 방법론만 제시하고 있기는 하다.

위대한 문호 괴테는 "모든 것은 물에서 비롯되었고, 모든 것은 물을 통해 살 수 있다."고 얘기한 바 있다. 식상한 말 같지만 인체의 70% , 지구 표면적의 75%를 구성하고 있는 물 없이는 어떤 생명체도 살아갈 수 없음은 당연하다. 생명의 근원은 물은 그래서 가장 흔한 듯 보이면서도 가장 귀중한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지구상에 있는 물의 총량은 지구 생성 이후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마시고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은 인구 증가와 이에 따른 산업화와 무분별한 개발, 환경오염으로 촉발된 지구 온난화 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자원 보전에 필요한 자본과 기술이 있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후진국 사이의 격차가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가 물이 풍부한 큰 강을 끼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주지의 사실이다. 무서운 자연의 힘 앞에서 지혜롭게 제방을 쌓고 수로를 만들어 농업을 발달시키며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다는 인류사의 긍정적인 부분에는 관심이 있을 뿐 문명의 발달이 자연의 파괴와 환경 훼손을 불러와 결국에는 문명의 몰락을 부추겼다는 부정적 측면에는 애써 눈감아 왔던 측면이 크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지금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물 부족 문제 역시 이같은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물론 인구의 폭발적 증가는 인류가 제어하기 힘든 측면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인간의 무한한 욕망으로 인해 숲이 파헤쳐지고 돈벌이의 수단으로 공정에 투입된 수많은 오염물질이 정화되지 않은 채 강으로 유입됨으로써 결국 인간이 마실 수 있는 물이 줄어들게 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가진 자들의 탐욕의 모진 댓가를 힘없는 제3세계 사람들이 져야 한다는 것은 더더욱 슬픈 일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전 세계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는 물 분쟁의 예를 소개하고 있다. 또한 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러한 크고 작은 분쟁들이 종국에는 '물 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경고하고 있다. 어찌보면 물 전쟁은 고대의 세계 4대 문명을 둘러싼 쟁탈전이나 이후 수많은 전쟁의 역사 속에서 이미 시작되었고, 반복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터키의 수자원 개발 프로젝트를 둘러싸고 벌어진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터키, 시리아, 이라크 간의 갈등, 중동 지역의 물 수요를 어떻게 충족시키느냐 하는 것이 국가 안보와 직결되어 있는 요르단 강의 이스라엘, 시리아, 요르단, 팔레스타인 간의 물 분쟁은 앞으로 중동 지역의 평화 정착에도 중요한 선결과제가 될 것이 분명하다.

국제적인 물 분쟁 사례는 이것만이 아니다. 그 길이가 무려 6,671킬로미터에 달해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인 나일강은 북아프리카 10개국의 국경을 관통해 흐른다. 역사적으로 이집트, 에티오피아, 수단은 나일 강의 물을 놓고 싸워 왔다. 수자원의 95%를 나일 강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이집트가 식민지 시대의 해묵은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는 이유도 충분히 납득이 되기는 하지만 르완다, 콩고, 우간다, 케냐, 탄자니아 등 급격한 인구 증가와 가난으로 인해 물 사정이 좋지 않은 나일 지역 국가가 어디 한두 나라겠는가. 

물론 이러한 물 분쟁을 평화적이고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있다. 콜로라도 강을 둘러싸고 미국과 멕시코가 '공동의 자원을 합리적으로 나눠 써야 두 국가 간에 산적한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협력할 수 있으며 이 지역 전체의 안정도 이룰 수 있다.'는 당연한 견해에 동의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중국,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미얀마 등 메콩강 유역 국가들이 '한 나라의 이익을 다치게 하는 일 없이 메콩 강을 적절하게 분배'하는 것에 합의한 사실이나 남부 아프리카에 닥친 물 문제를 효과적으로 협력하고 조절하기 위해 14개 국가가 남아프리카 개발 공동체를 세워 서로 협력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물 부족 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생명에 필수불가결한 자원인 물은 점점 부족해지고 있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수자원 개발과 효율적인 분배가 이루어진다면 지구상의 식수원만으로도 온 인류가 생존하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문제는 여전히 물 부족 문제가 국제 사회에서 과소 평가되고 있다는 것이며 이로 인해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의지가 지금 현재로서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WTO나 세계은행 등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확산을 노리는 진영에서는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될 생명의 근원인 물을 사유화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세계 물 시장을 노린 거대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상수도 사업의 민영화 등 물 산업을 육성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세계화도 좋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물은 생존을 위해 누구에게나 필요한 재화다. 어느 누구의 힘으로 발명해 내거나 생산해 낸 것이 아닌 자연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소중한 자원을 사유화해서 돈벌이에 이용한다는 자체가 인간성의 상실이 아닌가 여겨진다. 물론 공공 부문에 물 공급을 맡겨두는 것이 효율성 면에서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낮은 물 값으로 인해 물 낭비를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명을 담보로 물 부족을 해결하려는 생각은 지금도 더러운 물로 인해 생명에 위협을 받고 있는 인류에게는 지나치게 가혹한 일이 아닐까 싶다.

"물에 대한 권리는 인간의 기본권이다. 깨끗하고 안전한 물이 인종과 지역, 빈부를 넘어 모든 사람에게 적정한 비용으로 충분히 공급되어야 한다. 그러나 물의 빈부 격차, 지역적 격차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전 세계에서 11억 명의 인구가 깨끗한 식수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으며 26억 명이 기본적인 공중위생 설비조차 없는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특히 매년 1,800만 명의 어린이가 더러운 물로 전염되는 설사병으로 사망한다. 개발도상국에서 더러운 물의 사용은 무력 충돌이나 에이즈보다 더욱 큰 위협이다. 

따라서 지구에 존재하는 수자원을 적절히 배분하는 것은 전 세계가 힘을 합쳐 해결해야 할 중요한 정치적 과제다. 중요한 자원과 그 개발을 놓고 일어나는 갈등은 폭력적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이는 우리 모두에게 닥칠 수 있는 일이다.
'물 전쟁'은 미래에 닥칠 일이 아닌, 바로 현재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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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물 전쟁? - 미래에 닥칠 일이 아닌, 바로 현재의 문제!
    from 흐르는 강물처럼.. 2012-07-10 13:43 
    예로부터 "물 쓰듯 한다"는 말이 있듯 물이야 말로 흔하디 흔한 자원이었다. 그랬던 것이 언제부턴가 물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물론 세계 구석구석에 사막이라든가 지형적으로 물이 모자랄 수 밖에 없는 곳도 있겠거니, 그저 머나먼 남의 나라 얘기로만 치부했던 것이 우리나라도 '물 부족 국가'냐 아니냐는 두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저널리스트이자 자유 기고가인 빌헬름 자거가 지은 이라는 책을 통해 물이란 무엇이며, 물을..
 
 
푸른가람 2012-07-10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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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이덕일 / 김영사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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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에게 있어 우암 송시열이라는 인물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조선왕조실록에 무려 3천번 이상 언급될 정도로 조선 후기 이후 지금까지도 우리 역사상 가장 치열한 논란의 대상이라는 그는 과연 그 수사에 어울릴만큼 극단적인 찬사나 저주를 받았던 적이 있었으며, 또 그를 지금 또다시 재조명해 볼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이것이 진보적 역사학자라 일컬어지는 이덕일의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라는 책을 읽고 난 후의 솔직한 느낌이다. 나 역시도 역사에 관심이 많기도 했거니와 올해 초에 읽었던 함성호의 '철학으로 읽는 옛집' 탓에 송시열과 그의 정적 윤증의 옛집을 찾아 직접 여행을 다녀오기도 할만큼 송시열에 대한 관심이 커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랬던 차에 이 책을 만나게 됐고 '노론의 300년'에 대해 유독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는 일부 역사학자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 보게 됐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자 여러 화제작을 통해 젊은이들이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갖게 만든 장본인이자 편향된 역사의식을 지닌 재야사학가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고 있는 이덕일 소장은 책의 서문에서 그의 의지를 밝히고 있다.

"이 글은 이런 의문에 대한 필자 자신의 추적이며 나름의 해답이다. 한 가지 밝혀둘 것은 송시열은 내게 호오(好惡)의 대상이 아니라 역사의 탐구 대상일 뿐이라는 점이다. 송시여로가 그가 이끌었던 한 시대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그를 통해 현 시대를 바라보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지 그에 대한 극단적 찬사나 비난이 목적은 아니다."  - 20쪽. 서문 중에서

이 글은 다분히 그간의 행적에 대한 일부의 비난을 의식한 것이 아니었나 여겨진다. 개인적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겠다는 의지를 나타냄으로써 송시열과 그가 이끌었던 노론의 시대를 논하고자 했지만 솔직히 얘기하자면 "한국사의 최대 금기", "한 인간을 둘러싼 300년 신화의 가면 벗기기' 같은 표현도 물론 저자 자신의 의지는 분명 아니었겠지만 그것에서부터 벌써 한쪽으로 치우친 느낌이 들어 불편한 생각이 든다.

물론 우암 송시열이라는 인물이 우리 역사에서, 특히 인조반정과 병자호란을 거쳐 조선 중기 이후의 거친 정치적 격변기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다. 그는 이덕일의 표현대로 우리의 공식적 역사상 가장 큰 관심과 논란을 일으켰으며 또한 국왕과 맞설 수 있을만큼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었던 최대 당파의 수장이기도 했다.

또한 예송논쟁과 이로 인해 격화된 당쟁으로 촉발된 불행했던 조선의 정치현실에서 그가 보여줬던 편협함과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우리 역사가 겪어야 했던 비극의 책임에서 그가 벗어날 수 없음도 당연하다. 하지만 많은 유학자들이 그 과정에서 서로를 죽고 죽이는 피비린내나는 권력투쟁을 벌인 것이 비단 송시열 혹은 노론만의 책임은 아닐 것이다.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해서까지 다른 당파를 철저히 권력에서 배제시키고자 했던 것은 남인과 소론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이 책을 읽고나니 비단 우암 송시열 개인에 대한 아쉬움 보다는 조선왕조의 태생적 한계로 인해 잉태된 역사의 비극이 아쉽게 느껴질 따름이다. 친명사대라는 국제 질서에 지나치게 몰입함으로써 민족적 주체성을 상실한 데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 판단에도 눈이 어두웠던 탓에 두차례의 호란을 겪으며 국가적 치욕과 민초들의 고통을 불러온 집권층의 문약함을 탓할 수 밖에 없다.

또다른 하나는 주자학이라는 좁은 틀에 얽매여 학문 자체가 교조주의적으로 흘러가 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유학의 편협함은 오늘날에도 변하지 않고 오히려 더 고착화되는 면이 있어 보여서 안타깝다. 세상 그 어떤 학문보다 고차원적이어서 현시대에도 충분한 연구 가치가 있는 유학이 우리나라에서는 예학이라는 이름으로 사대부들의 지배제체 강화를 위한 들러리로 전락해 버린 것 역시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면서 충분히 곱씹어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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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해부학 - 살인자의 심리를 완벽하게 꿰뚫어 보는 방법
마이클 스톤 지음, 허형은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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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어떻게 소개하는 편이 나을까 생각하니 어렵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왜 이렇게 두껍고 어려운데다 비싸기까지 한 책을 샀을까 의문이 들 정도다. 책 표지에는 '살인자의 심리를 완벽하게 꿰뚫어 보는 방법' 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긴 하다. 내가 왜 굳이 살인자의 심리를 꿰뚫어 볼 필요가 있었을까 싶기는 하지만 내용 자체는 흥미롭다.

이 책의 저자 마이클 스톤(Michael Stone) 교수는 컬럼비아 의과대학 임상정신의학 교수이자 미국 최고의 범죄 심리 전문의로 '범죄 심리학의 아인슈타인'으로 불린다고 한다. 하지만 프롤로그에서 그가 밝혔듯 악의 심리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접근이라는 의미에서 그를 범죄 심리학의 프로이트로 불리는 것이 더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는 악을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악의 실체를 완전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우리가 노력한다면 악이라는 대상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고 그는 믿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도처에서 범죄는 쉴 새 없이 발생한다. 갈수록 범죄는 흉포화되고 사이코패스라는 전문용어가 일상적인 단어로 인식될 정도로 '악'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기도 하다.

이 책에는 단순 살인자부터 정신질환자, 사이코패스, 악명높은 연쇄 살인범에 이르기까지 600명의 살인자의 심리를 통해 범죄를 악의 등급 22단계로 분류해 분석하고 있다. '범죄의 해부학'이라는 제목처럼 그는 생각하기조차 싫은 범죄의 현장으로 들어가 범죄자의 심연 속을 메스로 해부해 독자들에게 펼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좀 더 간명한 정의를 내리기 위해, 무엇이 악의 '정수'인지 정리해 보자. 어떤 행위가 악행이 되기 위해서는,

1. 기가 막힐 정도로 끔찍해야 하고,
2. 사전의 악의(악한 의도)가 행위에 앞서야 하며,
3. 희생자에게 가한 고통의 정도가 극도의 과함이 있어야 하고,
4. 범행의 성질이 이해 불가능하고 당혹스러우며 평범한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야 한다.


책의 내용은 당연히 불편하고 혹은 경악스러운 범죄 케이스들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굳이 이 책을 재미삼아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도덕적으로 세상을 살아간다고 가정해도, 우리 모두는 충격적인 범죄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주변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좀더 차가워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진정한 절대악은 존재하는 것인지. 진정한 악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본성인지, 양육인지, 어릴 때 당한 성적 학대 때문인지, 마약 남용 탓인지, 아니면 타고난 '나쁜 씨앗' 때문인지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이와 관련된 연구성과를 관련 분야는 물론 일반 대중에게까지 알리는 일은 단순한 학문적 관심을 너머 실용적인 부문에서도 무척 중요하다.

우리는 차마 사람으로서 못할 나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흔히 '짐승같은 놈' 이라고 욕한다. 하지만 이것은 엄청난 아이러니다. 왜냐하면 악의 심리는 오직 인간에게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동물과 달리 죽음과 고통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또 상상할 수 있으며, 남을 증오할 줄도 알며, 이러한 증오의 대상이 사라지면 얼마나 행복할까 상상할 줄도 아는 존재라는 얘기다. 인간의 천성은 선한 것인가 악한 것인가 하는 골치아픈 철학적 질문을 떠나 그저 나부터 내 주변 사람들까지 악의 기운이 좀더 사그라들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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