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네 여행기 을유세계문학전집 129
하인리히 하이네 지음, 황승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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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
대개 유람 목적으로 떠나는 것을 여행이라 일컫는다. 사람들이 여행을 원하는 이유는 ‘떠나는’ 행위 자체에 있다.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즐거움과 자유를 만끽하곤 한다.

『하이네 여행기』는 내가 생각한 여행기와는 많이 달랐다. 통상적으로 ‘여행기’라 하면 여행에서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이 펼쳐질 거라고 예상하지 않나. 그러나 내가 주로 읽게 된 텍스트는 하이네의 견해였다.
이 책은 연작시인 「북해」 1부와 2부, 산문인 「북해」 3부와 「이념—르그랑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뒤로 갈수록 여행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그나마 시에서 여행지 풍경의 아름다움을 가장 많이 읽을 수 있었고 「북해」 3부에서도 관련 묘사가 등장하긴 했다. 여행 이야기는 10 정도, 거기에서 파생된 하이네의 만담이 90인 것 같았지만. ‘마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념—르그랑의 책」는 솔직히 여행과의 관련성을 딱히 찾을 수 없었다. 정말 제목에 충실한, 하이네의 이념으로 점철된 산문이었다.

책 소개에 이런 문구가 있다.
‘더불어 하이네는 아이러니를 잘 활용한 풍자의 대가로 불리는데, 이 책에서도 신조어나 다의어를 이용한 언어유희가 두드러진다.’
하이네식 풍자는 산문에서 돋보였다. 하지만 그 시대(19세기) 사람이거나 독일인, 최소 유럽인이어야 이해할 수 있는 게 대부분이었다. 주석에 친절히 설명이 되어 있어 그걸 읽으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순 있었으나 온전히 이해했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그리고 생각보다 강한 어휘가 사용되었고 어투에도 풍자가 묻어 있어서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진담이고 아이러니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내가 독일어를 유창하게 잘해서 원문으로 읽었다면 상당히 다르게 다가왔을 것 같다. 번역하기 정말 어려웠으리라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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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 ⠀ ⠀*

꿈꾸는 내 머리가 기대고 있는
배의 판자벽에 파도가,
거친 파도가 부딪혀 부서지네.
철석이는 파도가 내 귀에
가만히 속삭이네.
“얼빠진 친구야!
자네의 팔은 짧고 하늘은 넓지,
저 위의 별은 황금 못으로
단단히 박혀 있지—
동경도 탄식도 헛될 뿐,
잠이나 자는 게 좋을 걸세.“

⠀ ⠀ ⠀ ⠀ ⠀ ⠀ ⠀ ⠀ ⠀ ⠀ ⠀ ⠀ *

흰 눈으로 뒤덮인 고요한
광막한 황야를 꿈꾸었지.
하얀 눈 아래 묻힌 나는 외롭고
서늘함 죽음의 잠을 잤지.

하지만 저 위 캄캄한 하늘에선
별들의 눈동자가 내 무덤을 내려다보았지,
달콤한 눈동자! 눈동자는 반짝였지, 의기양양하게,
소리 없이 즐겁게, 그러나 사랑을 듬뿍 담고서.

⠀ ⠀ ⠀ ⠀ ⠀ ⠀ ⠀ ⠀ ⠀ ⠀ ⠀ ⠀ ⠀ ⠀ ⠀ ⠀ ⠀ ⠀ ⠀ 「선실의 밤」 中

들판의 밀처럼
생각도
우리의 마음속에서 자라고 일렁인다.
그러나 시인의 섬세한 생각은
그 틈에서 즐겁게 피어나는
빨간 꽃과 파란 꽃들이다.

⠀ ⠀ ⠀ ⠀ ⠀ ⠀ ⠀ ⠀ ⠀ ⠀ ⠀ ⠀ ⠀ ⠀ ⠀ ⠀ ⠀ ⠀ ⠀ ⠀「에필로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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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신은 영원한 권리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교회법으로 제한할 수 없으며 교회 종소리로도 잠재울 수 없다. (105쪽)

정신의 작품은 영원히 고정되지만 비평은 가변성이 있다. 비평은 특정 시대의 견해에서 생겨나 그 시대에서만 의미를 지닌다. 슐레겔의 비평처럼 비평이 그 자체로 예술적 가치가 없는 경우, 시간이 지나면 무덤으로 들어간다. 새로운 생각을 잉태하는 시대는 새로운 눈도 가지게 되고, 이 눈으로 기존의 정신적인 작품에서도 새로운 것을 많이 보게 된다. (116-117쪽)

「북해」 3부에서 일부 문장들을 발췌한 것이다. 사실 하이네의 글을 읽으며 시대가 바뀌었음을 체감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여성에 관한 문장들에서 그렇게 느꼈다. 불편한 마음이 들 때면 ‘비평은 가변성이 있다’는 문장이 떠올랐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 실린 하이네의 산문들은 작품보다는 비평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괴테를 비롯한 수많은 창작자들의 작품을 거론하고, 심지어 일부 작품들은 대놓고 풍자하기 때문이다. 하이네는 본인의 말이 본인의 글에도 적용될 거라는 걸 예상했을까. 그건 알 수 없지만, 내 안에선 의도치 않게 깨어 있는 사람으로 자리잡았다. 마치 ‘열린 교회 닫힘’ 같은 사람 같달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된 게시물입니다.
#독일문학 #시집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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