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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 바우쉬 - 끝나지 않을 몸짓 ㅣ 현대 예술의 거장
마리온 마이어 지음, 이준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4월
평점 :
수업 시간에 피나 바우쉬를 배운 적 있다. 교수님께선 피나 바우쉬가 창안한 탄츠테아터의 무용적 발화에 관해 강의하셨다.
탄츠테아터의 무용에서는 각기 다른 개별적 존재들이 공존한다고 하셨다. 이것은 작품을 작가가 ‘만드는’ 것인 작가 중심주의와 대조된다.
또 탄츠테아터의 무용에는 철저하게 의미를 내려놓는 비언어적인 힘이 존재한다고 하셨다.
’비언어적인 힘‘이라는 게 당시에는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 이번에 『피나 바우쉬-끝나지 않을 몸짓』이라는 책을 읽으며 비로소 체감할 수 있었다.
“나는 의도를 밝히는 것이 대해 경계할까 합니다. 그것은 분명 모든 작품에서 볼 수 있잖아요. 그걸 다시 알아차리게 만들려면 내가 시인이었어야 할걸요.” 그녀가 자신의 작업을 말로 옮기는 것을 얼마나 불편해했는지, (중략) 대담과 인터뷰에서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언젠가 그녀는 만약 모든 것을 말할 수 있었더라면 자신은 결코 안무를 할 필요가 없었을 거라고 밝힌 적이 있다. (50쪽)
“나는 말로는 할 수 없던 모든 감정을 춤으로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그토록 많은 다양한 분위기, 그토록 많은 음조와 색조. 그리고 풍성함을 유지하는 것, 그것을 제한하지 않는 것, 다양한 분위기를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들의, 우리들의 모든 감정은 아주 정확합니다.“ (58-59쪽)
피나 바우쉬의 발언들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그래서일까. 이 책 역시 그의 안무에 대한 해설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무용수들이 어떤 동작을 취하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무대 배경이 어떤지 등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거나 기술한다. 피나 바우쉬의 ‘무용적 발화’와 가치관을 존중하기 때문에 저자가 그렇게 한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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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제전>에서는 무대 바닥에 토탄土炭이 두텁게 뿌려져 있었다. 바우쉬는 분출하고 휩쓸어 가는 군무로 희생 이야기를 거칠고 무자비하고 난폭하고 그러면서도 극도로 감정적이고 에로틱하고 관능적으로 들려줬다. 붉은 옷으로 알아볼 수 있는 선택된 여성은 남성들과 여성들의 전선 사이에 들어간다. 그녀는 그들에게 극적으로 죽도록 뒤쫓긴다. 마지막에는 모든 무용수가 토탄과 땀으로 이루어진 층으로 짙게 물들어 있다. (88쪽)
두번째 사진이 <봄의 제전>의 한 장면이다. 나는 무용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다. 그래서 전문적인 시선으로 뜯어볼 순 없지만,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무언의 힘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게 바로 다양한 존재들의 공존에서 비롯되는 힘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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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담고 싶은 문장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이른바 예술은 오히려 작은 집에서 생겨나고, 그러면 큰 집이 그걸 사들이죠.” (173쪽)
결국 피나 바우쉬에게는 “사적인 것”을 구현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알고 있고 그것에서 관객이 자신을 재발견하는 보편타당한 무언가를 개인적인 것에서 보여 주는 것이 관건이다. (249쪽)
“불현듯 춤을 통해 음악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 반대이기도 했습니다”라고 부르커르크는 설명했다. (272쪽)
피나 바우쉬는 언젠가 음악은 250번을 들어도 여전히 좋아야 한다고, “닭살이 돋는 느낌”이 들어야만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276쪽)
피나는 소진될 때까지 마음으로 보았노라고 했다. (282쪽)
춤이란 무엇인가? 가장 강력한 표현은 몸이에요. (중략) 작품 속의 인간 한 명 한 명이 나에게는 중요하답니다. 나는 각자에게 무엇인가를 발견해 주어야만 하지요. (308쪽)
내 작품들은 언제나 양쪽 다입니다. 명랑하고도 슬프죠. 작품은 대립적인 감정들을 먹고산답니다. (309쪽)
공감되는 문장도 있었고(특히 음악 관련 문장) 문장 자체로 너무 좋은 문장도 있었다. 피나 바우쉬의 예술관을 뚜렷이 알 수 있는 문장들이었다. 예술 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닮고 싶은 부분이 많은 사람이다. 나도 그처럼 활활 불태우다 소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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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 바우쉬는 그녀의 작품 속에서 계속 살아 있다. (301쪽)
본문의 마지막 문장이다. 부제인 ‘끝나지 않을 몸짓‘과 더없이 잘 어울리는 문장이다. 내 마음 한편에도 그의 정신이 오래도록 남아 있을 듯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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