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이야기 - 개정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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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유명한 책이라 언젠간 꼭 읽어보아야 할 책 중 하나였던 파이 이야기를 드디어 만나보았다. 16세 소년과 벵골 호랑이가 바다에 표류하며 지낸 이야기라는 큰 가닥만 알지 세세한 이야기를 몰랐기에 더욱 기대감을 가지고 책을 펼쳤다. 도입부의 작가노트에는 인도여행을 하며 글감을 찾고 있었고 중 프랜시스 아디루바사미라는 노신사로부터 파텔이라는 인물을 알게 되고, 캐나다로 돌아와 파텔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게 되었다고 나온다. 그래서 이 책이 실화인지 허구인지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픽션임을 확인하고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 보았다.

 

제목 파이에서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건 먹는 음식이었기에 왜 이름을 이렇게 지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인도 폰티체리에서 동물원을 운영하시던 아버지 산토시 파텔의 둘째 아들 파이. 아버지의 친구분인 마마지(프랜시스 아디루바사미)의 오래된 레퍼토리였던 프랑스 파리의 최고의 수영장 피신(piscin, 수영장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몰리토가 주인공 인도 소년의 이름이 된다. 피신 몰리토 파텔은 발음을 잘못해 피싱 파텔(‘소변을 보는이란 뜻의 pissing)로 불리면서 놀림감이 되었기에 중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소개할 때 간단히 줄여서 파이 파텔이라 부르고 π=3.14라고 다시 한 번 더 강조하고 각인시키며 소변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름이 수영장과 관련이 있으니 당연히 수영을 해야 하는 것처럼 마마지 아저씨의 가르침으로 열심히 수영을 배우며 10대 초반을 보냈다. 이름 이야기에 이어 파이의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파이 부모님은 나름 특별한 종교가 없었지만, 이모 덕분에 힌두교식 통과의례를 치른다. 어린 아기였지만 이 경험은 힌두교 신앙의 뿌리를 내리게 된다. 이 힌두교인 파이는 14살에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고 15살에는 이슬람교를 받아들인다. 세 개의 신앙 모두가 파이에 소중한 믿음으로 자리 잡는다. 절대 이 세 개의 종교가 파이 안에서 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 오히려 이 세 개의 종교가 파이를 더욱 평화롭게 만든다. 그리고 성인이 된 파이는 여전히 이 모든 종교를 다 포용하고 살아간다. 모든 사람이 파이같이 종교에 대한 넓은 포용력을 가지고 있다면 아마 종교전쟁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파이가 16살 때 동물원을 정리하고 가족 모두 캐나다 이민 길에 오른 배가 침몰하면서 이 배의 유일한 생존자가 된 파이는 하이에나, 얼룩말, 오랑우탄, 벵골 호랑이라는 웃지 못할 조합으로 구명보트에서 지내게 된다. 결국, 약육강식의 동물 세계에서 살아남은 벵골 호랑이(리차드 파커)와 파이는 7개월간의 험난한 표류기가 시작된다. 200kg이 넘는 맹수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한 파이의 부단한 노력 속에 구조의 희망을 키우지만, 시시때때로 드리우는 죽음의 그림자는 희망을 침몰시킨다. 망망대해 속에서 생사의 고비를 넘기며 동지 아닌 동지가 된 파이와 리처드 파커는 서로에게 외로움을 달래는 정신적인 조력자 같은 그런 존재가 된다. 천만다행으로 이 7개월이 넘는 표류기는 멕시코 해안에 도착하게 되면서 끝이 나고 리처드 파커는 밀림 속으로 사라진다.

 

"간디는 '모든 종교는 진실하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신을 사랑하고 싶을 뿐이에요." (p.110)

 

공포심에 대해 한마디 해야겠다. 공포심만이 생명을 패배시킬 수 있다. 그것은 명민하고 배반 잘하는 적이다. 관대함도 없고, 법이나 관습을 존중하지도 않으며, 자비심을 보이지도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가장 약한 부분에 접근해 쉽게 약점을 찾아낸다. 공포심은 우리 마음에서 시작된다. 언제나 우리는 잠시 차분하고 안정되고 행복을 느낀다. 그러다가 가벼운 의심으로 변장한 공포심이 스파이처럼 어물쩍 마음에 들어선다. 의심은 불신을 만나고 불신은 그것을 밀어내려 애쓴다. 하지만 불신은 무기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보병과 다름없다. 의심은 간단히 불신을 해치운다. 우리는 초조해진다. 이성이 우리를 위해 싸워 온다. 우리는 안심한다. 이성은 최신 병기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뛰어난 기술과 부인할 수 없는 여러 번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이성은 나자빠진다. 우리는 힘이 빠지고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초조감에 끔찍해진다. (p.236~237)

 

 

형을 잃는 것………. 함께 나이 드는 경험을 하고, 형수와 삶의 나무에서 새로운 가지를 칠 조카들을 선사해줄 사람을 잃는다는 것. 아버지를 잃는다는 것………. 길잡이가 되어 도움을 주고, 가지를 받쳐주는 기둥처럼 나를 든든히 받쳐줄 사람을 잃는다는 것. 어머니를 잃는다는 것………. 머리 위의 태양을 잃는다는 것. 미안하지만 더 이상 이야기하지 못하겠다. 나는 방수포에 누워서 양팔에 얼굴을 묻고 밤새 슬퍼하며 울었다. 하이에나는 밤새 얼룩말을 먹었다. (p.190~191)

 

리처드 파커를 길들여야 했다. 그 필요성을 깨달은 것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것은 그의 문제나 나의 문제가 아니라 그와 나의 문제였다. 우리는 문자 그대로 또 비유적으로도 같은 배에 타고 있었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 터였다. (p.240)

 

생존은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했다. 내 경험상 조난자가 저지르는 최악의 실수는 기대가 너무 크고 행동은 너무 적은 것이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데서 생존은 시작된다. 게으른 희망을 품는 것은 저만치에 있는 삶을 꿈꾸는 것과 마찬가지다. (p.247)

 

상반되는 것 중 최악은 권태와 공포다. 우리 삶은 권태와 공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추다. 바다가 주름살 하나 없다. 바람의 속삭임조차 없다. 시간이 영원까지 계속될 듯하다. 어찌나 권태로운지, 의식불명에 가까운 상태로 빠진다. 그러다 바다가 거칠 어지면 감정은 광풍에 휩싸인다. 그러나 이 두 상반되는 것조차 명확하게 남지 않는다. 권태 속에는 공포라는 요소가 있다. 눈물을 터뜨린다. 끔찍함이 당신을 가득 채운다. 비명을 지른다. 일부러 자해를 한다. 한데 공포의 손아귀 - 최악의 폭풍우 속에 서도 당신은 권태를 느낀다. 그 모든 것과 함께 깊은 나른함을 느낀다. (p.313)

 

나는 아이처럼 울었다. 고난을 딛고 살아나서가 아니었다. 물론 고난을 극복하긴 했지만, 형제자매를 만나서도 아니었다. 사람을 본 것이 감동적이긴 했지만. 내가 흐느낀 것은 리처드 파커가 아무 인사도 없이 날 버리고 떠났기 때문이었다. 서투른 작별을 하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p.410)

 

 

이 긴 고난의 끝이 언제일지 읽는 내내 조마조마했고 파이의 강인함, 침착함, 대범함, 현명함, 믿음, 인내심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라면 진작에 신도 희망도 믿음도 다 포기하지 않았을까? 리차드 파커를 바다로 빠뜨릴 방법을 찾지 않았을까? 16세 소년이 이렇게 침착할 수가 있었던 근원의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당근과 채찍질을 잘 활용해 리차드 파커를 조난의 동거자로 잘 길들였던 파이와 그런 파이의 의도에 잘 따라준 리차드 파커는 최고의 파트너였다. 그래서 성인이 된 파이가 여전히 리차드 파커를 그리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겠다. 이 이야기의 주된 내용은 7개월간의 파이와 리처드 파커의 믿을 수 없는 표류기이지만 이 안에 담고 있는 주제는 하나로 단정 지을 수 없다. 우리의 삶은 조난과도 같은 역경과 고난을 경험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희망과 좌절을 경험할 수 있다. 기적과 같은 생사의 고비에서 지속된 삶의 연장에선 신에 대한 믿음이 한없이 커질 수도 있고 불가지론자가 될 수도 있다. 이 표류기 안에는 인생의 이야기가 있다고 사람들이 평가하듯 개개인이 이 책에서 찾는 인생의 이야기와 주제는 제각각일 것이다. 무언가 내가 떠올릴 수 있는 단어들로 이 책을 단정하기엔 내 언어의 범위가 너무 편협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광범위하다. 우리의 삶은 망망대해의 난파선과 다르다고 말할 수 없고 그 고난과 역경 속에서 무언가를 찾을지는 개인의 몫이다. 이 인생의 이야기가 담기 표류기에서 각자의 인생 이야기를 찾아보기를 권한다.

 

 

"세상은 있는 모습 그대로가 아니에요.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죠. 안 그래요? 그리고 뭔가를 이해한다고 할 때 우리는 뭔가를 갖다붙이지요. 아닌가요? 그게 인생을 이야기로 만드는 게 아닌가요? " (p.433)



*출판사 작가정신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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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밥 안 할래! - 나답게 살기 위한 61세 독립선언서
김희숙 지음 / 아미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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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심 책 제목 때문에 덥석 내 손안으로 온 책 , 밥 안 할래!. 주부인 나는 아직도 식사를 준비하는 게 뚝딱이 아닌 꾸역꾸역이다. 게다가 청소년인 아이들에게 솜씨는 없어도 손수 밥을 차려주는 게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격려가 될 거라는 나름의 책임감을 느끼고 주말에 남편이 있을 때 한 끼 정도 , 밥 안 할래라고 말할 수 있다. 매일매일 이렇게 외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기에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정말 내 얘기를 하는 건가 싶어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제목에 이끌려 만난 이 책의 저자는 두 번째 암을 진단받고, 33년간의 교직 생활을 그만두면서 일상의 변화를 맞이하고 이제부턴 자신을 위해 즐기는 삶을 살자는 목표로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독립 선언서를 작성하고 , 밥 안 할래!’라고 가족들에게 말한다. 인생의 첫 독립을 위한 독립 선언서에는 가족과의 관계,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것, 의무감에서 벗어나고, 자연과 함께 걷는 것을 포함한다.

 



암 환자의 경험담을 담아 혹시나 마음을 무겁게 봐야 하는 건 아니냐는 나의 기우가 무색할 정도로 평범한 일상을 행복하게 즐겁게 생각하고 실천하는 모습이 담겨있어서 밝은 기운으로 읽을 수 있었다. 암 환우 모임에서 암 친구들을 서로 아미라고 부른다고 한다. 저자는 아미이기도 하고 BTS의 팬클럽 ‘ARMY’라고 당당히 말하며 세계 여행을 하며 BTS 노래를 부르며 지구촌 어느 곳에서 ARMY들을 만나 사귈 날을 상상한다. 학창 시절 이야기, 딸과 함께 하는 소소한 행복의 시간, 여행에서의 소중한 추억 등 평범함 속에서 누리는 행복을 편하게 그려냈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기리는 자식의 마음도 아주 예쁘게 담아내고 있어서 내 부모님에 대해 감사함과 지금 내 곁에 계실 때 더 잘하자는 다짐도 하게 된다.

 

물론 밥을 안 한다고 멋지게 선언했지만 가족에 대한 애정이 솟구칠 때면 서비스로 종종 밥을 한다. 함께 밥을 한다는 인식이 사라지지 않게 주의하면서. 설령 그 이전처럼 내가 밥을 한다. 하더라도 나는 이제 밥을 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다. (p.22~23)

 

나는 늘 내가 입은 옷보다 빛나는 인간이고 싶었다. 옷의 값어치보다 못한 초라한 인간으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 상대방이 빛나는 인격에 매료되어 내가 무엇을 입었는지 알아차리지 못하기를 바랐다. (p.69)

 

다행히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야 한다는 사실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 자식한테나 세상일들에 적절함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얼마 전 아파트 배관을 새로 바꾸는 공사를 했다. 늘 샤워기의 적절한 수온을 맞추기 힘들었는데 이젠 쉽다. 딱 좋은 온도에서 샤워하면서 편안함을 느낀다.

세상과 나, 이제 편안한 딱 좋은 온도를 찾는다. (p.105)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자주 가는 남산 길에 있는 아름드리 벚나무 한 그루를 '엄마 나무'로 정했다. 그리고 산책길을 오가며 엄마 나무를 향해 인사한다.

"엄마, 안녕?" (p.117)

 

누군가와 마음 편하게 농담할 수 있다면 그건 얼마나 행복 한 관계일까, 상대방에게 무장해제당하는 그 느낌. 그건 필시 그 사람에게 중독되는 거겠지.

 '넌 내게 너무 중독적이야!(p.128)

 

있다가 없어지면 그것의 소중함을 안다지만, 늘 그 자리에 있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는 것은 사실 어렵다. 난 요즘 문득문득 그 자리에 있는 것들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한다.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얼만큼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한참 고민했지만, 결국 답을 찾지는 못했다. 그냥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정도. (p.130)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맘속에 있음을 말해주는 책이라 말하고 싶다. 암이라는 생의 고비를 넘기고도 이렇게 자신 있게 당당하게 즐겁게 삶을 살아나가는 저자의 모습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작가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목록을 적어보고 그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기운이 나는 순간들을 가져보리라 다짐했다.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그 누군가 아닌 바로 나니까!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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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어 1 - 신을 죽인 여자
알렉산드라 브래컨 지음, 최재은 옮김 / 이덴슬리벨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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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그리스 신화는 알고 있는 이야기라도 다시 만나도 그 신화만이 가진 매력에 또다시 빠져들게 된다. 익숙한 듯하면서도 매번 새롭게 느껴지는 신화 속 신들이 현재 뉴욕을 배경으로 지속해서 펼쳐지고 게다가 인간에 의해 죽을 수 있다는 이 놀라운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아홉 신이 나를 배반했으니, 이제 그들에 대한 잔인한 복수를 명한다.

일곱에 한 번씩 일곱 날 동안

그들도 너희 인간들처럼 필사의 몸으로 땅을 걷게 될지니 너희의 혈통을 이어받은 후예 중 누구든

너희에게 지워진 운명의 길을 깨뜨리고

너희의 생명줄을 불멸의 황금실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제우스가 남긴 시의 일부

 

제우스는 그리스신화의 영웅 카드모스, 오디세우스, 테세우스, 아킬레우스, 페르세우스, 멜레아그로스, 벨레로폰테스, 이아손, 헤라클레스 가문의 후손들에게 아홉 신을 벌하기 위한 목적으로 7년에 한 번 7일 동안 아곤을 열어 신이 인간의 육신으로 인간들의 사냥에 맞선다. 인간이 신을 제거하게 되면 그 신의 능력을 갖추게 되고 아곤이 끝나면 신의 존재로 남게 된다. 인간이 신이 되어도 7년마다 열리는 이 아곤에서 다른 인간의 손에 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길고 긴 싸움의 승자는 영원할 수 없어 보인다. 주인공 로어는 페르세우스 가문의 마지막 후손으로 7년 전 가족이 모두 카드모스 가문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 후 신과 인간의 전쟁에서 자유를 찾고 싶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살아왔지만 어린 시절 아킬레우스 가문에서 훈련을 받으며 친하게 지냈고 죽은 줄 알았던 카스트로와 다시 재회한다. 이번 212번째 아곤이 뉴욕에서 열리며 부상당한 몸으로 자신을 찾아온 아테나가 대신 그녀의 복수를 해주겠다는 조건으로 동맹을 맺으며 이 전쟁에 참여한다. 카드모스의 후손이자 아레스를 제거해 뉴아레스가 된 래스는 제우스가 남긴 위 시의 완성본이 아이기스에 남겨졌고 이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페르세우스 가문의 로어라 생각하고 그녀를 추적한다.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다른 가문들이 협력하지 않으면 몰살시킴으로써 막대한 세력을 가진 래스에게 맞서기 위해 살아남은 가문의 후손들과 신 그리고 새로운 신과의 위태로운 동맹이 하나씩 맺어지며 1권의 이야기가 끝이 난다.

 

"아곤에는 용서 따위 없다." 아테나가 말했다. "오로지 생존, 그리고 반드시 완수해야 할 과업만 있을 뿐" (p.392)

 

여자이기에 아무리 뛰어나도 가문의 대표가 될 수 없는 상황, 여자가 신을 죽였기에 자신의 가문이 몰락해서 치욕스러운 시간을 보냈던 로어가 앞으로 이 전쟁에서 신과 뉴신 그리고 후손들 사이에 중계자 역할을 해나가며 래스를 이겨 평화를 찾을 수 있을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뉴아폴론이 된 카스트로와의 관계는 또 어떻게 발전할지도 궁금하다. 한 편의 할리우드 영화를 보는 듯한 이 느낌과 신화를 현대로 가져와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펼치는 작가의 놀라운 아이디어와 필력에 감탄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었다. 그리스신화와 <헝거게임>의 만남이라는 설명에 동감하며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분명 흥미로운 이야기를 선사할 것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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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의 세계사 - 왜 우리는 작은 천 조각에 목숨을 바치는가
팀 마샬 지음, 김승욱 옮김 / 푸른숲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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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거시적인 큰 흐름을 보느냐 아니면 하나의 사건이나 관점에서 미시적으로 볼 것인지로 나뉜다면 이 깃발의 세계사는 한낱 작은 천 조각으로도 치부할 수 있는 깃발에 왜 사람들이 열광하는가에 관해 이야기한다. 지리의 힘의 저자 팀 마셜이 이번에는 지역, 국가, 민족, 종교, 정치, 이념 등의 포괄적인 의미가 반영된 깃발을 소재로 세계사를 이야기한다. 1장 미국의 성조기로부터 출발해 2장 유니언잭(영국), 3장 십자가와 십자군(유럽), 4장 아라비아의 깃발(아랍), 5장 공포의 깃발(중동의 분쟁지역), 6장 에덴의 동쪽(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 7장 자유의 깃발(아프리카), 8장 혁명의 깃발(라틴아메리카), 9장 그 외 다양한 깃발로 마무리된다.

 

분명한 것은 이런 상징들이 여전히 막강한 힘을 발휘하며, 사상을 재빨리 전달하고 감정에 강렬히 호소한다는 점이다. 현재 지구상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국민국가가 존재하고 있으나, 국가가 아닌 행위들도 싸구려 상품의 진부함에서부터 종교적 폭력과 인종적 폭력의 타락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개념을 전달하는 간략한 시각적 요소로서 깃발을 이용한다. (P.18)

 

미국인에게 성조기는 하나님 아래 하나의 나라라고 묘사하는 나라의 신성한 상징이다. 미국 국기만큼 인정받는 국기도 없고, 부정적인 감정과 긍정적인 감정을 대규모로 일으키는 국기도 없다. 처음 성조기를 도안한 사람이 누구인지 불분명하며 183년 동안 여러 번의 변화를 거쳐 지금의 성조기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성조기에 그려진 50개의 별은 50개의 주를 상징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졌지만 색깔이 무엇을 상징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으니 미국인이 그 색깔을 자유로이 해석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충성, 명예, 존중, 자유,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 성조기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정해놓은 법과 규정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며 대단히 상징적이어서 외국인들이 보기에는 과하게 깃발을 떠받드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영국 국기는 유니언기 혹은 유니언잭으로도 불린다. ‘(jack)’이라는 단어는 1600년까지 작은 돛대에 휘날리는 작은 깃발에 사용되었고 유니언 깃발은 30년도 안 돼서 특정한 종류의 돛대에 흔히 게양되었는데, 이제는 그런 돛대가 이라고 불렸다. 잭은 오로지 배에서만 게양되었다가 여러 과정을 거쳐 지금의 국기가 되었다. 하지만 유니언 잭을 영국 국기로 명문화한 법은 지금까지 통과한 적이 없지만, 관습과 실행을 통해 이 깃발이 국기가 되었다. 영국 국기는 여러 상징의 연합이라는 점에서 영국의 여러 지역 안에선 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1707년 잉글랜드(당시 웨일스와 병합한 상태)와 스코틀랜드가 합병되면서 채택된 성 조지 십자가를 우위에 놓은 최초의 유니언 깃발(잉글랜드 깃발로 이미 1세기 전부터 사용되고 있었다)1801년 아일랜드가 합쳐질 때까지 사용되었다. 그 뒤에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성 패트릭의 빨간색 솔 타이어가 깃발에 추가되어 오늘날과 같은 모양이 만들어졌다.

삼색기를 하면 제일 먼저 프랑스기를 떠올리게 된다. 역사적으로 4세기의 생 마르탱의 망토 색깔인 파란색, 8세기 샤를마뉴의 빨간색, 15세기 잔 다르크의 하얀색이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게 되며 여러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프랑스 삼색기가 되었다. 프랑스가 유럽을 점령하면서 이탈리아 국기에 영향을 주었다. 유럽의 여러 삼색기 국기들과 차별적인 것이 바로 스칸디나비아 십자가다.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아이슬란드의 국기에서 파란색이나 빨간색으로 색깔만 달라진 약간 깃대 쪽에 가깝게 치우쳐서 오른쪽 이 길게 늘어난 십자가 모양이 들어가 있다. 5개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기로 간주되는 덴마크 국기(단네브로)를 기반으로 한다. 십자가가 아니지만, 그리스도교를 상징하거나 공화정의 영향을 받은 국기들이 유럽의 국기들이다. 그 외에도 유럽 각국이 3색의 다양한 의미로 국기를 만들었다.

3억이 넘는 아랍인들 중 대다수는 아랍어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하며, 종파는 다르지만 이슬람교를 믿는다. 아랍의 여러 국가가 같은 색을 이용해 다양한 깃발을 국기로 하는데 이는 제1차 세계대전 때 중동을 지배하던 터키에 대항한 범아랍주의 운동이 하얀색, 검은색, 초록색, 빨간색이 들어간 깃발을 사용한 데서 기인한다. 예언자 무함마드와 관련된 하얀색과 초록색, 아바스 왕조가 구시대와 새 시대를 구분하기 위해 사용한 검은색이지만 빨간색은 무엇을 상징하는지 정확하지 않다. 오스만제국의 본을 따라서 다양한 배경에 별과 초승달이 그려진 깃발을 채택한 나라들도 있다.

 

중동에서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바탕으로 비국가 테러 단체들이 각자의 깃발을 사용한다. 이 중 IS는 미디어를 이용해 잔혹함을 알림으로써 테러의 의미를 넘어선 공포의 검은 깃발이 되었다. 헤즈볼라, 파마스, 파타, 알아크사, 카삼은 그들이 주로 활동하는 지역을 위한 메시지를 내보이지만, IS는 전 세계 이슬람공동체에 보내는 범무슬림 시그널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인도 국기인 티랑가는 삼색기라는 뜻으로 1920년대 간디가 국기의 기본 도안을 들고 나왔다. 빨간과 초록은 각각 힌두교와 무슬림을 상징하는 것인데 인도 내 다른 수많은 집단이 상징하는 하얀 띠를 중앙에 넣고 인도의 자립 경제를 의미하는 물레를 넣었다. 1931년 맨 위의 빨간색이 노란색으로 바뀌었고 각각의 집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용기와 희생, 평화와 진리, 믿음과 기사도를 상징한다. 비단 깃발을 처음으로 사용한 중국은 현재 공산주의의 상징인 빨간 색에 왼쪽 위 노란색의 큰 별은 공산당의 지도력, 네 개의 작은 오각별은 노동자, 농민, 소시민, 애국적인 자본가를 의미하는 국기를 사용한다. 한국의 태극기는 하나의 예술작품이면서 심오한 영적인 상징이기도 하다. 순수와 청결을 의미하는 흰색 바탕에 음양의 상징인 태극 문양과 이를 둘러싼 세 줄로 이루어진 괘가 네 귀퉁이에 있다. 우주와 조화를 이루어 발전해나갈 것이라는 이상을 상징한다.

아프리카는 빨간색, 황금색, 초록색, 검은색이 독립과 자유를 상징하며 3색 혹은 4색은 범아프리카의 독립과 자유의 상징뿐만 아니라 여러 의미를 내포하며 다양한 국기로 사용되었다. 이 중 모잠비크의 국기는 총검을 꽂은 AK 돌격 소총의 현대적인 무기가 유일하게 그려져 있고, 라이베라는 4색의 패턴을 벗어나 성조기와 매우 흡사한데 이는 이 나라를 세우는데 미국에서 온 노예 출신들이 힘을 보탠 독특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남아메리카는 대륙을 아우르는 색깔은 없다. 이는 유럽에서 들어온 이민자들이 토착민보다 더 많이 살고 있기에 독립을 하면서도 대부분은 문화적으로나 언어적으로 자신을 지배하는 주인들과 뿌리가 같았기 때문이다. 19세기 초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받아 삼색기가 상징하는 자유의 이상을 받아들였다. 토착민의 상징이 사용된 유일한 국기는 멕시코인데 아즈텍의 건국신화를 배경으로 독수리가 호수에 뜬 선인장을 밟고 서서 입에 뱀을 물고 있는 것이 중앙에 그려져 있다.

그 밖에 해적을 상징하는 교차시킨 두 개의 뼈와 두개골의 졸리 로저 깃발, 백기, 적십자기, 나토 깃발, 올림픽기, 자동차 경주 결승선의 상징 체크무늬 깃발, 유엔 깃발 등 국가를 넘어선 깃발이 9장에 소개된다.

 

이 책을 따라 깃발의 여행을 하면서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단순히 비슷하게만 여겨졌던 여러 국가의 삼색기가 다양한 의미가 있다는 점, 국기에 새겨진 문양들이 상징하는 것, 국가와 지역을 넘어선 깃발들이 전달하는 여러 의미 등이 너무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했다. 종종 가미된 유머는 작가 빌 브라이슨이나 에릭 와이너가 살짝 떠올라 진지한 깃발의 역사를 조금은 편하게 웃으면서 읽을 수 있었다. 수많은 깃발이 국가 혹은 단체가 각자 고유의 개성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타적이고 편협한 길을 추구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닌 지구촌 사회 속의 모두가 하나가 되는 평화를 지향하도록 한 뜻을 모으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념, 종교, 정치, 지역을 넘어서 사랑을 내세우는 깃발이 각자의 마음에서 나부끼길 바란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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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버린 이번 생을 애도하며 - SF와 로맨스, 그리고 사회파 미스터리의 종합소설 케이 미스터리 k_mystery
정지혜 지음 / 몽실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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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냉동인간은 현대의학에서 해결되지 못한 질병이나 노화로 죽음을 코앞에 둔 경우 냉동으로 신체의 생체 시간을 멈추고 세포가 노화되지 않은 채로 보존시켰다 미래에 필요한 시간에 깨어나 다시 살아가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 냉동인간과 관련된 사람들의 상상력은 미래 사회 이야기에서 중요한 소재로 다뤄진다. 『망해버린 이번 생을 애도하며』에 나오는 미래는 냉동인간의 성공과 함께 그 기준이던 불치병을 넘어서 경제력만 되면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상업화된 사회에서 냉동인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얽히고설킨 이야기가 펼쳐진다.


 


 냉동인간 회사에 근무하는 규선이 이번에 해동될 B-17903인 김기한을 담당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기한은 꿈에서 본 여자를 만나기 위해 50년을 냉동상태로 지냈는데 이를 바라보는 규선의 시선은 탐탁지 않다. 규선에게는 8년을 만난 애인 가은과 3개월 후 결혼을 앞두고 있다. 데이트 폭력을 당했던 가은은 엄마의 선택으로 30년간 냉동인간으로 지냈었고, 이 사실을 냉동인간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규선에게 아직 밝히지 못한 상태이다. 마흔을 넘어 낳은 쌍둥이들의 앞날을 위해 냉동인간으로 17년을 살았던 주원과 자녀들, 기원이 냉동인간이 되기 전 윤영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차선, 기원의 누나 기연과 자녀들, 윤영이 결혼하고 낳은 박지환, 가은이 냉동인간이 된 후 가은의 부모를 살해했던 진욱, 냉동인간 회사를 둘러싼 비리를 추적하던 기자 은태 등 이들은 모두 가은과 규선의 과거와 현재에 깊이 연결된 인물이었다.


 


 인물들 하나하나의 이야기 속의 연결고리들이 연쇄적으로 밝혀지면서 엉킨 실타래가 풀리는 듯했다. 어느 순간 인물들이 머릿속에서 정리가 안 되어 노트에 관계도를 적으면서 퀴즈를 풀어나가는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이 책은 냉동인간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나 미래 사회 모습을 자세히 담았다기보다는 냉동인간을 둘러싼 얽히고설킨 관계가 주된 이야기이다. 자의든 타의든 다시 깨어난 세상에서 행복은 찾을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썩 긍정적인 답변을 할 수 없었다. 냉동인간이 되는 것은 어쨌든 자신이 풀 수 없는 현재의 문제를 덮어두고 미래를 지향하는 것인데 미래는 과거의 연속선 상에 놓여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은 내가 행한 악행이나 선행이 다시 내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연 앞으로 냉동인간 프로젝트는 성공할 수 있을까? 해동이 성공해 다시 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면 두 번째 인생을 축복해야 하는지 아니면 죽음을 거부한 인간의 오만함으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물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아예 꿈조차 꾸지 않는다면 그 또한 불행한 삶이지 않을까? 냉동인간이 불러올 불투명한 파장이 또 하나의 획기적 과학진보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지 아니면 사회 질서에 큰 문제를 초래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할 수 있다면 잠깐 유보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고쳐 말해줘야 하는데


운이 좋으면 인생 이 바뀌기도 한다고.


지금과 완전히 다른 상황 속에서 살아 갈 수도 있는 거라고


헛된 희망이라도 좀 가지면서 살아보라고. 그래도 되는 거라고.


망해버린 인생에도 행복의 가능 성은 존재한다고. (p.259)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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