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인연을 알아가는 인문학
인문학에 관심이 늘고 있다. 그러나 인문학의 정의가 제각각이며,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거리의 인문학자'로 불리는 저자는 2005년부터 서울역 주변의 노숙인들과 인문학으로 만나기 시작하면서 인문학의 새로운 의미를 정의하고자 하였다. 그 시작은 사람 관계의 중요성이었다. 사람을 뜻하는 '인간'이라는 말은 '사람 사이', 즉 '관계'를 의미한다. 관계는 곧 인연이다. 여기서 '인'은 한 개인의 내적인 조건이며, '연'은 외적인 조건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이 '인'보다 '연'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한다. '인'보다는 '연'이 부족하여 행복과 성공을 누리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인'이 먼저 선행되고 준비되어야 '연'을 맞은 준비가 된 사람이고 한다. 히로니카 헤이스케의 『학문의 즐거움』에서도 '인'이 '연'을 얻어서 그 사람의 희망이 되고, 행동이 되고, 결단이 되고 , 길이 만들어진다고 하였다. '인'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연'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시기와 질투가 '인'보다 '연'에서 답을 찾다보니 나온 결과가 아닐까 싶다.
삶이란 내면의 결핍과 마주하는 일
저자는 '인'을 다루기 위해 사람의 특성을 살펴보는 중 사람은 결핍의 존재라는 특성을 발견했다. 모든 사람에겐 저마다 결핍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소셜 네티워크가 발달하면서 자기 자신의 삶은 표출하는 것이 매우 자유해졌다. 저자의 말처럼 사람들은 sns를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서 끊임없이 주절대며, 자아의 향연에 동조하는 사람들과 소통한다. 이러한 소통의 이면에는 앞서 말한 '인' 을 통해 얻어야 할 답을 얻어야 할 '연'을 통해 답을 얻으려는 노력일수도 있겠다. 갈수록 sns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애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한 소통일 수도 있으나 그 내면에는 결핍을 채우려는 욕구가 있다고 생각이 든다.
저자 자신의 삶도 결핍의 삶이었다고 고백한다. 가난은 기본이었고 4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 어려서부터 집안의 대소사를 손수 해결해야 했다. 청소년기는 공장에서 전전긍긍하며 야학에서 공부하였다. 그러나 그는 결핍에 지지 않고 되레 결핍의 힘으로 살아냈다. 그는 결핍을 약점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인'. 즉, 자신의 내면을 들여보다며 내실을 단단하게하여 그것에 지지 않고 버티며 살아왔다. 그래서 저자는 타인의 결핍도 들여다보며 어루만질 수 있었고,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삶의 인문학을 나눔으로써 얻은 통찰을 이 책을 통해 나누고자 하였다. '인'에 대한 내실이 '연'으로 이어진 것이다.
저자는 삶이란 끊없이 자기 안의 결핍을 마주하는 과정이며, 결핍을 대하는 태도에서 삶이 갈린다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이름을 남긴 사람들은 결핍을 극복한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은 결핍으로 인해 좌절하지만 어떤 사람은 결핍을 경쟁력을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핍을 어떻게 마주하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결핍 덕분에 마음에 근육이 생겼고, 삶이 즐거워졌다.
결핍의 힘이다. 결핍은 힘이 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