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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성장보고서 : KBS 특집 3부작 다큐멘터리 첨단보고 뇌과학, 10년의 기록 - 엄마 뱃속에서 시작되는 두뇌 혁명
KBS 첨단보고 뇌과학 제작팀 지음, 이진영 연출, 최문주 스토리 / 마더북스(마더커뮤니케이션) / 2012년 6월
평점 :
‘태교’란 말을 들으면 의심부터 하게 된다. 무엇이든 ‘교육’이란 단어를 붙이면 왜곡되어 버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평소 그 안목을 믿고 의지하고 있던 지인들이 사준 책이지만, 의심의 눈초리를 완전히 거두지는 않고 읽었다. 새로운 정보를 대할 때 어느 정도 그런 시각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시각으로 책을 펼쳤음에도 거부감 없이 읽힌다. 그것은 이 책의 배치 때문이다. 시작부터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는 것이 옳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글의 도입부는 ‘뇌’의 성장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 결과들을 보여주고 있다. 어느 정도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해주는 것처럼 보이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어떤 정보든 100% 객관적인 정보란 없으므로.) 태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성장해가는 지, 시기별로 어떻게 감각이 발달하는지 등 다양한 연구 결과를 통해 설명해주고 있다.
특히 청각 발달에 관한 실험은 흥미로웠다. 자궁 속에 마이크를 삽입하고 태아가 어떤 소리들을 듣고 있는지를 확인한 것이다. 엄마의 ‘쿵쿵’ 심장소리, 혈액이 ‘쉬익쉬익’ 흐르는 소리, 위장에서 나는 소리들 말고도, 엄마와 간호사의 대화가 또렷이 들렸다. 자궁 속 소음은 약간 시끌벅적한 휴게실 수준인데, 무엇보다 굳이 가까이 대고 말하지 않아도 주변의 대화들을 그대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그리고 생각보다 사소한 얘기 하나에도 태아가 벌써 상처를 받기도 한다니!(최면 요법을 통해 밝혀진 사실이란다.)
그렇다면 말하지 않은 엄마의 속마음은? 느낀단다! 임신과 육아에 대해 엄마의 말과 속마음이 다른 이중적 태도가 아이에게 더 큰 불안을 준다고 한다. 물론 온전히 신뢰하기에는 미지의 영역이긴 하지만, 엄마와 태아의 교감은 언어보다 더 밀착된 온몸, 감정, 뇌로 연결되어 있을 테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10개월 동안 아이와 얼마나 교감하는가는 이 아이를 독립된 존재로 얼마만큼 인정해주고, 존재감을 부여해주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태아와 함께 하는 기간 동안 엄마는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니며, 조물주가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듯 생각조차도 태아와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새삼 몸가짐, 마음가짐을 돌아보고 정돈하게 하는 말이다.
이제 몸가짐, 마음가짐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책이 더 마음에 드는 것은 새로운 무언가를 하라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과 세 끼 밥. 어찌 보면 가장 소홀하기 쉽고, 그래서 가장 어렵기도 하다.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이야말로 가장 욕망에 침범 당하기 쉽고, 가벼이 여기기 쉽다. 가치관 자체, ‘나’ 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 일상이라는 강력한 ‘습’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동안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해왔던 생활의 습관 하나를 바꾸지 않으려고 얼마나 많은 핑계와 쉬운 합리화들이 준비되어 있는가.
그렇기에 우리가 나의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은 ‘자기 바꾸기’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산책을 하고 샤워를 한다. 화학성분 가득한 세제 대신 친환경 제품을 쓰고, 바른다. 주변 정리정돈을 미루지 않고, 환기를 자주하며 청결하게 생활한다. 소파에 누워 TV를 보거나 핸드폰을 하는 대신 허리를 펴고 의자에 앉아 글을 쓰거나 도서관에 들러 책을 읽는다. 전자파를 멀리하고, 플러그들은 뽑아두며 언어 과잉의 팟캐스트 대신 아름다운 음악을 많이 듣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먹을거리.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내가 먹은 것이 삼대를 간다.’라고 할 정도로 영향을 미치는 세 끼 식사이다. 내가 무엇을 먹는지 알고 먹어야 한다. 나의 식습관이 그대로 아이의 입맛이 되고, 몸의 기억이 된다. 항생제와 폭력적인 방식으로 길러진 가축. 육식을 줄여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신선한 제철 음식, 화학 성분이 적은 음식,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을 절제하며 먹어야 한다. 어찌 보면 이런 음식을 먹는 것이 제일 힘든 세상이 되었다. 정체 모를 유전자 조작 식품, 수많은 화학 성분, 방사능의 공포까지. 생명의 자정 능력을 믿으며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노력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주고 있다. 그래, 우리 엄마도 그랬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때론 힘들고 지칠 때도 있었겠지만 뱃속의 아이를 사랑했고, 그 당시에는 당연히 구하기 쉬운 제철 음식들을 먹었을 것이고... 그렇게 나는 이렇게 건강하게 태어났다. 그래서 신뢰가 가는 책이다. 태교에 대해 의구심을 품으면서도 왠지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맘이 홀가분해진 느낌이다. 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자기 바꾸기’, 아이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살면서 누구나 끊임없이 고민해야하는 자기 변화가 바로 내 아이를 사랑하는 비법이라니. 이대로 행복하게 남은 7개월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