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역은 요절복통 지하세계입니다 - 현직 부산지하철 기관사의 뒤집어지는 인간관찰기
이도훈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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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까지는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대학교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경기 남부에서부터 서울 한복판까지 4년 내내 지하철 통학을 했고, 졸업과 동시에 입사했던 회사는 심지어 대학교에서부터도 여섯 정거장 더 멀어졌다. 날마다 지하철, 그것도 1호선으로 3시간 이상의 통학과 통근을 거치면서 온갖 지하철 빌런들을 봤다. 1호선은 충남에서부터 경기북부까지 커버하는 긴 노선이다보니 광인들의 인력풀도 상상초월로 풍부한 편이라서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다 봤다. 사람도 사람이지만 정말 괴로운 건 분초를 다투는 출근길에, 열차 간격 조정같은 사소한 것들부터 차체 고장 같은 심각한 내용으로 운행이 지연되는 일이었다. 학생 때는 막연히 낡은 열차와 누군지 모를 관계자를 그저 원망했는데,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기관사든 다른 직원이든 우리 모두 같은 직장인인데 아침부터 식은땀 나겠다고 안쓰러운 마음을 가지기도 했다.

매년 주시하고 있는 브런치북 대상 중에 이번에 기관사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책이 나오기 전부터 기대하고 있었다. 다른 이야기들도 독특하고 읽어보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지하철처럼 나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가 또 없을 것 같아서 유독 눈이 더 갔다. 존재는 알고 있지만 지하철에 타서부터 내릴 때까지 마주칠 일은 좀처럼 없는 기관사의 하루를 알고 싶은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보면 공공성과 정시성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모두가 같은 마음은 아닐지 모르지만 기관사들이 자신의 일을 대하는 마음에는 사명감과 책임감이 더 진하게 담겨 있어서 일반 직장인과는 약간 결이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열차 지연이나 서행에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내가 탄 지하철이 나를 집 근처 역까지 데려다줄 거라는 사실을 의심해본 적은 없었다는 걸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아마 나를 포함해서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 중에 스크린 도어와 지하철 문 간격이 벌어져서 그걸 맞추느라 시간 걸리는 걸 겪어본 사람들이 많을 텐데, 왜 그렇게 시간이 걸리는지 이번에 알았다. 퇴행 운전에는 관제의 허가가 필요하고, 만약 융통성 있게 사후 보고를 하고 마음대로 퇴행 운전을 하면 벌금 150만원이라고... 그걸 읽었더니 앞으로는 퇴행 운전에 시간이 좀 걸려도 이전처럼 답답해하지 않을 것 같다.



생각보다 다양한 물건이 유실물센터로 들어온다는 걸 보고 남일 같지 않아서 웃긴데 웃을 수가 없었다. 우산을 다섯 개쯤 유실물센터로 보낸 후부터 나는 지하철에서 손에 든 물건을 아무것도 놓지 못하는 병에 걸렸다. 


이미 타고 내릴 사람들은 다 행동을 완료한 것 같은데도 지하철이 움직이지 않을 때, 대부분은 앞차와의 간격 유지라는 방송이 나온다. 그런데 가끔 앞 역에서 사고가 났다는 방송이, 그것도 사상사고라는 방송이 나오면 가슴이 철렁하다. 동시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됐는데도 그럴 수가 있나 하는 생각과 함께 사고 현장을 맨 앞에서 피할 도리 없이 보셨을 기관사를 걱정하게 된다. 실제로 기관사들이 받는 충격과 상처는 내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거라는 걸 읽으면서 스크린도어 이상의 안전 장치가 필요한 건 아닐까 생각했다.


어느 회사에서건 일단 출근하면 커피 타임을 가지면서 업무 시작 전에 예열하는 시간을 가졌었는데 기관사들도 마찬가지라는 걸 알고 괜히 반가웠다. 요즘은 형태가 조금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자판기 앞에 후배들을 줄 세워 놓고 커피를 한 잔씩 사 먹였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 마음이 괜히 훈훈했다. 정작 나는 부장님이 커피 마시러 가자고 하면 썩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잘 몰랐던 기관사들의 일과 생활에 대해 알 수 있었던 것도 좋았지만, 일을 하면서 깨달은 점을 삶과 연결해서 풀어낸 이야기들도 좋았다. 


이건 첫 줄을 읽는 순간 냉난방일 줄 알았다. 아마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은 모두 짐작했을 것 같다. 주말에 부모님 댁에 가면 엄마와 아빠의 희망 온도에도 차이가 극심한데, 하물며 지하철에 탄 사람들의 희망 온도를 모두 맞춰주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겠지. 문제는 냉난방 민원이 너무 쉬워졌다는 게 아닐까 싶었다. 아무 민원이 없을 때 오히려 더 불안해진다는 부분을 읽으면서는 웃다가도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어떤 공휴일에도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건 본 적이 없다는 걸 책을 읽으며 새삼 깨달았다. 심지어 해가 바뀌는 날은 쉬기는커녕 보신각 타종 행사 때문에 연장 운행을 하던 1호선을 떠올리고 왠지 숙연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나도 알람 강박이 제법 있는 편이라서 알람을 완전히 끄고 자는 주말이 아니면 잠을 깊게 못자는 느낌이라서 가끔 괴로운데, 기관사들의 알람 강박에는 댈 것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게 나는 알람을 못 듣고 지각을 해도 그냥 나 혼자 근태 점수를 깎아먹는 정도지만, 지하철은... 생각만 해도 아찔해진다.


부산에도 무인 경전철이 다니듯 수도권에서도 신분당선이 무인 열차로 운행되고 있다. 신분당선을 타면서 이러다 나중에는 기관사 없이 다 무인 열차로 다니는 건 아닐까 생각을 간혹 했었는데, 역시 당사자인 기관사들도 그 생각을 하게 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환경이 달라지면 근무 형태도 그에 맞춰서 바뀌는 게 당연하다는 말을 읽으면서 이미 그 업계(!)에서도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을 놓았다.


이 책의 배경은 부산이다. 시간이 한참 지나기는 했지만 나도 부산 여행 중에 부산 지하철을 여러 번 탔었는데, 책을 읽는 동안 혹시 2호선을 타지는 않았는지 여러 번 내 과거 여행 경로를 확인했었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부산에서 다시 지하철을, 그것도 2호선을 탄다면 괜히 반가운 기분이 들 것 같다. 그리고 이제 기관실 안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으니, 매일 아침 회사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서행이나 간격 조정, 혹은 퇴행 운전으로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예전보다는 짜증을 덜 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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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딸이 되려고 몇 생을 넘어 여기에 왔어
이순하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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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인간 대 인간으로는 정말 맞지 않는 안타까운 경우가 있다. 우리 집에서는 엄마와 내가 그렇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더 좋은지 아빠가 더 좋은지 물으면 엄마가 없는 자리에서는 1초의 고민도 없이 아빠를 외쳤고, 엄마가 있는 자리에서도 고민하는 시늉을 좀 오래하다가 ‘요즘은’ 아빠라고 농담을 섞어서 대답하곤 했다. 엄마도 자식 셋 중에는 알게 모르게 내가 제일 껄끄러운 눈치기는 하다. 둘이 인간적으로는 지독하게 안 맞지만 그래도 나름의 진득한 애정이 있어서 썩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고 있다.

엄마와의 관계가 아주 절절하지 않아서일까, 다른 사람들이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쓴 책을 읽을 때면 나는 그 자리에 아빠를 대입하며 읽곤 했다. 제목부터 엄마에 대한 절절한 마음이 느껴지는 <엄마의 딸이 되려고 몇 생을 넘어 여기에 왔어>도 그렇게 읽지 않을까 생각하며 펼쳐 들었다. 제목만 읽었을 때는 엄마와의 관계만 집중적으로 풀어낼 줄 알았는데 저자가 어릴 때부터 주변 사람들과 맺은 관계, 그리고 그들과 주고받은 애정들이 다양하게 담고 있어서 더 흥미로웠다.



이야기마다 붙은 모든 소제목에는 그 이야기의 중심 인물과 저마다 다른 음식 이름이 들어있었다. 음식 이름이 들어있어서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작가의 말 제목이 ‘식구, 서로를 먹여살리느라 우리가 주고받은 상처와 슬픔에 대하여’라는 걸 보고 어떤 의미인지 이해했다.



책에는 저자뿐만 아니라 읽는 내 마음까지 상하게 하는 사람들이 더러 등장했다. 훔치지 않은 연필을 훔쳤다고 몰아세우는 교사가 그랬고, 바람기로 여러 첩을 두며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의 마음에 상처를 준 아버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그랬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나서도 제일 오래, 은은하게 섭섭하게 만든 사람은 빗속에 조카를 몇 시간이나 기다리도록 세워놓고도 근처에서 팔고 있던 단팥빵은커녕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지 않은 외삼촌이었다. 글로만 읽은 나도 이렇게 섭섭한데 어릴 때 직접 겪은 저자의 마음이 어땠을지 읽는 내내 내가 빈정이 상했다.



저자를 섭섭하게 만들고 상처를 준 사람들도 있지만 저자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인데도 가족보다 더 살뜰한 사랑을 쏟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연필 도둑으로 몰렸을 때 학교를 뒤집어놓아 사이다를 선사한 띵까 영감과, 작은 아버지도 모른 척했던 저자의 어려운 상황을 도와줬던 친구 아버지의 이야기가 특히 인상적이었고 오래 기억에 남았다.



저자도 사랑을 받기만 한 건 아니었다. 몸이 약한 언니와 태어나자마자 다른 집에 양녀로 갈 뻔했던 동생을 살뜰하게 챙기는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우리 집 둘째를 생각하며 대체로 둘째들의 포지션이 이런가 싶어서 고마움과 짠함을 동시에 느꼈다. 우리 집 첫째(나)는 건장하고 튼튼하지만 왠지 모르게 둘째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느낌이라 더 그렇다.



어머니도 쉬지 않고 일하시며 억척스럽다고 할 정도로 열심히 사셨지만, 어머니를 닮아서인지 저자의 삶도 항상 뭔가로 빼곡하게 차있는 느낌이었다. 야간대학에서 가난한 남편을 만나 결혼해서 삶을 꾸려나가는 부분에서는 그 시절의 사회 모습들도 함께 볼 수 있어서 가까운 어른이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어머니라고 되어있지만 시어머니의 이야기다. 냉면을 먹으러 가자고 며느리를 데려가서 사리 추가까지 해서 야무지게 드시고는 화장실에 간다고 사라진 시어머니의 에피소드를 읽으며 뒷목을 잡았다. 돈 한푼 가져가지 않아서 어린 아이를 데리고 냉면집에서 당혹스러움과 수치심으로 어쩔 줄 모르던 젊은 저자의 심정이 너무 와닿아서 읽는 동안 나도 함께 수치스러웠다. 이후에 그것이 어쩌면 치매 증상이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머리로는 상황을 이해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말끔해지지는 않았다.



문제의 아버지. 전쟁 때 많은 사람이 그랬듯 이북에 부모와 처자식을 두고온 아버지는 혼자 살겠다고 내려왔다는 죄책감으로 젊은 시절 마음을 잡지 못했다고 한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마음을 붙이셨으면 좋았으련만, 책을 읽다보니 마음을 너무 여러 곳에 두고 사셨던 것 같다. 자연히 가족들에게는 애증의 대상이었고, 저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 아버지와의 공통점을 하나씩 찾을 때마다 드는 오묘한 감정들을 읽으면서, 내가 질색하는 엄마의 어떤 특성들을 나한테서 발견할 때 느꼈던 감정들이라서 깊이 공감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여러 번 혀를 내둘렀다. 수완과 행동력 모두 뛰어난 저자의 어머니는 이미 한국에서도 누구보다 많은 일들을 해내며 자식 넷을 길러냈다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남편을 따라 이민을 갔다가 과부가 된 저자의 동생을 챙기러 페루로 떠난 엄마가 그 동네 사람들 전체의 엄마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의 억척은 태산을 옮긴다는 저자의 말을 완전히 이해했다. 


전에 퀸시 존스의 책에서 삶 그 자체가 성취라는 말을 읽으면서 어렴풋이 의미를 짐작하는 정도였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가 살아온 흔적들을 낱낱이 들여다보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 더 피부로 와닿았다. 어느새 다 잊어버리고 나 혼자 자라온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살고 있었는데, 어릴 때부터 정말 많은 사람들이 쏟는 애정을 받으며 어른이 됐다는 걸 책을 읽는 동안 나도 함께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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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창의성에 대하여 - 퀸시 존스의 12가지 조언
퀸시 존스 지음, 류희성 옮김 / 이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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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길에도 산책할 때도 매일 음악을 듣기는 하지만 사실 나는 음악에 크게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는 게 많지도 않아서 문외한이나 다름없다. 심지어 좋아하는 가수나 연주자의 좋아하는 곡을 마르고 닳도록 듣는 편이라서 듣는 음악의 폭이 넓은 편도 아니다. 음악 분야에 관심이 지대한 편도 아니라서 관련 분야 책을 많이 읽는 편도 아니라서 평소라면 이 책에도 흥미를 갖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그런데 저자 소개를 읽다가 퀸시 존스가 함께 작업한 사람들 중 내가 모르는 이름이 없다는 걸 발견하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추천사들을 읽는 동안 퀸시 존스가 음악계에서 전설적인 인물이라는 것과 내가 퀸시 존스 자체는 몰랐지만 그가 작업한 음악들은 좋아해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1933년생인 퀸시 존스는 프랭크 시나트라, 마이클 잭슨, 스티븐 스필버그 등 모르는 사람이 없을 유명 인사들과 함께 일을 해온 음악인, 프로듀서다. 혹시 베테랑 음악인이 쓴 자기계발서는 아닐까 잠시 의심했는데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90년 가까이 살며 삶과 창의성에 대해 깨달은 것들에 대해 담은 책이었다. 강경한 명령형이 아닌 ‘내가 살아보니 이렇더라, 그러니까 이렇게 하면 도움이 될 듯’ 식의 문장이 많아서 조언을 담고 있는데도 읽으면서도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퀸시 존스에게도 큰 영향을 줬을 마크 트웨인의 말이, 책을 읽는 나한테도 큰 울림을 줬다. 내가 산을 담고 있는 그릇이 되지 않도록 퀸시 존스의 말처럼 마음속에 가두지 않을 방법을 고민해 봐야겠다.



두 부분이 이어지는 문장은 아니지만 왠지 나는 연결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외부의 압력에 대비하기 위해 기초를 충분히 다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오염물을 잘 걸러낼 수 있도록 정신도 단련하는 게 좋겠다고 정리하며 읽었다.



강경한 어조가 아닌데도 읽는 중간중간 뼈를 맞을 때가 있었다. 구상과 실행 사이에 생각보다 거리가 있다는 말에도, 하기로 했다면 완전히 끝까지 가야 한다는 말에도 공감하며 읽었다.



퀸시 존스 정도로 음악의 대가라면 고평가보다 저평가를 더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뜻밖이었다. 피드백은 주의깊게 듣고 필요한 내용을 받아들이더라도 다른 사람의 평가에 너무 휩쓸리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한 살씩 먹어가면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혹은 앞으로는 뭘 하면서 살아야하나 하는 고민을 점점 더 많이 하게 된다. 수십 년 동안 다양한 일을 해온 퀸시 존스가 나이가 능력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며, 그래서 나이로 인한 은퇴는 고려 대상이 아니라고 한 걸 보고 왠지 마음이 든든했다.



첫 회사에서 내 멘토를 맡았던 일 잘하던 대리님이 늘상 하던 말이 떠올랐다. 회사에서 사고 한 번 안 치고 일하는 사람은 없고, 맡은 일이 많거나 중요한 일을 맡은 사람은 사고를 치면 더 도드라져 보인다고 하면서 중요한 건 사고를 안 치는 게 아니라 얼마나 잘 수습하느냐라고 했었다. 일뿐만 아니라 삶 전체에서도 적용되는 말이라는 걸 이 부분을 읽으며 깨달았다.



책을 읽으면서 묘하게 위로가 되는 문장들이 있었는데 이 부분들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엄청난 업적을 세우거나 대단한 성취를 하지 못했더라도 그게 어떤 대단한 일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삶 자체가 궁극적인 성취라는 말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마음에 오래 남았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어떤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은 뛰어난 글쟁이가 될 확률이 높으며, 어떤 분야든 정점에 다다른 사람은 곧 철학자가 된다고 믿는다’는 추천사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음악책이면서 음악책이 아니라는 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싶었는데, 읽고 나니까 정확한 설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퀸시 존스의 삶에서 음악을 떼어놓을 수 없듯 그의 글이나 철학에서도 순간순간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묻어나온다. 그게 나같은 음악 문외한에게도 어렵거나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흥미가 생겨서 책을 읽는 동안 본문에 나온 음악들을 찾아가며 읽었다. 일과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책이라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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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해방 - 치매, 암, 당뇨, 심장병과 노화를 피하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법
피터 아티아.빌 기퍼드 지음, 이한음 옮김 / 부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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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부쩍 읽은 책과 읽고 싶은 책 목록에 건강과 관련된 책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도 그렇고 주변 친구들도 그렇고 어딘가 한 군데는 아파본 경험을 직간접적으로 하면서 관심을 두고 싶지 않아도 신경을 쓰게 된다. 그러던 중에 질병 해방 출간 소식을 듣고 기대 중이었다.

나는 특히 심장병 파트에 관심이 많았는데, 친가 쪽이 대체로 심장이 약한 편이라 항상 은은한 불안을 안고 있어서 그랬다. 큰아버지는 심장 질환으로 돌아가셨고, 아빠는 환갑도 되기 전에 심혈관에 스텐트를 여러 개 넣으셨다. 나도 일상 생활에 지장은 없지만 심장 판막이 조금 덜 닫힌다는 이야기를 검진에서 들었던 터라 심장병을 어떻게 조금이라도 예방할 수 있을지 궁금함을 안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부분은 책 본문이 아니라 <느리게 나이 드는 방법>의 저자 정희원 교수님의 추천사 중 한 부분인데, 읽으면서 뜨끔했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건강에 대한 걱정은 있으면서도 건강을 위해 크게, 아니 작게라도 노력하는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유전적으로 심장 질환과 멀지 않은 자에게 좀 공포스럽게 읽혔던 대목이었다. 특히나 큰아버지의 케이스가 돌연사였기 때문에 더 그랬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아무에게나 찾아올 수 있고 가장 흔한 증상이 돌연사인데 과연 예방이 가능한가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병의 원인을 책에서는 여러 가지로 지목하는데, 단호하게 병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만이 심장병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언급한다. 심지어 나이와 관계없이 찾아올 수 있기 때문에 일찍부터 예방 조치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서 정신이 들었다. 그래도 한 50대쯤부터 조심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더니 30대, 혹은 그 이전을 이야기해서 놀랐다.


이건 몰랐던 이야기인데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다. 토끼나 닭이 아니라면 콜레스테롤을 걱정하며 콜레스테롤 높은 식품을 피하지는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읽고 좀 놀랐다. 왜 그런 오해가 생겼고 사람들의 인식에 뿌리를 깊게 내렸는지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현대병 파트가 끝나고 다음 장에는 각종 현대병에 전술적으로 맞설 수 있는 방법들이 등장했다. 소제목만 보고는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읽다 보니까 잘못 알고 있었던 내용들도 있었고 새롭게 알게 된 것들도 많았다.


운동이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운동의 어떤 기능 때문에 질병 예방 차원에서 해야하는지, 어떤 부분에 더 집중해야 하는지는 책을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근육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근육이 힘을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부분을 읽으며 운동 계획을 조금 수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책에서 각종 현대병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언급한 것은 현대인이 더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데, 물리적으로 몸 건강을 챙기는 것만큼 정서적인 부분에도 신경을 써야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동안 왜 부모님이나 다른 친척 어른들이 미래에 대한 계획을 이야기할 때 묘한 안도감이 들었는지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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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지음 / 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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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느 회사에서 면접을 볼 때였다. 직무와 관련된 질문은 대강 마무리가 되었는데 시간이 남은 건지 아니면 내가 스트레스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알고 싶었는지, 뜬금없이 면접관은 나에게 여가시간에 뭘 하는지 물었다. 요즘 같으면 고양이랑 시간을 보낸다고 했겠지만 그때는 아직 여명이와 만나기 전이라서 나는 제일 만만한 독서를 내밀었다. 무난한 답변을 했으니 그냥 넘어가주면 좋으련만 그거 말고는 뭘 하는지 제법 집요하게 물어서 영화 감상과 야구경기 관람 같은 것들을 읊었다. 면접관이 웃으면서 눈 관리를 잘 해야겠다고 해서 처음으로 내 취미 활동에는 눈이 꼭 필요하다는 걸 인지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면접을 계속 떠올렸던 건 그때 내가 처음으로 눈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제목만 보고는 알 수가 없어서 나는 작가가 말하는 지랄맞음의 장르가 궁금했다. 일상적으로 먹고 살면서 겪는 종류일지 아니면 내가 상상하기 어려운 분야일지. 궁금함을 안고 작가 소개를 봤더니 내가 가장 공포스러워하는 종류의 지랄맞음임을 알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책을 열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 나가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는 게 민망했을 정도로 지랄맞은 인생에 씩씩하게 맞서거나 때로는 순응하며 살아나가는 작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책의 작가는 15살 무렵에 시력을 점점 잃어갈 것이며 종국에는 앞을 못 보게 될 것이라는 판정을 날벼락같이 받게 된다. 앞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작가가 도서관에 가서 쫓기듯이 책을 읽는 장면이 안타까워서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그 장면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 책을 최대한 읽고 싶었을 마음도 이해가 되는 한편, 눈을 무리하게 써서 시력을 잃는 속도가 더 빨라지지는 않을까 걱정을 하며 읽었다. 작가의 어머니도 같은 마음이셨는지 책을 읽고 온 딸에게 책 좀 읽지 말라지 않았냐고 호통을 친다. 아마 대체로 안타까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그후로 어머니와 작가는 읽는 내 입에서 ‘제발 그만...’이라는 말이 튀어나올 정도로 싸우고 화해하는 걸 반복한다. 어머니는 딸에게 닥친 현실을, 시력을 잃는 당사자보다도 못 받아들이고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그 과정에서 모녀 갈등이 극에 달했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해 읽는 내가 다 속상할 지경이었다.


글을 시작하면서 작가의 씩씩한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해놓고 왜 필사 문장들은 이렇게 슬프고 먹먹한가 싶을 수도 있다. 자신의 일과 삶을 대하는 태도는 더없이 씩씩하고 무던한 작가가 타인과의 관계나 타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더러 약한 마음을 드러낼 때가 있었다. 장애 자녀를 둔 부모의 이야기에서도 그랬지만 장애를 가진 부모를 챙기느라 일찍 철이 든 어린 자녀의 이야기에 작가도 나도 안타까움을 많이 느꼈다.


작가와 어머니가 갈등을 빚는 모습을 안타깝게 읽고 있었는데, 그건 차라리 행복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곧 하게 되었다. 그렇게 염려하던 어머니와 작가의 이별이 너무 일찍 찾아온 것이다. 책에는 작가가 가까운 주변인과 작별하는 장면을 여러 번 담아냈는데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중 어머니와의 작별이 제일 안타까웠다. 나 없으면 어떻게 살 거냐고 호통을 치던 어머니의 모습을 책 초반에 읽어서 그런지 마지막까지 딸을 걱정하셨을 마음이 짐작되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집안 내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읽는 내 눈에는 작가의 외가 식구들이, 외람되지만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 캐릭터처럼 느껴졌다. 작가의 외할아버지도 너무하시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구박을 하시다가, 또 슬그머니 챙기시다가 하는 모습이 어머니와 판박이였다. 작가를 타박하는 장면에서는 마음은 그렇지 않을 거면서 왜 저렇게까지 말씀을 하시나 하며 나까지 섭섭했는데, 작가가 시력을 잃는다는 소식에 통곡을 하시고 도시의 장애인학교로 떠날 때 언제든 돌아오라는 인사를 덧붙이는 모습에는 괜히 나도 울컥했다.


직업 선택의 폭이 좁다는 말을 붙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작가의 앞에 주어진 선택지는 적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의무라고 할 정도로 마음에 차지 않았던 직업이었던 것 같지만, 일을 거듭하며 스스로 보람을 찾아서 키워나가는 모습에서 일을 하는 사람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수미씨를 향한 작가의 마음에 공감하며 읽으면서도, 작가와 수미씨의 대화를 보면서는 내가 수미씨처럼 악의없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은연중에 내 생각을 강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고 새삼 느꼈다.


시력을 잃는다는 사실을 알고 막막해하던 작가가 자신의 불꽃이 더 찬란하고 빛난다는 말을 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선택의 순간들이 있었는지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된다는 제목에 담긴 뜻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실패가 두려워서 핑곗거리를 찾는 건 누구든 마찬가지구나 하고 안도하는 한편, 내 핑계와 작가의 핑계는 무게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 반성도 하게 됐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기 위해 용기를 내는 자세를 나도 갖춰야겠다.


그저 보통 모녀간의 애증이겠거니 하고 책을 읽어가다가 나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야 그 갈등이 내 짐작을 훨씬 넘어섰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작가의 어머니는 창피하고 외면하고 싶다는 이유로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장애인학교라는 말이 들어간 작가의 트로피는 화장대를 받치는 데 쓰였고, 작가는 어머니의 부끄러움을 이해한다고 했다. 속사정을 모르면서 누군가의 언행을 두고 말을 얹고 싶지는 않지만, 창피하다는 어머니의 말씀은 지면 밖에서 책을 읽고 있는 나까지도 섭섭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부끄러운 자식이 되고 말았다는 자가의 말이너무 속상했는데,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되었다는 문장이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책을 덮고 나서야 작가가 겪어온 지랄맞음이 내 어렴풋한 짐작을 한참 넘어섰다는 걸 알았다. 작가에게 펼쳐진 ‘당연히 보이던 것들이 보이지 않게 된 삶’은 내 생각보다도 더 험난했고, 주변의 선의와 악의 모두 다른 의미로 작가를 지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작가가 담담하게 그려내는 일상은 평범한 회사원인 내가 느끼는 하루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고, 작가의 단단한 마음을 보며 나는 위로와 자극을 받았다. 하루하루 스스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한편, 쌓아올린 일상을 모아 책을 지은 작가의 삶이 대단하게 느껴지고, 언젠가 만날 다음 책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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