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지음 / 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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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느 회사에서 면접을 볼 때였다. 직무와 관련된 질문은 대강 마무리가 되었는데 시간이 남은 건지 아니면 내가 스트레스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알고 싶었는지, 뜬금없이 면접관은 나에게 여가시간에 뭘 하는지 물었다. 요즘 같으면 고양이랑 시간을 보낸다고 했겠지만 그때는 아직 여명이와 만나기 전이라서 나는 제일 만만한 독서를 내밀었다. 무난한 답변을 했으니 그냥 넘어가주면 좋으련만 그거 말고는 뭘 하는지 제법 집요하게 물어서 영화 감상과 야구경기 관람 같은 것들을 읊었다. 면접관이 웃으면서 눈 관리를 잘 해야겠다고 해서 처음으로 내 취미 활동에는 눈이 꼭 필요하다는 걸 인지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면접을 계속 떠올렸던 건 그때 내가 처음으로 눈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제목만 보고는 알 수가 없어서 나는 작가가 말하는 지랄맞음의 장르가 궁금했다. 일상적으로 먹고 살면서 겪는 종류일지 아니면 내가 상상하기 어려운 분야일지. 궁금함을 안고 작가 소개를 봤더니 내가 가장 공포스러워하는 종류의 지랄맞음임을 알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책을 열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 나가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는 게 민망했을 정도로 지랄맞은 인생에 씩씩하게 맞서거나 때로는 순응하며 살아나가는 작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책의 작가는 15살 무렵에 시력을 점점 잃어갈 것이며 종국에는 앞을 못 보게 될 것이라는 판정을 날벼락같이 받게 된다. 앞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작가가 도서관에 가서 쫓기듯이 책을 읽는 장면이 안타까워서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그 장면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 책을 최대한 읽고 싶었을 마음도 이해가 되는 한편, 눈을 무리하게 써서 시력을 잃는 속도가 더 빨라지지는 않을까 걱정을 하며 읽었다. 작가의 어머니도 같은 마음이셨는지 책을 읽고 온 딸에게 책 좀 읽지 말라지 않았냐고 호통을 친다. 아마 대체로 안타까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그후로 어머니와 작가는 읽는 내 입에서 ‘제발 그만...’이라는 말이 튀어나올 정도로 싸우고 화해하는 걸 반복한다. 어머니는 딸에게 닥친 현실을, 시력을 잃는 당사자보다도 못 받아들이고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그 과정에서 모녀 갈등이 극에 달했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해 읽는 내가 다 속상할 지경이었다.


글을 시작하면서 작가의 씩씩한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해놓고 왜 필사 문장들은 이렇게 슬프고 먹먹한가 싶을 수도 있다. 자신의 일과 삶을 대하는 태도는 더없이 씩씩하고 무던한 작가가 타인과의 관계나 타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더러 약한 마음을 드러낼 때가 있었다. 장애 자녀를 둔 부모의 이야기에서도 그랬지만 장애를 가진 부모를 챙기느라 일찍 철이 든 어린 자녀의 이야기에 작가도 나도 안타까움을 많이 느꼈다.


작가와 어머니가 갈등을 빚는 모습을 안타깝게 읽고 있었는데, 그건 차라리 행복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곧 하게 되었다. 그렇게 염려하던 어머니와 작가의 이별이 너무 일찍 찾아온 것이다. 책에는 작가가 가까운 주변인과 작별하는 장면을 여러 번 담아냈는데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중 어머니와의 작별이 제일 안타까웠다. 나 없으면 어떻게 살 거냐고 호통을 치던 어머니의 모습을 책 초반에 읽어서 그런지 마지막까지 딸을 걱정하셨을 마음이 짐작되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집안 내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읽는 내 눈에는 작가의 외가 식구들이, 외람되지만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 캐릭터처럼 느껴졌다. 작가의 외할아버지도 너무하시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구박을 하시다가, 또 슬그머니 챙기시다가 하는 모습이 어머니와 판박이였다. 작가를 타박하는 장면에서는 마음은 그렇지 않을 거면서 왜 저렇게까지 말씀을 하시나 하며 나까지 섭섭했는데, 작가가 시력을 잃는다는 소식에 통곡을 하시고 도시의 장애인학교로 떠날 때 언제든 돌아오라는 인사를 덧붙이는 모습에는 괜히 나도 울컥했다.


직업 선택의 폭이 좁다는 말을 붙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작가의 앞에 주어진 선택지는 적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의무라고 할 정도로 마음에 차지 않았던 직업이었던 것 같지만, 일을 거듭하며 스스로 보람을 찾아서 키워나가는 모습에서 일을 하는 사람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수미씨를 향한 작가의 마음에 공감하며 읽으면서도, 작가와 수미씨의 대화를 보면서는 내가 수미씨처럼 악의없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은연중에 내 생각을 강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고 새삼 느꼈다.


시력을 잃는다는 사실을 알고 막막해하던 작가가 자신의 불꽃이 더 찬란하고 빛난다는 말을 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선택의 순간들이 있었는지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된다는 제목에 담긴 뜻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실패가 두려워서 핑곗거리를 찾는 건 누구든 마찬가지구나 하고 안도하는 한편, 내 핑계와 작가의 핑계는 무게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 반성도 하게 됐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기 위해 용기를 내는 자세를 나도 갖춰야겠다.


그저 보통 모녀간의 애증이겠거니 하고 책을 읽어가다가 나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야 그 갈등이 내 짐작을 훨씬 넘어섰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작가의 어머니는 창피하고 외면하고 싶다는 이유로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장애인학교라는 말이 들어간 작가의 트로피는 화장대를 받치는 데 쓰였고, 작가는 어머니의 부끄러움을 이해한다고 했다. 속사정을 모르면서 누군가의 언행을 두고 말을 얹고 싶지는 않지만, 창피하다는 어머니의 말씀은 지면 밖에서 책을 읽고 있는 나까지도 섭섭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부끄러운 자식이 되고 말았다는 자가의 말이너무 속상했는데,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되었다는 문장이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책을 덮고 나서야 작가가 겪어온 지랄맞음이 내 어렴풋한 짐작을 한참 넘어섰다는 걸 알았다. 작가에게 펼쳐진 ‘당연히 보이던 것들이 보이지 않게 된 삶’은 내 생각보다도 더 험난했고, 주변의 선의와 악의 모두 다른 의미로 작가를 지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작가가 담담하게 그려내는 일상은 평범한 회사원인 내가 느끼는 하루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고, 작가의 단단한 마음을 보며 나는 위로와 자극을 받았다. 하루하루 스스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한편, 쌓아올린 일상을 모아 책을 지은 작가의 삶이 대단하게 느껴지고, 언젠가 만날 다음 책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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