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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얼티프리 - 동물과 지구를 위한 새로운 생활
린다 뉴베리 지음, 송은주 옮김 / 사계절 / 2022년 10월
평점 :
예전에 방송인 알베르토가 유튜브에서 동물을 먹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본 적이 있다. 햄을 만드는 일을 하신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 돼지를 잡는 장면을 자주 보며 자란 알베르토는, 일찍부터 고기가 어떻게 식탁에 오르는지 왜 귀한지를 알고 있었다. 요즘 마트에 있는 고기를 보면 너무 많아서 대부분 버려질 것이 자명해 안타깝다고 하며, 이탈리아에서는 동물을 죽여본 사람만이 고기를 먹을 자격이 있다는 말이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때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이 말을 얼마전 일본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면서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오리농법으로 활용하던 오리를 잡는 장면이 영화에 나오는데, 처음에는 살아있었던 오리를 죽여서 털을 더 잘 뽑기 위해 끓는 물에 넣고 털을 뽑아서 조각조각 내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나온다. 마지막에 요리하기 직전의 고기가 되었을 때는 그게 원래 오리였다는 걸 알 수가 없게 되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알베르토의 말이 떠올랐다. 마트에서 보는 고기들은 이름표를 보고 소인지 돼지인지 닭인지를 파악할 뿐이고, 그 고기가 원래 살아있는 한 개체였다는 사실은 잊게 된다.
식생활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라서 누군가가 강제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고기를 먹는 사람과 먹지 않는 사람 모두에게 해당될 것이다. 현재 나는 고기를 먹는 사람이고, 점차 먹는 고기의 양을 줄여나가려고 노력하기로 했다. 그 노력에 도움이 될까 해서 이번에 읽은 '크루얼티프리'와 같은 종류의 책이 나오면 꼭 읽어보려고 하는 편이다. 올해 읽었던 비슷한 분야의 책들은 각각 동물권, 환경문제, 인간의 건강 등의 측면에서 고기 없는 식탁을 권했다. 이 책은 그 중 어디에 초점을 맞췄을지 궁금했다.

이 책은 환경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식생활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 걸쳐서 환경에 해가 될 수 있는 일을 어떻게 줄여나갈 수 있는지, 어떤 고민이 필요한지를 담고 있다. 식생활 부분에서는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지구 환경에도 좋고, 동물권 면에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공장식 축산 자체도 동물에게는 좋지 않겠지만, 도축하는 방식만큼은 꼭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책을 읽는 내내 했다. 그리고 이런 분야의 책을 읽을 때 늘 드는 생각이지만, 동물의 권리를 '어느 범위까지 어느 정도로 보장해야 하는가'는 정말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이런 부분도 언급해줘서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의문들이 어느 정도는 해소되었다.

비건에 대한 책이나 다큐멘터리를 여럿 접하면서 여러모로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환경에도 도움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아직 고기를 먹고 있다. 다만 집에서 내가 직접 음식을 준비할 때는 고기를 먹지 않는 편이다. 바깥에서 밥을 먹을 때는 그게 쉽지 않고, 그걸 극복할 마음의 준비도 아직 되지 않아서 할 수 있는 부분을 우선 해나가는 편이다.
책을 읽으며 나는 왜 고기를 먹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솔직히 맛이나 영양 측면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 겪어야 하는 불편함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게 컸다. 지금은 평일 대부분 내가 차린 밥을 나 혼자 먹으니까 괜찮지만, 회사에서의 점심 시간이나 친구와의 약속, 가족 식사 등을 생각하면 고기를 걷어내기가 쉽지 않다. 무리하다가 금방 포기하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차근차근 노력해보려고 한다.

그런 마음가짐을 가진 나에게 이 부분들은 위로가 되었다. 예전에 '우리가 날씨다'를 읽으면서도, 이미 고기를 먹지 않는 식생활에 대해 책을 낸 저자가 햄버거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먹은 후 자괴감을 느끼는 이야기를 읽으며 어떤 위안을 느꼈었는데 그런 느낌이었다. 한 사람이 완벽하게 비건의 삶을 유지하는 것도 소중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주 조금이라도 고기를 줄이려는 마음을 가지는 일이 지구 전체로 보면 더 유익할 것이다.

책에서는 동물과 함께 사는 일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작가도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으며, 그래서 반려동물과 가족이 되는 일에 대한 어려움과 미리 생각해야할 문제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어려움에 대한 경고도 하지만, 반려동물을 제대로 아끼고 돌봐준다면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일은 누군가의 인생에서 가장 보람찬 경험 중 하나라는 점도 밝혀둔다.

올여름의 이상한 폭우나 가뭄, 전 세계적으로 있었던 이상 기후만 보더라도 이미 지구가 많이 앓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어느 시대건 환경은 변화하고 있고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이 개입해서 안좋은 방향으로 너무 급박하게 변화하는 일은 자연스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인류는 또 해결할 방법을 찾아낼 수 있겠지만, 그때까지 지구가 버텨낼 수 있을지가 살짝 걱정되기 시작했다. 환경 문제를 볼 때마다 지구라는 집에 불이 붙은 걸 보면서 언젠가는 반드시 올 소방차를 기다리는 심정이 된다. 소방관이 너무 늦지 않기를, 그리고 도착하기 전에 집이 다 타지는 않기를 바라게 된다.

환경이나 동물을 위해 사람마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 있을 것이고, 감당할 수 있는 일이 다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실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내가 할 수 있는만큼만 시도하고 노력하면서 점차 범위를 넓혀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
크루얼티프리는 원래 동물 실험을 거치지 않은 제품을 일컫는 말이지만, 이 책에서는 조금 더 넓은 범위로 확장해서 쓰고 있다. 지구 환경에, 동물에게 유해하지 않은 생활 방식 전반이 모두 크루얼티프리다. 책을 쓰고 조사하면서 저자가 처음으로 떠올린 제목은 '친절하게 살자, 가볍게 걷자'였다고 한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그 제목도 잘 어울렸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말대로 해를 입히지 않고 살려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더 친절하고, 더 푸르고, 더 지속가능한 곳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