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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이길보라 지음 / 창비 / 2023년 2월
평점 :

이길보라 감독을 처음 알게 된 건 ‘코다’라는 영화를 통해서였다. ‘코다(CODA)’는 ‘농인 부모의 청인 자녀’(Children of deaf adult)의 줄임말이다. 영화 ‘코다’는 2014년에 개봉한 프랑스 영화 ≪미라클 벨리에≫를 리메이크 한 미국영화로, 2022년 아카데미 상에서 3관왕을 수상했었다. 당시 윤여정 배우가 시상자로 참여해 청각장애인 배우를 수어로 호명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정확히 나는, 아카데미상 시상식을 기사로 접한 그 때부터 ‘코다’를 알게 되었다. 코다라는 영화가 있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코다가 누구인지, 우리가 비장애인 중심사회에서 ‘장애인 차별주의 / 청능주의’를 무의식 중에 가지고 있으며 거기에 대해 문제의식을 전연 갖지 않았다는 것까지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흐름이 지금 이 이길보라 감독의 책을 읽는 데까지 이어진 것이다.
책 리뷰를 쓰다보니, ≪고교 독서평설≫ 2021년 10월호의 한 글*에서 이길보라 감독의 이름을 처음 접했던 것도 생각이 났다. (*22p, “영화의 귓속말” <타인의 관점이 되어 보는 일, 코다>라는 제목의 김소미 기자의 글)
이 책은, 나에게 엄청난 균열과 지진을 일으켰다. 정말 부끄럽게도, 나는 음성언어를 쓰는 청인이 다수인 세상에 살면서 그것이 ‘정상’이라 생각했고, 청사회와 청문화를 우월하다 여겼다. 상실로 인한 슬픔과 안타까움은 저자의 말대로 ‘비장애인 중심의 관점’일 수도 있는데, 나는 너무나 섣부르게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려 했고 당연한 의무로써 그들의 어려움을 ‘연민’하려 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 고통스러웠다. 장애와 질병의 사회적 위치를 누가 결정하는가? 합법과 불법,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도대체 누가 가르는가? 저자는 ‘다름’을 어떻게 마주하느냐에 따라, 어떤 위치에서 생각하고 사유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불쌍한 장애인의 딸’이 아닌 ‘코다’가 될 수 있고, ‘불법체류자의 자녀’가 아닌 ‘미등록 이주아동’이 될 수 있으며, 단순히 ‘학교를 안 다니는 청소년’이 아닌 ‘로드스쿨러’가 될 수 있고, 논의와 담론을 점유하는 다수가 아닌 본질과 진정성을 가진 ‘당사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고통에 공감한다는 단순하고 납작한 착각을 넘어설 때 비로소 더 넓은 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은 우리에게 경종을 울린다. 그래, 이건 한국 사회에, 그리고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각이다. 더 이상 ‘농인의 자녀로서 힘든 점은 없냐’는 어리석은 질문으로 에이블리즘과 오디즘을 구축하는 서사로 그들의 경험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는 존재에 붙은 딱지가 아닌 ‘존재로서의 개개인’을 마주해야 한다.
“마서니비니어드섬의 사례는 어떤 몸을 중심으로 세계를 설계할 것인지 우리에게 질문한다. 무엇이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가르는걸까. 농인을 말 못하는 장애인이 아닌 ‘목소리가 다른 사람’으로 호칭하는 사회를 상상해본다.”(41p)
무조건, 추천이다! 모든 독자들에게 강력하게 일독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