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샤 창비청소년문학 117
표명희 지음 / 창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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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마음이 서로에게 가닿았으니 이미 우린 국경을 넘어선 거예요.”

국경을 넘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건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살아갈 나라의 국경선 앞에 우리는 여전히 희망을 갖고 서 있다. 그들이 마음의 문을 열어 우리를 맞아줄 날을 기다리며...

“사랑의 힘으로 넘지 못할 건 세상에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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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여성에 대한 억압, 난민에 대한 편견, 이슬람 사회를 향한 냉소와 이방인에 대한 선입견은 남성의 출입만 허용하는 무슬림의 기도실 문 휘장 만큼이나 허물기 어려워 보인다. 알고보면 천 한 겹일 뿐인데.

소설 버샤≫는 ‘무슬림, 난민, 이방인’ 등의 집단적 이름을 해체하고 이름과 꿈을 가진 한 명의 사람으로 그들을 만나게 해준다. 편견과 억압을 걷어내고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하는 창을 낸다. 독자로 하여금 각자의 ’여기’에서 또다른 버전의 재스민 혁명을 해나가도록 만든다. 그래서 이 소설은, 먹먹하고 아팠지만 그 어떤 것보다 가슴 벅찬 이야기였다.


무슬림 여성은 “월경을 시작하면서 ‘여자’가 되고 그 때부터 온갖 금기에 얽매인 무슬림의 딸로 길러져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된다.” 꿈이나 이상 따위가 허용되지 않는다. ‘그것이 신의 뜻이다’라는 말 하나로 간단하게 정리 되어버리는 삶이다. 어떤 여성도 운명의 부당함을, 남성들만의 잘못된 자기중심적 코란 해석을, 세상을 향해 말할 수가 없다. 마치 실어증에 걸린 버샤처럼.

과거에 비해 여성인권이 많이 신장 되었지만, 여전히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에 답답함을 느꼈다. ‘신의 이름’은 여성에게 어찌 이리도 폭력적인지. 나도 기독교와 한국사회에서 똑같은 한계를 느끼고 있기에 더없이 공감 되었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버샤는 비행을 꿈꾼다. 여성도 자유롭게 살아가는 날을,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일하고 능력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세상을. 아버지가 말씀하신대로, 재스민 선생님이 일깨워 주셨던대로 언젠가는 모스크 예배실 벽도 없어질 거고 여자 무에진과 여자 이맘도 나올 것이다.

반복적으로 버샤를 괴롭히는 월경통도 그녀가 이런 굴레 안에 있는 무슬림 여성임을 상기시켜 주는 듯 했다. 그러나 그녀는 월경통을 고스란히 앓아낸다. 그래, 통증을 느끼는 건, 질문하는 자의 것이지. 질문하지 않으면서 순응하는 자는 통증을 느끼지 않으니까 말이다.


‘유엔 협약을 맺은, 아시아에서 하나뿐인 난민 인정국,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라는 허울은 오백여 명의 무슬림 난민 가운데 고작 2명만 난민 인정을 받았다는 실체와 너무나도 괴리되었다. 그 두 명은 젊은 엘리트 기자로, “국익에 도움되는 엘리트만 엄선해 받아들이겠다는 방침의 다른 표현 같다.”는 화자의 설명이 가슴 아팠다. 몇 해 전, 무슬림 난민 입국을 반대하는 국민 청원에 수십만 명이 서명했던 일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너무 부끄러워서 눈물이 났었더랬다.


이 책이 독자에게 일깨워주는 것은, 우리가 아라베스크 문양 만큼이나 촘촘하게 엮여 있다는 사실이다. 국경 너머에는 아직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진행중이고, 여러 내전을 피해 다른 나라의 문을 두드리는 난민들도 여전히 많다는 것을. 그리고 그게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도.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경계를 짓는 빨간 빗금 비닐테이프가 아니라, 서로를 존재 그대로 만나게 하는 벵갈 고무나무 화분이 필요하다.


나는 내 자리에서 어떻게 재스민 혁명을 해 나갈 것인가... 책을 덮고선 한참 고민했다. 평생의 숙제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버샤와 진우가 먼저 걸었던 이 순례의 여정을 나도 걸어야겠다. 독자들에게도 그 길에 동참해 주시길 부탁하고 싶다.

엄숙한 마음으로, 소설을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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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시간 - 도시 건축가 김진애의 인생 여행법
김진애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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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시간 #김진애 #창비


아~~ 여행가고 싶다~

바야흐로 따스한 봄기운과 함께 생명이 움트는 3월, 그동안 억눌렸던 여행 욕망도 슬슬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 이 시점에… 여행 바람을 솔솔 일으켜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책을 읽었으니… 도시건축가 김진애의 여행의 시간≫이렷다~ 


3월에 출간된 창비의 최신간이다. 읽는 내내 당장이라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들썩~ 도무지 독서 진도가 나가질 않아 완독하는 데 무려 이틀이나 걸린 책.


책은 총 3부로 되어있고,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김진애의 도시여행법’을 담은 특별부록까지 알차게 구성 되어 있다. 도시여행이 자연여행보다 더 좋다는 저자의 취향이 책에 고스란히 묻어나 있다. 개인적으론 사진이 좀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살짝.


1부 ‘나를 발견하는 여행’에서는 저자가 여행의 매력과 장점을 낚싯바늘에 꿰어 제대로 투척하는데... 나의 여행 욕구는 삽시간에 그 미끼를 덥석 물었고, 어어어...? 하고 물 위로 끌어올려졌다.

이 장에선 ‘홀로여행’의 유익과 ‘멍 때리는 느린 여행’의 필요성에 대해 말한 부분이 정말 공감 되었다. 저자의 조언대로 나도 출퇴근 길을 홀로여행으로 삼아 봐야겠다, 틈틈이 멍 때리는 느린 여행을 가져봐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하늘멍, 책멍, 풀멍...


3부에서 가난한 마음으로 가난한 여행을 해보라는 조언도 기억에 남는다. 여행을 한다는 건 이미 풍족하다는 뜻이 아닌가. 그러므로 가난한 여행을 통해 인생을 살아갈 힘과 역량을 얻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다.

여행은, 떠나기 전의 프롤로그보다 다녀온 이후의 에필로그가 더 중요하다는 ’에필로그‘도 마음에 울림으로 남았다. 저자에 의하면 여행은 여행 중일 때보다 여행 이후 여행의 시간을 다시 음미하는 기억속에서 완전히 다시 태어난다. “마치 시간여행을 한 것처럼.” 그래서 여행 이후에, 여행에서 경험한 수많은 사건들과 여행 중에 느꼈던 감정,생각 등을 정리하고 되새기면서 나만의 에필로그를 쓰게 되면, 기억의 시간이 훨씬 깊이 있어지고 인생의 시간이 확장될 거라고 했다.


나는 책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이렇게 외쳤다. ”그래, 실내 마스크착용도 거의 다 해제되고, 봄바람도 불겠다, 어디로든 떠나보는 거야!“

독자들도 여행을 두고 시간이냐vs돈이냐줄타기를 하고 있다면, 책을 읽어보시길. 당신의 내면이 답을 찾는 책이 도와줄 것이니...!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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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 가족의 밭농사 - 조기 은퇴 후 부모님과 함께 밭으로 출근하는 오십 살의 인생 소풍 일기, 2023년 국립중앙도서관 사서추천
황승희 지음 / 푸른향기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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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백살, 조기은퇴와 귀농, 고양이 집사, 갱년기와 허리디스크 수술, 약골, 자발적 1인가족.

저자를 설명하는 키워드를 쓰고보니 책 한 권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 같다. 책 이야기를 하기 전 저자에 대해 먼저 언급하는 이유는, 나 말이지… 저자에게 사랑에 빠져 버렸기 때문. ♥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용기도 대단했지만, 에세이 중간중간 묻어나는 그녀의 생각의 깊이와 가치관에 완전히 매료 되었다.

저자는, 체력은 약하지만 강인하고, 스스로 게으르다 말하지만 누구보다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 같았다. 이웃과 문고리 펜팔을 나눌 정도로 다정하며, 2인에서 1인 가족을 미련없이 선택하는 주체적인 사람. 몸이 약해서 몸이 감옥 같다고 신음하지만 장기 기증과 시체 기증을 희망하고, 허리디스크 수술 후 어르신들과 실버 라인댄스 스텝을 열심히 밟는, 자신을 사랑하고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 ‘언덕과 시냇물처럼 오밀조밀 잔재미가 있는 인생 여행길을 사랑’하고, ‘욕심 없이 명랑하고 한가하게 사는 게 세상 최고’라는 인생관답게 가족을 아끼고 고양이와 정을 나누며 정직하게 수확한 작물로 소박하게 식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정말, 머시썽…♥


아니 근데 무엇보다 글을 너무나도 잘 쓴다. 쫀득쫀득한 탄력성을 가진, 독자로하여금 다채로운 감상을 가능케 하는 이 경이로운 글발은 대체 무엇! 굳이 빗대어 보자면 글은 '콩고물찹쌀떡' 같았달까. 갓 쪄낸 쫀득쫀득한 식감. 팥앙금의 달달함과 콩고물의 고소함이 어우러지는 다채로운 맛! 아 그런데, ‘콩고물찹쌀떡’은 목이 메어 하루에 몇 개 이상은 못 먹는데, 이 책도 글의 밀도가 높아서 가볍게 술술 읽어지진 않았다. 줄 긋고 싶은 문장이 많아 글 읽는 속도가 안 나기도 했고. 그 말은 읽을 거리, 생각할 거리가 풍성했던 에세이였다는 뜻!


책 제목이 왜 ‘사이보그’일까? 하는 궁금증은 1장 “사이보그 밭농사”에서 해소할 수 있었다. 온 가족이 인공물의 도움을 받아 일상을 유지한다고 했다. 엄마는 보청기, 발목에 박힌 철, 아빠는 틀니, 저자는 임플란트. 그리고 엄마와 아빠는 공장에서 손가락이 몇 개 잘렸고, 저자까지 세명 다 디스크 관련 수술도 했다. 누가 누굴 온전히 케어할 만큼 건강하지 않기에 “알아서 각자 아프지 말자”가 가훈이라고. 말은 이렇게 했지만,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사이보그 가족이 수확과 맞바꾼 허리 통증과 몸살은, 지금 내가 먹는 모든 음식들이 결코 쉽게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걸, 누군가의 땀이고 시간이고 눈물이라는 걸, 모든 노동에는 가치가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했다. 그렇기에 내가 먹는 모든 음식을 당연하다 여기지 말고, 감사한 마음으로 먹어야겠다고도 생각했다.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가족의 귀농과 밭농사 이야기, 2장은 저자와 부모님의 인생 이야기, 3장은 1인 가족의 애환, 4장은 고양이 집사로서의 삶.

화창한 하늘과 푸르른 밭, 세 명의 사람이 그려진 표지 그림처럼, 책의 모든 글에서 자연의 정취와 흙 냄새를 맡을 수 있었고, 작물의 감촉과 이마에 흐르는 땀의 끈적거림도 느낄 수 있었다.


차가운 도시에서 푸근한 인간의 정과 투박한 냄새를 맡아보고 싶다면,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보고싶다면, 가만히 안겨오는 고양이의 털을 느껴보고 싶다면, 에세이를 읽어보시길! 영화 <리틀 포레스트> 책에서 읽는 같은 기분을 독자들도 느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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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며, 배우며, 함께 쓰다 - играем, учимся, пишем вместе!
신창중학교 학생들 지음, 김유정 엮음 / 메이킹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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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며, 배우며, 함께 쓰다!≫ #신창중학교학생들


제목에 다른 언어가 있어서 유심히 봤더니, 신창중학교는 일반 공립 중학교이지만 학교 구성원의 약 40%가 고려인 학생들이라 한국어와 러시아어를 동시에 사용한다고 했다. 이 책은, 신창중학교 학생들이 시를 공부하고 시를 쓰고, 또 그 시를 모아 출간한 시집이다. 중학생 특유의 천진함과 순수함이 시에서 묻어난다. 에필로그 '서로를 향한 응원'에서는 친구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는 설렘이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한다. 비록 언어와 문화는 달라도,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음을 볼 수 있었다. 어쩌면 이 아이들을 경계에 세운 건 어른들의 편견 어린 시선일지도.


수록된 시들이 생각보다 수준이 높아 놀랬다. 소설('소나기')을 읽고 시로 표현해 낸 작품들은, 소설의 심상이 잘 드러나면서도 동시에 전연 다른 작품으로 재창조 된 것 같았다. 아이들의 숨겨진 실력에 감탄을 하며 읽었다. 아이들만의 감수성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문학(시)이라는 매개로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이끌어준 김유정 선생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아이들은 꿈을 꾸었고, 학교는 이 꿈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리고 출판사는 아이들이 마음껏 날갯짓을 할 수 있도록 하늘이 되어주었다. 얇지만, 결코 얇지 않은 꿈이 담긴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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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우리는 맑음
킨트 지음 / 메이킹북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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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우리는 맑음☀️


느린학습아동 태영이와 지유, 서윤이와 준서의 그림일기가 책으로 나왔다.

‘느린 학습자’는 “지적 장애인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평균 지능에 도달하지 못하는 인지 능력으로 인해 소속되어 있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여 지원과 보호가 필요한 자”로서, 흔히 ‘경계선 지능인’을 말한다.

관심 있게 보지 않아 그동안 사실 잘 몰랐는데, 우리 주변에 느린 학습자가 생각보다 많이 있다고 한다. 느린 학습자들이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그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모아주기를, 이 책은 독자들에게 요청한다.


나는 이 그림일기 모음집에서 창의적인 태영이, 어휘력이 좋은 지유, 색칠을 예쁘게 하는 서윤이, 귀여운 준서를 만날 수 있었다.


태영이는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많이 먹는다’는 속담을 가지고 ‘일찍 수업이 끝나는 학생은 자유를 많이 누릴 수 있다’는 자신만의 속담을 만들어 내고, 피카츄, 잠만보, 파오리를 합쳐 ‘피파만보’라는 이름을 만들어 내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창의적인 아이이다.

9살 지유는 어휘력이 풍부해서 ‘흑화, 유혈주의, 저만의 코드, 그라데이션, 꿀알바‘ 등의 단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했다. 부적응 지표에서 6개 모두 지수가 높았는데, 그게 전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서윤이는 모든 그림에 꼼꼼하게 색칠을 한 게 눈에 띄었다. 옷이나 배경도 비워두지 않고 색칠한 점에서 정이 많은 아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준서는 집중력이 약하고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아 별다른 대화 없이 그림만 그렸다는데, 그럼에도 준서의 그림에는 귀여움이 잔뜩 묻어나 있었다.


그림일기뿐 아니라, 활동을 하면서 교사들과 아이들이 나눴던 대화도 그대로 책에 실려있다. 교사들은 적절한 질문과 호응으로 아이들의 숨겨진 잠재력을 끌어내었다.

독자들도, 이 그림일기에서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성격과 생각, 일상, 잠재력 등을 발견해 보시길! 그리고 이들을 편견없이 바라봐 주고 따스한 시선으로 응원해 주시기를 바란다.


#메이킹북스 #킨트(K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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